고다르는 모든 영화가 결국은 '소년이 소녀를 만나는 이야기'(movies are all about 'a boy meets a girl')라고 했다. 세상의 모든 영화가 다 그런 것 같진 않지만, 상당수가 이 고다르의 정의 안에 숨쉬고 있다는 생각은 든다. <아름다운 청춘> 역시 그 상당수 안에 속하는 작품으로 정확히 말하면 '소년이 여선생을 만나는 이야기'가 될 듯하다.

19세기를 배경으로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영화 <엘비라 마디간>이 낯설지 않은 독자들이 꽤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엘비라 마디간>으로 이름을 알린 스웨덴 출신의 감독 보 비더버그(Bo Widerberg)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든 장편 영화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스웨덴에서는 잉마르 베르히만 감독과 항상 함께 언급되는 감독이다.

비더버그가 잉마르 베르히만과 같이 언급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생전에 베르히만의 스타일이 너무 현실 도피적이라는 이유로 공공연히 비판했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 <스웨덴 시네마의 미래>에서 비더버그는 베르히만의 영화들을 두고 '쓸 데 없이 신에 집착한다'고 비판했다. 동시에 좋은 영화란 현실에 존재하는 문제들을 다루는 '사회학적인 리포트'에 가까워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사회성이 짙은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다만, 켄 로치나 다르덴 형제처럼 사실주의적인 스타일과는 반대로, 서정적이고 은유적이지만 파격적인 시(詩)에 가까운 작품들을 만들어 왔다.

 영화 <아름다운 청춘>

영화 <아름다운 청춘>. 1995년에 제작되어 한국에는 1997년에 개봉했는데, 소년과 여선생의 사랑이라는 주제 때문에 몇 차례 반려됐다가 배급되었다고 한다. ⓒ Bo Widerberg


소년과 여선생의 사랑

소개할 작품 <아름다운 청춘>은 그가 살았던 사회상에 '소년, 여선생을 만나다' 이야기를 입힌 한 편의 시 같은 작품이다. 1995년에 제작되어 한국에는 1997년에 개봉했는데, 소년과 여선생의 사랑이라는 주제 때문에 몇 차례 반려됐다가 배급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베를린 영화제를 포함한 많은 해외 메이저 영화제들에서 수상하고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아름다운 청춘>은 2차 세계대전 초반인 1944년 스웨덴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15세 소년 스티그(비더버그 감독의 아들, 요한 비더버그 분)가 학교에 새로 부임하게 된 37세의 비올라라는 여선생을 짝사랑하게 되며 전개된다. 소년은 틈만 나면 그녀를 엿보기 시작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는 그녀의 옆 모습, 하얀 목덜미, 그리고 그녀의 길고 푸른 원피스 사이로 보이는 가터 벨트는 사춘기 소년의 욕망을 자극하고도 남는 이미지였던 것이다.

 <아름다운 청춘> 포스터

<아름다운 청춘> 포스터 ⓒ Bo Widerberg


소년은 자신의 욕망을 애써 숨기지 않는다. 스티그는 저돌적으로 선생님에게 구애하고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던 비올라는 망설임 없이 소년과 관계를 맺는다. 비올라는 틈만 나면 소년을 자신의 아파트로 불러들이고 그녀의 알코올 중독 남편은 둘의 사이를 눈치 채고 있는 듯하지만, 스티그를 아들처럼 보듬어 준다.

스티그는 서서히 이런 부적절한 관계에 염증을 느끼고 때마침 동갑내기 여학생과 사랑에 빠진다. 비올라는 질투와 외로움에 스티그에게 누명을 씌워 교장에게 보고한다. 그러나 더 큰 비극은 스티그의 분신과도 같았던 형이 전쟁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이다. 스티그는 졸업식 날 강당으로 찾아간다. 졸업생과 부모들이 앉아 있는 강당을 가로 질러 졸업생의 이름을 호명하는 그녀 앞에 선다. 그리고는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안절부절 못하는 그녀를 비웃고는 학교를 떠난다.

금지된 로맨스, 전쟁과 권력

<아름다운 청춘>은 이 둘의 로맨스와 섹스를 기본 골자로 하고 있지만 그 저변에 '전쟁'과 '권력'이라는 굵직한 획을 끊임 없이 드러내고 싶어한다. 작품의 외피에서는 전쟁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로맨틱하고 파격적인 사건이 그려진다. 그 위에 사춘기의 일탈과 전쟁의 가혹함을, 금기된 관계로 연명한 한 소년의 이야기가 교차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외피를 지표 삼아 심연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금기된 관계는 늘 그렇듯, 추악한 바닥을 드러낸다. 스티그는 권력투쟁의 집약체인 전쟁에 형의 목숨을 내준 지 얼마 되지 않아 비올라의 복수로 인한 또 다른 권력의 희생자가 된다. 그가 이 관계에서 얻어낸 것은 연상의 여자와의 사랑도, 처음 눈뜨게 되는 아름다운 성도, 최소한의 도피도 아니다.  그는 권력의 패악질과 음란의 탐닉이 숨을 다했을 때의 발악을, 몸으로 인생으로 익힌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화의 말미에 소년이 비올라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정면 노출하는 것은 일종의 남근적 상징(phallic symbol)으로, 권력에 대한 조롱이자 음란에 탐닉했던 자신에 대한 자조 섞인 비난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충격적인 비하인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영화는 보 비더버그 감독의 세미 바이오 그래피(semi-biography), 즉 그의 경험담을 (어느 정도) 극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이유로 작품에 등장하는 마을과 학교들 모두 실제 감독이 살았고 다녔던 장소들을 사용했다고 한다. 같은 이유로 다른 배우가 아닌 본인의 아들을 주연배우로 캐스팅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아름다운 청춘>

영화의 말미에 소년이 비올라 앞에서 자신의 성기를 정면 노출하는 것은 일종의 남근적 상징(phallic symbol)으로, 권력에 대한 조롱이자 음란에 탐닉했던 자신에 대한 자조 섞인 비난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 Bo Widerberg


소재가 감독의 스토리에서 차용되었다는 부분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나, 그러한 자전적 리얼리즘의 순기능이라면 영화가 비올라 선생님을 따라가는 시선이다. 그녀를 비추는 카메라의 시선은 옷감을 짜내듯 정성스럽다. 비올라의 푸른색 원피스, 그 원피스에 달린 수 많은 단추들까지 카메라는 직선으로 줄을 세우듯 조밀하게 파고든다.

얼토 당토 않는 번역의 국내 개봉 제목인 <아름다운 청춘>은 이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다. 원제는 Lust och fägring stor(Great Lust and Beauty) 즉, '위대한 음란과 (위대한) 아름다움'이란 뜻이다. 비더버그 감독에게 그의 유년 시절은 음란과 아름다움이 공존했던 시기로 기억이 되는 듯하다. 또한 영화 전반에 걸쳐 흩뿌려지듯 등장하는 헨델의 'Lascia Ch'io Pianga(울게 하소서)'는 그 음란과 아름다움이 도피가 되지 못했던 전쟁 시절 그가 겪은 울분을 역설하는 목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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