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싱어송라이터 최성무는 2000년대 초중반 가요계에서 꽤 잘나가던 세션맨이었다. 단국대학교 국악과에서 타악을 전공했지만 어려서부터 음악에 대한 재능과 호기심이 넘쳐나 피아노 등 다른 악기 연주는 물론 작사 작곡 편곡 및 노래까지 다방면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입학 후 가요 및 국악계를 넘나드는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다.
신해철·빅마마·세븐·양반언밴드·The 林 등 여러 팀들의 앨범 또는 공연에 참여하면서 명성을 얻어갔지만 그에게는 그것이 쌓여질수록 '자신의 음악'과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갔다고 한다.
2005년부터 품기 시작했던 '가수 최성무'의 꿈이 무려 12년의 기다림 끝에 첫 번째 정규 앨범 <바람의 여행>으로 결실로 이어지게 되었다. 우리나이로 올해 서른여섯 살이 된 최성무. 신인이지만 자신의 데뷔 음반에서 상당한 음악적 역량을 드러낸 실력파 뮤지션임에 틀림없다. 늦깎이 가수이기에 말하고 싶은 이야기와 들려주고 싶은 사연이 너무도 많았던 최성무을 3월 25일(토) 오후 1시 서교동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 최성무 1집 바람의 여행 앨범 자켓 ⓒ 최성무
- 첫 앨범이 발표됐을 때 심경이 남다르지 않았나? "수록된 곡들의 녹음 및 믹싱작업을 마치고 일본에서 마스터링을 하기 위해 작업실에서 이메일로 파일을 보낸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풀썩 주저앉아 펑펑 울었던 장면이 지금 다시 떠올랐다. 내 앨범을 갖기 위해 나름 우여곡절도 많았고 시간도 꽤나 오래 걸렸다. 완성된 CD를 받고서는 여러 장을 내 방 침대에 가득히 펼쳐놓고 마치 대화하듯 토닥거리기까지 했다.(웃음)"
- 부모님이 특히 기뻐하셨다고 하던데?"워낙 오랜 기다림 뒤 나온 음반이라 더 기뻐해주셨다. 고생과 실패를 겪은 자식을 지켜보시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 적지 않은 나이에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가수생활이니 만큼 부모님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고향이 경남 창원인데 아버지가 직장생활을 하시기 전부터 지역 트로트 가수로 활동을 하셨다. 아마 15년 전쯤인 것 같은데 부산 경남지역 노래대회에 두루 출전해 대상도 받은 적도 있고, 앨범을 냈을 때 내가 직접 작곡 및 프로듀서를 해 도움을 드리기도 했다. 지금껏 꾸준히 지역에서 열리는 행사에 나가 노래도 부르고 후배들과 함께 무대에 서시곤 한다. 예술봉사활동도 활발히 펼치고 계시다. 어머니는 색소폰을 잘 부르시는데 두 분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없었더라면 내가 늦깎이 가수로 데뷔하는 것은 힘들었을 거다."
12년 전의 결심, 6년의 준비기간- 앨범발매 전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다고 들었다"2010년 말 일본에서 돌아온 후 2011년부터 2년간 많은 곡들을 만들어 냈다. 2014년 연초 앨범발매를 목표로 2013년에는 주로 후반작업을 했는데 나의 큰 실수로 모든 곡들의 데이터 파일을 잃게 되었다. 복구하기 위해 무척 안간힘을 썼지만 잘 안 됐고,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상당기간 술에 의지했을 정도로 힘겨운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됐고 다시 음악작업에 몰두했다. 결국 2014년 12월 '그 겨울'이란 디지털 음원을 발표하며 최성무란 이름을 처음 알릴 수 있었다."
- 원래 2015년 1월 앨범을 내려 하지 않았나?"그렇다. 원래는 내 레이블을 설립해서 음반을 발매할 계획이었는데, 싱글 발매 후 지금 소속사 대표님을 만나게 돼서 상의 끝에 좀 더 세심하고 완벽하게 준비시간을 갖기로 했다. 2년이 넘는 작업과정을 거쳐 정식 데뷔 앨범 <바람의 여행>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 앨범 수록곡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그렇게 들었나?(웃음) 첫 트랙부터 끝 곡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혹시 기회가 생긴다면 이번 앨범으로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 우리네 인생의 희로애략을 내 음악을 통해 든는 분들이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있고, 궁극적으로는 모두에게 치유와 희망을 전하는 앨범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오마이뉴스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곡이 있다면? "20살 때 처음으로 작사 작곡을 해 이번 앨범에 담게 된 나름 의미가 있는 '바다를 찾아서'와 계절적으로 잘 어울리는 '꽃 눈'을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9번째 수록곡인 '안녕?..안녕....'은 원래 세월호 1주기 때 발표하려고 했던 노래였다. 2014년에 개인적으로 슬픈 일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있기 전 사랑하는 사람을 불의의 사고로 떠나 보내야 했고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49재를 치렀던 날, 집에 와서 감정을 추슬러 가면서 노랫말과 멜로디를 써가며 완성을 했다. 3년이 지난 뒤 발표하게 됐는데 나 자신에게도 위안을 주는 곡이고, 세월호참사로 인해 마음 속 깊이 아픔을 갖고 계신 모든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잘 나가던 세션맨의 삶 포기, 자신의 음악 위해 고행 선택 - 왜 뒤늦게 가수가 되고자 했나?"대학 입학 후 4년 넘게 퍼커션연주 및 편곡작업으로 공연 및 녹음 세션 활동을 하면서 꽤 인정을 받았고 그에 상응하는 수입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무대 뒤편에서 지켜보고 바라보는 입장이 되다보니 '내 음악'에 대한 갈증이 더 심해졌고, 2006년 이후 일체의 활동을 하지 않고 오롯이 내가 가야 할 '뮤지션의 길'에 대한 공부와 고민을 했다."
- 일본에는 어떻게 가게 되었나?"내 음악에 대한 좀 더 명쾌한 답을 얻기 위해 일본행을 선택했다. 버스킹과 클럽공연을 했고 데모CD도 만들어 프로덕션에 직접 돌리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재일교포 음악가를 만나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활동을 해나갈 수 있는 음악 회사를 공동 설립하자는 제안에 선득 나섰다가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되었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3년 정도 일본에서의 삶은 금전적으로는 피해를 입었지만, 좋은 뮤지션들과 교류하고 음악작업도 하는 등 값진 성과도 있었다."
- 향후 음악장르의 변화를 시도할 생각은 있나? "이번 앨범은 내가 추고하고자 했던 과거부터 최근까지의 음악 색깔이 다분히 짙게 표출되었다. 앞으로는 좀 더 대중에게 친밀하게 다가설 수 있는 시도들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얼마 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심수봉님의 '사랑밖에 난 몰라'를 라이브로 노래했는데 기대보다 더 뜨거운 반응을 주셔서 놀랐다. '한국의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로 만들겠다는 회사의 의지만큼 당사자인 나 또한 음악을 향한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거다."
- 음악경연프로그램에 출연하면 좋은 반응을 얻을 것 같다 "그런가?(웃음) 확정된 상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모 음악프로그램 작가분이 연락을 주셔서 프로필 등 여러 자료를 보냈다. 앨범이 발매된 지 얼마 상황에서 뜻밖의 전화를 받게 되어 너무 좋았고 잘 되면 제일 먼저 알려 드리겠다.(웃음)"
- 어떤 음악인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따뜻한 음성으로 한국적 감성을 가장 잘 전하는 '가수 최성무'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3월 3일 앨범발매 기념 콘서트 ⓒ 헉스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