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라인>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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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원라인>은 대출 사기업자들의 이야기를 배우들이 무리 지어 연기하는 영화다. 이 조건에서 영화는 필연적인 질문에 응해야 한다. 어떻게 사기를 칠 것인지, 금융사기는 현실적으로 어디까지 그릴 것인지, 캐릭터들은 어떻게 조립할 것인지. 그 질문에 대한 영화의 답을 되짚었다. 결국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글이다.

추천 이유를 요약하면, 영화는 만화 <하이큐!!>의 대사 "마을사람 B는 마을사람 B만의 멋짐이 있어!"를 떠오르게 만든다. <하이큐!!> 캐릭터에 빗대면 임시완은 미끼, 진구는 주장, 박종환은 리베로, 박병은은 상대팀 스파이커, 황지원과 박유환은 핀치 서버다. 그들을 그렇게 조립한 감독의 차기작이 보고 싶다.

어떻게 사기를 칠 것인가?

 영화 <원라인>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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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기를 칠 것인가?" 사기 소재의 오락물이라면 영화가 스스로에게 혹은 관객이 영화에게 묻는 첫 번째 질문일 것이다. 이 질문에 영화들은 <검사외전>처럼 사기 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거나 <타짜>처럼 기술을 익히는 과정에 중점을 두는 식으로 답한다. 그런데 <원라인>은 기술을 익히는 과정은 건너뛰고, 마지막 사기 수법 설명도 간결하다. <원라인>은 다른 방식으로 답한다. 영화는 극의 검사(조우진)가 하던 '윈도우 짝 맞추기 카드 게임'처럼 짝 맞추기를 한다.

대학생 민재(임시완)는 장과장(진구)의 작업 대출을 통해 은행에서 대출 받는다. 그런데 민재는 장과장의 수수료를 떼먹는다. 장과장 무리의 박실장(박병은)이 나서 민재를 장과장 앞으로 데려온다. 장과장은 민재에게 수수료 대신 함께 일하자고 권유한다. 민재는 민대리가 되어 기태(박종환)와 함께 작업 대출 업계에 뛰어든다. 민재가 자리를 잡을 무렵, 박실장은 장과장에게 큰 손들을 등에 업고 은행업계에 진입하자고 한다. 장과장은 반대하고 떠나면서 박실장은 은행업계 진출을 위해 나선다. 민재도 기태, 홍대리(이선영), 회화과 후배(박유환), 동아리 동기(황지원) 등과 독립한다. 그 다음은, 당연히 민대리 무리와 박실장 무리의 대립.

큰 줄기들로 줄거리를 제법 자세히 요약했는데도 이것만 봐서는 뭔가가 없다. 그런데 저 문장들 사이에서 <원라인>은 분주하게 짝 맞추기 게임을 한다. <원라인>은 설정들을 어떻게 해서든 전사시켜 짝으로 만든다. 이런 식이다.

민재가 팔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은 두 번 반복된다. 영화는 홍대리와 민재가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홍대리는 만나기로 한 민재를 찾지 못한다. 홍대리는 민재에게 손을 들어보라고 한다. 쭈뼛하게 팔을 들고 있는 민재가 보인다. 곧 민재는 장과장 무리에 들어간다. 영화는 형사와 민대리가 만나는 장면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형사는 역시 민재를 찾지 못한다. 약간의 변주, 이번에는 민재가 자발적으로 팔을 들어 형사에게 신호를 보낸다. 이제 형사가 민대리 무리에 들어온다.

외형적으로 짝인 두 장면은 민재 캐릭터를 설명하는 짝이기도 하다. 그들이 그를 찾았다고 착각하지만, 정작 그가 똑같은 목적으로 그들을 불러냈다. 영화에서 민재는 언제나 누군가를 먼저 찾는다. 또 배구 선수가 팔을 들어 서브 넣는 신호를 보내듯이 민재가 관객에게 사건들의 시작을 알리는 수신호 같은 짝이기도 하다. 민재가 팔을 들자, 민재가 민대리가 되는 전반부 사건이 출발하고, 민대리가 다시 민재로 돌아오는 후반부 사건이 출발한다.

짝 맞추기를 위해 영화가 어느 정도 공을 들이냐면, 포토샵 7.0의 활용 능력 여부를 산업디자인-회화-컴퓨터공학 전공자로 구별할 정도다. 포토샵이 싸이월드 시절에 그렇게 대단한 기술이었나, 의문을 품으면 영화에 지는 거다. 끝내 포토샵을 하지 못하던 회화과 후배는 결정적인 순간에 주특기인 필사로 포토샵을 대체한다. 후배가 포토샵을 하지 못하는 설정, 필사를 고집하는 설정이 서로 짝 맞추기를 한 것이다.

이런 것도 있다. 장과장이 달동네 계단을 올라가는 장면은 민대리가 피해자를 일일이 어떻게 만났는지 상기시키는 짝이다. 홍대리의 와잇(white), 동아리 동기의 피로회복제 수법, 기태의 탈골, 형사의 좌천 사연 등 모두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수많은 설정들이 후반부에 다시 복사된다.

<원라인>은 일련의 사기 영화와 다른 종류의 쾌감, 짝 맞추기 게임을 무진장 할 수 있다. 사기 소재의 오락물에서 사기 행각은 마술사의 미스디렉션처럼 그럴싸한 착시다. 정작 영화의 진짜 목적은 복선을 심어두고 마지막에 그 복선을 되감아서 트릭을 확인시켜주는, 일종의 눈치게임을 관객과 하는 것이다. 대개 결정적인 눈치 게임을 한두 번 정도 배치하기 마련인데, <원라인>은 영화 전체를 통해 짝들을 뿌려놓고 줄기차게 눈치 게임을 한다.

그러면서도 <원라인>은 되감기 장면이 없다. 다른 영화들과 구별점이다. 그 장면들이 적당히 눈에 걸려줬기 때문에 영상을 다시 보여주지 않아도 정답 체크가 될 정도로 매끄럽다. 그래서 설령 짝 몇 개를 놓쳐도 불편하지 않다. 쭉쭉 넘기면서 다음 페이지를 읽으면 된다.

다음 페이지를 읽는다? 그거다. <원라인>과 짝 맞추기 게임을 하다보면 마치 글자를 읽는 기분이 든다. 몇 장면은 대놓고 글자다. 가령 형사와 헤어지는 장면은 '신권을 먼저 찾으려는 군중 사이로 수백억을 훔친 그들은 유유히 사라졌다.', 장과장이 계단을 걸어 올라가려는 장면은 '그는 끝이 보이지 않는 달동네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밟고 올라갔다.'로 읽힌다. 물론 시나리오 원문은 더 좋은 문장이었겠지만. 산문형 장면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 강박이 읽힌다.

<원라인>의 글을 읽어보고 싶기도 하다. 더 신나게 읽을 듯싶다. 글로 먼저 읽었다면, 어떻게 그리 쉽게도 동아리 동기는 변덕을 반복하고-박실장 무리는 민대리를 제압하며-민대리는 형사를 낚았는지, 의아스러운 몇몇 장면도 '괜찮아 자연스러웠어.' 하면서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 수많은 설정들이 영화로 나타나면, 짝 맞추기는 마치 퇴고하면서 그에 맞는 설정을 앞에 가져다 붙인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다. 그러면서 정작 주요한 축이나 사연은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원라인>은 갈등도 싫어한다. 장과장과 형사(안세하)는 무턱대고 민재에게 호의적이다. 민재 때문에 기태는 호구가 되고 후배는 박실장에게 폭행을 당하지만, 그들은 다시 민재를 만났을 때 불편한 감정이 없다. 그나마 갈등은 민재와 박실장인데, 사실 그게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갈등의 전부다. 어차피 민재에 대한 불필요한 갈등들, 늘어질 필요 없이 퇴고 단계에서 깔끔하게 제거한 것처럼 보인다.

<원라인>의 세심함은 짝 맞추기에 한정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되감기 장면이 관객에게도 필요 없다. 너무 많으니까, 아예 가져다주니까, 몰라도 되니까. 기껏 특별한 편집이 무용하게 된다. 실은 그래서 이 영화는 "어떻게 사기를 칠 것인가?" 하는 고민을 글을 쓸 때 끝내버린 게 아닐까, 의심한다. 이래도 떡밥 회수라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 고민에 대해 <원라인>이 내놓은 답으로는 영화를 추천하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추천한다.

금융사기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영화 <원라인>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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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기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 이런 소재는 어쩔 수 없이 현실적인 질문을 유발한다. 공공의 피해자가 발생하는데 소수의 부자를 터는 <도둑들>처럼 아예 외면할 수는 없다. 그 질문에 <화차>처럼 폐해에 감정이입할 수도 있고, <마스터>처럼 분노를 유도할 수도 있다. <원라인>은 그 중간쯤에서 노력한다.

<원라인>은 금용사기 소재를 사기꾼들의 놀잇감으로만 삼지 않았다. 민재 아버지나 민대리가 만난 피해자들의 사연을 두고 영화의 노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이야기 전개를 위한 도구라서, 영화가 금융사기의 폐해를 전하는데 관심이 없었더라도, 필연적이다. 그들은 이야기 내에서 민대리가 민재로 돌아가기 위한 계기이자, 이야기 밖에서 박실장 무리가 민대리 무리보다 더 나쁘다고 관객에게 고발하는 증인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노력이라면 아무래도 이쪽이다. 외제차 대출금을 떠안는 한 남자의 에피소드. 영화는 그 남자를 따라가며, 그가 어떻게 꿈에 부풀었고 사기를 당했으며 반응하는지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이 간단한 에피소드는 <원라인> 구조에서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그는 여러 공간-자동차 대출 설명을 듣는 건물 내부, 자동차가 나열된 어딘가, 자동차에서 내리는 집 앞, 피해자들이 모인 설명회장 외부, 자신의 집 내부-을 움직이면서 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영화에서 피해자들의 짝 카드는 그들이 다시 동정 받는 장면인데, 유일하게 그게 없는 인물이다. 그럴 수밖에. 그 남자는 영화 밖의 관객만 볼 수 있다. 그는 주요 인물과 무관하기 때문에 영화 안에서 목격될 수 없다. 그러니까 짝 맞추기 구조에서 그 남자는 가외이자 예외다. 그래서 남자의 에피소드를 영화의 의도라고 짐작한다.

영화는 왜 그 남자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 장면이야말로 영화의 진심이 아닐까? '감고, 낚아서, 사이즈 나오면 코 뚫는 작업 대출'처럼 빌려 쓴 용어만으로는 영화가 '오리지널리티'를 주장할 수는 없다(관련 기사: 하나님과 예배가 암호? 금융사기 제대로 파헤쳤다). 그러나 이 영화가 '현실'을 조사하면서 맞닥뜨린 '실상'을 아무리 오락 영화라지만 무시할 수 없었던 제작진이 끝내 밀어 넣은 것이 그 보잘 것 없는 남자의 이야기라면,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 그 남자의 이야기가 그러하다면, 그 에피소드가 독창적이지 않지만, 그것으로 영화의 오리지널리티를 갈음할 수 있다. 나는 그렇게 봤다.

그런데 영화는 결정적인 지점에서 그에 반하는 매우 나쁜 태도를 취해버린다. 우선, '퇴직금'의 출처가 모호하다. 제일 나쁜 놈이 착복한 돈쯤으로 영화는 쓱 넘어갔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민대리 무리는 수백억원 은행 대출을 박실장에게 떠넘긴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뒤에서 더러운 짓들을 하는, 돈 많은 놈들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들"이라는 사기꾼의 '하나님'인 금융감독원 임원(김홍파)의 핑계를 긍정해버린다. 정작 그 돈을 메꿔야 하는 사람들은 그런 부자가 아니라 영화 속에서 신권 받겠다고 줄 서 있는 그들이다.

풀어야 할 문제를 이야기가 내버려두자 문제는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민대리 무리는 퇴직금까지 챙긴 주제에 의적 행세를 한다. 그거, 그러면 안 된다. 이야기대로라면 민대리 무리가 회개해야 하는데 알고 보니 면죄부를 구매한 거다. 장과장, 폼 잡고 달동네 계단 올라가 봤자 "시민들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합리화가 그대로 살아있다. 그 남자를 <원라인>은 끝내 애도하지 않는다.

영화의 비윤리적인 태도들에 '나만 불편해?'를 외치는 게 아니다. 오락영화니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짝 맞추기 게임의 부작용, 관객으로서는 안 떠올릴 방법이 없다. 임원과 장과장의 대사들이 떠오르는 그 순간, <원라인>은 사채업자를 마치 순진한 서민의 구세주처럼 그린 '지상파' 드라마 <쩐의 전쟁>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금융사기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해 <원라인>이 내놓은 답으로는 영화를 추천하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추천한다.

"마을사람 B는 마을사람 B만의 멋짐이 있어!"

 애니메이션 <하이큐!!> 스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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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들은 어떻게 조립할 것인가?" 이 질문은 무리를 움직이는 영화라면 꼭 풀어야 할 숙제다. 캐릭터들의 존재감과 배우들의 인지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한다. <도둑들>은 캐리터들을 아예 분리시켜 각각 그린 다음에 이어 붙였고, <조작된 도시>는 주요 캐릭터를 나머지 캐릭터들 등에 태웠다. <원라인>은 캐릭터들의 동선만 놓고 보면 <조작된 도시>에 더 가까운데 그 효과는 <도둑들>에 가깝다. <원라인>은 이 질문을 가장 진지하게 고민한 게 아닐까. 타자에게 읽혀질 고민이 아니라 보여질 고민을 배우들을 통해 비로소 보게 된다.

오지랖, 이 영화의 현실적인 고민은 캐릭터가 아니라 배우들이었을 것이다. 오지랖이 아닌 이유, 현 시점에서 관객들도 동일한 고민을 할 것이다. "나 같이 사이즈 되는 놈 하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라는 민재의 대사, 정말 임시완 하나 밖에 없다. 영화의 말버릇처럼 "사이즈" 문제다. 여기서 관객과 영화가 갈릴 것이다. 망설여도 되는 관객과 달리 영화는 제 배우들을 믿었다. 영화는 민재의 모토인 "철저한 분업"으로 캐릭터를 만들고 사이즈를 키웠다.

배우들이 하나 둘 등장하자, "마을사람 B는 마을사람 B만의 멋짐이 있어!" <하이큐!!> 히나타의 외침이 떠올랐다. <원라인> 배우들을 만화 <하이큐!!> 캐릭터들에 빗대어 설명하면 이렇다. (민재의 행동들을 보면 각본가가 <하이큐!!>보다 <쿠로코의 농구> 팬이 아닐까 싶긴 하다.)

민재 역의 임시완은 10번 히나타 쇼요처럼 '미끼'다. 주인공인 히나타 쇼요는 '괴짜 속공'을 성공시켜 상대 블로커들을 긴장시켜 윙 스파이커들의 활로를 열어주기 때문에 미끼라 불린다. 임시완도 마찬가지다. 임시완의 첫 장면들에서 -팔을 쭈뼛 들고 서 있는 그 장면부터 기태에게 휴대전화를 내밀 때 까지- 그는 '순진한 대학생' 민재를 연기한다. 관객은 민재가 앞으로 나락에 빠질 것을 기대한다, 당연히. 그 빤한 기대의 순간, 영화는 순진한 사람의 위치를 역전시키며 기분 좋게 관객의 기대를 배신한다. 글로 써진 서술 트릭이 임시완이 만들어낸 순진한 민재를 통해 영화로 완성된다. 그 지점을 지나면 관객은 임시완의 능글맞은 민대리에 몰입하다가 다른 배우들의 일격을 맞는다.

장과장 역의 진구, 1번 사와무라 다이치처럼 '주장'이다. 사와무라 다이치는 팀원들의 정신적인 지주이며 후배들의 토대를 만들어주는 역할이다. 진구가 그렇다. 모든 장면에서 여유로운 진구는 당돌한 민재를 받치고 거친 박실장을 받아낸다. 특히 영화의 가지치기는 진구 덕이 커 보인다. 영화는 장과장이 민대리의 회개 계획에 동참하는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지만, 진구가 만들어낸 장과장 이미지 덕에 장과장은 그랬을 것이라고 능구렁이처럼 그냥 넘어간다. 그런 식으로 넘어가는 장면들이 꽤 많다.

기태 역의 박종환, 4번 니시노야 유우처럼 '리베로'다. 니시노야 유우는 팀원들에게 등 뒤는 내가 지키겠다고 하는 리시브 천재다. 초반 성격이나 능력만 놓고 보면 기태는 정반대다. 그런데 박종환은 순진한 민재, 자신감에 찬 민대리, 성공에 취한 민대리에 대응하면서 바보 기태를 팀원의 뒤를 막는 진짜 형으로 만든다. 결국 니시노야가 블로킹 셧아웃을 발로 받아낸 장면처럼, 기태가 "막는 건 잘하는" 후배들과 박실장 무리를 막아내는 장면은 극 중 가장 짜릿하다. '츄리닝' 입은 기태가 '슈트' 입은 남자가 되어 팔이 빠져도 문을 지켜낸 글의 감성을, 박종환은 영화로 보여준다.

박실장 역의 박병은, 1번 우시지마 와카토시처럼 오로지 공격만 하는 '상대팀 스파이커'다. 우시지마의 존재감은 히나타 쇼요 팀 전체를 넘어선다. 박병은의 박실장이 그렇다. 그러니까 박병은은 임시완만큼 중요하다. 관객 머릿속에 더 나쁜 놈이 자리 잡아야 관객이 민대리 무리 입장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박병은은 임시완보다 한정된 분량에서 글로 쓰인 '더 나쁜 놈'을 영화 속 인물로 전환시켜야 한다. 사무실을 버리고 도망치는 자동차 안의 대화 장면을 보자. 박실장은 민대리에게 어떻게 첫 작업에 성공했는지 묻는다. 그 장면은 민대리의 무용담을 듣는 용도가 아니다. 민대리는 대답 대신 딴청을 하며 분위기는 험악해진다. 이 장면에서 박병은은 1:3으로 분위기 균형을 맞춘다. 임시완-진구-이동휘가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만들면 박병은이 혼자서 수위를 험악하게 끌어올린다. 그렇게 더 나쁜 놈 박실장이 나올 때마다 <원라인> 팀은 생기를 얻는다.

이 밖에 동아리 동기 역의 황지원, 회화과 후배 역의 박유환 등은 12번 야마구치 타다시처럼 '핀치 서버'다. 송차장 역의 이동휘는 7번 키노시타 히사시, 홍대리 역의 김선영은 8번 나리타 카즈히토에 가깝다. 황지원은 민재를 룸에서 대면하는 장면, 박실장을 따라나서는 장면에서 당당하다. 거기서 황지원의 진짜 역할은 당당함으로 이 장면들의 빈곤한 설명을 다 날려버리는 것이다. 박유환은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의 단독 개그 상황을 살려내서 관객을 웃게 만든다.

결국은 팬심이야? 그럴 수도, 임시완이잖아. 여하튼. <하이큐!!>에서 히나타는 연극에서 주연이 아니라 마을 사람 B를 연기하더라도 마을 사람 B만의 멋짐이 있다고 외친다. <원라인>이 최근 한국영화들과 다른 미덕이 거기 있다. <초록물고기>의 송강호와 정재영이, <닥터 봉>의 유오성이 2017년에 나오는 건 불가능하다. 배우 탓이 아니다. 최근 한국영화들은 배우들을 한꺼번에 데려다가 부질없이 소모한다. 돈이면 다냐 싶을 때가 있다. 나만 그래?

<원라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배우들을 기준으로 영화를 되짚으면, 조연에도 충분한 설정을 주고 카메라로 담아 매끄럽게 편집한다. 형사 역의 안세하, 검사 역의 조우진, 국세청 간부 역의 박형수 등 좌천 3인방에게도 애정 어린 시선과 설정이 있다. 그런 설정들이 억지스럽지만, 배우들을 그렇게 제대로 전달하는 영화라면 괜찮지 않은가?

그래서, 이 영화를 추천한다. 그래서, 감독의 차기작을 보고 싶다. <하이큐!!> 대사 하나 더, "돌아가는 길에만 볼 수 있는 꽃이 있는 법." <원라인>에서 양경모 감독의 꽃을 볼 수 있다.

원라인 양경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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