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수 연출의 <비정규직 특수요원> 포스터.

김덕수 연출의 <비정규직 특수요원> 포스터.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양적 팽창이 질적 발전으로 반드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이 명제는 이미 200년 전 독일의 철학자들이 대중에게 설파한 바 있다. 물론 그렇다. 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한국영화의 숫자가 많아진다고, 한국영화 일반의 품질까지 괄목상대(刮目相對)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비슷한 차원에서 은유적으로 말해보자. 날개를 달고 날아다닌다고 해서 봉황과 파리를 똑같은 '새'의 반열에 올릴 수는 없는 일이다. '좋은 영화'와 '시원찮은 영화'를 구분하는 잣대는 예전에도 있었고, 현재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최근 강예원과 한채아를 투톱으로 내세운 영화 <비정규직 특수요원>이 개봉했다. "사회적 이슈를 통쾌하게 뒤집어놓은 코미디" "전 세계에서 쇄도하는 뜨거운 러브콜"이란 헤드 카피를 달고 김덕수 감독이 연출한 <비정규직 특수요원>. 그런데, 난감하다. 대체 이 영화를 뭐라고 불러야 하지?

스토리 라인과 구성은 1980년대 한국영화가 '방화(邦?)'로 불리던 시절보다 허술해 보이고, 출연한 두 여배우의 개성을 어떤 측면에서도 살려내지 못했으며, 줄줄이 등장하는 남궁민, 조재윤, 김민교 등 조연들은 존재감은커녕 캐릭터 형성도 조악하기 짝이 없다.

백 번을 양보해 마구잡이의 비난을 자제하려고 해도 쉽지가 않다. 왜냐? 2시간에 가까운 상영시간 내내 눈을 치켜뜨고 찾으려 했지만, 어느 장면에서도 영화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 양식조차 발견해낼 수가 없었던 탓이다.

단 하나의 매력도 찾아내기 어려운 영화

 <비정규직 특수요원>의 한 장면. 전체적으로 뭔가가 허술해서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비정규직 특수요원>의 한 장면. 전체적으로 뭔가가 허술해서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그렇기에 <비정규직 특수요원>을 두고 "그래도 한 두 군데는 미덕이 있는 영화" 또는, "발전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영화의 과도기적 실수"라고 말하는 것도 파리를 봉황이라고 칭하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 같은 맹렬한 비판의 이유를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짐작할 것이다.

국가안보국 비정규직 요원 장영실(강예원 분)과 상관 박 차장(조재윤 분)이 벌이는 '보이스피싱 소동'에서는 현실감을 찾아보기 힘들고, 말끝마다 '쌍시옷'을 달고 사는 경찰 나정안(한채아 분)의 상스런 말투는 웃음보다 불쾌한 감정을 일으킨다. 그가 펼치는 액션 장면도 뭔가 허술하기는 마찬가지.

사건 해결을 위한 복선과 암시는 영화 어디에도 숨겨져 있지 않고, 관객 누구라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결말만을 향해 무기력하게 달려가는 연출에서는 힘을 느끼기 어렵다. 그러니, 엉성하게 조립된 인형 같은 캐릭터의 악당 두목(남궁민 분)이 단죄받는 장면에서도 통쾌함보다는 허망함이 밀려든다.

뭔가를 더 책잡아 구구절절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은데, 그렇게까지 하는 건 <비정규직 특수요원> 제작에 참여한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상처가 될 듯해 자제하려 한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말해야겠다.

영화가 끝나고 영사막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올 때 "대체 이게 뭐지?"라며 자문을 한 사람이 나 하나만은 아니었다. 옆 좌석에 앉았던 커플 중 여성이 황당하다는 듯 "뭐야?"라고 물었고 남성이 이렇게 답하는 걸 들었다.

"나도 몰라~."

비정규직 특수요원 한채아 강예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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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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