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행복 목욕탕>

ⓒ 디스테이션


1930~1940년대의 할리우드에는 '모성 멜로(maternal melodramas)'라는 장르가 만연했다. 헌신적인 엄마를 주인공(혹은 엄마의 헌신을 주제로 한)으로 눈물을 쏙 빼는 가족드라마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좋은 집안으로 시집가는 딸을 위해 출생 신분이 낮은 엄마가 먼 곳으로 떠난다는 내용의 <스텔라 달라스>(Stella Dallas, 1937), 근면하고 헌신적인 엄마가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혼자 속 썩이는 딸을 키우는 내용의 <밀드레드 피어스>(Mildred Piece, 1945) 같은 작품들이 흥행에 성공한 모성 멜로의 대표작들이다. 한국의 비슷한 예로는 <미워도 다시 한번>(1968), <친정 엄마>(2010) 등이 모성 멜로에 해당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멜로드라마'라고 하면, 남녀의 로맨스만을 주제로 한 장르라고 인식하기 쉽다. 영화 학자들에 따르면, 멜로드라마는 "감정의 과잉(린다 윌리엄스의 멜로드라마 연구 참조, Linda Williams, 2003)"을 이용하고, 그중에서도 신파적 감정의 과잉을 타깃화하는 부류의 영화들까지 범위를 넓혀 적용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흔히 말하는 '최루성 영화'는 남녀의 로맨스의 유무와 상관없이 멜로드라마의 연장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개봉한 <행복 목욕탕>은 전통적 모성 멜로의 프레임을 그대로 답습하는 현대 버전의 모성 멜로드라마다.

일본식 '모성 멜로'의 궤적

 영화 <행복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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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바(미쟈자와 리에 분)는 남편(오다기리 죠 분), 가즈히로가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간 후로 혼자 일을 하며 중학교 딸을 키우고 있는 싱글맘이다. 남편이 집을 나간 이후로 가업으로 운영하던 목욕탕 영업도 중단하고 동네 빵집에서 일하며 근근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그녀는 갑자기 직장에서 쓰러진다. 주치의는 그녀가 말기 암을 앓고 있으며 두, 세달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음을 선고한다.

그녀는 사설탐정을 고용해 집 나간 남편을 찾아낸다. 바람 피우던 여자와 딸을 낳아 살던 남편을 집으로 다시 불러들이고 행복 목욕탕의 영업을 재개한다. 영화의 나머지는 그녀가 죽기 전까지 수행하는 임무들을 하나하나 그려내는 데 중점을 맞추고 있다.

<행복 목욕탕>의 가장 큰 약점은 이미 너무 많은 일본 영화에서 보아왔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영화에는 유난히 죽음이 많다. 특히 시한부 인생의 여자, 혹은 엄마의 죽음이라는 소재는, <이별까지 7일> <하나의 미소시루> <도쿄 타워> 등, 일본의 가족영화 장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해 왔다.

흔한 소재를 가져와 쓴다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흔한 소재였음에도 계속 흥행작이 나오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소구력이 있다는 방증도 될 것이다. 다만 지적 하고 싶은 것은, 엄마의 죽음을 '또 다룬다는 것'이 아닌, 죽음을 앞둔 엄마의 행보와 그녀의 캐릭터 설정이 진보 없이 배우의 변화로만 무한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행복 목욕탕>에서 후타바는 죽음을 선고받고, 정해놓은 자기 과제를 한 개씩 수행해가는데, 과제라고 하는 것은 모두 그녀의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결핍을 채워주는 일, 그들의 사회적 재활 (?) 을 돕는 일이다. 가령, 집단학대를 당하고 있는 (의붓) 딸에게 용기를 주는 일, 딸이 친엄마와 재회하게 하는 일, 남편이 데려온 아이에게 가족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일 에서부터 그녀가 고용했던 탐정의 딸 (엄마 없이 자란) 에게까지 엄마의 부재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일까지, 이 모든 일은 그녀가 죽기 전에 하고자 하는 임무이고 이 임무들은 '그녀'의 일임과 동시에 '엄마'의 일이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이 재현하고 있는 후타바는 한 개인, 혹은 여성이 아닌, '엄마'라는 관념적인 대상을 대변하고 그에 따라 기능하는, 인물이라기보다 상징에 가까운 캐릭터로 보인다.

두 시간이 넘는 러닝 타임 동안 후타바의 개인적 배경은 거의 노출 되지 않는다. 죽음을 임박한 그녀는 탐정에게 부탁해 자기를 버린 엄마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한다. 친엄마는 후타바와의 만남을 거부한다.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친엄마를 후타바가 울며 먼발치에서 보는 시퀀스 하나를 제외하고는 그녀의 출생도, 고향도, 결혼도 관객의 상상 속에서만 맞춰야 하는 퍼즐로 남는다.

어머니에게 헌신은 의무일까

 영화 <행복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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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목욕탕>은 후타바의 개인적 서사를 철저히 배제한 채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나쁜 엄마들-도망가거나(아즈미, 아유코), 일찍 죽었거나(탐정의 딸), 결혼을 세 번씩 하거나(히치하이커)-과는 반대선 상에서, 이상적인 엄마의 모델로서만 존재하게 한다. 시한부를 선고받은 그녀가 개인적인 바램을 끝내 이루지 못한 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남의 가족'을 위해 살아가게 하는 설정은 '완벽한 엄마'라는 이 영화의 이데올로기를 너무 극단으로 밀어붙인 게 아닌가 싶다.

<행복 목욕탕>은 아쉬움이 많은 영화다. 어머니의 모성을 그리는 건 좋지만 굳이 시한부 인생의 엄마라는 관습적인 장치를 끌어왔어야 했나 싶다. 차라리 목욕탕을 운영하는 멋진 엄마의 모습을 더 즐겁게 다루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영화 중반에 후타바가 딸 둘과 여행을 가는 대목에서 이들은 히치하이커, 타쿠미를 만난다. 그는 세 번이나 결혼한 엄마에게 실망하여 집을 나와 방황하는 젊은이다. 후타바는 감동적인 설교와 포옹으로 젊은이를 '양지로 인도'한다. 그리스도가 고행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인도하듯이, 영화가 그려내는 후타바의 모성은 거의 신화적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큰 약점을 눈감아 줄 수 있게 하는 것은, 걸출한 배우들의 호연이다. 엄마, 후타바로 분한 미아자와 리에의 연기는 매 작품을 거치면서 눈부시게 진화하고 있다. 전작, <종이달>에서 일하던 은행 돈을 횡령하는 유부녀를 연기한 그녀는 종이처럼 앙상한 몸과 움직임 없는 눈동자로 자본주의의 거대 악을 품어냈다. 이번 작품에서는 엄마의 부재로 멍든 아이들의 절실함을 채워주는, 생기 넘치는 인물의 연기를 믿음직스럽게 해낸다.

그리고 꼭 언급해야 할 배우, 오다기리 죠는 우주에서 제일 게으르고 무책임한 아버지의 역할을 천연덕스럽게 수행한다. 가령 영화의 삼 분의 일 지점에서 등장하는 그의 모습에서부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몸을 세우고 나오지 않는다. 머리를 긁적거리며 한쪽 어깨를 내린 채로 등장하거나, 벽에 등을 기대앉아 담배를 피우거나, 벽돌이나 나무 조각 위에 걸터앉아 있는 등, 그의 몸은 단 한 번도 사물에 기대지 않고 정자세를 하는 적이 없다. 아마도 유달리 의지가 약한 남자의 캐릭터를 몸으로 만들어 낸 게 아닌가 싶다.

배우들의 호연과 시즈오카를 배경으로 한 시네마토그래피가 뇌리에 남는 작품이긴 하다. 하지만 '헌신'을 어머니를 상징하는 가치 중 하나가 아닌, 당연한 유일무이의 의무로만 그려낸 것은 안타깝다.

 영화 <행복 목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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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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