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창사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축구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6차예선 중국전에서 0대 1로 충격의 패배를 당한 축구국가대표팀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선수들이 24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슈틸리케 감독과 기성용, 차두리 코치가 대표팀이 굳은 표정으로 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 창사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축구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6차예선 중국전에서 0대 1로 충격의 패배를 당한 축구국가대표팀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선수들이 24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슈틸리케 감독과 기성용, 차두리 코치가 대표팀이 굳은 표정으로 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스포츠이자 한국 구기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던 야구와 축구에 나란히 2017년 3월은 '시련의 달'로 기억될 전망이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도전하는 축구 대표팀은 30년이 넘게 이어온 월드컵 개근 행진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3승 1무 2패(승점 10)의 성적으로 여전히 본선직행이 가능한 2위는 지켰지만, 우즈베키스탄(승점 9)과 시리아(승점 8)에 간발의 차이로 추격을 받는 상황이다.

특히 23일 중국 창사에서 원정경기로 치른 중국과의 A조 6차전에서 0-1로 패한 '창사 참사'는 단순히 1패 이상의 의미를 지닌 참패로 국민적으로 큰 충격을 안겼다. 이날 경기 전까지 한중전 역대 맞대결에서 18승 12무 1패의 압도적인 우위로 '공한증'(恐韓症)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던 한국축구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준 경기였다. 최근 사드 문제를 둘러싼 중국 내 반한 정서와 보복 조치를 겪으며 최소한 축구에서만이라도 화끈한 설욕을 원했던 팬들의 실망감은 더욱 컸다.

더 큰 문제는 28일 홈에서 열리는 시리아전마저 승리를 따내지 못할 경우 한국은 정말로 월드컵 본선행이 좌절될 수도 있는 위기에 빠진다는 점이다.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시리아전을 이기더라도 사령탑 슈틸리케 감독을 당장 경질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고척 참사' 당한 한국 야구, WBC 조기 탈락 수모

 지난 7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한민국과 네덜란드의 경기. 9회 초 한국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마지막 공격을 지켜보고 있다.

지난 7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한민국과 네덜란드의 경기. 9회 초 한국 선수들이 더그아웃에서 마지막 공격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축구의 창사 참사에 한발 앞서 야구대표팀은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고척참사'를 당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야구대표팀은 1라운드에서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에 연패하며 조기탈락의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는 주최국인 미국이 대회 출범 이후 사상 첫 우승을 차지했으며, 숙적인 일본도 4강에 올랐다.

이에 비하여 한국은 지난 2013년 3회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1라운드 탈락에다가, 사상 최초로 안방에서 열린 WBC 대회에서 졸전을 펼쳤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한국야구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나마 대만과의 3차전에서 승리하며 마지막 자존심은 지켰지만, 경기결과와 상관없이 이미 탈락은 확정된 상태였던데다 최종전까지 대만의 투지에 밀려 연장까지 끌려가는 등 답답했던 경기력은 야구 팬들의 큰 실망감을 자아냈다.

나란히 사령탑을 맡았던 슈틸리케과 김인식, 두 대표팀 감독의 처지는 2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2015년 당시 슈틸리케 감독은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에 이어 월드컵 2차 예선 무실점 전승 행보를 이어가며 '갓틸리케'라는 칭송을 얻었다. 김인식 감독은 그해 프리미어 12에서 초대 우승과 함께 일본(준결승전)에 9회 기적 같은 역전승을 일궈낸 도쿄 대첩을 통하여 '국민감독'으로 불렸다.

하지만 2017년 현재 김인식 감독은 어쩌면 대표팀 감독으로서 마지막 무대였던 WBC에서의 부진으로 사실상 40여 년간의 지도자 인생에 불명예스러운 마무리를 하게 됐다. 슈틸리케 감독은 시리아전 결과가 남아있지만, 여론은 이미 경질 일보 직전이다. 대표팀 감독은 독이 든 성배라는 징크스를 다시 한번 확인한 안타까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야구와 축구는 명실상부하게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 인기스포츠다. 야구의 KBO리그나 축구의 K리그는 아시아 톱클래스 수준으로 국제적으로 그 실력과 위상을 인정받고 있으며 스타급 선수들은 억대 연봉자들이 수두룩하다. 프로스포츠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과 미국 등에서 활약하는 해외파들도 다수 배출했다.

사실 그동안 한국 야구와 축구의 성장에는 국가대항전에서의 성과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2000년대 들어 한동안 침체기를 거쳤던 한국야구는 2008 베이징올림픽 우승과 WBC에서의 선전 등이 더해지며 중흥기를 맞이했다. 축구도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와 2010 남아공월드컵 원정 16강 등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형적 성장에 비해 내실 없다는 지적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동안 외형적인 성장에 비하여 내실은 거품이 끼었다는 위기론도 적지 않았다. 세계 스포츠의 동반 성장과 상향 평준화. 급변하는 경쟁 구도 속에서 한국스포츠는 과거의 성적과 성공모델에만 안주하여 적극적인 변화와 미래를 위한 준비에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한국축구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15년 사이에 무려 10명의 감독들이 팀을 거쳐 갔다. 감독들의 평균 임기는 2년이 되지 않았고 잦은 하차로 인하여 본선과 예선을 지휘한 감독들이 다른 경우가 많았으며 팀 운영의 연속성이나 장기적인 기획도 부족했다.

해외파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특혜나 파벌 의혹을 둘러싼 국내파와의 위화감이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다. 과거처럼 장기간의 합숙이나 단체훈련이 어려워진 환경 속에서 과거와 같은 끈끈한 팀워크나 한국축구만의 고유한 색깔이 실종되었다는 지적이다. 이에 비하여 전통의 강호인 일본이나 이란은 물론이고, 한때 한 수 아래로 꼽던 중국마저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며 한국은 이제 아시아에서도 강자의 위치를 장담하기 어려운 시대에 돌입했다.

야구의 경우, 대표팀 전임감독에 대한 논의가 무려 10여 년이 넘도록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칠순을 넘은 고령에다가 현장을 떠난 지 오래인 김인식 감독이 수년째 어쩔 수 없이 대표팀 지휘봉을 떠맡아야 했고, 과감하게 세대교체를 시도하거나 국제야구의 흐름을 따라잡는데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다.

또한, 이번 야구대표팀은 선수선발 과정에서부터 많은 잡음이 있었다. 메이저리그 야수들이 개인 사정과 소속팀의 반대로 잇달아 불참했고, 도박 논란으로 징계를 받은 오승환을 발탁한 것을 두고서 원칙을 깼다는 비판 여론이 나오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구성된 대표팀도 KBO 정상급 선수들은 타고투저나 FA 거품 등으로 진짜 실력보다 몸값만 지나치게 높게 포장됐다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병역 혜택같이 선수들이 동기부여를 끌어낼 만한 당근이 없었던 WBC에 임하는 자세가 예전보다 소극적이라며 대표선수들의 투지 부족을 질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한국 스포츠 구조적 체질개선 필요

하지만 일각에서는 일부 선수들이나 감독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스포츠의 구조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몇몇 유명선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 세계적인 흐름에 동떨어진 행정력과 시스템, 협회나 구단 모두 자기 잇속만 챙기는 집단이기주의와 파벌문화가 만연한 한국 스포츠계의 현주소가 결국 대표팀의 부진에도 반영된 결과인 셈이다.

최근 한국 구기 종목의 부진은 야구와  축구만의 문제도, 일시적인 현상도 아니다. 지난해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 한국은 1972년 뮌헨 대회 이후 44년 만에 '노메달'로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야구·축구와 함께 프로리그를 운영하고 있는 농구와 배구는 아시아 무대에서 2류로 전락한 지 오래이고,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같은 무대에서의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냉정히 돌아보면 태극마크도 이제 과거처럼 애국심이나 헝그리 정신을 막연히 강요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평가다. 달라진 시대에 걸맞은 구체적인 행정력, 외교력, 시스템, 비전 등을 갖추지 못한 스포츠는 점점 도태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지금처럼만 하면 팬들이 계속 사랑해주겠지라는 안이한 방심은 바로 몰락의 지름길이다. 절박한 위기의식이 필요한 순간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축구 야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