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 홀에서 열린 2017 KBO 미디어데이에서 SK의 박희수가 영어가 모국어인 트레이 힐만 감독과 자주 주고받는 바디랭귀지를 묻는 질문에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

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 홀에서 열린 2017 KBO 미디어데이에서 SK의 박희수가 영어가 모국어인 트레이 힐만 감독과 자주 주고받는 바디랭귀지를 묻는 질문에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 ⓒ 연합뉴스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트레이 힐만 신임감독은 KBO리그 사상 역대 두 번째 외국인 사령탑이다. 2000년대 후반 롯데 자이언츠 제리 로이스터(2008~2010년) 전 감독이 일으켰던 '외국인 감독 열풍'을 힐만 감독이 다시 재현할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은, 올 시즌 프로야구의 가장 흥미로운 관전포인트 중 하나다.

로이스터 감독은 2008년부터 3시즌 동안 롯데를 맡아 KBO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당시 롯데는 '8888577'(2001~2007 롯데의 리그 순위)로 대표되는 비밀번호를 찍으며 구단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의 영입 이후 선굵은 공격 야구를 앞세워 환골탈태하며 성적과 인기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메이저리그 출신의 로이스터 감독은 단순히 롯데의 성적만이 아니라 한국 야구에서 이전에 보기 드문 새로운 스타일의 리더십과 야구 트렌드를 KBO에 전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성흔-이대호-카림 가르시아로 이어지는 추억의 '홍대갈' 트리오와 두려움 없는 '노피어' 야구는 롯데의 역동적인 야구 스타일을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였다.

로이스터 이후 7년만의 외국인 감독, 힐만

로이스터 감독은 2008년 3위, 2009년과 10년에는 각각 4위에 오르며 3년 연속 준플레이오프 진출을 이끌어냈다. 물론 한계도 명확했다. 로이스터의 롯데는 준플레이오프에서 번번이 무릎을 꿇으며 단기전에 약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옥의 티였다. 2008년 3연패(삼성)-2009년 1승후 3연패-2010년 2승후 3연패(이상 두산) 등 모든 시리즈를 스윕 혹은 역스윕으로 마감하며 한번 흔들리면 걷잡을 수 없이 와르르 무너지는 패턴을 반복했다. 우승에 목이 말랐던 롯데는 세밀한 야구에서 약점을 드러낸 로이스터 감독과 결국 재계약을 포기했다. 로이스터 감독이 한국 야구에서 끝내 넘지 못한 한계다.

힐만 감독은 로이스터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힐만 감독은 특이하게도 한·미·일 프로야구에서 모두 감독직을 거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현역 은퇴 이후 지도자로서는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 감독을 역임했지만 최초의 정식 1군 감독 데뷔는 특이하게도 일본에서였다. 힐만 감독은 2003~2007년 일본 니혼햄 사령탑을 맡았으며 일본시리즈 우승(2006년)까지 경험했다. 일본에서의 성적은 5시즌 통산 351승 14무 324패다.

이후 힐만 감독은 2008년부터는 미국으로 돌아가 캔자스시티의 사령탑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3시즌 통산 152승 207패로 메이저리그에서의 성적은 다소 아쉬운 편이다. SK 감독직을 수락하기 이전까지는 휴스턴의 벤치 코치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힐만 감독은 미국 출신이지만 일본 시절의 경험를 통하여 아시아 특유의 세밀한 스몰볼과 작전야구에도 강점을 가졌다는 평가다. 로이스터 감독의 경우, 메이저리그에서는 밀워키의 임시 감독을 잠깐 역임한 것이 전부고, 한국에서는 대체로 괜찮은 성과를 올렸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을 감안하면 힐만이 한 수위의 경력을 가졌다고 할수 있다.

SK는 2000년대 후반부터 각각 3번의 우승과 준우승을 달성하며 왕조를 열었지만 2013년부터 최근 4년간은 5강 진출 1회에 그치며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김성근-이만수-김용희 등 각기 스타일이 상이한 감독들을 거치며 팀 고유의 색깔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구단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기도 한 힐만의 영입은 SK가 시도한 또 한번의 파격 인사다.

로이스터의 사례가 있다고 하지만 벌써 7년 전인데다 당시에도 공과에 대한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렸던 게 사실이다. 보수적인 국내 야구계에서 외국인 감독이 소통이나 문화적 차이로 인해 성공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아직도 적지 않다. 로이스터 감독이 나름 괜찮은 성과를 올렸음에도 이후로 힐만이 등장하기 전까지 KBO에서 새로운 외국인 감독이 나오지 못한 이유다.

SK는 지난 시즌 팀 홈런 2위(182개)의 장타력을 뽐냈지만 정교함과 뒷심이 떨어지며 결국 가을야구 진출에는 실패했다. 끈끈한 팀워크와 스몰볼로 대표되는 예전의 색깔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아직 많다. SK 구단은 힐만 감독이 메이저리그와 아시아 야구에서의 경험을 접목시키셔 SK만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힐만 감독은 프런트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 출신인데다 본인도 프런트에서 일했던 경험(뉴욕 양키스와 텍사스의 육성 파트)이 있는 만큼 SK가 추구하는 프런트야구에도 이상적인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염경엽 신임 단장, 힐만과 잘 어울릴까

염경엽 신임 단장과의 조화 여부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염 단장은 지난해까지 넥센의 사령탑을 맡았던 인물이다. 넥센을 창단 이후 첫 포스트 시즌과 한국 시리즈까지 이끌며 지도력을 인정받았고 지난해 SK의 차기 사령탑 후보로 공공연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결국 지난 시즌이 끝나고 넥센을 떠난 이후 SK와 손을 잡았지만 감독이 아닌 단장이었다.

힐만 감독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야구 실정에 훨씬 밝고 실적까지 갖춘 감독 출신 단장과, KBO 무대에 이제 첫 선을 보이는 신참 외국인 감독간의 관계가 다소 껄끄러울 수도 있는 대목이다. 과거 SK는 성향이 전혀 다른 김성근 전 감독과 이만수 코치(후임 감독)을 동시에 영입했다가 불협화음으로 상당한 내부 진통을 겪은 바 있다.

단장과 감독은 상호 공생관계이지만 역할 분담과 권한이 명확하지 않으면 오히려 조직에 혼란만 불러올수 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한화가 역시 감독 출신인 박종훈 단장을 프런트로 영입하며 성향이 전혀 다른 김성근 감독과 충돌하고 있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SK는 궁극적으로 힐만 감독과 염경엽 단장의 상호 협업을 통하여 중장기적인 시스템 야구를 정착시키는 것이 목표다. 구상대로만 된다면 기존 KBO 프런트야구에 획기적인 이정표를 여는 사례가 될 수도 있다.

힐만 감독의 SK는 올해 시범 경기를 4승 6무 2패 승률 4할로 마감했다. 다소 아쉬운 성적이지만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일 뿐이다. 힐만 감독은 한국무대에 첫 도전이지만 여유로우면서도 자신만만한 모습을 드러내며 올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힐만 감독이 보여줄 SK의 야구는 어떤 모습일지, 로이스터의 한계를 뛰어넘는 외국인 감독의 성공이 가능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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