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블루스퀘어 삼성카드 홀에서 열린 2017 KBO 미디어데이에서 넥센 히어로즈의 장정석 감독(가운데)과 서건창(왼쪽),신재영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09년 12월 30일 한국야구위원회는 이례적으로 하루 세 건의 트레이드를 승인했다. 총 4팀이 연루(?)된 트레이드였지만 각 거래의 중심엔 서울 히어로즈(현 넥센 히어로즈)가 있었다. 히어로즈는 팀의 원투펀치와 간판타자를 내주는 대가로 1군 경험이 많지 않은 신인급 선수 4명과 현금 55억 원을 얻었다. 야구팬들은 주력 선수를 팔아 운영비를 마련하는 히어로즈를 '거지 구단'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히어로즈는 우려와 달리 KBO리그에 완벽히 적응했다. 2013년부터는 4년 연속 가을야구에 진출했는데 이를 달성한 구단은 리그에서 히어로즈가 유일하다. 만약 요즘 잘 나가는 두산 베어스 팬이 히어로즈를 '거지 구단'이라 폄하한다면 '달인' 김병만처럼 살짝 미소를 날려주면서 한 마디만 하면 된다. "거 2014년에 한국시리즈 못 나가 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넥센은 2017 시즌을 앞두고 염경엽 감독(SK와이번스 단장)이 떠났다. 신임 장정석 감독은 선수 은퇴 후 한 번도 지도자 생활을 해본 적이 없는 '생초보'다. 하지만 올해도 히어로즈의 성적을 함부로 '하위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넥센은 매년 야구팬들의 의심과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으로 나머지 9개 구단을 놀라게 하는 KBO리그의 영원한 다크호스이기 때문이다.
[투수] 한현희, 조상우만 건강하게 돌아오면 투수 왕국?작년 히어로즈가 가장 잘 한 일은 바로 일본으로 수출했던 외국인 에이스 앤디 밴 헤켄을 재영입한 것이다. 7월 28일 두산전에서 컴백한 밴 헤켄은 12경기에 등판해 7승3패 평균자책점 3.38을 기록했다. 넥센의 가을야구 진출이 유력해진 9월에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국내 복귀 후 밴 헤켄의 6경기 성적은 무려 4승 무패 1.22였다. 90만 달러에 재계약을 한 밴 헤켄은 올해는 시즌 초부터 넥센을 위해 공을 던질 예정이다.
넥센은 밴 헤켄의 파트너로 빅리그 71경기에 등판했던 우완 션 오설리반을 선택했다. 오설리반은 시범경기 평균자책점(0.69)과 탈삼진(14개) 1위를 차지하며 기대감을 높혔다. 오설리반이 2선발로 제 역할을 해주면 넥센은 밴 헤켄, 오설리반, 신재영으로 이어지는 이상적인 선발 트로이카를 구성할 수 있다. 4, 5 선발은 프로 14년 차 좌완 오주원과 3년 차 우완 최원태가 유력한 가운데 장정석 감독은 작년 7승을 거둔 박주현을 불펜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불펜에서는 작년 시즌 세이브왕 김세현이 뒷문을 책임지고 홀드왕 이보근, 억대 연봉 선수가 된 김상수가 필승조로 활약할 예정이다. 많은 이닝을 던질 수 있는 박주현은 롱맨으로 활약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오주원의 선발 전환과 강윤구(NC 다이노스)의 트레이드로 좌완 투수가 부족하다는 점은 넥센 불펜의 약점으로 꼽힌다. 장정석 감독은 시범경기에서 선발 자원이었던 금민철을 꾸준히 불펜으로 기용하며 '좌완 스페셜리스트'로서의 활용 가능성을 실험했다.
올 시즌 넥센 마운드의 최대 변수는 작년 팔꿈치 수술로 나란히 시즌을 통째로 쉬었던 한현희와 조상우의 복귀 시점과 구위다. 두 선수는 시범경기에서도 등판하지 못했을 만큼 개막 엔트리 합류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넥센 불펜의 필승조로 활약했던 두 선수가 정상적인 구위를 가지고 마운드에 돌아온다면 보직에 상관없이 넥센은 FA투수 2명을 영입한 듯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
▲ 2017년 넥센 히어로즈 예상 라인업 ⓒ 양형석
[타선] 슈퍼스타 없어도 넥센의 방망이는 여전히 뜨겁다작년 시즌 넥센의 팀 내 최다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20홈런의 김하성이었다. 홈런 순위 공동 22위에 해당하는 초라한 성적이다. 하지만 작년 시즌 넥센의 팀 타율은 두산에 이어 전체 2위(.293)였다.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와 유한준(kt 위즈)의 이탈로 '넥벤저스'로 불리던 장타력은 많이 약해졌지만 넥센의 타격은 여전히 강했다.
'서교수' 서건창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리그 정상급 1번 타자가 됐고 2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한 고종욱도 이제 올스타 레벨의 외야수로 성장했다. 이종범,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 이어 역대 3번째로 유격수 20-20 클럽을 달성한 김하성은 경이로운 성장 속도를 보이며 만21세의 어린 나이에 벌써 연봉 2억 원을 돌파했다. 작년 92경기에만 출전하고도 19홈런80타점을 기록한 윤석민의 풀타임 성적도 궁금하다.
넥센팬들이 올 시즌 가장 흥미롭게 지켜보는 두 선수는 바로 '바람의 손자' 이정후와 작년 이영민 타격상의 주인공 김혜성이다. 이정후와 김혜성은 고교 시절 주로 유격수로 활약했는데 히어로즈에는 이미 김하성이라는 젊고 뛰어난 국가대표 유격수가 있다. 아직 두 선수가 어떤 포지션에 정착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넥센 팬들은 두 선수가 커가는 과정을 지켜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를 것이다.
그렇다고 넥센 타선에 호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넥센은 올 시즌 주전 중견수가 유력했던 임병욱이 팔꿈치 부상으로 개막전 합류가 불투명해졌다. 2014년 넥센의 1차 지명을 받았던 임병욱은 작년 시즌 타율 .249 8홈런24타점에 그쳤지만 호타준족형 외야수로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특급 유망주다. 임병욱의 예기치 않은 이탈로 인해 시즌 초반 넥센의 외야 운영도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키플레이어] 저가형 외국인 타자 대니 돈, 우량주 될까
▲ 지난 26일 오후 서울 고척돔 야구장에서 프로야구 넥센과 삼성의 시범경기를 마치고 열린 영웅출정식에서 넥센 서건창이 팀 깃발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작년 시즌 타율 .313 20홈런86타점을 기록했던 브렛 필(전 KIA 타이거즈)은 외국인 타자로서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퇴출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하지만 넥센은 타율 .295 16홈런 70타점에 불과(?)했던 외국인 타자 대니 돈과 65만 달러에 재계약을 체결했다. 발표 금액 기준으로 10만 달러가 삭감됐지만 3할도, 20홈런도, 80타점도 채우지 못한 외국인 타자가 재계약에 성공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넥센이 대니 돈과 2017년에도 함께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높은 출루율(.399)과 뛰어난 2루타 생산 능력(33개), 그리고 1루와 코너 외야수를 두루 소화할 수 있는 멀티 능력 때문이다. 실제로 대니 돈은 작년 시즌 지명타자까지 4개의 포지션을 돌며 129경기에 출전해 비교적 준수한 수비력을 뽐낸 바 있다.
특히 임병욱이 부상에 시달리고 있고 이택근도 한 살을 더 먹은 만큼 올해는 '외야수 대니 돈'을 더 자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으로 역수출된 에릭 테임즈(밀워키 블루어스)나 좋은 성적을 내고도 퇴출되는 브렛 필의 경우를 보듯 KBO리그의 외국인 타자를 보는 눈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시선은 대니 돈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될 것이다. 다른 외국인 타자에 비해 연봉이 적다고 해서 팬들이 그만큼의 활약에 만족할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대니 돈이 풀타임 주전으로 활약하며 25홈런80타점 정도를 책임질 수 있다면 넥센의 타선은 더욱 무게를 더할 수 있다. 대니 돈 입장에서도 올해 성적을 반등시킨다면 시즌이 끝난 후 올해 삭감됐던 연봉에 대한 보상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다. 히어로즈의 팬들은 시범경기에서 수염을 기르고 출전한 대니 돈이 올 시즌 타석에서 달라진 인상만큼 타석에서 강인함을 뽐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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