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트 네이션>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 필리핀 이주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호스트 네이션>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 필리핀 이주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주)시네마달


한국 여성들로 구성된 미군 위안부들로 운영됐던 미군 클럽들은 한동안 러시아 여성들의 고용을 통해 그 명맥을 유지하다가, 그조차도 어려워지자 필리핀 여성들을 미군 클럽 종업원으로 끌어들인다. 이들 중 대다수는 미군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고용되어 성매매는 하지 않는 조건으로 한국으로 건너오지만, 클럽 고용주의 강요에 못 이겨 불법 성매매에 뛰어드는 필리핀 출신 이주 연예인도 상당수다.

성매매에 뛰어든 필리핀 연예인

지난해 열린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첫 상영 이후 지난 25일, 제17회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상영한 <호스트 네이션>(이고운 감독)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까. <호스트 네이션>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온 필리핀 이주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주 연예인으로 한국에 오는 필리핀 여성들은 대부분 가난하거나 가족 부양을 책임져야 하는 싱글맘들이다. 한국 취업을 희망하는 여성들을 한국 미군 클럽에 연결해주는 브로커와 매니저들은 입을 모아 한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노력해도 많은 돈을 벌 수 없는 필리핀과 다르게, 한국에서는 조금만 고생하면 제법 목돈을 만질 수 있고 필리핀에 돌아오면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다고 자신들의 신념을 피력한다.

하지만 한국행을 결심하는 필리핀 여성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관객들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동남아 출신 여성 노동자들에게 결코 기회의 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을 법한 <호스트 네이션> 이고운 감독은 자신이 찍었던 필리핀 여성들의 한국행을 말리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이들의 한국행을 부추기는 매니저와 브로커들처럼 한국이 돈 벌기 좋은 나라라고 왜곡시키지도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감독의 카메라는 철저히 중립적이다.

<호스트 네이션>에는 한국에 가고 싶어 하는 필리핀 여성들 외에도, 이들을 한국에 보내는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이주 연예인 브로커와 매니저. 필리핀 여성들을 고용하는 미군 클럽 업주들의 이야기가 비중 있게 등장한다.

미군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사정 또한 두 갈래로 나뉜다. 성매매를 강요하는 업주에게 시달리다가 여성단체에 의해 극적으로 구조된 한 여성은 필리핀 이주 연예인이 처한 어두운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반면, 한국행을 간절히 원했던 마리아는 한국으로 온 뒤에도 큰 불만 없이 이주 연예인의 삶을 그럭저럭 이어가고 있다. 이주 연예인을 전문적으로 육성하는 매니저 욜리는 이주 연예인 지망생들에게 어떤 업주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녀들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여성의 극과 극 사연 또한 욜리가 수도 없이 강조했던 것처럼 업주에 따라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만약 <호스트 네이션>이 필리핀 이주 연예인들의 참혹한 현실을 '고발'하는데 주목적을 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면, 이 영화에는 한국에서의 이주 연예인 생활에 만족하는 마리아의 사연이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주 연예인 브로커와 매니저, 미군 클럽 업주의 이야기도 가급적 배제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상황을 두고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집약하여 하나로 묶은 <호스트 네이션>이 겨누는 대상은 따로 있다.

 영화 <호스트 네이션>

<호스트 네이션>에는 한국에 가고 싶어하는 필리핀 여성들 외에도, 이들을 한국에 보내는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이주 연예인 브로커와 매니저. 필리핀 여성들을 고용하는 미군 클럽 업주들의 이야기가 비중있게 등장한다. ⓒ (주)시네마달


한국인→러시아인→필리핀인... 미군클럽

<호스트 네이션>은 필리핀 이주 연예인들이 일하는 공간이 대개 주한 미군 기지 근처에 위치한 미군 클럽이라는 것에 주목한다. 주한 미군이 주둔하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기지촌'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존재했고, 기지촌에는 미군들을 상대로 술과 유흥을 파는 클럽들이 성행했다. 민간인이 하는 장사임에도 불구하고, 미군들이 드나드는 클럽은 주한 미군 사령관의 특별 관리 대상이었다. 미군들을 대상으로 매춘하는 미군 위안부의 존재가 필요악처럼 보이던 시절도 있었다. '양공주'라고 멸칭 받던 미군 위안부를 두고 달러를 벌어들이는 애국자, 민간 외교관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박정희 정부 당시,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미군 위안부와 기지촌 여성들을 직접 관리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지금도, 적지 않는 여성들이 미군들을 상대로 술과 웃음을 판다. 다만, 그 존재가 한국 여성에서 러시아, 필리핀 여성으로 교체되었을 뿐이다. <호스트 네이션> 인터뷰에 비교적 협조적으로 응했던 군산의 한 미군 클럽 업주는 요즘 미군 클럽들은 예전에 미군 위안부에 종사했던 한국 여성들과 달리 성매매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 그가 운영하는 클럽에서 일하는 마리아는 자신의 고용주를 괜찮은 사람이라 여기며, 업주 말대로 성매매를 강요받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필리핀 이주 연예인들이 불법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으며, 이 사실을 알게 된 주한 미군 측은 성매매가 적발된 클럽에 미군 출입 금지 통보를 내리는 등 대대적인 단속에 들어가고 있다.

<호스트 네이션>은 미군 클럽, 위안부를 두고 한국(클럽 업주)과 주한 미군 간에 오래 지속하여온 '특별한' 관계에 주목한다. 주한 미군은 장병들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성매매를 암묵적으로 인정했고, 한국 정부는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명분으로 미군 위안부 관리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미군들이 드나드는 클럽은 언제나 주한 미군의 필요 때문에 엄격히 통제받았고 클럽에서 벌어지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한 미군과 장병들은 철저히 '갑'의 위치였다.

 영화 <호스트 네이션>

주한 미군은 장병들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 성매매를 암묵적으로 인정했고, 한국 정부는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명분 하에 미군 위안부 관리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 (주)시네마달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필리핀 이주 연예인들의 비애에 숨겨진 구조적인 모순을 보여주고자 했던 <호스트 네이션>은 105분 남짓한 러닝타임이 빡빡하게 느껴질 정도로 방대한 촬영 자료를 자랑한다. 하지만 한 영화에 너무 많은 이야기와 현실을 담고자 하다 보니 정리가 안 되고 뒤죽박죽 흘러가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그래도 감정에 호소함에 기대지 않고 주한 미군 클럽에 일하는 필리핀 여성들의 현실과 그 주변인들의 이해관계를 비교적 차분히 담아낸 태도는 주목할 만하다.

한국 언론들이 쉽게 비판을 제기할 수 없는 존재 '주한미군'에 대해서 다른 방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독립 다큐멘터리의 힘이 느껴지는 문제작이다.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이어 제17회 인디다큐페스티발에서 상영한 <호스트 네이션>은 3월 29일(수) 오전 11시 한 차례의 상영을 더 남겨두고 있다.

호스트 네이션 주한 미군 필리핀 미군 클럽 인디다큐페스티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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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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