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은 있는데, 죽인 사람은 없다. 그래서 사인은 대부분 자살이나 사고사로 귀결된다. 한국의 흔한 '의문사'들은 그런 식으로 (사건이) 종결되곤 했다. 1989년 8월 15일, 거문도 유림해변에 떠오른 고 이내창씨의 경우도 그렇게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잊힐 뻔 한 사건이었다.

 2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2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혼자 간 것도 저 혼자 단독으로 행동한 적도 없고 저는 그냥 친구 따라 움직인 그거밖에 없거든요.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억울해요."

28년 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아래 <그알>) 제작진이 다시 만난 도씨는 억울하다며 눈물을 보였다고 했다. 도씨는 이내창씨의 의문스러운 거문도행에 함께한 것이 여러 목격자들에게 목격된 인물이었다. 그는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인천지부 소속의 직원이었다. 그의 신분이 알려진 후, 당시 목격자들의 경찰 증언은 판이하게 바뀌었다. 

그런 시대였다. 1989년은 서슬 퍼런 공안정국이 조성되던 시기였다. 이내창씨는 중앙대학교 총학생회 회장이었다. 대학생이던 임수경씨가 북한에서 열린 '통일축전'에 불법적으로 참가했던 해이기도 했다.

고 이내창씨는 당시 총학생회장을 역임하며 <민족해방운동사>라는 대규모 걸개그림을 주도해 유치한 인물이었다. '통일축전'에 이 그림을 복제한 작품이 등장하면서 <민족해방운동사>는 당시 공안기간에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이내창씨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죽이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죽을 사람은 또 없잖아요"라고 이내창씨 형은 말한다. 그렇게 25일 방영된 <그알> '수상한 동행, 그리고 거짓말 - 故 이내창씨 죽음의 비밀'은 죽은 사람만 있고, 죽인 사람은 없는 28년 전 의문사의 어두운 진실을 다시 뒤쫓고 있었다.

1989년 안기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내창씨 의문사

 2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2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당시 여수경찰서가 밝힌 사인은 자살에 가까웠다. 학교문제, 등록금 관계, 총장과의 대화 등 여러 고민 끝에 거문도 해변을 서성이다 '익사'했다는 것이다. 가족과 친구, 학교 선후배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연고도, 계획도 없던 거문도행도 의심쩍긴 마찬가지였다.

한창 학생운동 중이던 27살의 대학생이 자살하는 경우를 그 누가 상식적이라 생각할 것인가. 주변인들이 증언하는 이씨는 절대 경찰의 설명대로 "학내 문제로 평소 고민을 앓던 이씨가 스스로 거문도를 찾아가 바위 사이를 이동하다가 실족사"할 인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밖에 수상한 정황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익사하기엔 너무 낮은 수심, 시신에 가해진 사망 전 손상, 시신이 떠오르던 당시 해변을 서성이던 낯선 배, 부패를 더 빨리 재촉한 것만 같았던 시신 보관 상황, 승선보고서 등 사라진 증거 등등.

결정적인 것은 주민들의 증언이었다. 이씨가 거문도에 동행한 도씨와 남자친구 백씨는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 둘은 평소 이씨와 친분이 있던 사이로 보이지도 않았고, 우연히 이씨와 같은 배를 탔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에 의해 세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기도 했다. 더 수상쩍은 것은 뒤바뀐 경찰 증언이었다. 특히 이내창씨와 도씨를 목격한 다방종업원 최씨는 최근 제작진을 만나 의문스러운 말을 남겼다. 최씨는 이씨와 도씨를 목격했다는 첫 번째 증언을 이후 번복하기도 했다.  

"검찰청인가 대질심문을 했어요. 네 명인가 다섯 명인가 세워 놓고 한 번 짚어봐라 누군지. 내가 짚어보기까지 했는데. (거기서 도씨를) 봤어요. (중략) 어? 저 아가씨인데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거예요."

"학생들이라 그랬어요. (중앙대) 학생들이 '나중에 알고 보니까 이 사람들이 아니더라', '다른 사람을 내가 착각했다고 해라', 이렇게 이야기 했었어요."

제작진의 취재 결과, 도씨가 안기부 직원이라는 것이 경찰 조사 이후 알려지면서 목격자들의 증언이 바뀌었고, 그 사이에 '프락치'로 의심되는 '학생'이 등장하기도 했다. 또 한 거문도 주민은 당시 도망치던 이내창씨를 목격했다는 제보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내창씨의 죽음은 '의문사'로 남아 있었다. 유족들과 이씨의 지인들이 경찰과 안기부 등 당시 공권력이 어떤 '은폐'를 했으리란 짐작을 거둘 수 없는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안기부 직원 도씨에게, "이제 고백하세요. 더 늦기 전에"

 2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2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한 장면. ⓒ SBS


"끝나지 않았어요. 아직 끝을 못 봤으니 끝난 건 아니죠."

당시 도씨와 백씨를 거문도로 초대했던 것으로 알려진 백씨의 친구는 "우리도 피해자"라며 제작진에게 다 끝난 사건 아니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담당 PD는 "끝난 건 아니죠"라며 재차 질문한다. 그리고 방송이 끝난 다음날인 26일 오후 <그알> 배정훈 PD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도씨, 당신의 역할은 아마도 유인책이었겠죠. 당신은 28년 동안 거짓말을 했습니다. 무엇을 위한 거짓말인가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것, 이제 고백하세요. 더 늦기 전에."

이날 방송에서 <그알>은 구체적인 '살인'의 동기나 증거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여러 증거들이나 증언, 정황들은 이내창씨가 결코 실족사나 자살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었다. 특히나 그 '거짓말'이 도씨 혼자만의 거짓말이 아닐 거라는 '합리적 의심'을 던져줬다. 그때 만약 도씨가 안기부 직원이라는 사실이 제대로 밝혀졌더라면, 왜 안기부가 도씨의 죽음 언저리에 드리워졌었는지 하는 의심을 제기한 것이다.

또 의심스러운 점은, 같은 시기 독일에서 북한 공작원과 만났다는 혐의로 안기부에 조사를 받았던 홍성담 화백이 이내창씨의 이름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안기부 직원 도씨의 얼굴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알>은 '고문기술자'였던 이근안씨가 거문도 인근에서 거주했을 가능성과 그 공간에서 고문이 자행됐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주민들의 증언이 뒷받침됐다. 그렇게 20세기까지 공권력에 의해 적지 않게 저질러진 의문사는 한국사의 얼룩진 과거이기도 했다.

"2000년 1월 15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됐습니다. 이 법에 따라 대통령 소속 기구인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된 뒤 약 4년 간 이내창씨 사건을 포함해 여든 다섯건을 조사했고, 그 중 19건이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의문사로 인정됐습니다. 하지만 민주화운동과의 관련성을 인정받았을 뿐 죽음의 이유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은 채 위원회 활동은 종료됐습니다.

조사 권한만 있을 뿐,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위원회의 한계 앞에 만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2009년 4월 1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연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승인되지 않았고, 뒤이어 발의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도 예산부족을 이유로 국회 예결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씨의 사망사건과 같이 많은 의혹이 남은 사건들이 왜 의혹이 해결되지 안은 채 종결된 것일까요. 그것은 사실을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질문에 대답해야 할 이들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진행자 김상중의 마지막 멘트다. 제작진의 취재 결과, 국정원은 2002년 유족 진정으로 당시 안기부 개입 여부를 집중 조사했지만 관련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올 1월 여야 의원들은 진실화해법을 다시 발의했고, 현재 법안통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위원회'. 우리는 이러한 위원회가 얼마나 무력한지 최근 다시 깨달은 바 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서다. 그리고, <그알>은 '세월호 인양 과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다.

죽은 사람은 있는데, 그 죽음에 책임 있는 사람들이 침묵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나 이내창씨의 의문사나, 유족들을 아프게 하는 건 매한가지 결론으로 귀결된다. 배 PD가 도씨에게 고백을 종용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 유족들은, 국민들은 3년 만에 인양된 세월호 앞에서 매한가지로 안타까움 심정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이날 방송된 <그알>은 그렇게 과거 우리가, 한국사회가 밝혀내지 못한 진실이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그것이알고싶다 이내창 그알 의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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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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