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L 코리아> 시즌9 방송 중 크루 정이랑이 헌법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의 선고를 패러디했다.

시즌9 방송 중 크루 정이랑이 헌법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의 선고를 패러디했다. ⓒ tvN


"이에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SNL 시즌9을 시작한다."

무척이나 자신만만한 시작이었다. 첫 장면부터, 크루 정이랑이 헌법재판소 이정미 재판관의 역사적인 '박근혜 파면' 선고를 패러디했다.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며 전 국민을 긴장시켰던 이 재판관의 "그러나"도 놓치지 않았다. tvN <SNL 코리아> 시즌9의 첫 장면은 정치사회 풍자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으로 읽을 만한 출발이었다.

실제로 그랬다. 분량만 놓고 보면 적지 코너에서 현 정국을 풍자하는 장면이 속속 등장했다. 헌법재판소 판결을 위시해 드라마 <피고인> 패러디에 구속된 (김민교가 분장한) 최순실씨가 등장했고, '촛불집회 vs. 친박집회'의 풍경이 길게 극화됐으며, 각 대선주자들을 패러디한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이 방점을 찍었다.    

시즌1부터 지속된 '위크엔드 업데이트'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 수사 여부와 향후 검찰 수사의 방향도 언급했다. 결론적으로, 있을 건 다 있었다. "그러나", 왠지 허전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심정이랄까. "왜" 때문이었을까.

'기계적 균형'은 풍자가 아니다

 25일 방송된 tvN <SNL 코리아> 시즌9  첫방송의 한 장면.

25일 방송된 tvN 시즌9 첫방송의 한 장면. ⓒ tvN


시작부터 김을 뺐다. '광화문 연가'라는 제목의 'SNL 디지털 숏'이 그러했다. 촛불집회와 친박집회에 참여한 두 남자의 로맨스를 그린 이 콩트는 어설픈 '기계적 균형'의 극치를 보여주는 어정쩡한 스탠스로 일관하고 있었다.

어렵지 않다. 지속적으로 집회에 참가하던 두 청년, 그러니까 촛불집회에 나온 청년(정상훈)과 친박집회에 나온 청년(김준현)이 서로의 진영과 위치에도 불구하고 애틋한 화합을 이뤄낸다는 이야기는 감동도, 재미도 줄 수 없었다. 현상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빠진 섣부른 화해는 이 사회를 좀 먹게 했던 '기계적 균형' 이데올로기의 확장판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그 쉽고 유해한 걸, 초심을 외쳤던 <SNL 코리아> 시즌9이 해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나이브'함은 '위크엔드 업데이트'에서도 엿보였다. 사회적 현안을 건드리고 싶어 하지만, 번뜩이는 한 방은 부족하다. 그래서 변죽만 울린다.

'기자' 김준현이 6분 여에 걸쳐 리포트를 했다. 꽤나 머뭇머뭇댄다. 그 모습 자체로 박 전 대통령 관련 수사와 검찰의 대응이 부족하다는 풍자로 기능할 순 있다. 하지만 그 어떠한 촌철살인이나 '해석'을 담은 풍자라고 웃어주기엔 '세기'도 부족했고, '의지'도 엿보이지 않았다. "한국 대통령, 가장 위험한 직업"이란 소식을 전하는 앵커 신동엽의 연기도 대동소이했다.

어떤 부분을 어떻게 비판하고 풍자해야 할지, 감을 못 잡은 대본과 연기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도 아니면, 아직 몸을 사리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아직 몸이 다 풀리지 않은 것 같은 제작진과 출연진에 대한 아쉬움을 '여의도 텔레토비'를 잇는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는 풀어줄 수 있었을까.

'여의도 텔레토비'를 잇는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

 tvN <SNL 코리아> 시즌9  중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

tvN 시즌9 중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 ⓒ tvN


센터 재수생 '문재수'(문재인), 엘리트 연습생 '안찰스'(안철수), 자유로운 영혼 '유목민'(유승민), 충남 엑소 '안연정'(안희정), 효자손 아이돌 '레드준표'(홍준표), 사이다 '이잼'(이재명). 대선주자들을 국민이 선택하는 국민 '센터'(대통령) 자리를 놓고 벌이는 아이돌 연습생의 자리에 데려다 놓은 이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은 아마도 제작진이 벼르고 별러온 회심의 카드인 걸로 보인다.

때마침 확정된 조기대선 정국과 맞닿아 있고, 대선후보 면면이 다채롭고 수적으로도 여러 명이며, 무엇보다 국민들의 관심도가 어느 대선 때보다 드높다. 이를 치열하게 경쟁하는 아이돌 연습생의 처지에 빗댄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정성호나 김민교, 정이랑 같이 모사에 능한 연기자들도 포진해 있다.

실제로, 김민교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탁월하게 모사한 바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를 연기한 정성호는 자타공인 성대모사의 달인이다. 홍준표 경남지사를 패러디한 정이랑 역시 수준급이다.

제작진의 공부도 평균 이상이었다. 발 빠르게 자유한국당 지지율 1위인 '레드준표' 홍 지사를 포진시켜 '문재인 후보 아들' 의혹을 연상시키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나 안연정의 "'안티'도 '선의' 아니겠습니까?" 라는 대사나 안찰스의 "양보" 운운 역시 시의적절 했다. "특공"을 외치는 문재수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헌데, '여의도 텔레토비'에서 '종횡무진'했었던 '구라돌이'의 활약이 부담스러웠던 걸까.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패러디할 인물이 빠진 것은 심히 유감이다. 전체 소개 화면에 등장한 7명 중 1명이 빠진 것도 의아하다. 한 마디로, 관심은 가지만 '대박'까진 아직 아닌 '티저' 예고편이랄까.   

초심 외친 <SNL 코리아> 시즌9, "그러나"...

 25일 방송된 tvN <SNL 코리아> 시즌9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의 한 장면.

25일 방송된 tvN 시즌9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의 한 장면. ⓒ tvN


사실 이날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는 일종의 '티저'라고 해도 무방해 보였다. 한 명 한 명 멤버들을 소개하고 그 특징을 잡아내는 일종의 예고편 말이다. 그 만큼 한 주 한 주 급변하는 대선정국에서 어떤 이슈를 잡아내고 누구에게 풍자의 칼날을 들이댈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제작진의 날카로운 감각과 시선이 담보되어야지만 가능한 형식이 바로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이라 할 수 있다.

대사 하나, 인물 하나의 단편적인 패러디와 결을 달리한 다는 얘기다. 초심을 선포한 시즌9은 이미 잘해왔던 것과 과거에 잘했으나 좌초됐던 풍자가 뒤섞여 있다. 영화/드라마 패러디나 호스트의 장점을 살리는 콩트, 권혁수의 더빙 극장이나 '미국아빠 vs. 한국아빠'와 고정 콩트 등이 혼재돼 있는 것이다. 또 19금 콩트가 사라진 자리를 사회풍자로 대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호스트 최수영의 외모가 정이랑으로 변하는 <미녀와 야수> 패러디와 같이 혐오나 차별적인 시선이 넘실거려서는 곤란하다. 풍자 역시 좀 더 세밀하고 정교함이 필요하다. '미운우리 프로듀스 101'도 마찬가지다. 제작진이 시즌9을 거치는 동안, 국민들의, 시청자들의 눈높이도 지난 4년간 훨씬 높아졌다.

초심을 부르짖은 만큼, <SNL 코리아9>이 재기발랄했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25일 방송된 시즌9 첫 방송은 그러한 영광을 되찾기엔 부족해도 한참 부족해 보였다.

SNL코리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