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디씨드


"옛날 어떤 왕국에 탐욕스런 왕이 있었습니다"라는 시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설화에 흔히 등장하는 클리셰다. 가깝게는 최근 실사 영화로 리메이크된 <미녀와 야수>가 그랬고, <백설공주>나 <미다스의 왕>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경우라면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다.

영화 <어느 독재자>는 말하자면 현대판 권력자 이야기다. 실존하지 않지만, 어디에든 있을 법한 독재 국가가 배경이고, 역시 어딘가 기시감이 드는 독재자가 주인공이다. 영화는 폭군으로 악명높은 대통령(미하일 고미아쉬빌리 분)이 갑작스레 권력을 잃으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룬다. 분노한 시민들의 혁명으로 인해 궁에서 쫓겨난 그는 어린 손자 도치(다치 오르벨라쉬빌리 분)를 데리고 망명을 위한 도피를 이어가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외면했던 '민심'과 곳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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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했던 독재자의 추락을 대하는 이 영화의 태도는 여느 권력자 서사와 사뭇 결이 다르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잔혹한 폭군이었을 대통령은 하루아침에 힘없는 노인이 되고, 궁에서 누린 온갖 부와 권력을 모두 잃은 채 거렁뱅이 같은 옷을 입고 외양간에서 잠을 청한다. 나날이 뛰어오르는 현상금과 "대통령을 잡아 죽이자"라는 식의 격양된 군중 앞에서 피폐해져만 가는 두 주인공의 모습은 통쾌함이 아닌 동정심을 자아낸다. 그렇게 영화는 과거 강자였던 이들을 현재의 약자로서 위치시키며 '권력 잃은 권력자'의 비참한 말로를 조명한다.

독재자 개인의 악행이 아닌 권력 그 자체의 속성에 방점을 찍는 영화 특유의 연출 또한 인상적이다. 도로 위로 이어지는 화려한 조명을 카메라가 유유히 따라가는 영화의 오프닝 신, 손자 앞에서 대통령 전화 한 통으로 온 도시의 불을 끄고 켜 보이는 초반부 장면 등은 특히 인상적이다.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마술'에 눈을 빛내며 "저도 해보고 싶다"고 말하는 도치의 모습은 아이 특유의 순수함과 무지에서 기인한 악마성을 동시에 내비친다. 이들에게 있어 권력이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라기보단 그저 '할 수 있으니까' 이리저리 휘둘러 보는 장난감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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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도치가 도피생활 중 맞닥뜨리는 인물들은 이런 권력의 부정적 속성을 의미심장하게 부각한다. 혁명의 성공으로 폭동과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면서 나라는 "당장 한 시간 후도 장담할 수 없는" 혼란 사태로 치닫고, 두 주인공이 지나치는 곳곳마다 다양한 형태의 착취와 약탈이 잇따른다. 창녀에게 총을 들이대며 외상을 강요하는 군인, 지나가는 자동차를 세워 강도질을 하는 거로도 모자라 강간과 살인까지 일삼는 일당까지. 한때 가장 높은 곳의 가해자이자 방관자였던 대통령의 눈앞에 닥친 권력의 추악한 민낯은 "보지 말라"며 손자의 눈을 가리는 그의 태도와 더불어 퍽 모순적으로 느껴진다.

결국 <어느 독재자>가 바라보는 권력은 이동할지언정 절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극 중 독재 속에 핍박받던 국민은 대통령을 끌어내린 거로 모자라 복수심에 불타 그의 숨통을 옥죄고, 어린 도치에게조차 칼끝을 들이민다. "일단 독재자를 죽여야 민주주의든 뭐든 된다"는 대사는 불안 속 광기 어린 이들의 심리를 그대로 대변한다. 하지만 성난 군중 사이에서 돌연 폐부를 찌르는 건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이런 망할 체제가 계속될 것"이라고 외치는 어떤 이의 말이다. 그렇게 영화는 권력의 바통을 이름 없는 '국민'에게 넘기고, 그들의 분노와 복수심을 용서와 화해로 치환하려 시도한다. 독재자와 국민이 마침내 맞닥뜨린 뒤 벌어지는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그 정점이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로서 아직 갈 길이 먼 지금의 대한민국에 대입해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어느독재자 민주주의 독재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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