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나라 어느 작은 숲속 마을에. 호기심 많은 꼬마 펭귄 뽀로로가 살고 있었습니다."
"안녕? 난 뽀로로야."

2003년 11월 27일. 고글과 안경을 쓴 장난꾸러기 꼬마 펭귄 뽀로로는 그렇게 등장했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뽀로로가 노래하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쳤다. 아이에게는 웃음을, 부모에게는 휴식을. '뽀로로의 전설'이 시작됐다.

유튜브 조회수 월 1억... 여전한 '뽀통령' 위상

아이코닉스 최종일 대표, 뽀로로와 함께! EBS 유아프로그램 <뽀롱뽀롱 뽀로로>를 제작하고 있는 아이코닉스 최종일 대표가 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아이코닉스 사옥에서 뽀로로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아이코닉스 최종일 대표, 뽀로로와 함께!EBS 유아프로그램 <뽀롱뽀롱 뽀로로>를 제작하고 있는 아이코닉스 최종일 대표가 9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아이코닉스 사옥에서 뽀로로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뽀롱뽀롱 뽀로로>(아래 <뽀로로>)의 혁명과도 같았던 성공에 힘입어 잇따라 등장한 <냉장고 나라 코코몽> <꼬마버스 타요> <로보카 폴리> <헬로 카봇> <변신자동차 또봇>. 하루가 멀다 하고 '뽀로로 수출국' 숫자가 갱신돼 보도되던 때도 있었지만, 어쩐지 그때만 못한 미디어의 관심. 뽀로로는 이제 동생뻘 캐릭터들에게 왕좌를 물려준 걸까? 하지만 2~5세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뽀로로는 최고의 친구이자 우상이라고 말했다.

아이코닉스 최종일 대표는 "'몇 개국 수출됐다'는 내용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며 웃었다. 이전에는 프랑스 방송사와 계약해야 프랑스 어린이들과 만날 수 있고, 일본 방송사와 계약해야 일본 어린이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이 변했고, 지금은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 어린이들이 뽀로로를 만나고 있다.

"유튜브 공식 채널 뷰(view)수가 월 1억 정도예요. 인터넷이 들어가는 나라들은 거의 '뽀로로'를 보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영어, 일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여러 나라에서 쓰는 언어는 거의 다 번역됐어요." (최종일 대표)

유아용 콘텐츠인 뽀로로의 가장 열렬한 팬층은 2~5세. 뽀로로가 2003년에 데뷔했으니, '21세기 아이들'은 한 번쯤 뽀로로에 열광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처음 뽀로로에 열광했던 그때 그 꼬마들은 어느덧 20대에 접어들기 시작했고, '벼락스타'로 데뷔한 뽀로로는 팬들의 성장과 함께 '국민 스타'로의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데뷔 15년 차 아이돌 뽀로로의 오늘이 궁금했다.

데뷔 15년 차 아이돌 뽀로로

'뽀롱뽀롱 뽀로로' 콘티 작업 EBS 유아프로그램 <뽀롱뽀롱 뽀로로>를 제작하고 있는 아이코닉스에서 9일 오후 스토리보드 작가들이 콘티 작업을 하고 있다.

<뽀롱뽀롱 뽀로로> 콘티 작업 중인 스토리보드 작가.ⓒ 이정민


 뽀로로 자료사진

스토리보드 작가가 만든 콘티는 애니메이션 제작의 초안이 된다.ⓒ 아이코닉스


'뽀로로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종일 대표는 <뽀로로>의 시즌1과 시즌2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캐릭터 구상은 물론,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직접 썼고, 아이들의 귀를 사로잡은 '고래야' '야채 삼총사' 등 <뽀로로와 노래해요> 속 창작 동요의 가사를 직접 쓰기도 했다. 초기에는 뽀로로 세계의 대부분이 최 대표의 머리에서 탄생한 셈. 하지만 지금은 여러 PD, 작가 등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다.

<뽀로로> 제작진은 최 대표가 구축한 캐릭터의 틀을 유지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시즌3부터 <뽀로로>에 참여한 원종익 작가는 "긴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에 기존 캐릭터를 그대로 이어가기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최 대표도 구축된 캐릭터를 말도 안 되게 벗어나는 것만 아니라면, 작가·PD들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존중해주는 편이라고.

원 작가는 "변화를 준다기보다 기존 캐릭터에 특징을 덧붙이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어떤 걸 좋아하는 장면이 한 번도 안 나왔는데 '사실 나는 이걸 좋아해'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식이다. 캐릭터의 기본 특징을 유지하면서 성향을 강화하기도 하고, 성향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을 뒤집으면서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한다.

작가들에 손에서 탄생한 이야기는 스토리보드 작가들의 손에서 콘티가 되고, 모델링 작업을 거쳐 애니메이션이 된다. 여기에 여러 음악, 음향, 더빙 등 후반 작업까지 마치면 아이들의 친구, 뽀로로가 완성되는 것이다.

스페셜 시즌 준비 중인 뽀로로

2011년 동업 관계이던 오콘과의 저작권 분쟁은 2013년 끝이 났고, 두 회사는 역할을 나눠 오콘은 극장용, 아이코닉스는 TV 시리즈를 만들기로 했다. 초기 시리즈에서 오콘이 맡았던 애니메이션 작업은 현재 아이코닉스 자회사인 스튜디오 게일이 맡고 있다. 새 시즌 준비에 한창인 이들의 작업을 잠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올여름 공개 예정인 새로운 뽀로로는 '시즌 7'이 아닌, '스페셜 시즌 1'이다. '스페셜 시즌 1'로 명명된 이유는, <뽀로로> 시즌 1을 HD 화질로 재제작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계속 후속 에피소드들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뽀로로>가 만들어진 기본 정신과 메시지가 가장 잘 담겨있는 에피소드는 초기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때는 아직 우리나라 디바이스가 HD로 바뀌기 전이라 화질이 좋지 않아요. 게다가 15년 동안 캐릭터 디자인도 조금씩 바뀌었거든요. 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최종일 대표)

 뽀로로 자료사진

시즌1의 뽀로로와 지금의 뽀로로는 모자부터 다르다.ⓒ 아이코닉스


 뽀로로 자료사진

화질과 옷차림이 바뀌는 <뽀롱뽀롱 뽀로로> '스페셜 시즌1'. 바뀌는 건 이게 다가 아니다.ⓒ 아이코닉스


2000년생 아이들과 2015년생 아이들이 모두 같은 뽀로로를 보며 열광한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 사회적 인식도, 정서도 달라지고,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달라진다. 데뷔 15년 차 뽀로로의 딜레마다.

때문에 2017년에 재탄생되는 <뽀로로>는 단지, 옷만 입히고 화질을 키우는 작업이 아니다. '레전드 에피소드'에 담긴, 시대가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보편적 정서와 메시지는 유지하되, 지난 15년 동안 바뀐 사회 분위기와 인식에 맞춰 내용도 조금씩 수정될 예정이다.

"루피가 어른 비버에 대한 그림책을 보면서 예뻐지고 싶다고 상상하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거울 보면서 '나는 키가 작아', '나는 뚱뚱해' 라고 생각하는데, 이걸 '난 뚱뚱해 안 예뻐'가 아니라, '어른이 되고 싶어. 키가 커지고 싶어'라고 바꾸는 식이죠.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루피의 고민은 이어가되, 현시대의 감수성에 맞춰 수정하고 있어요." (김형교 PD)

시대가 바뀌고, 아이들도 바뀌고

 뽀로로 캡처

왜 요리는 루피만 할까? 15년 전에는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요리를 좋아하고 수줍음 많은 루피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반영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시간이 흐른만큼, 사회적 인식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이코닉스


당시엔 생각지 못했다가, 후에 문제가 지적된 내용은 또 있다. 요리를 좋아하는 루피는 수줍음 많고, 조용하고, 내성적인 소녀 캐릭터다. 활발한 다른 친구들에 비해 소심한 면모도 자주 보인다. 최근 몇 년 사이 페미니즘과 양성 평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엄마들의 젠더 감수성도 높아졌다.

엄마들은 왜 음식은 여자 캐릭터인 루피만 하는 건지, 루피는 왜 늘 소심하고 내성적인 건지 지적하며, 아이들에게 성 역할에 대한 그릇된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이 같은 지적에 최종일 대표는 "루피 캐릭터 설정할 때 사려 깊지 못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수긍하며, "이후 초기에 놓친 부분들을 고쳐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그래서 등장시킨 게 패티였어요. 패티는 적극적이고 똑부러지는 성격이에요. 운동신경도 친구들 중 가장 뛰어나요. 또 많은 분들이 모르시던데... 해리도 여자거든요. (웃음) 해리 역시 쾌활하고 씩씩하죠. <뽀로로>에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들이 다 소극적인 건 아니에요." (최종일 대표)

"루피는 아주 전형적인 여자아이를 형상화한 캐릭터예요. 많은 아이들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여자아이들은 엄마를, 남자아이들은 아빠를 흉내 내잖아요. 루피는 그런 아이인 거죠. 루피 같은 아이도 있고, 패티처럼 톰보이 같은 아이도 있고, 해리 같은 아이도 있어요. 다양한 성격 가진 아이들이라고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김형규 PD) 

최종일 대표는 "요즘은 루피와 요리를 분리하고 있다"면서 "루피는 요리를 좋아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아예 요리를 못 하게 할 순 없다. 하지만 때로는 포비가 요리하기도 하고, 친구들과 함께하기도 한다. 이렇게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고 전했다.

여전한 아이들의 친구, 엄마들의 은인

'뽀롱뽀롱 뽀로로' 콘티 작업 EBS 유아프로그램 <뽀롱뽀롱 뽀로로>를 제작하고 있는 아이코닉스에서 9일 오후 스토리보드 작가들이 콘티 작업을 하고 있다.

뽀로로를 만드는 사람들.ⓒ 이정민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불과한 루피의 성 역할에 대해 비판하고, 스토리에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그만큼 부모들이 <뽀로로>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울던 아이를 웃게 하고, 육아에 지친 부모들에게 휴식시간을 주는 정도의 차원이 아니다.

<뽀로로>의 번외편인 <요리공주 루피>는 루피가 전통 장류와 김치로 음식을 만들고, 친구들과 함께 맛있게 먹는 이야기다. <뽀로로>는 세계 시장을 겨냥해 만들어졌기에, 특정 지역 문화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내용은 피했다. 때문에 뽀로로와 친구들의 주식은 파이 혹은 쿠키. 이를 본 많은 아이들이 "나도 뽀로로가 먹는 거 먹고 싶다"며 과자만 찾더란다. <요리공주 루피>는 "뽀로로가 한식을 먹으면, 아이들 식습관 형성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엄마들의 강력한 요청에 탄생했다. 

 뽀로로 캡처

채소를 싫어하던 뽀로로는, 루피가 만들어준 비빔밥 덕분에 채소를 맛있게 먹게 됐다.ⓒ 아이코닉스


에피소드는 이런 식이다. 채소를 싫어하는 뽀로로에게 루피는 채소와 고추장을 비빈 비빔밥을 만들어준다. "채소가 뭐가 맛있냐"며 먹지 않으려는 뽀로로 앞에서 친구들은 "그럼 먹지 말라"며 맛있게 먹는다. 배가 고픈 뽀로로는 맛있게 먹는 친구들의 모습에 비빔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은다. 그리고는 비빔밥의 맛에 깜짝 놀라고, 친구들과 맛있게 비빔밥을 먹는다. 방송을 본 아이들이 안 먹던 된장찌개, 김치, 비빔밥을 먹기 시작했다는 엄마들의 간증이 수천 건이란다. 아이들에게 끼치는 뽀로로의 영향력이 이 정도다. 

<뽀로로>는 분명 유아콘텐츠다. 하지만 2000년대생 대다수가 한 번쯤 뽀로로에 열광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제 막 20대에 접어든 이른바 '뽀로로 세대'가 구매력을 갖추게 된다면 얼마나 큰 파급력을 지니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미국의 미키마우스, 일본의 헬로키티처럼, 어린이 콘텐츠 캐릭터에서, 전 세대가 열광하는 캐릭터. 아이코닉스 최종일 대표가 꿈꾸는 뽀로로의 미래다.

"제 꿈은 뽀로로가 몇 세대를 건너서도 사랑받는 캐릭터가 되는 거예요. 미국의 미키마우스, 일본의 헬로키티처럼요. 뽀로로는 이제 15살이에요. 90살이 된 미키마우스나, 50살이 넘은 푸우, 40살이 넘은 헬로키티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최종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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