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은 우리 딸이 문화센터에 가는 날이다. 유치원 하원 후 조금 쉬었다 오후 다섯시 발레 수업에 간다. 발레 수업을 들은 지도 벌써 1년쯤 되었는데 발레 자체가 좋은 건지 예쁜 발레복 입고 자신의 예쁨을 뽐내는 게 좋은 건지, 그도 아니면 친구 만나 놀고 밥먹고 아이스크림 먹는 게 좋은 건지, 여하튼 이 아이가 설렐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물론 내 이유도 따로 있다. 문화센터 덕분에 금요일은 언젠가부터 밖에서 밥먹는 날이고, 또래 엄마들과 아이스크림 듬뿍 섞인 프라페 마시며 수다떠는 날이고, 다음날이 토요일이니 이렇게라도 불금을 누려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는 날이고, 그래서 딸의 스케쥴에 기대어 주중에 가장 늦게 귀가하는 그런 날이다.

그러다보니 금요일에 집에 오면 밤 아홉시 쯤. 집에 들어오자 마자 가장 서두르는 일이란 아이를 씻기고 재우는 것이다. 물론, 여섯살쯤 되고보니 이 아이도 금요일밤의 기분을 아는 건지 잘 자려고 들지는 않지만, 한시라도 빨리 내 몸이 이 아이로부터 독립해 프라이데이 나잇의 자유를 느끼려면 내 몸에 쌓인 피곤함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어푸어푸 아이를 씻기고 머리를 말려주고 얼굴과 몸에 로션을 발라주고 내복을 입히고 나면 한숨 한번 크게 쉬게 되지만 그게 끝은 아니다. 빨리 잤으면 하는데 내 뜻대로 되질 않는다. 어찌어찌해서 아이가 자고 나면 나의 일주일 중 가장 편안한 시간이 그 때서야 내게 오게 된다.

 MBC <듀엣가요제>

MBC <듀엣가요제> ⓒ MBC


불금에 나를 사로잡은 <듀엣가요제>


운좋게 아이가 일찍 잠든 금요일 밤, 캔맥주 하나 따 놓고 늘어지고 싶은 그 시간에, 그 틈을 파고든 것이 하나 있다. 금요일 밤 9시 반에 MBC에서 만날 수 있는 <듀엣가요제>다. 사실 9시 반 시작할 때부터 <듀엣가요제>를 본 적은 한번도 없다. 금요일 늦은 귀가 후 아이가 잘 때까지 아무리 빨라야 밤 10시 즈음이다. 아이를 재워 놓고 거실로 나와 TV를 틀면 이미 앞 삼분의 일쯤은 못본다. 남은 삼분의 이만 보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본방을 포기하고 IP티비에 업로드될 때까지 1~2시간 즈음 기다렸다가 1500원 주고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시청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부분부분 놓치지 않고 완주하고 싶은 프로그램이다.

작년에 산들이라는 가수가 싱글맘 여성과 듀엣을 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그 때 즈음에 처음으로 <듀엣가요제>를 접했던 것 같다. 산들 커플 외에도 정말 노래 잘하던 커플들이 꽤나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내가 <듀엣가요제>라는 프로그램의 팬이 될 줄은 몰랐다. 우연히, 그것도 아이를 챙기며 거실에 틀어져 있던 <듀엣가요제>의 부분부분을 눈으로, 귀로 지나치며 맘에 드는 듀엣곡이 나오면 거실 중간에 잠시 멈춰서서 구경하는 선에서 끝이 나곤 했다.

나에게 <듀엣가요제>가 반드시 봐야만 하는 프로그램이 된 건 한동근-최효인 커플의 첫 듀엣곡을 들을 때였다. 아마도 그 회차의 세번째 혹은 네번째 순서에서 나왔던 둘은 김윤아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불렀다. 한동근은 그 때가 <듀엣가요제> 첫 출연이었고 최효인은 전회의 우승자였으나 듀엣을 했던 가수 정인이 임신으로 인해 출연이 어려워지며 새롭게 만들어진 커플이었다. 사실 그들이 무대 위로 등장할 때 만해도, 첫 소절을 부르기 전 만 해도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한동근이라는 가수도 잘 몰랐고, 최효인의 노래 실력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보면 그날 출연자 중에서는 대중적인 인지도로 보자면 그리 경쟁력 있는 커플은 아니었을 지도 모르겠다.

아! 그런데 감동은 그렇게 불쑥, 예고없이 쳐들어왔다. 그 때의 내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풀 한포기 없는 마른 벌판에 노오란 민들레 하나가 딱딱한 땅끝을 뚫고 올라와 있는 데 마치 합성사진 마냥 그 배경에 들어맞지 않는 민들레가 너무 신비로웠던 것 같은 느낌? 예쁘지만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슬프기도, 하지만 장엄하면서도 꿋꿋한 느낌이었다. 가수 김윤아가 불렀던 원곡으로도 이미 충분히 훌륭하고 멋있는 노래였지만 듀엣의 감성이 실린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나의 가슴 안에서 그렇게 파장을 일으켰다.

 MBC <듀엣가요제>

나에게 <듀엣가요제>가 반드시 봐야만 하는 프로그램이 된 건 한동근-최효인 커플의 첫 듀엣곡을 들을 때였다. ⓒ MBC


예고없이 감동이 불쑥... 눈물, 소름

그것을 시작으로 엄청난 노래들이 나에게 쏟아져 들었고, 다양한 감정을 수반하는 다양한 언어들이 내 안에 밀려들었다. 청춘, 인생, 사랑, 연인, 이별, 시련과 같은 삶의 경험들과, 그것들이 빚어내는, 그리움, 애절함, 절규, 슬픔, 기쁨, 시원함, 후련함, 위로, 공감, 용기, 흥분, 열정 등과 같은 감정의 요소들. 전에라면 뻔하게 생각되었을 그것들이 내 삶에 얼마나 중요한 양분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알기 시작했다. 노래의 가사가 더 잘 들리기 시작했고, 음률에 감정을 싣는 것에 점점 자유로워졌다. 누구의 평에 상관없이, 심지어 청중평가단의 버튼으로 결정되는 순위에 '전혀' 상관없이 내 마음껏 즐기는 법을 알게 되었다. 이만한 장사가 없지 싶었다. 1시간 반 쯤 티비 앞에, 나는 나를 무장해제시킨 채, 노래로 내 자신을 소통시켰다.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한동근, 최효인)을 들으며 비내리는 밤 길가에 버려진 강아지, 떠난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 같은 처연함이 밀려들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도 했고, '행복하지 말아요'(린, 김인혜)를 들으며 두 팔과 등으로 감전되듯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있다. 만일 내가 얼마전 이별했다거나 짝사랑 중이라면 정말 통곡했을 것만 같았다. 노래 가사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둘의 조합이 너무 훌륭해서.

'다시 와주라'(서은광,김연미)는 마치 이별한 누군가 술한잔하고 노래방 가서 서글프게 절규하며 부를 듯한 느낌의 노래였는데, 그런 신파조의 느낌을 너무나 열심히 전해준 그들 듀엣의 열정이 예뻤고 다시 와달라는 그 기다림의 절절함이 느껴져 나 또한 가슴이 뻥 하니 뚫려버렸다. '안아줘'(김필, 신해원)를 들으면서는 남자가수의 매력적인 보이스에 반하고, 슬프게 아름다운 느낌으로 가슴 한 편 설레이며 노래가 끝난 후 마치 내 몸에 정지버튼 하나 눌려진 듯했다.

'사랑이란'(봉구, 권세은)은 들어본 적 없는 노래였는데 마치 모래 백사장에서 사금이라도 발견한 듯 처음 듣는 노래가 주는 감동이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오르막길'(봉구, 권세은)은 누군가 힘들 때, 혹은 내가 힘들 때 위안받을 수 있겠구나 싶게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듯한 가사가 너무나 좋았다. 특히 내가 <듀엣가요제>를 보며 보람을 느낄만큼 뿌듯한 순간이라면 잘 몰랐던 노래의 매력을 발견하는 순간인데, '난 별'(린, 김인혜) 역시 그런 노래 중 하나였다. 정말 가사가 빛났다. 나도 별이고 너도 별이라고 했다. 서로 다르게 빛날 뿐이지. 누구에게든 위로와 희망으로 다가갈 노래이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하는 노래가 되었다.

'걱정말아요'(박기영, 박예음)는 어른인 가수와 초등학생 어린 아이라는 색다른 조합의 듀엣이 부른 노래였다. 걱정말라는 위로의 말을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통해 들었을 때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어른의 힘든 시간이 아이의 순수한 위로에 의해 치유되는 기쁨과 설렘의 행복한 긴장감. 어쩔 수 없이 나는 또 굵은 눈물 한줄기 흘렸다. 아마도 나 역시 엄마인 탓일 거다. 또 '바람의 노래'(한동근, 최효인)를 들으며 시대를 초월하며 감동을 주는 가수 조용필의 노래에 경이로움을 느꼈고, 더불어 마음의 문을 좀더 쉽게 열고 인생의 지혜 하나 더 얻어가는 사십대와 그 사십대에 있는 나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다. '기억을 걷는 시간'(장재인, 유준혁)은 병으로 아팠던 시절이 있었던 두 사람의 스토리가 더해지며 노래에 대한, 삶에 대한 간절함이 크게 공감된 시간이었다.

 MBC <듀엣가요제>

'사랑이란'(봉구, 권세은)은 들어본 적 없는 노래였는데 마치 모래 백사장에서 사금이라도 발견한 듯 처음 듣는 노래가 주는 감동이 이렇게 클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오르막길'(봉구, 권세은)은 누군가 힘들 때, 혹은 내가 힘들 때 위안받을 수 있겠구나 싶게 누군가의 진심이 담긴 듯한 가사가 너무나 좋았다. ⓒ MBC


노래로 감동 받고 위로 얻고 공감하기

사실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노래들은 주로 발라드 계열이긴 하지만 아닌 것들도 있다. '박하사탕'(허각, 서창훈)은 30대 동갑의 두 남자가 불렀는데, 이후 나는 얼마동안 아침마다 이 노래를 들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후 어질러진 거실로 돌아와 한숨 한번 쉬고 내 몸을 활력모드로 바꿔주는 사이다 같은 노래. 지금도 아침에 청소기 돌릴 때 자주 생각나는 노래다. 'Day Day'(휘인, 박희주) 역시 20대 또래 여성 커플이 불렀는데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노래였는데도 그들의 젊음, 풋풋함, 열정, 에너지에 너무 신나서 나 또한 몸을 들썩들썩 했었다.

'단발머리', '해변의 여인'(라디, 장선영) 두곡은 라디의 편곡 매력에 흠뻑 빠지겐 한 노래였다. 너무나 잘 알려진 노래인지라 자칫 잘못하면 식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도 라디의 편곡이 힘을 발휘하며 너무 예쁘고 매력적인 노래로 탈바꿈했다. 정말 풋풋하면서도 손끝이 간질간질한 무대였다. 'Come Back Home'(린, 김인혜)은 애절한 발라드만 불렀던 린 커플의 변신작이었다. 반가웠고, 기대되었고, 실제로 기대보다 훨씬 더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다. 흔히 케미라 불리는 것이 이들 커플에 꽉 들어차 있음이 확인된 무대였고, 어떤 스타일의 노래를 부르더라도 잘 할 거라는 믿음감으로 나 역시 청중평가단이 되어 버튼 하나 꾹 눌러 더하고 싶은 무대였다.

사실, 노래로 감동을 받고, 위로를 얻고, 공감을 한다는 것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노래를 좋아하지 않으면 모를까 맘에 들면 들으면 되고 거기서 밀려오는 감동이나 기쁨이나 슬픔은 느끼면 되니까. 그리 비용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다. 굳이 우리가 평론가 처럼 글로 남겨야 되는 것도 아니고 꼭 누구에게 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듀엣가요제>를 보면서 난 한번은 꼭 남기고 싶은 욕구에 시달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곳의 듀엣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삶의 여러 단면들을 관찰하게 되는 소소하지만 짜릿한 기쁨을 얻게 된 거였다. 사실은 그것에 대해 좀더 이야기 하고 싶었다.

<듀엣가요제>이니 당연히 듀엣이 등장한다. 듀엣은 둘이라는 뜻을 기본으로 담고 있다. 우리가 둘이라고 할 때 흔히 생각되는 것들은 짝의 개념, 결혼이라든가 연애와 같이 둘이어야만 가능한 것들이다. <듀엣가요제>를 보며 여러 커플들을 보았다. 둘 중 하나는 프로 가수이고, 하나는 아마추어여도 어느 정도 경쟁을 통해 선택되었기에 프로에 못지 않은 스킬을 갖고 있는 반프로들이다. 그러다보니 <듀엣가요제>는 대중이 보기에 어느 정도의 품질을 보장해 준다. 그런데 노래 실력에서 만큼은 어디 내 놓아도 모자라지 않을 이들 중에서도 유난히 더'인연'이다 싶은 듀엣들이 있다. 한동근, 린, 봉구, 박기영, 산들 커플 등(순전히 내 생각이다). 새로웠던 건 남녀 커플이라고 해서 연인의 느낌을 주지는 않았으며 동성 커플이라고 해서 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편견에서 벗어나는, 잘 명명이 되지 않는 관계의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그들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속에서도 편견없는 다양한 관계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했다.

듀엣의 구성으로 보면 한쪽은 프로가수이고 한쪽은 아마추어이다 보니 연습과정에서 아마추어가 프로가수나 방송사의 물질적인 지원을 받는다. 가수가 소속되어 있는 기획사를 경험할 기회를 얻기도 하고 가수와 연습하면서 실력적인 지원을 받는다. 혼자서 노래방에서 연습할 때보다 일취월장할 수 있는 효과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한편으론 가수에게도 아주 소중한 기회가 아닐까 싶다.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오랜만에 듀엣을 해봤다는 가수들이 꽤나 있었다. 그들은 듀엣을 하며 본인들도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했다. 가수이기에 리드의 부담도 있을 것이고 잘 알지도 못했던 이와 듀엣 호흡을 맞춘다는 건 혼자 노래부를 때와는 또 다른 차원의 역할이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인간적인, 음악적인 공감을 동시에 해 내고 그에 따라 멋진 무대 까지 만들어 내는 건 쉬운 과정은 아닐 것이다. 눈에 보이는 건 아마추어가 프로가수의 도움을 받아 성장하는 스토리로 보여지지만 사실 그 안엔 가수의 성장도 같이 있다. 오랫동안 <듀엣가요제>에 머물렀던 가수들을 보면 그게 보였다. 둘의 관계에서 한쪽의 성장만으론 어렵다. 균형이 필요하다. 결국 관계의 이야기가 된다.

둘에 대한 얘기가 나온 김에 좀더 덧붙이자면, 둘이 불러서 그 위력이 두 배 이상으로 커지는 노래들이 있다. 원곡 자체가 훌륭해 듀엣으로도 훌륭한 정도로 그치는 노래도 있지만 원곡이 추구하는 느낌을 배가 시키는 노래도 있고, 원곡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다른 느낌으로 전이시켜버린 노래도 있다. 나에겐 '널 사랑하지 않아'(한동근, 최효인), '사랑이란'(봉구, 권세은), '짝사랑'(봉구, 권세은), '단발머리'와 '해변의 여인'(라디, 장선영) 같은 노래들이다. 유에서 유를 창조한 노래들이다. 어쩌면 없던 것을 만들 때 만큼이나, 혹은 감히 그 보다 더 치열하게 원곡에서 탈출해 나온 노래들이 너무나 반갑다.

 MBC <듀엣가요제>

'Come Back Home'(린, 김인혜)은 애절한 발라드만 불렀던 린 커플의 변신작이었다. 반가웠고, 기대되었고, 실제로 기대보다 훨씬 더 멋진 무대를 보여주었다. ⓒ MBC


듀엣의 위력, <듀엣가요제>의 건승을 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듀엣가요제>가 나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건지 전엔 멜로디의 흐름에 내 감정을 실어 노래를 듣곤 했는데 지금은 가사에 집중해 듣는 습관이 들어버렸다. <듀엣가요제>는 경쟁의 형식을 띠고 있고 듀엣인 만큼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간의 감정의 주고받음이 중요하다. 따라서 멜로디 만큼이나 노래가 담고 있는 내용, 가사가 매우 중요해진다. 그만큼 진정성이 중요해진다. 때론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노래로 승부를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청중평가단의 표를 조금 덜 얻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나에겐 숨은 진주를 발견한 느낌으로 다가온 노래들이 몇곡 있다. '오르막길'(봉구, 권세은), '사랑이란'(봉구, 권세은), '난 별'(린, 김인혜), '안아줘'(김필, 신해원)와 같은 노래들이다. 어느 시인의 시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같은 노래들.

또 <듀엣가요제>를 보다보면 흔히 '사연있는 이들'이 많이 나온다. 혹 그들이 선택된 이유가 어떤 기획/편집 의도에 따른 것이라 해도 이들이 그런 사연 속에서 노래 부르기를 꿈으로 갖고 살아가는 이들이라는 점은 인간적으로 충분히 공감될 만한 것이다. 희귀병으로 고생한 사람,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 부모님이 아픈 사람, 왕따를 당해 본 사람, 자존감의 밑바닥에서 허우적대는 사람 등. 이들의 공통점은 삶의 끈을 놓지 않게 도와 준 것이 노래이자 음악이었다는 점이다. <듀엣가요제> 무대에서 화려한 변신을 보여주었든, 아니면 어색하지만 최선을 다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든, 어느 것이든 보는 이들에겐 감동이 된다. <듀엣가요제> 안에 이렇듯 인간극장 또한 들어있다.

<듀엣가요제>를 보며, 난 듀엣의 위력에 푹 빠졌다. 듀엣이 빚어내는 감동의 크기는 생각보다 컸다. 아는 노래들은 그 매력이 더해지거나 새로운 느낌으로 재발견되기도 하고 몰랐던 노래들은 내 감성목록의 빈곳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내 마음이 촉촉해지고 부드럽게 다져질 때 나의 일상은 훨씬 유연해 진다. 엄마로서든, 아내로서든, 친구로서든, 동네 아줌마로서든 훨씬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 정도면 <듀엣가요제>에 고마워해도 될 것 같다.

게다가 난  내 일상 속에 '둘'의 모습을 띤 것들에 대해서도 떠올려본다. 평생 듀엣이 될 남편과, 환상의 짝꿍이라 여기는 아이와 듀엣으로 다니며 다투고 삐치고 화해하고 사랑하며 산다. 부부 사이엔 친구도 있고 연인도 있고 사제의 관계(서로 배운다는 뜻에서)도 있듯이, 아이와 엄마 사이엔 어른과 아이의 관계 뿐 아니라 친구의 관계도 있듯이, 하나의 관계 안에도 여러 모습을 만드는 건 하기 나름이다. 그러려면 상대방을 진심의 눈으로 자세히 오래 보아야 한다. 그러다보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느 누구의 눈에도 훤히 보이는 그 인연의 끈끈함이 자리잡게 되지 않을까? <듀엣가요제>의 건승을 빈다.

덧붙이는 글 공모-내안의 덕후
듀엣가요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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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3년차 직원. 시민기자들과 일 벌이는 걸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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