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든 피겨스>

영화 <히든 피겨스>의 포스터. 왜 여러 영화제가 이 영화를 주목했을까.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1960년대 초반의 미국은 황금기처럼 보였다. 61년도에 젊고 잘 생긴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인들은 냉전의 불안함을 해소해줄 지도자를 찾았다고 생각했고 안도했다. 물론 1964년 그가 암살되기 전 이야기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감은 커져만 갔고 이들을 대변했던 히피들의 시위를 포함해 나라 전역에서 인권 운동과 성차별 반대 운동이 점점 거센 수위로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2016, Theodore Melfi)는 그러한 변화를 겪던 미국의 1960년대를 배경으로 살아가는 3명의 나사(NASA) 소속 흑인 여성 수학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일단 영화가 조명하는 문제의식을 곱씹어 보기에 앞서, 소재가 특이하다. 천차만별의 영화가 나오는 할리우드이지만 여성만을 주인공으로 하는, 더군다나 흑인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상업영화는 그 수가 많지 않다. 영화를 만든 테오드르 멜피는 <세인트 빈센트>라는 평작 수준의 영화를 포함해 장편 영화 세 편을 감독한, 작품 수로만 보면 거의 신인 수준의 감독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아카데미상 3개 부문, 골든 글로브 2개 부문을 포함해 총 68개의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그중 29개의 상을 받았다. 과연 어떤 요소들이 그 수많은 영화제로 하여금 이 작품에 주목하게 하였을까.

유색 인종, 특히 여성 주인공 영화의 희귀성

첫째는 방금 언급한 영화 소재의 희귀성이다. 그간 천재를 소재로 한 영화는 많이 제작되어왔다. <굿 윌 헌팅> <뷰티풀 마인드> <이미테이션 게임> <사랑의 대한 모든 것> 등 천재, 특히 수학 천재에 관한 영화만 해도 그 수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 중 유색 인종, 특히 여성이 주인공이었던 영화를 꼽으라 하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히든 피겨스>

유색 인종, 특히 여성이 주인공이었던 영화를 꼽으라 하면, 거의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주인공들은 그들이 가진 놀라운 수학적 능력으로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1960년대 초반에 나사에 의해 선택된 그룹의 흑인 여성 중 세 명이다. 나사가 이들에게 붙여준 직함은 "계산원"이다. 그들의 업무의 난이도나 성취를 고려하면 엄밀하게 말해 연구원(researcher)이나 수학자(mathematician)가 더 적합한 표현이지만, 백인 어드바이저들은 그런 고상한 직함을 부여하지 않는다. 이들은 백인들과 철저히 분리된 건물에서 나사가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관련한 계산을 하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그중 한 명, 영화의 사실상 주인공인 캐서린은 천재적인 수학 능력으로 백인 남자들만 가득한 나사의 핵심부로 발령을 받게 된다.

영화의 본론은 그녀가 핵심부로 옮기게 되면서 겪는 수난사(여성으로서 그리고 흑인으로서)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그려내는 방식이 <히든 피겨스>를 두드러지게 하는 두 번째 요소다. 그간 인종차별이란 주제를 정면에 내세워 그 부당함에 대해 고발하는 메시지를 담은 수작들(<똑바로 살아라> <말콤 엑스> <노예 12년> 등)과는 상반되게 이 작품은 유색인종이라서 겪어야 하는 차별에 더해 여성이기에 감내해야 했던 차별까지 잔잔하지만 섬세하게 그려낸다.

화장실 에피소드, 차별에 대한 다른 접근

가령, 캐서린이 수뇌부로 옮기게 되면서 겪은 가장 큰 수난은 동료들의 차별에 앞서, 바로 화장실이다. 그녀는 화장실에 가야 할 때마다 "Colored(흑인용)"이라고 표시되어 있는 다른 건물(흑인 동료들이 있는)의 여자 화장실을 가야 한다. 문제는 이 건물이 하이힐을 신고 30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거리에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부재가 길어지는 것을 보고 상사(캐빈 코스트너 분)는 전 직원 앞에서 화를 내며 망신을 준다. 어찌 보면 <말콤 엑스>나 <노예 12년>처럼 사람이 죽거나 맞는 학대만큼이나 이 '화장실' 이슈가 와 닿는 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이 지옥 같은 의식(?)이 그녀의 인생을 빼곡히 채우는 치욕적인 에피소드 중 지극히 작은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영화 <히든 피겨스>

캐서린이 수뇌부로 옮기게 되면서 겪은 가장 큰 수난은 동료들의 차별에 앞서, 바로 화장실이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또한, <히든 피겨스>는 앞서 언급한 인종차별 주제의 영화들처럼 피해자의 억울함이나 상처를 감정이나 폭력의 극단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 교통 경찰관이나 여자 상사에게 차별적 언행이나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세 여성은 해학이 가득한 농담으로 추한 생각과 비틀린 사회를 속 시원히 비웃어 버린다. 영화를 통틀어 감정적인 호소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딱 한 장면이다. 장대비가 오는 날 우산도 없이 구만리를 걸어 화장실을 다녀온 그녀를 꾸짖는 상사에게 그녀는 마침내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그녀의 상황을 전해 들은 상사는 미안하다는 사과도, 동정의 표정도 짓지 않은 채 그녀 앞을 떠난다. 그런 그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쇠지레로 화장실의 간판을 때려 부수는 것이다. 상사의 이 반응이 누구에게는 영웅처럼, 누구에게는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비슷한 설정을 보자. 세 여성 중 또 다른 한 명인 도로시가 왜 본인이 승진 대상에서 계속 누락되는 것이냐고 백인 상사(커스틴 던스트)에게 반문했을 때 그는 "방침이라서 어쩔 수 없다"고 대답한다. 물론 상사의 표정에서 관객은 도로시가 흑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걸 읽게 된다. 시간이 흘러 도로시가 당시 깡통에 불과했던 초기 IBM 컴퓨터를 압도하는 능력으로 결국 승진이 되자 상사가 다가와서 진심으로 축하해 주며 말을 건넨다.

"난 진짜 몰랐어. (그런 게 차별인지….)"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히든 피겨스>를 차별화하는 또 하나의 요소다. 영화는 이러한 인물들을 악인으로도, 혹은 난세의 선한 이웃으로도 그리지 않는다. 그들은, 차별이 차별인지도 몰랐던, 1960년대 미국의 보편적 주류였다.

악인도, 선한 이웃도 없는 보편성에 대한 문제제기

세 여성의 호쾌한 웃음과 재기 넘치는 언변으로 시작했던 영화는 갖은 수모와 차별을 겪어내고 이들이 결국 나사의 중요한 직위에 오른다는 훈훈한 미담(Katherine Johnson, Dorothy Vaughan, Mary Jackson, 세 여성의 실화를 기초로 함)으로 끝을 맺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보는 이를 기분 좋게 놓아주진 않는다. <히든 피겨스>는 관객이 '보편성'에 대한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보편적인 것이며 그 '보편'의 바운더리에서 질식하고 있는 '히든 피겨스'들은 누구인가.

 영화 <히든 피겨스>

<히든 피겨스>는 인종과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외피로 하고 있지만, 더 큰 맥락에서 인간과 사회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텍스트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인종차별법이 형식적으로나마 통과된 지 50여 년이 흘렀다. <디 아틀랜틱>(The Atlantic, 1.9.2017)에 따르면,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ematics)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들과 유색인종 여성 응답자들의 100% 가 직접적인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초등학교 1학년 도덕 문제 수준의 설문이 돌아가도 100%가 나오기 힘든 것을 생각하면 실로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히든 피겨스>는 인종과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외피로 하고 있지만, 더 큰 맥락에서 인간과 사회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텍스트다. 보편타당한 것에 대한 기준을 만드는 자들에 대해서, 혹은 그 장치에 대해서. 그리고 규정하는 보편적인, 혹은 그렇지 않은 자들에 대해서 원론적인 고민을 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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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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