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통사람> 관련 사진.

'보통사람'을 내세운 전두환. 그가 대통령이 되고, 진짜 '보통' 사람의 삶은 무너졌다. ⓒ 오퍼스픽쳐스


정확히 30년 전 전두환은 호헌조치로 국민의 헌법적 명령을 막는다. 그 결과는? 전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독재 타도를 외치게 한 촉매제가 됐다. 역설적이다. 이를 다룬 영화 <보통사람>은 바로 그 역설 에너지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2017년 대한민국은 그래서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는가?' 연출을 맡은 김봉한 감독이 품었던 질문이다. 특정 개인과 대통령이 결탁한 국정농단, 여기에 검찰과 청와대 고위 관료들이 연루돼 있다. 모양새만 놓고 보면 겁박하고 물리적 폭행 여부의 차이만 있을 뿐, 국민 위에 군림하려 한 권력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보통사람>이 바로 그 지점을 묘사했다.

권력자의 제안

장혁 빼고 모두 '보통사람' 배우 손현주, 장혁, 김상호, 조달환, 지승현이 15일 오후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보통사람> 시사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보통사람>은 1987년 봄, 경찰로서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던 강력계 형사 성진이 남산이 기획하는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삶이 흔들리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30년이 지난 현재를 반추해보고자 기획된 작품이다. 23일 개봉.

영화 <보통사람> 출연진. 배우 손현주, 장혁, 김상호, 조달환, 지승현의 모습(왼쪽부터). ⓒ 이정민


독재자를 쫓아냈더니 또 다른 독재자가 나타났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그 자체로 눈부셨지만, 여전히 서슬 퍼런 독재의 그늘이 이후로도 이어졌다는 점에선 절반의 승리라 평가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좌절할 수는 없는 일 자신을 '보통사람'이라 칭한 노태우 역시 전두환과 함께 퇴임 이후 비자금 사건 등으로 불명예스럽게 구속당한다.

여기엔 진짜 보통사람들의 열망과 행동이 있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말이다.

강성진 형사(손현주 분)도 마찬가지다.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신입에겐 "좀 불의에 대들 줄도 알아라!" 윽박지르기도 하며, 장애가 있는 아내(라미란 분)와 아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가장이다. 그러던 그에게 안기부 최규남 실장(장혁 분)이 접근한다.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을 특정 인물로 조작하는 데 앞장서 달라면서 말이다. 그 이유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였다.

불의임을 알았지만 그 대가는 달콤했다. 아들의 장애 치료를 위한 수술비를 받았고, 번듯한 차도 받게 된다. 엉뚱한 잡범이 연쇄 살인마로 둔갑하는 어쩌면 경찰 입장에선 사소한 조작일 수 있는 이 행위는 사실 권력자들의 지위를 정당화하고 대중의 시선을 돌리는 것에 이용된다. 조금 더 편하게 먹고살기 위해 택한 일이 이런 파급 효과를 낳은 셈이다.

이 맥락에 철저히 항거하는 게 바로 열혈 기자 추재진(김상호 분)이다. 성진과는 호형호제하는 막역한 사이인 그는 공작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다 온갖 고초를 겪는다. "잠시만 눈 감으면 된다"는 안기부의 제안과 이런저런 이유로 기사를 내지 못하게 하는 신문사 데스크를 향해 일갈한다. "이건 불편해서 안 되고, 저건 민감해서 안 되면 신문이 왜 있어!"라고. 결국, 그는 참혹한 고문을 당하고 만다.

진짜 보통이고 싶었던 이들

손현주, '보통사람'의 입장 배우 손현주가 15일 오후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보통사람> 시사회에서 입장하고 있다. <보통사람>은 1987년 봄, 경찰로서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던 강력계 형사 성진이 남산이 기획하는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삶이 흔들리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30년이 지난 현재를 반추해보고자 기획된 작품이다. 23일 개봉.

배우 손현주가 15일 오후 서울 왕십리CGV에서 열린 영화 <보통사람> 시사회에서 입장하고 있다. <보통사람>은 1987년 봄, 경찰로서 보통의 일상을 살아가던 강력계 형사 성진이 남산이 기획하는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리면서 삶이 흔들리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30년이 지난 현재를 반추해보고자 기획된 작품이다. ⓒ 이정민


이렇게 불의와 거기에 결탁한 권력자들의 유혹은 달콤하면서 동시에 혹독하다. <보통사람>은 1975년 국내 최초 살인마 김대두 사건과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을 조합해 일반 시민들의 삶을 조망했다. 민주화의 당위성이나 독재 타도의 필요성 등 거시적 주제를 설파나 설명하지 않고, 결코 특별할 수 없었던 직업인들의 일상을 내세워 거악에 대응하는 방식을 제시한다.

누군가의 선택이 옳았고,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들 자기 깜냥대로 선택했고, 그에 따른 결과를 맞이한 정도다. 영화는 뒤늦게 반성하는 성진을 애써 선인으로, 추재진 기자를 영웅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다만 불의를 택해 고뇌하는 모습과, 정의를 택했지만, 물리적 고통에 처한 자의 공포감을 제시할 뿐이다. 그래서 고문받던 추재진이 홀로 반복해서 중얼거리던 "내가 쓰러지기 전까진 누구도 날 쓰러뜨릴 수 없다"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언론 시사회 직후 김상호가 취재진에게 했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보통사람'이 어떤 사람인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는 "뭐 먹고 사나 그런 생각으로만 사는 사람이 아닌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며 "권력자에게 할 말은 하는 사람이 보통사람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사람이라면 응당 사고와 이성을 근간으로 한다. "국민은 개돼지"라고 말한 어느 고위 공직자의 발언 이면엔 분명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살 궁리만 하는 이들'이라는 편견이 깔렸을 것이다. 영화는 묻는다. 그래서 계속 그렇게 그런 걱정에 따라 살 것인지, 아니면 진짜 사람이 될 것인지.

한 줄 평: 시대적 비극에 들이댄 작은 현미경,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평점: ★★★☆(3.5/5)

 영화 <보통사람> 관련 사진.

영화 <보통사람>의 포스터. 평범하게 살고자 했지만, 결국은 평범할 수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이다. ⓒ 오퍼스픽쳐스


영화 <보통사람> 관련 정보
연출: 김봉한
출연: 손현주, 장혁, 김상호, 라미란, 정만식, 조달환, 지승현, 오연아
제공 및 배급: 오퍼스픽쳐스
제작: 트리니티 엔터테인먼트
공동제작: 영화사 장춘
크랭크인: 2016년 8월 24일
크랭크업: 2016년 11월 24일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1분
개봉: 2017년 3월 23일


보통사람 손현주 장혁 조달한 김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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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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