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시를 삼킨 장미>

영화 <가시를 삼킨 장미> 포스터 ⓒ 정진우


<가시를 삼킨 장미>(정진우, 1979)는 이른바 호스티스 영화 전성기의 후반부에 제작되어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79년도 흥행순위 20위를 기록한 영화로 상업적으로 메가 히트작은 아니지만, 그 해 대종상 감독상을 받고 마닐라 국제 영화제에 초청 받은 작품으로 적어도 이슈가 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던 영화임에는 틀림 없다. 

* 호스티스 영화(1974-1982) : 시골 처녀가 도시로 상경해 술집 여자가 되는 줄거리를 다룬 영화들. <영자의 전성시대> <별들의 고향> <꽃순이를 아시나요> 등

영화의 줄거리는 호스티스 영화의 기본 골자인 젊은 여성의 성적인 타락, 그에 따른 좌절과 죽음 등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주인공 장미(유지인 분)는 일류대학(원작에서 이화여대로 설정되어있지만 당시 검열관들이 학교 이름을 언급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을 다니고 있는 부유한 집 외동딸이지만 자신의 인생에 대해 권태를 느끼고 이를 성적인 일탈로 채우고자 한다. 

전형적인 호스티스 영화, <가시를 삼킨 장미>

자신의 본가인 부산에 내려가는 도중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유부남 신성일과 사랑에 빠진 장미는 그와 성적인 관계를 전제로 한 교제를 시작하지만 곧 그의 부인에게 발각되면서 절망하고 술집에 나가기 시작한다. 이를 알게 된 아버지의 강압적인 결정으로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가 나오게 된 장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세호(한진희 분)를 만나 또 다시 사랑에 빠진다. 이 관계에서 역시 장미는 감정적인 성숙보다는 육체적인 쾌락을 원하고, 결국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된다. 세호는 자신의 엄마뻘 되는 늙은 여성과 동거하는 '기둥 서방' 이었고, 이를 알아낸 장미는 낙태를 하려다 단념한다. 또 한번 절망한 그녀는 거리를 헤매다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아기의 인형들을 사고 그것들을 품에 앉은 채 기차에 치어 삶을 마감하게 된다. 

사실 호스티스 영화에 대한 글을 너무 많이 써왔지만 매번 줄거리를 쓸 때 마다 낯이 뜨거워진다. 줄거리들이 매우 비슷한 것도 그렇거니와 여자들이 죽는 방법(대부분 자살)이나 이유(혹은 사고)들이 뻔뻔할 정도로 개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마치 여자 주인공이 죽는 것은 공식처럼 정해져 있는데 참신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존재하는 (죽는) 방법들은 다 갖다 붙여보는 방식을 취한 것은 아닌가 싶다. 영화나 문화적 텍스트에 존재하는 "밝히는 여자는 죽는다" 라는 공식을 제대로 벤치 마킹한 영화 장르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위에 서술한 줄거리로 견주어 이 영화가 다른 호스티스 물과 다르다고 느끼는 독자는 많지 않을 듯하다. 다만, 이 영화는 만드는 사람의 의도가 과연 그랬을지는 모르지만 영화를 읽어보는 입장에서 보면 매우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화의 내러티브의 상징적 역할을 하는 두 가지 아이콘으로 영화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아파트 그리고 마지막 엔딩의 기차를 꼽을 수 있겠다.  

 영화 <가시를 삼킨 장미>

영화의 줄거리는 호스티스 영화의 기본 골자인 젊은 여성의 성적인 타락, 그에 따른 좌절과 죽음 등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 정진우


영화 속 아파트와 기차에 담긴 상징

첫째로,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를 버즈 아이 뷰 (bird's eye view, 높은데서 바라보는 전경)로 롱 쇼트로 보여준다. 도시화된 주거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런 아파트 신은 이 영화에서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왜 아파트 장면들이 이 영화를 읽는 중요한 골자가 되는가? 

<가시를 삼킨 장미>가 제작된 1970년대 말은 박정희 정권 하에 이루어졌던 영화법 제 4차 개정(1973)이 이루어지고 난 이후이고 앞서 집행되던 악명 높은 이중검열과 엄격했던 실사 검열이 유지되어 오던 시기이다(검열의 엄격함은 전두환 정권기에도 유지되지만, 전두환 정권기에는 3S 정책으로 영화의 성적인 재현의 가능 범위가 넓어지게 된다).

박유희의 검열법 연구 '박정희 정권기 영화 검열과 감성재현의 역학(2012)' 보면 박정희 정권의 영화 검열 기준 중 하나가 조국 근대화의 친화적인 재현이고 그에 반하는 빈곤이나 하층민의 생활상을 중점적으로 단속했다고 서술 되어있다.(이러한 기준으로 검열의 탄압을 받은 영화로는 이만희의 <휴일>(1968)을 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시를 삼킨 장미>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아파트 장면, 혹은 그녀가 부산에서 신성일과 데이트를 하면서 간간이 비쳤던 부산대교 (76년 시공) 및 대형 아파트 단지들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성 이슈들 – 간통, 여대생의 매춘 행위, 여성의 성적 욕망 – 을 덮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인 장치 라고 할 수 있다. 60년대 대표 감독 김수용은 검열의 행패(?)가 너무 심해 검열관들 만을 위한 희생샷이나 아부샷(?) 등을 끼워 넣어 자신이 구하고 싶은 신들을 보호했다고 증언 한 바 있는데 이러한 아파트 신들 역시 그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뒤로 부산대교가 보인다 그녀가 부산에서 신성일과 데이트를 하면서 간간이 비쳤던 부산대교 (76년 시공) 및 대형 아파트 단지들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성 이슈들 ? 간통, 여대생의 매춘 행위, 여성의 성적 욕망 ? 을 덮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인 장치 라고 할 수 있다.

▲ 뒤로 부산대교가 보인다 그녀가 부산에서 신성일과 데이트를 하면서 간간이 비쳤던 부산대교 (76년 시공) 및 대형 아파트 단지들은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문제성 이슈들 ? 간통, 여대생의 매춘 행위, 여성의 성적 욕망 ? 을 덮기 위한 일종의 전략적인 장치 라고 할 수 있다. ⓒ 한국영상자료원


아파트 장면들의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은 근대화의 상징성이다. 매끈하게 지어진 복합 주거 지역, 아파트의 등장은 한국 사회에서 근대화의 상징으로 적합한 심볼이고, 이는 영화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근대성의 상징인 '기차' 와 동일한 컨텍스트로 사용된다.

  아파트 장면들의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은 근대화의 상징성이다.

아파트 장면들의 또 하나의 중요한 기능은 근대화의 상징성이다. ⓒ 한국영상자료원


 아파트 장면은 영화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근대성의 상징인 '기차' 와 동일한 컨텍스트로 사용된다.

아파트 장면은 영화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근대성의 상징인 '기차' 와 동일한 컨텍스트로 사용된다. ⓒ 한국영상자료원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시작해(ex. Lumiere brothers의 The Arrival of a Train, 기차의 도착, 1896), 수많은 무성 영화들과 서부 영화들에서 기차 (train) 혹은 기차길(rail road)은 근대성의 상징이며 시대의 변화를 상징해왔다. 한국에서도 기차는 근대사에서 산업화의 주된 역군 역할을 수행했고, 특히 70년대 초 국가 주도 산업화 기간 동안 수많은 지방인구, 특히 시골 출신 젊은 여성을 공업 단지로 이주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윤여정이 악랄한 하녀 역할로 나오는 <화녀>(김기영 감독, 1971)를 보면 그녀가 서울로 상경하는 기차 안에서 친구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에서 기차는 의미심장한 일종의 복선으로 등장하는데, 장미가 처음 성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하게 되는 것은 그녀가 결혼한 남자, 신성일을 기차 안에서 유혹하면서부터다. 그와의 관계 이후로 그녀는 점차적으로 추락하게 되고 (술집 메이드-> 정신 병원-> 임신-> 죽음) 결국 그녀의 인생은 기차 사고 혹은자살로 마감하게 된다(영화는 그녀가 기차에 치어 죽는 것을 자살인지 혹은 사고인지 명확하지 않게 처리했다. 기차가 장미를 향해 달리고 그것을 본 장미가 떨어진 인형을 주우며 자신을 향해 치닫는 기차를 넋 나간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 클로즈 업에서 영화는 끝이 난다). 

결국 장미가 자살로 생을 마감 한 것인지 혹은 미처 피하지 못해 사고사 한 것인지는 (다수의 호스티스 영화의 경향을 고려했을 때 전자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관객 각자가 판단할 부분이지만 영화는 초기 호스티스 영화에서 보여졌던 젊은 시골 출신 여성들이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되어 갔던 현상을 또 하나의 장치로 보여준 셈이다. 

<가시를 삼킨 장미>는 엄밀히 말해 웰 메이드 영화라고 하기엔 허술한 점이 너무 많은, 그냥 그런 치정 영화로 치부하기 쉽지만, 이 영화가 아파트와 그 외 근대화 과정에서 급성장했던 건설 분야의 산물들 – 고속도로, 다리, 재개발 지역 그리고 기차 등을 배경과 소재로 삼은 것은 꽤 인상 깊은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문화 블로그 월간 <이리>에 게재하였던 글을 수정 확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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