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 영진위


지난 13일 영화진흥위원회-영화단체연대회의 간 간담회 무산으로 인한 후폭풍이 한 주간 영화계에 몰아쳤다. 영화진흥위원회 노조(아래 영진위 노조)와 '블랙리스트 영화인행동'(아래 영화인행동)이 각각 성명을 발표하며 미묘한 신경전이 전개됐다. 박근혜 탄핵 이후 일치됐던 김세훈 위원장 퇴진을 요구하던 공동전선에 균열조짐까지 나타났다.

다행히 더 확산되지 않고 마무리되는 수순이지만 정권교체기가 다가오면서 영화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영화단체와 영화인들 개개인의 의견차가 적지 않음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바탕에 개인들의 정치적 욕심과 정권교체 이후 주도권 문제가 얽혀 있다는 것이 영화인들의 분석이다. 

13일 간담회 무산은 표면적으로는 김세훈 위원장 퇴진과 영진위 정상화에 대한 방법론에서 차이가 확인된 것이었다. 처음 방향은 영화단체의 요구대로 일시 중단된 영진위 사업을 풀어보자는 의미가 컸다. (관련기사 : 갈 길 먼 영화계 적폐청산, 영진위원장 퇴진은 언제? )

지난 7일 영화인행동을 이끌고 있는 고영재 한국독립영화협회 이사장과 함께 김세훈 영진위원장을 접촉한 안영진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블랙리스트'에 부역하고 실행한 김세훈 위원장의 즉각 퇴진과 진상 규명, 사과를 요구한 후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일부 우려도 있었지만 시급하게 진행되어야 할 사업이 정지 상태로 있는 것 역시 부담스러운 상황이란 의견도 있었기에 일단 '현 상황을 풀기 위한 제안을 하는 자리까지는 가져보자'로 의미였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김세훈 영진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나왔고, 김 위원장이 이를 긍정하면서 공개적인 자리에서 사과와 사퇴 의사를 밝히는 별도의 간담회를 열자는 의견으로 모아졌다. 중단된 사업에 대해 논의하기 위한 실무자들의 협의기구 구성 문제도 안건으로 예정됐다. 그러나 김세훈 위원장이 영화인들에게 밝힌 퇴진 시기가 명확치 않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다른 영화단체들의 부정적 기류가 커지며 무산됐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김세훈 위원장이 즉각 퇴진하는 게 마땅한데 무슨 퇴진 시기를 합의해 주냐"며 "일부 영화인들이 지나치게 앞서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세훈 위원장 퇴진에는 한마음이지만

 영화단체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영화인이 부역자 퇴출을 요구하고 있는 구호를 들고 있다.

영화단체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 영화인이 부역자 퇴출을 요구하고 있는 구호를 들고 있다.ⓒ 성하훈


영진위 노조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6일 성명을 발표한 영진위 노조는 김세훈 위원장의 즉각 퇴진을 요구했다. 영진위 노조는 여기에 더해 "영진위와 영화단체 간 비상대책기구를 만들어 영진위 사업을 결정한다"고 했던 영화인행동의 합의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관련기사 : 영진위노조, "영화계 농단-밀실행정, 김세훈 위원장 사퇴하라")

핵심은 임의적 기구가 아닌 공공기관이 갖고 있는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영진위 사업을 논의하든 적폐청산을 하든 논의하라는 것이었다. 9인의 영진위원 중 5명의 임기가 만료된 상황에서 주요 의결기관인 9인위원회가 정상화될 수 있도록 영화계가 영진위원 선임에 응해달라는 요청도 내포돼 있다.

아울러 13일 간담회를 위해 영진위 미래전략본부가 각 본부장과 팀장들에게 피드백을 요청하며 '영화진흥사업 지원체계 개선안'을 이메일로 배포한 문제도 지적했다. 문건에는 영진위 지원사업 체계의 개선방향과 체계개선, 일부 영화계의 요구를 반영한 중점추진사업 선정 추진이 담겼다. 노조는 도대체 누구랑 협의해서 이 문건을 만들었는지 영진위원장에게 밝히라고 요구했다. 영진위원장은 15일 직원조회에서 "이 문건에 대해 모른다"는 입장을 나타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영화인행동은 다음날인 17일 영진위 노조의 입장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13일 간담회 무산으로 비판이 일고 있는 데 대한 해명 성격이 강했다. 영화인행동은 '영화진흥사업 지원체계 개선안'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위원장 '사퇴'카드와 맞바꾸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영화계에 묻고 싶다'라는 식으로 위원장과 영화인행동 사이에 무슨 '딜'이 이루어진 것 같은 맥락화 작업까지 시도한다"며 노조의 성명에 유감을 나타냈다.

또한 "영진위 구성원들은 청와대, 문체부, 국정원의 부당한 지시가 어떻게 내려왔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명명백백하게 밝히라"며 "1차 책임은 영진위 위원장에게 있지만, 영진위 노조를 비롯한 영진위 구성원들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책임 있는 직원들이 노조를 앞세워 등 뒤로 숨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영진위의 한 관계자는 논란이 된 '영화진흥사업 지원체계 개선안'에 대해 "영진위 미래전략본부(이상석 본부장)가 영화인들과 협의를 위해 자체적으로 초안형태로 만든 것"이라며 위원장이 몰랐다는 것은 이메일로 배포한 것을 몰랐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정권교체 가능성 커지면서 다른 목소리

 김세훈 영진위원장

김세훈 영진위원장ⓒ 성하훈


김세훈 영진위원장 퇴진과 적폐정산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영화계가 각론에서 다른 견해를 나타내는 것은 대선 이후 상황과 연관돼 있다는 것이 영화계의 분석이다. 정권교체 이후 누가 영화정책에 역할을 할 것이냐는 주도권 문제가 작용하면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영화인은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차기 영진위원장에 오르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다"며 "누가 대통령이 되면 누가 유리하다는 구체적인 이름까지도 도는 분위기이고 몇몇 사람들은 은근히 자리 욕심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흐름으로 인해 정치적 사안에 일치된 모습을 보이던 영화계에 긴장감이 느슨해지며 미묘한 상호견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영화관계자들은 "아직 정권교체가 된 것이 아닌 데 마치 다 된 듯 방심하는 게 우려된다"며 "기본적인 절차에 따른 해결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영진위 부위원장을 지낸 이현승 감독은 "영화계 미래가 어떻게 돼야 될지 조금만이라도 생각해보면 현재 뭘 중시하며 움직여야 할지 알 수 있을 텐데 과거지향적인 면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영진위 측 관계자는 "정치적 욕심은 누구든 낼 수 있는 거고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누가 되든 지금 영진위원장 보다는 낫겠으나, 적폐청산을 위한 진상규명 등이 중요하지 자리욕심을 낼 때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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