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피겨에 이어 여자 피겨에서도 희망가가 울려 퍼지며 앞으로의 기대감을 높였다.

'피겨 기대주' 임은수(한강중)는 지난 18일 오후(한국시각)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2017 국제빙상연맹(ISU) 세계 피겨 주니어 선수권 대회에서 4위에 올랐다. 임은수는 이번 대회를 통해 국제대회 180점 돌파에 성공했음은 물론 2006년 김연아가 이 대회에서 우승한 이후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메달 아쉬움보다 기대감을 갖게 한 4위

 임은수의 연기 모습

임은수의 연기 모습 ⓒ 대한빙상경기연맹


당초 이번 대회의 여자싱글은 러시아와 일본의 2파전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다. 두 국가의 선수들은 이번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7개 대회에서 내내 시상대를 양분했다. 러시아는 현재 시니어에서 매 대회 우승을 휩쓸고 있는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에 이어, 또 다른 스타로 밀고 있는 알리나 자기토바의 활약에 기대를 걸었다. 일본은 제2의 아사다 마오로 주목하고 있는 혼다 마린, 그리고 새별 시라이와 유나, 사카모토 가오리 등을 선두에 내보냈다.

그런 사이에서 임은수는 러시아와 일본 선수가 아닌 유일한 주니어 그랑프리 메달 리스트였다. 지난 7차 대회에서 임은수는 이 벽을 뚫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당시 임은수의 쇼트프로그램 클린연기는 전 세계의 피겨 팬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번 대회에서도 러시아와 일본의 벽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임은수는 자신이 가진 역량의 거의 모든 것을 쏟아 부으며 기대 이상의 결과를 냈다. 첫 관문이었던 쇼트프로그램부터 완벽했다. 임은수는 세 개의 점프를 비롯한 기술 요소를 모두 성공했고, 그 결과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프리스케이팅에선 후반부 3연속 점프의 실수가 나왔지만 나머지 점프를 모두 성공했다. 그 결과 프리스케이팅, 총점까지 모두 기록 경신을 해냈다. 김연아와 박소연(단국대), 최다빈(수리고)에 이어 네 번째 180점대 선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임은수는 프리스케이팅 경기 직후 다소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결과 발표 직후에도 옅은 미소가 돋보였지만 역시 조금 아쉬운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러시아와 일본의 팀바구니 속에서 충분히 제 기량을 보여준 임은수의 선전은 분명 기대 이상이었다. 또한 이번 러시아와 일본 선수들은 대부분 지난 시즌 주니어 무대를 이미 밟았던 선수들이었지만, 임은수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 출전에서 당당히 4위에 오른 임은수는 미래에 대한 더 큰 희망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 많은 유망주들에게 기회 만든 임은수

임은수의 이번 4위는 단순히 개인 순위로만 그치지 않는다. 주니어 그랑프리는 시니어 그랑프리와 다르게, 세계선수권의 국가별 순위에 따라 차기시즌 그랑프리 티켓을 국가별 쿼터로 배정한다. 임은수는 이번에 러시아, 일본에 이어 국가 순위 3위에 올랐는데, 이 결과로 다음 시즌 한국은 주니어 그랑프리 티켓이 무려 14장을 받게 됐다. 14장은 7개의 그랑프리 대회에 모두 2명의 선수를 내보낼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이렇게 많은 인원이 주니어 그랑프리 무대를 밟을 수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임은수의 이번 선전 덕에 한국의 피겨 유망주들은 차기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서 더 많은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게 됐다. 국제 대회 경험은 선수들이 성장하는데 있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중한 자양분이다. 세계적인 선수들과의 기량을 겨뤄,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자극을 받을 수 있기에 그러하다. 특히 다음시즌엔 최연소로 종합선수권 우승을 차지했던 유영(문원초)과 또 다른 기대주인 감윤경, 도지훈 등이 모두 주니어 연령을 충족해, 이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당장 오는 7월말로 예정된 국내 주니어 그랑프리 파견선수 선발전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한편 남자싱글에 출전해 최고성적인 5위를 거둔 차준환(휘문고) 역시 국가 순위 3위를 기록하면서, 여자싱글과 동일하게 남자싱글도 차기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티켓 14장을 수확했다. 한국 남녀 피겨선수가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톱5'안에 든 것도 처음일 뿐만 아니라, 이렇게 무더기 티켓을 동반으로 확보한 것 역시 최초의 일이었다.

에지와 비점프 요소는 여전한 숙제

 임은수의 연기 모습

임은수의 연기 모습 ⓒ 대한빙상경기연맹


임은수는 이번 대회에서 성과도 있었지만 과제도 확인했다. 우선 비점프 요소에 대한 부분을 비시즌 동안 충실히 메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임은수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세 차례의 스핀을 모두 최고 레벨4가 아닌 레벨3를 받았다. 피겨 점수에서 비점프 기술 요소는 점프 못지않게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소수점 차이로도 메달이 갈릴 수 있는 종목에서, 비점프 요소는 반드시 모든 요소에서 최고 레벨과 많은 가산점을 받아야 한다.

여기에 일부 점프에서의 에지 문제도 다듬어야 할 부분이다. 임은수는 현재 트리플러츠 점프의 에지 상태가 다소 불분명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번 프리스케이팅에서 두 번째 트리플러츠 점프에서 넘어진 것 역시 에지에서의 흔들림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에지문제는 자칫 시니어로 성장한 후 고질적인 문제로 변질될 수 있기에 반드시 짚고 넘어 가야할 부분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피겨의 기본기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임은수를 비롯해 많은 피겨 유망주들이 우상으로 꼽는 김연아는 후배들과 관련된 질문을 받을 때 부상 예방과 기본기를 가장 중요한 점으로 여러 번 언급한 바 있다. 기본기가 탄탄해야 주니어뿐만이 아니라 시니어에서도 자리를 잡고 오랫동안 선수생활을 지속할 수 있기에 그러하다. 선수 생활을 18년 가량 지속했던 김연아의 뼈있는 충고였다.

이번 대회에서 러시아와 일본은 각각 세 명의 선수를 내보냈다. 예상대로 이들의 수준은 높았다. 특히 자기토바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점프 대부분을 후반에 배치했다. 여기에 일부는 한 손을 들고 뛰는 타노 프로 구사해, 메드베데바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 결과 자기토바는 총점 208점대의 엄청난 점수로 우승을 차지했다. 그녀는 다음시즌 시니어로 올라오는데, 이 기세라면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올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일본의 기대주인 혼다 마린 역시 물오른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며 200점을 돌파했다. 올 시즌 주니어 그랑프리에선 한 번도 우승을 하진 못했지만, 역시 큰 대회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왜 일본 피겨계가 그녀를 주목하는지 짐작하게 만들었다. 그녀 역시 다음시즌 시니어로 올라오면서, 평창에서 만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임은수의 점프 구성이나 난이도는 이들에 비해 결코 뒤쳐지지 않는다. 시즌을 마감한 지금 임은수는 비시즌에 돌입한다. 약 4개월 간의 비시즌 동안 그녀가 어떻게 보완하느냐에 따라 다음 시즌 러시아와 일본을 상대로 더 멀리 그리고 더 높게 비상할 수 있을 것이다. 임은수를 비롯해 더 많은 주니어 선수들은 차기시즌 본격적인 발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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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임은수 동계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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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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