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켈레톤의 간판' 윤성빈(한국체대)은 끝내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도 두쿠르스를 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으로 더 큰 희망을 품게 됐다.

윤성빈은 지난 17일 오후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에서 열린, 2016-2017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8차 대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홈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대회에서 윤성빈은 금빛 질주를 다짐했지만, 아쉽게 또 다시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윤성빈의 스타트 모습

윤성빈의 스타트 모습 ⓒ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0.01초의 승부, 종이 한 장 차이로 엇갈리다

이번 대회에서 윤성빈과 두쿠르스가 보여준 승부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시작은 윤성빈의 공격이 강했다. 윤성빈은 6번째로 등장해 가장 빠른 스타트로 출발해 50초 69의 기록으로 트랙 레코드를 세우며 통과했다. 평창에서의 첫 트랙 레코드가 윤성빈의 것으로 새겨지는 순간이었다. 두쿠르스는 13번째로 등장해 윤성빈을 맹추격했지만, 50초 87을 기록해 근소하게 뒤지며 2위에 자리했다.

그러나 아쉽게 2차시기에서 뒤집혔다. 윤성빈의 바로 앞순서로 주행한 두쿠르스는 처음으로 주행해본 평창 슬라이딩 경기장을 완벽하게 해냈다. 첫 경기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곧바로 모든 코스를 정복한 두쿠르스는 그가 왜 '스켈레톤의 전설'로 꼽히는지 알게 해줬다. 그리고 그는 1차 시기에서 윤성빈이 세운 트랙 레코드를 갈아치우며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었다.

윤성빈의 반격 역시 만만치 않았다. 마의 9번과 10번 코너 역시 흠잡을 곳 없이 무사히 빠져 나왔다. 그러나 주행도중 1차 시기보다 살짝 위로 가면서 가속이 조금 떨어진 것이 옥의 티였다. 이 때문에 윤성빈은 결국 불과 0.01초 차이로 두쿠르스에게 금메달을 내줬다.

두 선수는 올 시즌 유독 이런 팽팽한 맞대결을 여러번 연출했다.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렸던 5차 월드컵에서 엎치락 뒤치락 트랙 레코드를 갈아 치우던 두 선수의 경기는 올 시즌 최고의 명경기로 꼽히기에 충분했다. 비록 금메달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지 몰라도, 윤성빈의 평창에서의 첫 단추는 완벽했다.

마의 구간, 정복은 했지만 여전한 변수

이번 대회를 앞두고 모든 선수들은 9번 코너를 마의 구간으로 꼽았다. 속도 완급 조절을 해야하는 구간으로 이 코너는 급격한 코너링으로 인해 속도가 빠를 경우 자칫 썰매가 전복될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 가속을 덜 받으며 급격하게 속도가 줄 가능성도 있다.

윤성빈과 두쿠르스는 첫 대회임에도 불구하고 이 구간에서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왜 두 선수가 현재 세계 남자 스켈레톤을 주름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반면 중하위권의 선수들은 이 구간에서 오른쪽 어깨를 벽에 부딪혀 속도가 주는 모습이 여러번 포착됐다. 또한 2번 코너 역시 예상외로 실수가 많이 나오는 구간이었다.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알렉산더 트레티아코프(러시아)는 1차 시기에서 2번 코너 실수로 순위가 뒤로 밀렸다. 비록 2차 시기에선 회심의 역주를 펼쳤지만 메달권에는 역부족이었다.

평창 트랙은 비교적 쉬운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로 곳곳에 함정과 까다로운 구간이 여럿 존재했다. 비록 이번 대회에서 문제 없이 넘어 갔더라도, 1년 뒤 올림픽에선 여전히 똑같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끝까지 방심해선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습만이 금메달을 향한 지름길

윤성빈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철저한 보안속에 경기를 준비했다. 지난달 7차 월드컵을 마친 직후 세계선수권에 출전하지 않고 곧바로 국내로 들어와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다른 경쟁자들보다 더 많이 트랙에서 주행연습을 하며 실전감각을 쌓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윤성빈의 이 전략은 완벽히 적중했다. 두 번의 주행시기에서 한 번의 실수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성빈은 남들에 비해 약 20번 가량을 더 탈 수 있었다고 귀뜸하기도 했다.

썰매 종목은 그 어느 경기보다 장비와 홈 이점이 강하게 작용하는 스포츠다. 장비 하나가 선수의 기록을 바꾸기도 하고, 얼마만큼 코스에 익숙한지에 따라 실전에서 실수를 최대한 줄이고 깨끗한 레이스를 펼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윤성빈은 이번 대회가 끝났지만 경기장의 얼음을 녹이기 전까지 당분간 평창에서 계속해서 훈련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홈 트랙의 이점을 등에 업기 위해 더 많은 연습을 평창 트랙에서 투자하겠다는 각오다.

윤성빈은 이번 대회를 통해 심리적인 변수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5차 월드컵부터 계속해서 2차시기에 역전을 허용해왔기에 자칫 고질적인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컸다. 이번 대회에서도 윤성빈은 똑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전대회와는 달랐다. 이전에는 2차시기에서 실수가 나왔지만, 이번 경기에선 1차시기와 마찬가지로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봤을 때 윤성빈이 심리적인 변수도 충분히 극복이 가능하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었다.

0.01초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기록경기를 하는 선수들에게 있어선 100년과도 같은 시간으로 통한다. 윤성빈에게 이번 0.01초는 평창을 준비하는데 있어 또 다른 자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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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빈 평창동계올림픽 스켈레톤 알펜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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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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