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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파괴'범'이란 표현은 차라리 양반이다. "천박하다"거나 "구역질 난다"라는 반응부터 차마 말로 담기 어려운 육두문자가 난무한다. 홍상수와 김민희에 대한 일부 네티즌들의 여론 말이다. 이는 가십거리로 소비되는 연예 뉴스의 속성을 감안해도 과하게 느껴질 만큼 감정적이고 맹목적이다. 두 사람의 사적 관계를 제삼자가 재단하는 것도 우스울뿐더러, 정작 당사자 쪽에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대체 어떤 이유로 자신과 철저히 무관한 사안에 이렇게나 흥분하는 걸까 싶다.

감히 그들의 심리를 추측해 보자면 이런 것이다. 첫 번째는 '불륜에 무덤덤한 분위기가 사회에 만연하면 나는 배우자에게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식의 위기감, 두 번째는 '결혼 생활에 어떤 문제가 생긴다 해도 가정은 지켜져야 한다'는 식의 책임감, 세 번째는 '내 배우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나를 떠나지 않으리라'(혹은 떠나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다. 그래서 이들은 불륜 피해자인 홍상수의 아내에게 놀라울 정도로 깊이 감정을 이입한다. 이건 공들여 쌓아온 가치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이자 결혼의 제도적 불완전성을 목도한 뒤 겪는 무력감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에게 버림받는 상황을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기는 건 자기기만이고, 무엇보다 퍽 비참하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한장면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한장면ⓒ (주) 영화제작전원사


그런 점에서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의도와 무관하게) 비난 여론을 대하는 홍상수의 입장 표명으로 읽히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연상의 유부남 영화감독을 사랑하는 배우 영희(김민희 분)가 서울을 떠나 독일 함부르크와 강릉에서 겪는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꿈결처럼 가만히 영희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은 점점 주변의 다른 인물들을 향하고, 더 나아가 관객을 관조하기에 이른다. 시끄러운 도시에서 벗어나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하는 영희는 그를 향하는 불특정 다수의 비난을 머쓱하게 한다. 두 사람을 둘러싼 논란에 "특별히 해명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홍상수의 말처럼, 영희는 자신을 향한 비난에 무관심하다. 다만 좀 성가실 뿐.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바라보는 영희는 철저하게 독립적이고, 그래서 고독하다. 스캔들을 피해 머물게 된 독일에서 지영(서영화 분)과 함께 지낼 때도, 강릉에서 오랜만에 만난 선배 천우(권해효 분), 명수(정재영 분), 준희(송선미 분) 등과 술자리를 가질 때도 마찬가지다. 일견 친밀해 보이는 이들의 관계는 어딘가 작위적으로 느껴지고, 웃음 속에 이어지는 대화는 종종 빗나가며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영희는 "아, 그렇구나"라며 상대방의 말을 무심하게 되뇌거나, 상대방이 기억하는 자신의 과거를 "아, 그랬었나"라며 가볍게 넘겨버린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갑자기 상대방을 몰아붙이며 힘껏 감정을 쏟아낸다. 텅 비어있는 듯한 영희의 내면은 대중과 소통의 여지를 잃은 김민희의 그것과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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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 자신이 사랑했던 영화감독 상원(문성근 분)과 재회한 영희의 시퀀스도 다르지 않다. 영희는 우연히 강릉에서 만난 상원에게서 그 곁에 있는 또 다른 여자 배우를 보고, 스크립터로 일하는 여자 스태프를 본다. "감독님은 왜 예쁜 여자들이랑 같이 일해요?"라는 영희의 질문에 상원은 "내가 예쁜 여자를 좋아하니까"라고 답한다. 온갖 손해와 위험을 감수하고 이뤄낸 영희와 상원의 관계 역시 완전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두 사람인 이 사실을 이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인다. 다음 작품 계획을 묻는 말에 "그냥 떠오르는 대로 만들 거야"라며 "미리 정해놓는 건 아무것도 없어. 첫 장면을 찍고 되는대로 갈 거야"라고 말하는 상원의 대사는 사랑, 나아가 인생을 대하는 인간 홍상수의 태도로도 비친다.

결국, 이 영화는 최소한 홍상수 감독이 김민희와의 '불륜'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작품이 아니다. 오히려 둘 사이의 관계에 내재한 불확실성을 내보이고, 자신의 선택을 반성하거나 심지어 후회하는 뉘앙스까지 풍긴다. 대신 영화가 방점을 찍는 지점은 '밤의 해변'에서 '혼자' 잠에서 깨어나는 영희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잡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새 영화에 출연할 준비가 되어 있고, 어디서 누구와든 제대로 살아갈 것만 같다. 설사 상원이 자신을 떠난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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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현실화된 '홍상수 월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대중성과 가장 멀고 작품성과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그의 영화들처럼, 홍상수와 김민희는(세간의 평가와 무관하게) 알아서 잘 살아갈 것이다. 홍상수는 "나는 내가 동의할 수 없는 타인의 의견과 태도를 접했을 때, 내게 피해를 준다거나 법에 저촉되는 게 아니라면 '그게 싫더라도' 존중한다"라고 말했다. 이 말대로 딱히 두 사람을 존중하지 않아도 좋지만, 좀 무관심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들을 둘러싼 문제는 '사랑'이란 단어만큼이나 추상적이어서 '땅·땅·땅' 하고 내려지는 판결처럼 결코 똑 부러지지 않는 종류의 것이니까 말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사실 극 중 표현대로 그렇게 "할 일 없는 사람들"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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