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MBC 수목 드라마 <미씽 나인>의 후속 작품은 KBS2의 <김과장>과 동일한 배경인 '오피스물' <자체 발광 오피스>다. 하지만 동일한 소재의 작품이라 하더라도 이미 김과장이 17.1%(닐슨 코리아 전국)의 압도적인 1위를 선점한 상태다. 후속 작품인 <자체 발광 오피스>는 3.9%로 고전하는 중. 수목 드라마 1위와 꼴찌, 하지만 이 두 드라마 들여다 보면 오피스물이라는 공통적 소재 외에도 비슷한 점이 많다.

수목 1위로 매회 속시원한 '사이다 한 잔'을 들이키게 하는 <김과장>은 극의 구성이 2013년 <직장의 신>과 흡사하다. <직장의 신>은 비정규직 미스 김(김혜수 분)의 기상천외한 행보로 전형적인 '갑을' 관계였던 직장 내의 관계를 역전시켰다. 직장 내의 가장 존재감 없는 '비정규직'이 가장 '능력자'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상황은 당시 '갑을' 관계와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던 우리 사회의 문제 의식을 '블랙코미디'의 형식으로 풀어가며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김과장>도 마찬가지다. 대통령과 관련한 비선 실세의 권력 농단 못지 않게 승계를 위해 동조한 대기업의 부도덕한 행태가 공분을 사는 이 시점, 복마전인 대기업에 들어간 똘끼 충만한 '김과장'의 '사이다'식 해프닝이 역시나 시청자들의 답답한 가슴을 확 뚫어주며 호응을 얻고 있다.

변방에서 온 흑기사들 

 <김과장>의 한 장면

<김과장>은 현실과 판타지가 뒤섞인 작품이다.ⓒ KBS2


그런데 일찍이 <직장의 신>에서 부터 <자체 발광 오피스>까지 주인공들을 보면 오피스 물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부장보다 이사보다 더 능력자인 미스 김, 하지만 그녀의 직책은 단기 계약의 비정규직이다. 이렇게 오피스물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은 '오피스'의 변방으로부터 등장한다.

<김과장>의 주인공 김성룡은 능력자 미스 김 못지않게 선천적으로 타고난 근성과 깡, 비상한 두뇌, 돈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과 재능을 지녔지만 지방에서 조폭들 자금 세탁이나 해주던 처지다. 그러던 그가 자신의 꿈이었던 덴마크 이민을 위해 뜻하지 않게 도달하게 된 곳이 바로 '비리'의 온상 TQ그룹이다.

<직장의 신>이나 <김과장> 모두 주인공들은 '능력자'이지만 '오피스'에서 대우받지 못하는 처지이다. 그런가 하면 <자체 발광 오피스>는 이 시대의 '을'인 청춘 세 명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집안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면서 스펙 대신 알바를 하며 겨우 학점만을 따야했던 여주인공 은호원(고아성 분)은 무려 100번이나 입사 원서를 내지만 번번이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실패한다. '스펙'이 만땅인 장강호(이호원 분)는 너무도 모범 답안인 그의 스펙과 더더욱 모범 답안인 그의 면접 답안에도 불구하고 '소극적 태도'로 말미암아 역시나 번번이 미역국을 먹는 처지다. 서른두 살 먹도록 변변한 스펙하나 없이 시험 준비만 하다 여자 친구에게 차이고 만 도기택(이동휘 분)이라고 나을 것이 없다.

블랙코미디, 현실의 판타지로서의 오피스물

 <자체 발광 오피스>는 88만 원 세대를 대변하는 블랙 코미디이다.

<자체 발광 오피스>는 88만 원 세대를 대변하는 블랙 코미디이다.ⓒ MBC


이렇게 현재 대한민국 88만 원 세대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을 지닌 세 명의 인물이 바로 <자체 발광 오피스>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자살 시도를 했다가 병원 응급실에서 만난 인연으로 맺어진다. 급기야 서현(김동욱 분)의 배려로 하우라인 3개월 계약직에 위촉되게 된다. 그들이 들어간 곳은 하우라인 영업부와 판촉부. 거기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비리'와 갑을 관계, 남녀간의 불균형적 처지 등이 고스란히 집합된 전형적인 직장 부서이다.

'오피스' 물의 배경이 되는 직장은 곧 현실, 바로 우리 사회로 등치되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주인공은 정통이 아닌 존재로 등장하며,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회사'의 일에 얽매이며, 우리 사회 '갈등' 해결의 주도적 존재가 되어간다. 덴마크 이민을 위해 한탕 건지겠다고 들어간 회사에서 전혀 다른 '의로운' 인물이 되어가는 김 과장이나, 돌아갈 수 없는 기회를 잡은 3개월 계약직 <자체 발광 오피스>의 은호원, 장강호, 이동휘 세 사람 역시 '시한부'라는 설정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태도의 삶을 살아간다. 2회 회사의 고질적인 진상 고객을 자신의 처지로 설득해 내는 은호원을 통해, 이들의 존재가 <김과장>처럼 역설적으로 '힘'이 될 것임을 드라마는 예고한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자신을 옭죄인 가족, 사회적 관계의 틀에서 옴싹달싹 못하지만, '이민'이라던가 '죽음'이라는 삶의 이탈적 요소를 지닌 주인공들은 그래서 용감하다. 그 용감함이 그들의 삶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끌며 평범한 주변 인물을 독려함은 물론, 역시나 일상의 삶에 지쳐가는 평범한 시청자들에게 '삶의 사이다' 한 잔을 들이키게 만든다. 하지만 이런 '코믹'한 요소들은 사실 '사이다'같은 시국과 맞물려 박수를 받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노오력'을 해도 쉽게 얻어지지 않는 기회, 고착된 갑을 관계 속에서 나 하나의 도태 아니고서는 쉬이 변화를 바라기 힘든 '블랙 코미디'인 현실의 '판타지'이다.

2013년 <직장의 신>으로 '갑을 관계'라는 것이 전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그로 부터 몇 년이 지난 현재 그 '갑을 관계'는 잠깐의 환기 이후 더 고착되었다.  과연 <김과장>이 매회 권하는 이 '사이다'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88만 원 '노오력' 세대의 고군분투는? 아직은 사이다의 강렬한 시원함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그 의미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 과제일 듯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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