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봤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릴 적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미녀와 야수>(1992)를 본 적이 있다. 어릴 때 참 재미있게 본 애니메이션 영화가 실사화 되어 다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묘했다. 사실 <미녀와 야수>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러 번 보았던 영화였고, 레아 세이두와 뱅상 카셀이 출연했던 프랑스판 실사화 영화 <미녀와 야수>(2014)도 보았다.

그래서 디즈니가 실사화를 통해 새롭게 내놓은 <미녀와 야수>(2017)가 궁금하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디즈니 실사화 <미녀와 야수>가 21세기 첨단 영상 기술을 동원 했다고 한들, 원작 애니메이션이 주었던 감동 그 이상을 줄 수 있을까? 반신반의 하는 마음도 컸다.

원작을 알아도 재밌게 볼 수 있다

 원작의 자잘한 설정 오류 등이 수정됐다.

원작의 자잘한 설정 오류 등이 수정됐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실사화를 통해 재탄생한 <미녀와 야수>는 내용적으로는 애니메이션 원작 스토리라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원작이 스포일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녀와 야수> 자체를 처음 보는 어린 관객이 아닌 이상 영화의 전체 내용은 똑똑하고 진취적인 여성 벨(엠마 왓슨 분)이 저주에 걸린 야수(댄 스티븐스 분)을 구한다는, 우리가 잘 아는 그 이야기이다. 85분짜리 애니메이션 영화를 129분으로 늘린 만큼 애니메이션 원작에는 없었던 몇몇 등장인물과 새로운 플롯이 추가 되었는데, 이 지점이 조금 흥미롭게 다가온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원작에서 야수는 저주가 걸리기 전 왕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을 줄 모르는 일자무식이었다. 반면, 실사화 된 <미녀와 야수>의 야수는 배울 만큼 배웠던 똑똑한 왕자님이다. 항상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벨만큼 독서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책에 관해서 벨과 어느 정도 이야기가 통할 정도다. 자신이 살던 마을에서는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빠 모리스(케빈 클라인 분)밖에 없어 답답해했던 벨이 야수에게 호감을 가진 계기 중 하나다.

21세기를 사는 현대 여성들은 어떤 남자가 위기에 빠진 자신을 구해 줬다는 이유만으로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물론 디즈니 원작에서도 야수가 목숨을 걸고 벨을 구해준 장면 외에도, 독서를 좋아하고 매너를 중요시 여기는 벨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야수가 노력하는 시퀀스가 등장한다. 그런데 디즈니 원작을 새롭게 재해석한 실사화 영화는 책을 어떻게 드는지도 모르는 원작의 야수 캐릭터에 의문점을 제기한다. 아무리 오만방자 했다고 해도 엄격한 가정교육을 의무적으로 받았을 왕자인데 책을 읽지 못하는 설정이 말이 되느냐면서 말이다.

이렇게 사소한 디테일이지만, 2017년 버전 <미녀와 야수>는 1992년 당시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미심쩍은 요소들을 하나씩 짚고 넘어간다. 야수는 왜 오만방자하고 괴팍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을까. 벨의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죽었을까. 벨과 야수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여러 극적 요소들이 새롭게 추가됐다.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미녀와 야수>를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궁금해 했던 뒷이야기들을 되짚고 넘어가는 시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눈물까지 흘리면서 감동 받았던 장면은 다른 곳들에 있었다. 야수가 개스톤(루크 에반슨 분)에 의해 생명이 위태로웠던 장면에서도 눈물이 났고, 야수와 함께 저주에 걸린 그의 하인들이 물심양면으로 벨을 도와주고, 자신들의 운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대해서도 다른 의미의 눈물이 났다. 다 애니메이션을 통해 보았던 장면이고, 어떻게 흘러갈 지 뻔히 아는데도 눈물이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운명은 개척하는 것

 왕자 옆의 매력적인 여성으로만 남기에, 벨은 차고 넘치는 재능의 소유자이다.

왕자 옆의 매력적인 여성으로만 남기에, 벨은 차고 넘치는 재능의 소유자이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쳤던 콕스워스 집사(이안 맥켈런 분), 르미에 시종(이안 맥그리거 분), 폿트 부인(엠마 톰슨 분), 칩(네이트 맥 분) 등은 늘 벨과 야수 곁에서 그들을 도와주는 귀여운 캐릭터들에 지나지 않았다. 왜 그들이 벨과 야수를 돕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을 품지 못했다. 그냥 그들은 원래 저런 캐릭터이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벨은 달랐다. 벨은 야수와 함께 저주에 걸린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지 않고, 한시도 야수의 곁을 떠나지 않는 이들의 선택을 의아해 한다. 그리고 성 안의 저주가 풀릴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폿트 부인은 자신이 뿌린 씨앗은 자신이 거두어야 한다면서, 오히려 자신들을 위해서 야수와 억지로 사랑에 빠지려고 하는 것 같은 벨의 희생을 말린다. 여기서 벨은 놀란다. 평생 저주에 갇혀야 할 지 모르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저들의 낙관적인 모습에 벨은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벨에게는 그녀를 죽자 사자 따라다니는 개스톤이라는 남자가 있었다. 마을 여성들은 모두 잘생기고 남자다운 개스톤을 좋아했지만, 벨은 그가 정말 싫었다. 개스톤이 가진 마초적인 성향도 마음에 안 들었겠지만,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가지려고 하는 사람이다. 벨을 사랑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개스톤이 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일방적인 복종이었다. 자신과 달리 지적이고 똑똑한 벨에 흥미를 느끼지만, 자기보다 잘난 여자도 자신의 발밑에서 기게 만들고 싶은 이상한 승부욕. 어린 시절에도 참 별로였지만, 2017년 스크린을 통해 다시 본 개스톤은 진심으로 최악의 남자였다.

 개스톤은 다시 봐도 최악이다.

개스톤은 다시 봐도 최악이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평화롭지만 비좁은 마을에서 벗어나 더 큰 세계로 나아가고 싶었던 벨. 벨은 공부를 좋아하고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어하는 자신을 이해해주는 남자를 만나고 싶다. 자신에게 맹목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게 아닌, 상호 존중 마인드로 상대방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는 파트너를 원했다. 개스톤이 벨에게 원하는 것은 일방적인 상하관계였고, 야수는 달랐다.

야수도 처음에 벨을 만났을 때는 분노 조절 장애 실패로 그녀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애를 먹긴 했다. 하지만 야수는 곧 자신의 부족한 면을 인정했고, 단점을 개선하고자 벨과 머리를 맞대어 고치려고 노력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그녀를 놓아주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처럼 야수가 벨의 환심을 산 것은 벨이 꿈꾸던 이상형의 남자여서가 아니라, 벨의 재능을 존중해주고, 그녀가 좋아하는 남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었다.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벨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캐릭터 그 자체였다. 2017년 새롭게 돌아온 벨 또한 지적이고 배려심 많고, 누군가를 위해서 기꺼이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현명한 여성이다. 하지만 그러한 벨 또한 야수와 저주에 걸린 성 안의 인물들과 함께 지내면서 절망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희망을 알게 되었고, 상대방을 자기 방식대로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닌, 때로는 상대방에게 맞춰줄 수 있는 삶의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

1992년 애니메이션으로 개봉 당시 <미녀와 야수>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진취적인 여성상을 보여준 바 있다. 수동적으로 왕자의 키스를 기다리던 이전의 디즈니 공주들과는 달랐던 획기적인 진보였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겨울왕국>(2014)에서는 진취적인 성향을 가진 여성 캐릭터(안나)가 저주에 걸린 여왕(엘사)를 구하는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반면, 아무리 새롭게 구성한다고 한들 원작에서 크게 달라질 수 없었던 2017년판 <미녀와 야수>의 여성 캐릭터는 자신의 도움으로 저주에서 풀려난 왕자의 아내로 남아야 했다.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2017년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온 벨은 예쁜 드레스를 입고 왕자님 곁에서 춤을 추는 여성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왕자와 함께든, 그렇지 않든 벨은 그녀의 재능을 인정해주는 왕자의 지지를 받으며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마음껏 놀러갈 것이고,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들의 노동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기발한 발명품을 만들면서 재미있게 잘 살 것이다. 샛노란 드레스가 인상적인, 그저 매력적인 여성으로 남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벨. 자신이 가진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녀 혼자 똑똑해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여성들이 마음 놓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사회 인식과 구조가 뒷받침 되어야한다.

<미녀와 야수>가 애니메이션으로 개봉 되던 1992년보다 여성 인권이 신장되고,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여성을 정복해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인생을 개척하는 동반자로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야수의 태도는 여전히 인상적으로 다가오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어릴 때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되짚고 넘어갈 수 있었던 2017년 버전 <미녀와 야수>와 함께한 2시간 남짓한 시간들이 속절없이 좋았다.

 영화 <미녀와 야수> 포스터.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원작 이상의 감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영화 <미녀와 야수> 포스터.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원작 이상의 감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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