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윌리엄스

크리스 윌리엄스ⓒ KBL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와 고양 오리온스 등에서  활약했던 외국인 선수 크리스 윌리엄스가 최근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윌리엄스의 사인은 혈전으로 인한 심장 이상이다.

윌리엄스는 KBL 팬들이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외국인 선수다. 미국의 명문 버지니아 대학을 졸업한 윌리엄스는 2006-2007시즌 울산 모비스의 유니폼을 입으며 KBL 무대에 첫 발을 내딛었다. 데뷔 첫 해에 평균 25.4점 10리바운드 7.2어시스트의 트리플더블급 맹활약을 펼치며 모비스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실질적인 MVP인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까지 수상했다. 이듬해인 2006-2007시즌에는 모비스의 통합우승을 이끌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당시 모비스는 전신인 부산 기아 시절 원년 우승(1997년) 이후 연고지와 팀명이 바뀐 후로는 첫 우승이었다. 당시만 해도 유재학 감독은 능력 있는 차세대 감독 정도로 평가받았지만 아직 우승 경험은 없는 40대의 혈기왕성한 지도자였고, 풋풋한 신인급이었던 양동근은 가드치고는 부족한 리딩과 패싱능력으로 다소 저평가받던 시절이었다.

윌리엄스는 특유의 기술과 다재다능함을 바탕으로 팀의 부족한 부분을 골고루 메워주며 당대 최고의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로 군림했다. 모비스는 이후 KBL를 대표하는 강호로 성장했고 최근 10년간 총 5번이나 정상에 오르며 '모비스 왕조'를 구축했다. 윌리엄스가 모비스에 기여한 시간은 단 2년이지만 실질적인 창업공신으로 모비스 왕조의 탄생에 기여한 공로는 결코 적지 않다.

윌리엄스의 시대는 KBL이 외국인 자유계약제로 리그 역사상 가장 거물급 외국인 선수들이 쏟아져나오던 시기이기도 했다. 단테 존스, 피트 마이클, 애런 맥기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준 NBA급 선수들이 코트를 지배하며 나홀로 원맨쇼를 펼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윌리엄스는 월등한 개인능력을 앞세운 기존의 외인들과는 스타일이 다소 상이한 '한국형 외국인 선수'라는 점에서 더 주목받았다. 'KBL 버전의 스카티 피펜 혹은 르브론 제임스'라는 플레이스타일에서 요약되듯이, 윌리엄스는 외국인 선수로서는 이타적인 플레이스타일과 다재다능한 포지션-전술 소화능력, 뛰어난 농구지능을 바탕으로 한 영리한 경기운영으로 승부하는 타입의 선수였다. 화려한 득점력이 돋보였던 존스나 마이클이 결국 KBL에서 정상에 오르지는 못했던 것과 비교할 때 윌리엄스는 어떤 면에서 한국 농구가 가장 선호하는 외국인 선수로서의 플레이 스타일을 가졌다고 할만하다.

물론 그렇다고 윌리엄스가 1대 1이나 득점력이 떨어지는 선수는 아니었다. 포워드형 플레이어로서 신장은 크지 않지만 피벗과 훅슛, 플로터 등 다양한 기술이 갖춰 전문 빅맨보다도 더 안정적인 골밑 득점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리바운드 능력도 뛰어나 지신보다 큰 선수들을 상대로도 골밑에서의 위치선정과 타이밍만으로 쉽게 두 자릿수 리바운드를 걷어냈다.

공격 전개시에는 경기운영능력이 아직 떨어지던 양동근을 대신하여 윌리엄스가 공을 잡고 리딩을 전개하는 경우도 많을 만큼 볼핸들링과 패싱력까지 갖췄다. 수비력은 골밑에서 힘으로 버티거나 블록슛이 뛰어난 유형의 선수는 아니었지만 뛰어난 스틸능력으로 패스의 맥을 끊는 데 능하여 모비스 팀수비의 한 축을 담당했다. 지금도 KBL에서 윌리엄스과 비견될 만한 '토털 패키지'형 선수는 다시 찾아보기 힘들다.

약점은 포워드치고는 중장거리 슈팅 능력이 다소 떨어졌다는 점, 체력도 그리 뛰어나지 못해 후반 승부처에서 클러치 타임에 강한 유형의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윌리엄스의 진정한 강점은 혼자 북치고 장구치는 다른 외국인 선수들과 달리 국내 선수들의 조화에  있었고, 누구보다 동료를 활용하여 자신의 약점을 메우는 법을 잘 알았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지금의 모비스의 팀 시스템과 외국인 선수들의 선발 기준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바로 윌리엄스였다.

윌리엄스는 플레이스타일만큼이나 성실하고 반듯한 성품으로 동료들이나 코칭스태프와의 관계도 매우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양동근과는 모비스를 떠난 이후로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결혼식에 참석하는가 하면, 양동근이 미국으로 휴가를 갔을 때는 다른 지역에서 장거리 비행을 감수하며 날아와 우정을 나누기도 했다. 지난 2016년 유재학 감독이 정규리그 통산 500승을 달성했을 때는 직접 영상에 출전하여 축전을 보내면서 오랜만에 팬들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어쩌면 KBL 팬들과 좀더 오랜 시간을 함께 할 수도 있었던 윌리엄스지만 아쉽게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KBL이 2007년 이후 자유계약제도를 트라이아웃으로 개편하면서 윌리엄스는 부득이하게 한동안 한국을 떠나야 했다. 이후 2011-2012시즌 고양 오리온에 합류하면서 오랜만에 다시 한국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팀이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하며 윌리엄스는 다시 KBL을 떠나야 했고 그것이 한국 팬들과의 영원한 작별이 됐다.

마지막 시즌에도에도 윌리엄스는 평균 24.8점 10리바운드를 기록했으며 특히 6.3개의 어시스트로 외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이 부문 타이틀을 수상하기도 했다. 개인 성적으로는 여전히 녹슬지 않은 활약을 보였으나 당시 리빌딩이 진행중이었던 오리온은 윌리엄스 혼자 활약한다고 성적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윌리엄스는 이후 해외 여러 리그를 넘나들며 한동안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가 2016년에 은퇴했다. 문태종이나 주희정같이 윌리엄스과 동시대에 KBL에서 활약했고 나이가 더 많은 선수들도 아직 건재하지만 윌리엄스는 애석하게도 37세라는 한창 나이에 뜻하지 않은 건강 이상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윌리엄스가 한국에서 뛴 시즌은 단 3년뿐이었지만 그가 한국농구에 남긴 업적과 인상은 애런 헤인즈, 조니 맥도웰 등과 함께 KBL를 빛낸 외국인 레전드의 한 명으로 기억되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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