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수목미니시리즈 <미씽나인>에서 서준오 역의 배우 정경호가 13일 오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긍정적이라고 해야 할까, 속없다 해야 할까. 정경호는 "데뷔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인생캐릭터'를 만나진 못한 것 같은데, 초조하진 않나"라는 조금은 아플 질문에 허허 웃었다. ⓒ 이정민


"데뷔한 지 15년 됐는데, 지금도 작품 할 때마다 '재발견'이라는 소리를 해주세요. 이렇게 오랜 기간 계속 '재발견' 소리를 듣는 것도 어려운 일이잖아요. (웃음) 제게는 이보다 큰 칭찬은 없는 것 같아요."

이 남자. 긍정적이라고 해야 할까, 속없다 해야 할까. "데뷔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인생캐릭터'를 만나진 못한 것 같은데, 초조하진 않나"라는 조금은 아플 질문에 허허 웃으며 나온 답이다. 자신은 "(아직 '인생캐'를 만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장점이라 생각한다"면서. 13일 서울 강남구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배우 정경호(33)는 진지함 속에 가벼움을, 가벼움 속에 묵직함을 담고 있었다.

혹평 쏟아진 <미씽나인>... 정경호는 빛났다 

 MBC수목미니시리즈 <미씽나인>에서 서준오 역의 배우 정경호가 13일 오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호평 받으며 시작한 <미씽나인>은 후반부, 길을 잃은 스토리와 답답한 전개로 점점 민심을 잃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정경호라는 배우의 매력은 빛이 났다. ⓒ 이정민


<미씽나인>의 시작은 호평일색이었다. 해외 공연을 위해 스타들을 싣고 중국으로 향하던 전세기가 추락했고, 사고에서 살아남은 9명은 무인도에 떨어졌다. <미씽나인>의 초반 장르는 분명 어드벤처물이었다. 지금까지 TV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소재와 장르라 신선했다. 게다가 초반부 사건 진상 규명보다 그저 모든 것을 덮으려는 정부의 모습은 세월호를 연상시키며 큰 호응을 받았다. 첫 회 시청률은 6.5%(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에 그쳤지만, 극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명품 드라마'의 탄생을 기대했다.

하지만 드라마는 어드벤처물에서 범죄스릴러물로 바뀌었고, 호평이 혹평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경호에게도 고백했지만, <미씽나인> 후반부 전개는 보기 힘들 정도로 답답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드라마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스토리의 빈 곳을 채워나간 배우들의 호연에 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었던 것은 철부지와 리더 사이를 오가며 성장해 나가는 정경호(서준오 역). 그로서는 15년째 듣는 말이라 지겹겠지만, 다시 한 번 '정경호의 재발견'이라 할 만했다.

'배우 정경호'는 호평을 받았지만, 드라마에는 혹평이 쏟아졌다. 주연배우로서 아쉬울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이보다 잘 맞는 팀은 또 없을 것"이라면서 <미씽나인>으로 얻은 것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분위기가 너무 즐거웠어요. 김상호 선배님이 잘 이끌어주셨고, 감독님도 유쾌하셨죠. 배우들도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는데, 너무 대단한 사람들이라 다들 어떻게든 한 마디씩 보태려고. 하하하. 집중이 안 됐어요. (웃음)"

굉장히 피곤했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그의 말투와 표정에는 팀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담겨있었다. 후반부 개연성 잃은 전개에 대해 "태호가 벌여놓은 악행이 많아 모든 것들을 빠르게 해결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는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지만, "현장 분위기는 너무 좋았다. 시청률이 떨어져도 우리는 우리 이야기들을 해야 하지 않나. 시청률에 연연하기보다, 서로 '으쌰으쌰' 하면서 즐겁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를 마치면서, 다 아쉬웠어요. (배우들과) 헤어지는 것도 아쉽고, 또 이런 기회가 내게 올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만약 이런 기회가 다시 온다면, 결과를 알더라도 또 택할 것 같아요. 그게 <미씽나인>에 참여한 모든 배우들의 마음일 거예요."

오정세와 찰떡 케미... "거울 보고 연기하는 기분"

 MBC수목미니시리즈 <미씽나인>에서 서준오 역의 배우 정경호가 13일 오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경호가 <미씽나인>을 택한 이유는, 독특한 소재 때문이었다. 새로운 장르, 새로운 상황, 새로운 인물을 연기할 때 가장 즐겁다고. ⓒ 이정민


무겁고 진지한 극 안에서, 예상치 못한 코믹함으로 극에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는 것은 정경호와 오정세의 몫이었다. 둘의 호흡이 어찌나 찰떡같았는지, 오정세는 최근 인터뷰에서 "(정경호와 연기하며) 내 자신과 연기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표현했고, 정경호는 "거울 보고 연기하는 것 같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세 형은 정말 가진 게 많은 사람이에요. 생각지도 못한 말과 행동을 표현하니까, 저도 '아 그럴 수 있겠구나' 싶어 상상력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죠. 더 풍성해지는 느낌? 저는 정해진 대본이 있더라도, 메시지만 그대로 전달이 된다면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도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정세 형도 그랬어요. 열려있는 느낌이었죠."

'거울을 보고 연기하는 것 같았다'는 말은, 두 배우의 작품을 보는 시각과 변주를 주는 방향과 크기가 그만큼 비슷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연출자 공감이 필수적이다. 연출자가 그들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마음껏 연기 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다행히도, 최병길 PD는 두 배우의 의도를 정확히 캐치했고, 톤 조절도 해줬다.

"<미씽나인>을 선택한 이유는 소재가 독특했기 때문이었어요. 비행기가 추락하고, 무인도에서 생존하고... 이렇게 안 해본 것들을 연기하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는 새로운 장르, 새로운 상황, 새로운 인물을 연기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이는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군 입대로 2년여간 작품을 쉬는 동안 "연기를 못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더 다양한 상황을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아직 못 해본 역이 너무 많아요. 일단 검사, 의사, 변호사, 선생님 이런 전문직을 연기해본 적이 없어요. <한 번 더 해피엔딩>에서 기자 역을 해보긴 했지만, 전문성을 띤 연기는 아니었어서.(웃음) <롤러코스터>도 그렇고, <무정도시> <맨홀>도 그랬고... 독특한 상황, 센 것들을 연기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연예인 역할 네 번, "가장 닮은 건 서준오"

 MBC수목미니시리즈 <미씽나인>에서 서준오 역의 배우 정경호가 13일 오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금까지 네 번의 연예인을 연기한 정경호는,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로 <미씽나인> 서준오를 꼽았다. '무쓸모'인 점이 닮았단다. ⓒ 이정민


늘 새로운 시도를 추구하는 정경호지만, 지금까지 무려 네 번 연예인을 연기했다. 물론 모두 성격과 놓인 상황이 다르다.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최윤은 철부지였고,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유정훈은 장애를 가진 과거의 아이돌, <롤러코스터>의 마준규는 안하무인에 생각 없는 톱스타였다. 그는 네 번의 연예인 연기 중, <미씽나인>의 서준오를 자신과 가장 닮은 캐릭터로 꼽았다.

"물론 다 제가 연기한 거니까, 제 모습이 조금씩은 있죠. 꼽으라면 서준오가 저와 제일 비슷해요. 비슷한 부분은... '무(無)쓸모' 라는 거?(웃음) 애는 순수한데 쓸모가 없잖아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지 묻자)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해서, 어떤 캐릭터에 빙의돼 표현하는 걸 못 하는 것 같아요. 그래본 적도 없고요. 제 자신을 좀 더 알고, 제 자신을 좀 더 채워야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하지만 그는 이런 마음을 '갈증', '초조함', '불안함' 등으로 표현하기를 꺼렸다. 지향하고 있는 바를 '목표'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포장하지도 않았다. 지난겨울 제주도에서 무인도 분량을 촬영하며 힘들었겠다는 말에는 "추위 말고는 그리 큰 고생은 없었다"고 말했고, 지난 기간 조바심을 느낀 적은 없는지 물었을 때는 "그렇게까지 심각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언뜻 자기 감정 드러내는 걸 부끄러워하는 성격인가 싶었지만, 1시간가량 대화를 이어가다보니 그게 그의 솔직한 마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버지 작품, 너무 하고 출연하고 싶지만..."

 MBC수목미니시리즈 <미씽나인>에서 서준오 역의 배우 정경호가 13일 오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경호는 연기를 하면할수록 "감독의 오케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연기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그래서 언제부턴가 대사를 쉽게 칠 수 없었단다. ⓒ 이정민


정경호는 2003년 KBS 공채탤런트 20기로 데뷔했다. 그는 연기를 시작하던 그때와 지금의 자신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연기를 하면할수록 "감독의 오케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연기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대사를 쉽게쉽게 치지 않았던 것 같다"는 말로 연기에 대한 그의 진지함을 표현했다.

연기를 막 시작하며, 그 나름대로 세운 목표가 있지는 않았는지, 그때 그 기대치에 지금 얼마만큼 도달해 있는지 묻자, "그런 기대치는 없었다"며 "와 난 그런 게 없었구나. 보통 그런 게 있나요?" 라며 뒤늦은 깨달음을 토해냈다. "지금이라도 10년 뒤의 목표를 한 번 세워보라"고 제안하자, "이 일(연기)만 계속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미리부터 구체적 목표를 세우는 스타일은 아니라던 정경호에게도, 오래전부터 바라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아버지 정을영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는 것. 그의 아버지는 <목욕탕집 남자들> <내 남자의 여자> <엄마가 뿔났다> 등을 연출한 대표적인 스타 PD이자 명감독다.

같은 분야에 큰 성과를 이룬 아버지가 있다는 건 분명 부담스러운 일일 것이다. 정경호는 "어릴 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젠 그저 영광"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는 친구 같은 관계"라는 그는 "늘 문제가 있으면 아버지랑 이야기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와 아들' 하면 떠오르는, 무뚝뚝하고 어색한 관계도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연기를 하면 할수록, 사랑하고 집중할수록 아버지가 대단하게 느껴진단다. 그래서 감히 아버지에게 조언을 해달라거나, 평가해 달라거나 하는 부탁을 하지 못했다고. 아버지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지 묻자 "전 있어요. 너무 하고 싶은데 안 된대요"라는 속상함이 가득 담긴 답이 돌아왔다.

아들이기 때문인 건지, 배우 정경호가 마음에 안 들어서인 건지 물어보지 그랬느냐고 농담하자, "둘 다인 것 같다"며 웃었다. 아들이라 더 조심스럽긴 하겠지만, 자칫 영영 아버지 작품에 출연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지 않느냐 말하자 "'이번엔 같이 하자'고 하면, 항상 '마지막에'라고 하신다"고 정을영 감독의 반응을 전했다. "마지막 작품은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던 그는, 이내 "마지막 작품이라니, (말만이라도) 너무 슬프다"며 금세 차분해졌다. 

'배우' 정경호, '연예인' 정경호

정경호, 샤방샤방한 남자 MBC수목미니시리즈 <미씽나인>에서 서준오 역의 배우 정경호가 13일 오전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제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고, 알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재발견' 될 수 있겠죠?" ⓒ 이정민


유독 연예인을 많이 연기했던 배우이기에, 연예인 중에서도 연예인 같은 모습이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하지만 그는 "배우가 특별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옆집 아저씨, 오빠, 그런 평범한 사람을 연기하는 것 아닌가. 추구하는 연기스타일도 편안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배우로, 연예인으로 살다보면 평범함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 본인은 "사람들 시선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산다"고 했지만, 그게 어디 100% 되겠는가. 공개 연애 중이지만, 당장 데이트를 할 때도 여느 평범한 커플과 같을 순 없을 텐데.

"그건 저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죠. 근데 그게 불편하거나 한 게 아니에요. 제가 감당해야지 어쩌겠어요. (웃음) 물론 조심해야할 건 있겠죠. 길에다 침 뱉고, 담배 피고는 못하죠. 근데 이건 연예인이라서가 아니라 당연히 지켜야 할 일인 거잖아요. 이런저런 불편함, 조심스러움 아예 없진 않죠. 근데 크게 신경 쓰면서 살진 않아요."

정경호는 그 조심스러움의 이유조차 "유명인이라서가 아니라, 이런저런 역할을 표현해야하는데, 나쁜 모습으로 기억되면 안 될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그는 '배우 정경호'로 살아갈 뿐, '연예인 정경호'는 전혀 연연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배우에게 중요한 건 좋은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좋은 사람이어야 사람들이 그의 연기도 좋게 볼 테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나 자신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 제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고, 알기 위해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재발견' 될 수 있겠죠? (웃음)"


정경호 미씽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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