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빗슈 유(텍사스 레인저스)도 없고 이와쿠마 히사시(시애틀 매리너스)도 없다. 그렇다고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나 마에다 켄타(LA 다저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프리미어12에서 한국에게 절망을 안겼던 오타니 쇼헤이(니혼햄 파이터스)마저 없다. 그럼에도 일본은 제4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6전 전승으로 4강에 선착했다.

이는 일본 프로야구의 두꺼운 선수층에도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2013년부터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고쿠보 히로키 감독의 존재도 빼놓을 수 없다. 프로 지도자 경력이 전무한 고쿠보 감독의 지도력은 차치하더라도 일본은 전임 감독에게 대표팀의 운영을 일임했고 그 결과 고쿠보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대표팀을 운영할 수 있었다. 일본의 WBC 퍼펙트 4강은 그 믿음에 대한 결과물이다.

한국야구도 전임 감독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대두되고 있다. 특히 내년부터는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12, 2020년 도쿄 올림픽, 2021년 제5회 WBC 등 굵직한 국제대회가 차례로 열릴 예정이다. 그 때마다 매번 기술위원회를 열어 새로운 감독을 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현역 프로구단 감독이 아닌 야구인들 중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의 사령탑에 어울릴 만한 인물은 누가 있을까.

[선동열] 국보급 투수, 국대 감독으로 마침표 찍는다면

프로야구 KIA 선동열 감독 재계약 엿새 만에 전격 사퇴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의 선동열 감독이 구단과 재계약한 지 불과 엿새 만에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KIA는 25일 선 감독이 감독직을 사임했다고 발표했다. 선 감독은 앞서 19일 KIA와 2년간 총액 10억 6천만원에 재계약했다. 사진은 지난 3월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개장식을 앞두고 경기장을 찾은 선동열 감독.

선동열 전 KIA 타이거즈 감독 ⓒ 연합뉴스


대한민국 야구사에서 선동열 전 감독만큼 선수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화려한 커리어를 쌓은 야구인을 찾는 것도 힘들다. 대학 시절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프로 진출 후에는 해태 타이거즈를 6번이나 우승시키며 왕조 시대를 열었다. 선동열 전 감독의 통산 평균자책점 1.20은 아마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보다 수준이 높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세이브 1위(1997년, 38개)를 차지하기도 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2004년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로 재직했고 2005년 김응용 감독으로부터 감독 자리를 물려 받아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물론 고향팀 KIA 감독 시절은 선동열 감독의 흑역사로 불러도 될 만큼 초라했지만). 대표팀에서도 2006 WBC, 2015 프리미어12, 2017 WBC의 투수코치로 활약했는데 올해 WBC를 제외하면 선동열 전 감독은 대표팀에서도 항상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항상 꽃길만 걸어온 선동열 전 감독도 유독 대표팀 사령탑과는 인연이 없었다. WBC나 프리미어12같은 굵직한 국제대회에서는 김인식 감독을 보좌하는 투수코치 역할에 만족했고 2006 도하 아시안게임이나 2008 베이징 올림픽 때는 야구계 선배를 앞지를 수 없다는 이유로 대표팀 감독직을 끝까지 고사했다. 결국 1980~90년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 선동열 전 감독은 대표팀 감독으로 한 번도 인연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 야구의 전임 감독을 맡는다면 아주 좋은 그림이 나온다. 해태 시절엔 코치와 선수로, 대표팀에선 감독과 투수 코치로 함께 했던 김인식 감독의 뒤를 잇는다는 명분도 확실하다. 2020년 도쿄 올림픽, 또는 2021년 WBC까지 임기를 보장해 준다면 선동열 전 감독도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대표팀을 이끌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 한국 야구계에서 선동열 전 감독만큼 나이와 경력에서 대표팀 감독에 어울리는 인물을 찾기도 어렵다.

[김재박] 국대 감독 트라우마를 씻어낼 기회

많은 야구팬들이 이번 WBC의 부진을 '고척 참사'라 부르곤 한다. 한국 야구는 4년 전 3회 대회에서도 1라운드에서 탈락하며 '타이중 참사'를 경험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한국 야구의 수모로 기억되는 이 두 대회에서도 한국은 대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며 최소한의 자존심을 지킨 바 있다. 실제로 한국은 프로 정예 멤버가 출전한 대부분의 국제 대회에서 대만을 상대로 패배를 당한 기억이 거의 없다.

하지만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는 대만에게는 물론 사회인 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에게마저 패하며 동메달에 그쳤다. 한국은 2003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도 대만에게 1-2로 패하며 아테네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된 바 있다. '도하 참사'와 '삿포로 참사' 당시 대표팀을  이끌며 악몽을 경험했던 사령탑이 바로 김재박 전 감독이었다.

1996년 현대 유니콘스의 창단 감독으로 부임한 김재박 감독은 11년 동안 총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류중일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과 함께 역대 최다 우승 공동 2위(4회)에 올라있다. 창단 초기에는 모 기업의 엄청난 지원이 있었지만 지원이 약해진 2003, 2004년의 연속 우승은 김재박 전 감독의 지도력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LG 트윈스 감독 시절(2007~2009년)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현직에서 물러났다.

김재박 전 감독은 2010년부터 KBO 경기 감독관을 맡으며 야구계에 머물고 있다. 김재박 전 감독 정도 되는 거물 야구인이 우천 취소 여부나 결정한다는 것은 야구계 전체를 봐도 커다란 손해가 아닐 수 없다. 대표팀 감독 자리에 트라우마가 남아 있을 김재박 전 감독에게 스스로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김재박 전 감독이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은 현대 감독 시절에 이미 충분히 증명된 바 있지 않은가.

[박찬호] 일본 45세 고쿠보 감독, 한국도 젊은 피로?

시구하는 박찬호 지난 2015년 11월 8일 오후 일본 훗카이도 삿포로돔에서 열린 2015 WBSC 프리미어 12 한국-일본 개막 경기. 경기 시작에 앞서 시구자로 나선 박찬호가 공을 던지고 있다.

박찬호 ⓒ 연합뉴스


일본 대표팀의 고쿠보 감독은 1971년생으로 만 45세의 젊은 감독이다. 대표팀 감독이 된 것은 만 42세가 갓 지난 2013년11월이었다. 당시 고쿠보 감독은 2012년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현역 생활을 마치고 2013년 NHK 해설가로 활동하다가 일본 대표팀의 전임 감독으로 선임됐다. 현역 은퇴 후 감독은커녕 코치 경력조차 없는 해설가가 곧바로 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그야말로 파격적인 인사였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도 이와 비슷한 야구인이 있다. 고쿠보 감독이 활약했던 일본 프로야구보다 훨씬 큰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17년이나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두 번의 WBC대회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비록 프로 지도자 경력은 전무하지만 아무도 그의 야구 지식에 대해 의문을 갖진 않는다. 중, 장년층에겐 '코리안 특급'으로, 젊은 세대에겐 '투머치토커'로 잘 알려진 박찬호가 그 주인공이다.

모르긴 몰라도 박찬호에게 국가대표 감독직을 제안한다면 아마 손사래를 치며 사양할 것이다. 박찬호 스스로도 수많은 선배 야구인들을 제치고 국가대표 감독이 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 역시 WBC 대회를 마치면서 '젊은 감독'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오랜 미국 생활로 선진야구에 정통한 만 43세의 박찬호는 어쩌면 대표팀 감독에 가장 확실한 적임자일지 모른다.

박찬호는 2007년 한국에게 베이징 올림픽 본선 티켓을 안겨준 후 대표팀 은퇴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야구팬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만큼 태극마크가 주는 의미와 무게감을 누구보다 잘 깨닫고 있는 야구인이 바로 박찬호다. 박찬호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을 때 가졌던 마음가짐만 후배 선수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다면 한국 야구는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맞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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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전임 감독 선동열 김재박 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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