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영화 <해빙>이 누적 관객수 총 116만 4966명으로 손익 분기점을 돌파했다(21일 현재 120만). 무엇보다 반가운 점은 '반성'와 '회의'의 기조를 가진 '스릴러' 장르 영화가 모처럼 '손익 분기점'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점이다.

2016 <비밀은 없다>, <미씽, 사라진 여자>, 그리고 2017의 <싱글 라이더> 등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반전을 곁들인 스릴러, 미스터리로 그렸지만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는 데 실패했다. 때로는 지나치게 실험적인 장르적 접근이 주제를 괴리시켰다. 또 타자에 대한 백안시가 아예 독자의 접근을 봉쇄하기도 했다. 그리고 '반전'이라는 떡밥이 영화를 집어먹었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하지만, 그 어떤 핑계에도 불구하고 이들 영화의 부진을 낳은 가장 기본적인 요인은 <어쩌다 어른>에서 사회심리학자 하태균씨가 지적한 이른바 '비현실적 낙관주의'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가능성이나 현실과 상관없이 '낙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픈 심리가 현실을 냉정히 재단하고 비판하며 되돌아보는 영화들을 기피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실에선 불가능해도 '통쾌하게' '한 방' 치고 보는 영화들이 대체적으로 '흥행'의 순위를 달린다. 덕분에 평론가들이 보기엔 작품적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영화들이 인기를 얻는다. 시청률 30%의 고지를 넘봤던 <피고인>처럼 현실적으로 따지면 엉성한 구성이지만 탈옥까지 감행하며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주인공의 속시원한 활약을 대체적으로 선호하는 것이다.

<해빙>과 <싱글 라이더>의 같고도 다른 길 

그런 '지배적인 한국인의 사회심리'에도 불구하고 <해빙>이 손익 분기점을 넘었다는 지점에서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해빙>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해빙>과 얼마전 개봉한 <싱글 라이더>는 공교롭게도 '가장의 몰락'을 다룬다. 그리고 두 영화 모두 '반전'을 통해 '가장'의 실체를 폭로한다. 그런 점에서 두 영화는 모두 '반성'적 시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반성'을 다루는 방식은 많이 달랐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싱글 라이더>는 한국에서 출세와 성공에 독주하던 가장 강재훈(이병훈 분)이 그 모든 것이 무너진 순간 호주에 남은 아내와 아이의 삶 속으로 유영해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영화는 철저히 삶을 반추하는 자세를 지닌다. 그리고 그 '반추'하는 시선은 '반전'을 통해 경악과 충격 대신 안타까움으로, 그리고 '삶의 방향성'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진짜 이 영화에서 아쉬운 것은 '반전'의 용도이다. '반전'이 남긴 문제 의식이 해프닝으로 덮여버렸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해빙>의 반전은 이 영화의 발목을 잡을 정도는 아니다. 영화 <해빙>은  아직 개발이 채 이루어지지 않은 신도시로 대중 교통 수단인 버스를 이용해서 홀로 떠나는 가장 승훈(조진웅 분)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한때는 강남에서 병원을 개업했지만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된 도시의 의원에서 하루 종일 내시경 검사나 해야 하는 처지의 '고용'인이 된 의사. 하지만 영화는 미처 그의 추레한 처지에 이입하기도 전에 그가 세든 빌라 1층의 정육점 식당 주인 성근(김대명 분)과 그의 아버지 정노인(신구 분)의 이상한 행동으로 시선을 잡아끈다.

가장에 대한 다른 접근 

내시경 수술 중에 자신의 살인 행적을 고백한 정노인, 그 노인의 말에 홀려 승훈은 정육점 냉동고에 있을지도 모를 시신의 '머리'에 집착한다. 그리고 영화는 중반까지 의심하는 승훈과 그런 승훈을 더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성근의 대결 구도로 진행된다. 이런 주된 갈등으로 인해 승훈의 이혼이나, 아들의 양육, 그리고 그를 찾아온 아내의 실종 등 주인공의 실종적 문제들이 갈등의 회오리 안에 휩쓸려 버리게 되는 것이다.

아내가 실종되고 승훈이 경찰의 의심을 받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관객들은 '승훈'의 관점이 되어 영화를 따라간다. 덕분에 그의 몰락과 이후에 드러나는 진실은 충격을 완화시킨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해빙>을 통해 드러나는 건, 성공이란 환상에서 풀려난 중산층 가장의 처절한 몰락의 생태계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몰락'의 생태계에 던져진 가장의 추레한 모습을, 그와 대비되는  또 다른 가장의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관객은 승훈이 번듯한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그의 의심에 동조한다. 영화 초반 간호사는 늘 긴 팔만 입는 그의 행색을 지적하지만, 그런 힌트조차도 성근(김대명)의 초라한 행색에 덮여버린다.

아버지 대에서부터 아내를 쉬이 갈아치우는 수상한 부자(신구와 김대명)의 '핏빛' 직업. 관객들은 쉽게 '의사'인 승훈보다는 '정육점 주인'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리고 이런 관객들의 '속물적' 편견에 힘입어, 영화는 순조롭게 감독이 펼쳐놓은 그물 사이로 나아간다.

감독이 펼쳐놓은 그물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범죄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전근대적이고 폭력적인 가부장주의'이다. 하지만 그 '그물'이 범죄의 표적이 되며 손가락질을 받는 사이, 또 다른 '화이트칼라 가장의 경제적 범죄'가 우리 사회를 덮쳐버리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전근대'와 현대의 가장들이 '희생양'으로 삼고있는 대상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승훈의 위태로운 경제적 위기의 돌파구도, 참을 수 없는 성근 부자의 범죄적 욕망도, 결국 여성들을 희생양 삼는다.

<해빙>이 도달한 비감한 현실에의 정의에 비하면 <싱글 라이더>는 낭만적이다. 여전히 1부1처제 가족주의의 이상향에 대한 로망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해빙>이 도달한 한국 사회는 보다 현실적이고 냉정하다. 전근대에도, 현대에도 우리 사회는 '남성'들의 약육강식의 전장터였음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해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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