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류현경.

배우 류현경이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의 주연을 맡았다. 2년 전 촬영한 작품으로 개봉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영화는 지난 9일 개봉해 현재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 프레인


50편이 넘는 작품에 참여한 이 배우, "주연, 조연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배우로서 캐릭터를 보다 현실의 인물처럼 연기"하는 게 중하다고 말한다. 21년차 연기 경력의 류현경 이야기다.

그가 전면에 나선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가 최근 개봉했다. 개봉 즈음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일대일'로 만났다. 때가 되면 제작발표회와 언론 시사, 그리고 으레 몇 명씩 기자들을 묶어 인터뷰 하는 최근의 영화 홍보 흐름에 염증을 느끼던 차에 신선했다. "여러 기자 분들과 한꺼번에 만나면 제가 집중이 안 되어서요"라며 그가 가볍게 웃었다.

예술과 상업 사이

 배우 류현경.

무명작가에서 스타로 급부상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했던 류현경. 미술의 문외한이었던 그는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 프레인


이번 영화에서 류현경은 무명작가였으나 죽은 이후 오히려 스타로 급부상한 미술작가 지젤 역을 맡았다. 본명은 오인숙. 일단 이 설정만으로 작품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 일부를 예상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을 땐 스스로 자신이 진짜 예술가라고 생각했던 지젤은 일종의 닫힌 사고방식의 인물이다. 동시에 분위기에 휩쓸려 지젤의 작품을 사려고 하는 미술 관계자들은 미의 기준 없음 내지는 허상의 산물이다. 영화는 지젤과 그런 사람들을 한꺼번에 풍자한다.

일종의 블랙코미디다. 한 사람의 생사를 놓고 벌이는 등장인물들의 행동은 하나하나가 비장하지만, 영화는 그걸 유쾌하고 빠른 흐름으로 녹였다. 배우 박정민이 미술관 관장으로 류현경과 호흡을 맞췄다. 류현경은 "감독님은 처음엔 진지하게 가고 싶어 했던 것 같은데 정민씨와 제가 캐스팅되면서 얘길 많이 했다"며 배경을 살짝 전했다. 그렇게 진지하지만 우스꽝스러운 지금의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

미술계에 한정했지만 동시에 영화는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저울질 받는 창작자들의 일반론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우선 이걸 류현경에게 적용해 봤다. 배우 김혜수, 강수연의 아역으로 연기를 시작한 류현경은 각종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아우르며 지금에 이르렀다. 지젤에 감정 이입할 여지가 그만큼 컸다.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의 한 장면.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의 한 장면. 지젤은 일종의 예술적 허영심을 갖고 있다. 그와 그를 둘러싼 미술계 인사들의 긴장 관계가 묘하게 다가온다. ⓒ 영화사소요

"제가 그림에 대해선 전혀 몰라요. 영화적 표현을 위해 영화에 등장하는 그림을 그린 작가님 작업실에 갔는데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단 걸 느꼈어요. 이 부분이 연기자와 비슷한 것 같아요. 배우 역시 결과물로 보이는 사람이지만 그걸 해내기 전까지 상당히 많은 시간을 고민하고 준비하거든요. 지젤도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저 역시 준비 과정이 좋아야 결과물도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막상 2년 전에 이 영화를 찍을 땐 배우로서 느낀 어떤 갈등보단 살면서 이루고 싶은 것들에 대한 갈등을 더 생각했어요. 비단 예술계만 다룬 게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 의미에서 언론시사회 때 '(특정 분야 사람이 아닌) 우리 모두가 아티스트'라며 정민씨가 한 말에 공감해요. 목표를 향해 준비하는 것 자체가 예술이죠."

진심의 표현

산업의 관점에서 스타 배우는 분명 중요하다. 대중의 관심도와 함께 실력까지 갖추면 금상첨화다. 실제로 많은 연기자는 알게 모르게 작품의 성공에 신경을 쏟는다. 자신의 만족도와 별개로 관객들에게 많이 팔리면, 곧 다음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물리적 지지대가 되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 관점에 류현경은 조심스럽다. 20년이 넘은 경력을 쌓으며 속된 말로 '스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터. 이 우문에 류현경이 웃는다. "만약 됐을 거라면 진작 되지 않았을까"라며 받아쳤다. 현답이다. 이어진 그의 배우론이 더욱 빛난다.

"민감할 수도 있는 문젠데요. 어쨌든 배우는 진심을 표현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진심과 진실에 가깝게 연기하려 하고 그게 잘 표현되면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실 거 같아요. 그런 점에서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를 구분하는 건 좀 의미가 다르죠. (잠시 고민하며) 이걸로 제목 안 뽑을 거죠? (웃음) 

꾸준히 일하면 어느 순간 좋은 시기도 만나고 그럴 텐데요. 전 작품을 꾸준히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직 멀었죠. 작품을 할 때마다 아쉽고, 고민과의 싸움이거든요. 진지하게 (스타성을) 고민할 시간이 없어요! 평생 연기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순간부터 제겐 스타가 되는 것보단 작품에서 잘 쓰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배우 류현경.

류현경은 참 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그가 쌓아온 필모그래피를 살펴 보면, 몇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 ⓒ 프레인


류현경을 수놓는 여러 작품이 있다. 그 안에서 철저히 캐릭터에 다가가고자 한 흔적이 엿보인다. <방자전>(2010)에서의 파격적인 노출, 그 이전 단편 <211>에선 아이를 낙태하는 여성, <시라노: 연애 조작단> <전국노래자랑> 등에서의 코믹한 모습 등은 단지 캐릭터로서만이 아니라 현실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 인물로 다가오기도 했다. 게다가 <날강도> <광태의 기초> 등 단편 영화를 연출한 감독으로서 면모도 있다. 이처럼 그의 필모그래피 자체가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상징한다. 그가 앞서 언급한 '평생 연기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신기전>(2008)을 찍을 당시였다.

"제겐 분기점이 될 작품이죠. TV영화 채널에서 종종 볼 때마다 마음이 뭉클해요. 같이 작품을 만들어갈 때 그 마음들이 보이거든요. 제가 연기적으론 부족했을지 모르겠지만 그건 계속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그전에도 작품은 계속 했지만 이걸 평생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거든요. 현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았고, 어렸을 땐 학교 수업을 빼먹으니 즐거웠죠.

근데 <신기전>을 8개월 간 전국을 돌며 찍었을 때였어요. 제가 정재영 선배를 끌어안고 '오라버니 죽지 마!'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대사를 치는데 정말 이 사람이 죽을 거 같은 거예요. 아, 이런 느낌이구나. 그래서 선배들이 계속 연기하시는 거구나. 그 순간이 되게 감사한 거예요. 그때부터 제가 좀 더 고민하고 생각하면 더 좋은 여기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평생 연기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런 고민도 많이 한 거 같아요. 다양한 작품에서 좋은 배우로 잘 쓰이는 게 진짜 복된 일이라는 걸 깨달았죠. 그때부터 치열하게 열심히 했어요."

희망의 연속

 배우 류현경.

배우 류현경의 대본에는 물음표가 많다. 아마도 그 물음표들이 지금의 류현경을 만든 게 아닐까. ⓒ 프레인


그의 대본은 온갖 물음표로 가득하다. '얘가 왜 이런 대사를 칠까? 쟤는 왜 저렇게 걸어오지?' 등의 질문이 적혀있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도 마찬가지였다. 캐릭터를 이해하고 다가가기 위한 일종의 그만의 의식이다. "많이 듣는 말은 아니지만" 이란 단서를 달면서 류현경은 연기하며 가장 보람 있는 순간 하나를 언급했다.

"'현경씨 그 캐릭터, 제 얘기예요. 저랑 너무 똑같은 거 같아요' 이 말에 너무 감사해요. 연기를 계속 하게 하는 힘이 되죠. 많은 분들이 (요즘 한국영화에) 여성 이야기가 없다고들 하시는데 전 희망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힘든 요즘이긴 하지만 분명 새롭고 다양한 작품이 나올 겁니다. 한때 조폭 영화가 한참 나오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 이후엔 다양한 영화들이 나왔죠. 지금이 그런 시기 아닐까요. 남성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영화들이 나올 거라고 봐요. 전 작품으로 얘기할게요(웃음). 다양한 작품을 하는 걸로 보여야죠." 

인터뷰 말미 류현경은 가장 그리운 캐릭터로 <전국 노래자랑>의 오미애를 꼽았다. "우리 엄마, 이모, 언니 등 많은 여성에게 위로가 될 캐릭터라고 생각했다"며 "그때 촬영장이었던 미용실을 한참을 들여다보곤 했다"고 말했다. 한때 가수의 꿈을 키웠던 미용사 오미애는 그렇게 류현경을 통해 독자적인 여성 캐릭터로 등장할 수 있었다.

특별한 스타가 되려 하기 보다 류현경은 오히려 평범해지려 한다. 그럴수록 그의 연기는 현실성에 굳게 발을 딛게 된다. 그런 그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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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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