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보트-로버츠가 연출한 <콩: 스컬 아일랜드>의 포스터. 피터 잭슨의 연출에 한참 못 미친다.

조던 보트-로버츠가 연출한 <콩: 스컬 아일랜드>의 포스터. 피터 잭슨의 연출에 한참 못 미친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여기 흙이 있다.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고려 시대 도공(陶工)의 손에 들어간 흙은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오묘하고 아름다운 빛을 뿜어내는 청자가 됐다. 조선 시대 시정잡배 역시 흙을 쥐었다. 그러나, 그건 고약하게도 앙심 품은 투전판에서 상대방의 눈에 뿌려졌다.

같은 '흙'이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용된 것이다. '소재'라는 것이 그렇다. 쇠로는 사람을 죽이는 칼을 만들지만, 사람을 먹여 살릴 농사를 위한 호미도 만들 수 있다. 그걸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서다. 영역을 확장해서 말하자면 '영화의 소재'도 마찬가지다.

여기 커다란 수컷 유인원 '콩(Kong)'이 있다. 콩 중에서도 왕(King)의 지위에 오를 만큼 힘세고 거대한 '킹콩(King Kong)'이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괴물 혹은, 괴수로 느껴질 뿐 매력적인 영화의 소재라 부르기 힘들다. 감독은 바로 이런 '영화 소재'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이다. 연출력을 발휘해.

킹콩을 소재로 한 영화 중 발군은 피터 잭슨의 <킹콩>

 캐릭터를 부여받지 못했기에 그저그런 괴수로만 보이는 <콩: 스컬 아일랜드>에서의 킹콩.

캐릭터를 부여받지 못했기에 그저그런 괴수로만 보이는 <콩: 스컬 아일랜드>에서의 킹콩.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킹콩은 벌써 한 세기 전부터 여러 감독에 의해 영화의 소재로 사용됐다. 문명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태평양의 외딴섬. 거기서 지배자로 군림하던 거대한 유인원이 문명의 도시에서 온 여성에게 연모의 정을 느끼고, 이루어질 수 없는 연정으로 인해 파국을 맞는다는 이야기가 킹콩을 소재로 한 대부분 영화의 기둥 줄거리다.

그중 필자를 매료시킨 작품은 피터 잭슨 감독이 2005년에 만든 <킹콩>이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간명하다. 피터 잭슨은 킹콩이란 괴수에게 '인성(人性)'을 부여했다. 자기 밖에 존재하는 타자를 배려하고, 사랑을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는 '유사인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절차탁마한 연출력을 통해.

피터 잭슨이 킹콩에게 부여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캐릭터는 관객들에게 몰입감과 동일시감정을 선물했고, 영화평론가들로부터 "새로운 킹콩의 탄생"이란 호평을 끌어냈다. 그런 이유로 피터 잭슨의 <킹콩>은 단순한 괴수 영화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베드 신이 등장하지 않는 연애영화에 가깝다.

다시 한번 말한다. 흙과 쇠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결과물이 천양지차다. 시정잡배에겐 제아무리 좋은 흙을 줘도 청자를 만들 수 없고, 농부가 아닌 전쟁광이 쇠로 만들 수 있는 건 칼과 총뿐이다. 영화의 소재도 마찬가지다.

괴수의 포효 외엔 아무 것도 없다

 <콩: 스컬 아일랜드>의 한 장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로 모인 캐릭터들에게서 어떠한 설득력도 찾아보기 어렵다.

<콩: 스컬 아일랜드>의 한 장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로 모인 캐릭터들에게서 어떠한 설득력도 찾아보기 어렵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최근 '킹콩'을 소재로 한 또 하나의 영화가 개봉됐다. 조던 보트-로버츠가 연출한 <콩: 스컬 아일랜드>. 조던 보트-로버츠의 킹콩은 피터 잭슨의 킹콩보다 훨씬 커졌고 완력 또한 배가됐다. 그렇다면 영화가 주는 감동도 커졌을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는 참 민망하다. 하지만, 해야겠다.

"말도 아닌 소리 하고 있네."

영화적 복선·상징·은유를 찾아볼 수 없고, 등장 괴수(?)는 물론 등장인물의 성격 규정도 허술하며, 구성은 성기고, 줄거리 또한 1970년대 아동용으로 제작된 만화영화 같다. 다종다양한 괴수들의 포효만 요란한 <콩: 스컬 아일랜드>를 비판하기 위해 시간을 들이는 건 재론의 여지 없이 열정의 낭비다.

베트남전이 막바지에 이른 1970년대 중반. 설득력과 인과성이 부족한 억지 이유를 만들어가며 괴수들이 사는 섬을 찾은 다양한 직업의 인간들. 그들이 상영시간 내내 괴수를 상대로 총질과 칼질만을 반복하게 만든 조던 보트-로버츠의 연출력이 피터 잭슨과는 다른 차원에서 놀라울 뿐이다.

이토록 극단적인 악평을 쏟아놓았음에도 "네 말을 믿을 수 없어. 직접 보고 확인해야지"라며 극장을 찾는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괴수 영화'라는 장르 자체를 아끼는 이들도 적지 않을 테니까.

여기서 소박한 예언 하나를 해볼까 한다. 만약 당신이 괴수 영화 마니아라면 <콩: 스컬 아일랜드>가 상영된 영화관 객석에서 일어설 때 이런 혼잣말을 할 것이 분명하다.

"피터 잭슨과 그가 만든 <킹콩>이 그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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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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