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이 올라오길 바라봅니다. [편집자말]
10주년 맞은 뮤지컬 <쓰릴 미>의 귀환 지난 9일, 서울 강남 백암아트홀에서 열린 뮤지컬 <쓰릴 미>의 프레스콜 현장. 뮤지컬 <쓰릴 미>는 천재적인 두 소년의 로맨스와 범죄를 그린 작품으로, 오프 브로드웨이를 거쳐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다. 10주년을 맞아 초연 멤버부터 인기 있었던 페어들이 돌아왔다. 지난 2월 14일 개막하여 오는 5월 28일까지 진행된다.

▲ 10주년 맞은 뮤지컬 <쓰릴 미>의 귀환 지난 9일, 서울 강남 백암아트홀에서 열린 뮤지컬 <쓰릴 미>의 프레스콜 현장. 뮤지컬 <쓰릴 미>는 천재적인 두 소년의 로맨스와 범죄를 그린 작품으로, 오프 브로드웨이를 거쳐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다. 10주년을 맞아 초연 멤버부터 인기 있었던 페어들이 돌아왔다. 지난 2월 14일 개막하여 오는 5월 28일까지 진행된다. ⓒ 곽우신


뮤지컬 <쓰릴 미>가 2017년, 10주년을 맞이했다.

<쓰릴 미>는 과연 한국 뮤지컬 계의 한 획을 그었다 말할 수 있다. 남성 배우 둘, 피아노 1인으로 오롯이 구성된 이 극은 꽤 자주 올라오지만, 매번 수많은 '쓸덕'(<쓰릴 미> 오타쿠)들을 양산하며 화제가 됐다. <쓰릴 미>를 거쳐 간 배우들은 이후 많은 뮤지컬 팬에게 더 큰 관심을 받게 됐다. '내로라'하는 남성 배우들의 필모그래피에는 <쓰릴 미>가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뿐인가, <쓰릴 미> 이후로 대학로 소극장에는 '남성 2인극'에 대한 공급이 현저히 늘어났다. <쓰릴 미>는 이미 한국 뮤지컬계의 하나의 상징이 아닐까.

<쓰릴 미>가 더욱 화제가 됐던 것은 아마 이 뮤지컬이 지닌 '파격적'이라 불리는 서사 때문일 것이다. 살인, 납치 등 뮤지컬 분야에선 흔히 사용되는 서사보다 '더' 파격적으로 이 이야기가 다가왔던 것은 왜일까. 아마도 이 서사가 네이슨 레오폴드 '나'와 리차드 로엡 '그'의 관계를 다뤄냈고, 그 둘이 게이였다는 점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유달리 이성애 중심적인 한국에서 남성 배우 둘이서 게이를 연기한다는 것은 꽤 놀라운 일이었으리라.

공연계가 비교적 젠더 감수성이 높을 수 있던 이유는 공연계에 많이 다뤄지는 '퀴어'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계의 젠더 감수성이 '비교적' 높다는 것이지, 공연계가 가야 할 길은 아직도 험난하다. 몇 가지 이야기하자면, 첫째로 대학로에는 게이 서사가 범람한다. 남성 동성애자라고 규정짓지 않아도 브로맨스라는 우정과 로맨스 사이의 서사도 많다. 하지만 시로맨스나 레즈비언 서사는 현저히 적다. 두 번째로, 이 속에서도 여성 혐오는 만연하다. 세 번째로, 그 퀴어 서사를 다루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그 퀴어 서사를 좋아하는 관객들, 그중에서도 여성 관객들을 치부하는 방법에서 말이다.

'동인녀', 그 속에 포함된 여성혐오와 성소수자 혐오

10주년 맞은 뮤지컬 <쓰릴 미>의 귀환 지난 9일, 서울 강남 백암아트홀에서 열린 뮤지컬 <쓰릴 미>의 프레스콜 현장. 뮤지컬 <쓰릴 미>는 천재적인 두 소년의 로맨스와 범죄를 그린 작품으로, 오프 브로드웨이를 거쳐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다. 10주년을 맞아 초연 멤버부터 인기 있었던 페어들이 돌아왔다. 지난 2월 14일 개막하여 오는 5월 28일까지 진행된다.

▲ 시베리아 같은 관계 불평등한 관계이지만, 어쨌든 <쓰릴 미>는 두 남자의 로맨스가 서사의 중심축이다. 퀴어들의 로맨스물을 즐긴다는 이유로, 이 작품을 사랑하는 팬들이 비하받을 이유는 없다. ⓒ 곽우신


<쓰릴 미> 덕후, 이른바 '쓸덕'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때때로 일부 공연 관계자들에게 멸시의 대상이자 심지어 'ATM'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쓸덕'은 대다수의 연극·뮤지컬 덕후들이 그렇듯 생물학적 여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쓰릴 미>는 남성 2인극이며, '게이 로맨스'를 메인 서사로 다루는 극이다. 그래서인지, <쓰릴 미>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종종 '동인녀' 같은 식으로 비하받는 경우가 있다. 관계자들에게 '후려쳐'지거나, '그래봤자 남자 2인극 좋아하는 관객' 정도로 취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 관객들은 남자 2인극을 좋아해' 같은 시선은 지나치게 이성애 중심적인 사고관이다. '여성들은 극 서사보다 남자면 돼' 같은 여성혐오적 관점이다. 게다가 '남자 2인극'이 가지는 권력 관계를 아예 배제한 내용이기도 하다. 왜 같은 성소수자 서사더라도 남자 2인극은 흥하고 여자 2인극은, 특히 레즈비언 로맨스로는 현저히 적을까. 왜 사람들은 동성애자하면 게이를 떠올리고, 게이들을 비난하지만, '레즈비언은 괜찮아' 같은 이야기를 종종 할까.

게이들의 관계, 생물학적 남성 둘의 관계는 권력과 권력이 결합한 관계이다. 남성의 몸을 가진 동성애자는 이성애 중심적 사회에선 이성애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소수자이지만 남성의 몸을 가졌다는 점에서 일부 기득권을 지녔다.

하지만 레즈비언은? 여성의 몸을 가진 동성애자는 이성애 중심적인 사회에서도,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도 소수자일 뿐이다. 권력과 권력의 결합, 사회적 힘과 힘의 결합에서 더 흥미로운 서사가 나오고, 거기에서 관객들이 매력을 느낀다는 분석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런 서사를 좋아하는 게 과연 여성 관객들의 문제인가? 여성 관객들이 이런 내용을 좋아하기에 남성극을 더 많이 창작한다고 합리화 될 내용인가? 남성 극에게 관객들이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을 설명해줄 수는 있지만 창작자들에게 있어서 '남성 중심적인 극만' 쓰게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좀 안일한 태도가 아닌가.

두 번째로, 퀴어 극을 좋아하는 게 '동인녀'와 같은 공격을 받을 문제이냐 하는 부분이다. 물론 퀴어를 소재로 한 팬픽 등의 문화에 대한 재고찰은 필요하다. 퀴어 문화 속에서의 또 다른 '성 역할'의 구분은 분명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문제이다. 하지만 혹자는 팬픽 문화나 게이 서사 문화가 실제가 아닌 어느 정도 판타지, 그것도 '여성들의 판타지'라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과연 우리가 접하는 이성애 로맨스는 정말 '판타지'가 아닌가? 우리가 이성애 로맨스를 접할 때 대부분의 남성 인물과 여성 인물은 특정한 남성성 혹은 여성성을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각자의 판타지를 자극한다. 애초에 우리는 모든 성애적 요소들을 판타지로서 접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왜 퀴어 서사는 안 되는가. 왜 이성애 로맨스를 적극적으로 재생산하고 소비하는 소비자들은 어떤 특정 용어로 규정되지 않지만, 퀴어 서사를 즐기는, 특히 여성들은 '동인녀' 등의 소리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빠순이, 덕후, '욕망하는 여성들'

10주년 맞은 뮤지컬 <쓰릴 미>의 귀환 지난 9일, 서울 강남 백암아트홀에서 열린 뮤지컬 <쓰릴 미>의 프레스콜 현장. 뮤지컬 <쓰릴 미>는 천재적인 두 소년의 로맨스와 범죄를 그린 작품으로, 오프 브로드웨이를 거쳐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다. 10주년을 맞아 초연 멤버부터 인기 있었던 페어들이 돌아왔다. 지난 2월 14일 개막하여 오는 5월 28일까지 진행된다.

▲ 욕망의 계약서 서로의 욕망을 위해 작성된 계약서. 이들은 이후 충실하게 서로의 욕망을 위해 협조한다. 팬들 역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할 수 있다. ⓒ 곽우신


같은 '팬질', '빠질', 혹은 '덕질'을 해도 남성보다 여성이 유달리 비난을 받는다. 남자가 힘들게 벌어온 돈을 가지고 돈이나 허비하는 '김치녀'라는 식의 비난 등은 여성들이 받아야 할 몫이었다.

'팬질' 혹은 '덕질'로 불리는 문화 소비 행위는, 최소한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여성상'을 일부 박차고 나오는 행위였다. 전통적인 여성상에 따르면 여성들에게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통적인 성 역할에서 욕망하는 것은 대부분 남성의 역할이었으며, 이를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게 여성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팬들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욕망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 혹은 장르에 돈을 쓰고 이를 적극적으로 향유한다. 연극·뮤지컬 장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회전문 관객'은 적극적으로 티켓팅을 하고 양도를 구하면서까지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나 배우 등을 보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극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마니아층이 두터운 극일수록 이런 현상은 심화한다. 예를 들면, 10주년을 맞이한 <쓰릴 미>처럼 말이다.

소비 사회의 역기능 등은 우선 차치하자. 이는 여성들에게만 국한될 문제가 아닌 사회 전반적으로 다뤄져야 할 문제다. '여성의 소비→소비 사회 나쁘다!' 식의 관점은 소비 사회에 대한 비판이 아닌, 여성 혐오적 관점이다. 필자는 <쓰릴 미>의 순기능을 위와 같은 의미에서 찾아보고 싶다.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이 흥미를 느끼고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것을 즐기고 향유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말이다. 내가 '나'로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한다는 것 말이다.

<쓰릴 미> 10주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20주년을 바라보며

10주년 맞은 뮤지컬 <쓰릴 미>의 귀환 지난 9일, 서울 강남 백암아트홀에서 열린 뮤지컬 <쓰릴 미>의 프레스콜 현장. 뮤지컬 <쓰릴 미>는 천재적인 두 소년의 로맨스와 범죄를 그린 작품으로, 오프 브로드웨이를 거쳐 국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다. 10주년을 맞아 초연 멤버부터 인기 있었던 페어들이 돌아왔다. 지난 2월 14일 개막하여 오는 5월 28일까지 진행된다.

▲ 웅무 페어의 귀환 김무열-최재웅 페어의 귀환은, 그 자체만으로도 화제였다. 10주년을 맞아 많은 팬의 사랑을 받고 있는 <쓰릴 미>. 20주년에도 이처럼 사랑받는 작품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때는,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이 작품을 즐길 수 있길 소망한다. ⓒ 곽우신


이미 공연이 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적어도 <쓰릴 미>에게 20주년, 30주년 정도는 거뜬해 보인다. 새로운 '연뮤덕'은 지속해서 유입되고, 이 서사에 매력을 느끼는 관객들은 더더욱 많아진다. 자, 그러면 20주년 <쓰릴 미> 기념 공연 정도가 올라왔을 때, 어떤 연극 뮤지컬 판이 됐으면 좋을까, 상상해본다.

우정과 사랑 사이의 그 모호함을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는 브로맨스 극들이 많이 올라왔으니, '여적여'(여자의 적은 여자) 프레임이 아닌 시로맨스나 레즈비언 서사를 다루는 극들도 많이 올라왔으면 좋겠다. '여자 관객들은 남자들이 나오는 극만 좋아해' 같은 여성 혐오적 이성애 중심 사고가 아니라, 그 권력관계를 뒤집으면서도 더 재밌고 흥미로운 공연들이 올라오기를 바란다. 관계자들의 인식 개선도 필수적이다. 관객들, 특히 여성 관객들이 무시받지 않아야 한다. 참 별것 아닌데도, '별것'인 바람들이다.

조금은 올드한 말이지만,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연극만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상업적 요소들이 더 개입됐다는 점에서 뮤지컬이 연극과 가지는 차이점이 또 존재하긴 하지만, 그래도 현실을 재현하고 환상을 구현하는 무대 예술이라는 점에서, 뮤지컬 또한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젠더 감수성에 대한 자각과 반성도 퍼져나가고 있다. 10년 후, 2027년의 사회는 어떨지 모른다. 그렇지만, 적어도 2007년 <쓰릴 미>가 처음 초연됐던 때보다 2017년 <쓰릴 미> 10주년을 맞은 지금이 조금 더 '퀴어 프렌들리'한 사회가 됐듯, 2027년은 더 사람이 살기 좋은 사회가 됐기를 바라본다.

쓰릴미 쓸덕 퀴어극 페미니즘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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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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