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이후 적폐청산과 영화진흥위원회(아래 영진위) 정상화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단체 간의 뜻 결정이 원활치 않은 모습이다.

지난 13일 오후 충무로 영상미디어센터에서는 영화진흥위원회와 영화단체 간의 대화가 예정돼 있었다. 애초 이날 대화를 통해 양측은 김세훈 영진위원장의 사퇴 문제에 대한 입장과 탄핵 이후 영화계 현안에 대한 의견 교환을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날 저녁 급박하게 취소됐다. 최종 조율 과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탄핵 이후 대응 방안에 대해 영화인들과 영화단체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영화계가 정교하게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세훈 영진위원장 사퇴, 임기 만료된 후임 영진위원 인선, 올해 구체적인 사업계획 확정 등은 탄핵 이후 영화계가 비중을 두고 있는 개혁 현안들이지만 방향성과 실행방안 등에서는 각론에서 나오고 있는 의견들을 폭넓게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진위원장 말 다르고 문체부도 일방적 발표

 2월 7일 오전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 및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영화인 1052명 선언'.

2월 7일 오전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열린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의 사퇴 및 구속수사를 촉구하는 영화인 1052명 선언'.ⓒ 성하훈


영화계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13일 간담회는 최근 일부 영화단체 관계자들과 김세훈 영진위원장과의 만남에서 협의가 이뤄진 사안이었다. 양측은 만남을 통해 김세훈 영진위원장의 퇴진 시기에 영진위 사업에 대한 논의를 통해 협의기구 구성 등을 모색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의 접촉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단체 관계자들은 김세훈 영진위원장의 사퇴 시기에 대해 의논했고, 김 위원장은 대선 직후 사퇴 방침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영진위 사업 진행과 관련해 기존 본부장들 대신 실무 팀장 등을 중심으로 의논하길 바라는 입장이어서 이를 중심으로 한 협의체 구성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진위는 영화단체들이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잇따라 성명을 발표해 사업 진행 중단을 요구한 것을 이유로 대부분의 사업 계획 진행을 멈춘 상태다.

이 같은 이견 조율을 토대로 양측은 지난주부터 13일 간담회를 통한 준비에 들어갔다. 협의에 참여하기로 한 영진위 관계자들의 서울 출장 계획도 10일 세워졌다. 앞서 문체부는 지난 9일 '블랙리스트' 배제 사업에 85억 원 긴급 편성하겠다면서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지역독립영화관 건립 지원 사업은 영화계의 의견을 수렴해 전면 개선안을 3~4월 중에 수립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내용이 영화계에 전해지면서 미묘한 반응이 나타났다. 전체 영화단체들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결정이라며 반대 의견들이 개진됐다. 일부 영화단체 대표자가 크게 불만을 나타냈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영화단체의 한 대표자는 11일 전화통화에서 "일종의 TF(task force) 성격인 블랙리스트 대응 영화인 행동에 참여하는 영화계 인사들이 대화했던 것이고 실무적 차원의 검토를 했을 뿐이라며 분명한 것은 기존 입장(김세훈 위원장의 즉각 사퇴와 이를 통한 영진위 재구성)에서 변한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13일 대화 역시도 유동적인 상황이 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영진위와 실무접촉에 나섰던 영화단체 관계자는 "출구전략을 의논하는 것으로 일단 중단된 사업 등을 풀어야 해서 만나려는 것일 뿐"이라며 "실무접촉 차원이었고 기존 기조가 변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문체부의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계획 등은 일방적인 발표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또한, 김세훈 위원장의 말도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단체들의 간의 이견 조율이 안 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에 대해서는 "블랙리스트 대응 영화인 행동에 각 단체 사무국장들이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아마도 김세훈 위원장이 영화인들에게는 대선 직후 사퇴를 말해 놓고 문체부 쪽에는 대선 직후 새로운 장관이 임명된 후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전한 것 같다"며 여기서 말이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김세훈 영진위원장은 11일 사퇴문제에 대해 "내 생각만을 한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그만둘 수 있으나 3월 31일까지 사업계획안이 확정돼야 한다"면서, "영진위 업무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영화계와 협의체를 구성해서 의논해 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모든 문제가 자신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자신과 관련 없는 사안도 많다는 것이다.

적폐청산 위해서는 진상규명 우선돼야

 지난 1월 20일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제에서 축사하고 있는 김세훈 영진위원장.

지난 1월 20일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제에서 축사하고 있는 김세훈 영진위원장.ⓒ 성하훈


일부 영화계 인사들은 영화단체들의 의견이 정리된 상태에서 대응이 필요하다며 기존 입장에서 굳이 후퇴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김세훈 위원장의 즉각 퇴진과 영진위원 신규 선임을 통한 정상화를 진행해야지 중단된 영진위 사업 진행을 이유로 사퇴 시기 등을 협의한다는 것은 일을 꼬이게 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게다가 9인 위원회와 소위원회 등 기존 시스템이 존재하는 상태에서 영진위와 영화계 간에 따로 임의적인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영진위 내부에서도 "김세훈 위원장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던 일부 본부장급 인사들이 향후 생존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협의체 구성을 도모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을 보내고 있다. 영진위의 한 내부 관계자는 "영진위 노조 입장도 비슷한 것 같다"며 "영화계가 기존 입장을 밀고 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단된 사업 문제에 대해서도 "논란이 된 사업은 몇 안 된다.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지원 사업들은 그대로 진행하고, 임기가 만료된 5인 위원에 영화계 인사들이 참여해 공식적인 의결 구조에서 방향을 논의하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영진위 사무국장을 역임한 김혜준 모두를 위한 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 이사장은 "적폐청산을 위해 우선순위는 진상규명부터가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영진위 쪽에서는 블랙리스트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하는데 진상조사를 해봐야 한다. 특검에서도 일부만 조사했지 전체적인 조사는 할 수 없었다. 책임이 있는 사람이 누군지를 확실히 가려낸 후에 처리방안과 영화계 발전 계획 등을 폭넓게 의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영화단체들이 중단된 사업 진행에 대해 영진위와 의논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영진위원장 퇴임 시기에 대해 논의하는 것 등은 다소 무리하게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기 만료된 영진위원 선임은 임원추천위를 활용하면 되는데, 이런 구조를 활용하지 않고 지금껏 문체부가 임의대로 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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