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파일럿으로 첫 선을 보였던 tvN <편의점을 털어라>가 지난 13일부로 정규 편성되어 다시 돌아왔다. 파일럿 편성 당시에는 '나영석 타임'라고 불릴 정도로 나영석PD가 제작하는 예능 프로그램들이 방영하는 금요일 오후 9시 40분에 방영하였지만, 정규편성된 이후 시간대를 월요일 오후 9시 40분으로 옮겼다. 월요일 오후 9시 40분은 쿡방의 원조격인 JTBC <냉장고를 부탁해>가 자리잡고 있는 시간대이다.

편의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음식 재료를 가지고, 정해진 시간 내에 요리 대결을 펼치는 <편의점을 털어라>의 포맷은 <냉장고를 부탁해>와 비슷하다. 차이가 있다면, <냉장고를 부탁해>에 등장하는 주방장들은 김풍을 제외하곤 요리에 정통한 전문 셰프들이다. 반면, <편의점을 털어라>에서 요리를 담당하는 강타와 박나래는 <냉장고를 부탁해>의 김풍처럼 요리가 취미, 특기일 뿐인 연예인이다.

<냉부>는 15분, <편의점을 털어라>는 10분

<편의점을 털어라>의 요리 제한 시간은 10분으로 <냉장고를 부탁해>의 15분보다 5분 짧다. 빠른 시간 내에 끼니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편의점 주 소비자층의 취향에 맞춰 조리 시간을 더 줄인 셈이다. 야식으로 적당한 간단한 요리를 표방한다는 점에 있어서 지금은 사라진 KBS <해피투게더3> '야간매점' 코너가 떠오르기도 한다.

파일럿 방영 당시에도 지적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편의점을 털어라>에서 강타와 박나래가 선보이는 레시피들은 편의점 음식이라고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고급화'를 표방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사랑받는 편의점 레시피들은 정말 간단하고, 가격도 부담없어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음식들이다(물론 엄청난 칼로리와 MSG 섭취를 감수해야 한다). 편의점 레시피 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다는 '마크정식'이 여타 레시피들보다 재료비도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간다고 하지만 모두 편의점 내에 비치된 온수, 전자레인지, 나무젓가락만 가지고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지난 13일 방영한 tvN <편의점을 털어라> 한 장면. 가성비가 맞지 않는다.

지난 13일 방영한 tvN <편의점을 털어라> 한 장면. 가성비가 맞지 않는다. ⓒ tvN


그런데 지난 13일 방영한 <편의점을 털어라>에서 강타-토니팀이 만든 '단짠 아이스크림'과 박나래-딘딘팀이 만든 '딸기 품은 밀푀유' 모두 재료비만 만원에 육박하는 고급(?) 음식이다. 강타와 한 팀을 이룬 토니안은 '단짠 아이스크림' 같은 경우에는 강남에 위치한 가게에서 1만5000원에 판매되고 있다면서 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10명이 먹을 수 있는 양을 만들 수 있다고 경제적인 면을 강조한다.

'단짠 아이스크림'에 들어간 재료들은 아이스크림, 소금, 캐러멜 맛 팝콘으로 비교적 간단하다. 만드는데 조금 손이 갈 뿐이다. 만약 비슷한 가격으로 tvN <수요미식회>에 나올 법한 고급 아이스크림의 느낌을 맛보고 싶다면 한번쯤 시도는 가능하겠다. 시중에서 파는 후렌치 파이와 커스터드 맛 푸딩과 딸기로 고급 디저트인 '밀푀유'를 흉내 낸 박나래의 '딸기 품은 밀푀유'도 비슷한 맥락에서 흥미를 가져볼 수 있다.

편의점 음식으로 만든다더니... 비싸잖아

사람들이 할인마트보다 더 높은 가격을 감수하고 편의점을 찾는 것은 편의점만이 가진 일종의 편의성 때문이다. 일단 대부분의 편의점은 24시간 영업을 하고 있고 접근성이 높다. 공간적인 문제 때문에 다양한 상품을 구비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도시락, 삼각김밥, 즉석식품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혼자 살고 있는 싱글족들이 편의점을 많이 찾는다.

대량으로 판매하고 있는 대형마트와 달리 편의점과 같은 경우에는 싱글족들을 겨냥하여 소량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더 경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과일 같은 경우에는 재래 시장이 더 싸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밤늦게까지 업무에 시달리는 보통의 직장인들이 저녁 일찍 문을 닫는 시장을 이용하기는 어려우니, 만약 동네 편의점에서 과일을 판다면 조금 비싸더라도 손쉽게 과일을 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지난 13일 방영한 tvN <편의점을 털어라> 한 장면. 9200원이라는 가격을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을까.

지난 13일 방영한 tvN <편의점을 털어라> 한 장면. 9200원이라는 가격을 시청자가 납득할 수 있을까. ⓒ tvN


하지만 요리를 할 시간도 여력도 없어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즉석 음식들을 먹는 사람들이 굳이 적잖은 시간과 돈을 들여 <편의점을 털어라> 레시피 대로 음식을 만들어 먹을지 의문이다. 물론 <냉장고를 부탁해>를 즐겨보는 모든 시청자들이 <냉장고를 부탁해>에 등장 하는 모든 레시피를 따라해 보지는 않는다. 그 중에는 방송에 나온 레시피 대로 음식을 만들어 SNS, 블로그에 올리는 사람들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은 유명 셰프들이 요리 과정에서 선보이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완성된 음식의 비주얼에 만족한다.

반면, 언제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는 편의점 판매 음식을 가지고 간단하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표방하는 <편의점을 털어라>는 프로그램의 콘셉트 상 <냉장고를 부탁해>처럼 마냥 쳐다보는 것보다 요리초보들도 손쉽게 따라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덜 가는 음식들을 기대하게 만든다. 강타와 박나래가 이날 각각 선보인 '단짠 아이스크림'과 '딸기 밀푀유'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하지만 만원 가까운 돈을 들여 방송에 나온 레시피 대로 만들어 먹을 바에야 차라리 돈을 더 들여 진짜 밀푀유를 사먹는게 낫겠다 싶은 생각도 든다.

제2의 <미우새> 되고 싶다면 김도균·민진웅처럼 해야

의외로 '편의점 레시피'에 관심많은 사람들의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특급 레시피는 <편의점을 털어라> 전속 주방장 강타, 박나래가 아닌 게스트 김도균, 민진웅에게서 나왔다. '편의점 만수르', '편의점 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편의점을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진 김도균은 자타공인 편의점 마니아 답게 편의점에서도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곰탕 누들'을 전수해 눈길을 끌었다. 민진웅이 만든 '신 투움바 파스타'는 재료를 프라이팬 위에 볶는 등 편의점 레시피라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손이 가긴 하지만, <해피투게더3> '야간 매점' 코너에 나갔어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는 대박 레시피 였다.

 지난 13일 방영한 tvN <편의점을 털어라> 한 장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지난 13일 방영한 tvN <편의점을 털어라> 한 장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 tvN


편의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팝콘, 딸기, 푸딩 등을 가지고 시중에서 비싸게 판매하고 있는 고급 디저트들을 그럴싸하게 흉내 낸 아이디어는 좋았다. 그러나 시간 없고,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젊은층들을 대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편의점 레시피'는 간단하면서도 재료비로 들어가는 비용도 낮아야한다. 그런 점에서 비추어보면 지난 13일 첫 방송에서 강타와 박나래가 선보인 요리들은 '편의점 레시피'가 아니라 <냉장고를 부탁해> 연예인 버전을 보는 것 같다.

신규 프로그램이 비슷한 포맷으로 기존의 터줏대감과 정면 승부를 보려면, 원조 프로그램보다 더 획기적인 소재로 차별화에 성공해야 한다. 연예인 싱글남의 일상을 관찰하는 MBC <나혼자 산다> 포맷에 그들의 엄마들을 화자로 개입시켜, <나혼자 산다>와의 정면승부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던 SBS <다시쓰는 육아일기-미운우리새끼>(아래 <미운 우리 새끼>) 처럼 말이다.

그러나 <편의점을 털어라>는 편의점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춘 것을 제외하곤, <냉장고를 부탁해>와 포맷, 콘셉트, 출연자를 조명시키는 방법 등에서 특별한 차별화를 이루지 못했다. <냉장고를 부탁해>보다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 편의점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아갈 수 있는 시간? <냉장고를 부탁해>와 정면 승부를 벌인 <편의점을 털어라>가 제2의 <미운우리새끼>가 될지는 조금더 지켜봐야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편의점을 털어라 냉장고를 부탁해 편의점 쿡방 박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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