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의 한 장면. 현대 미술은 더는 예술이 아니다. 상품이다.

영화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의 한 장면. 현대 미술은 더는 예술이 아니다. 상품이다.ⓒ ㈜콘텐츠판다


현대의 대중문화를 포함한 예술을 지배하는 권력은 자본에서 비롯된다. 문학, 음악, 영화 등에서 자본은 위용을 뽐내며 작품에 가치를 매긴다. 미술도 다를 바 없다. 2015년 고갱의 작품이 3600억 원에 거래되어 최고가를 갱신했을 정도로 자본은 강력한 힘으로 군림한다. 국내의 사정을 살펴보자.

<시사 저널>의 전준엽 <비즈 한국> 아트에디터(화가)의 기사에 따르면 국내 미술계에 시장 기능이 본격적으로 작동한 것은 대략 1980년대로 넘어오는 시기였다고 한다. 그는 "강남 개발과 아파트 열풍은 미술품의 수요를 부추겼고,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중개상이 나타나 수요, 공급, 중개의 시장 구조를 형성했다. 미술계의 시장 기능이 발달할수록 중개자의 역할은 막강해졌다. 중개자, 미술전문가 집단, 미술 언론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 시장을 조작할 수도 있다"라고 진단한다.

영화, 현실을 꼬집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미술 시장의 현주소를 꼬집는 블랙 코미디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김경원 감독은 "평상시에 느껴왔던 것들을 쓴 것이다. 그 계열에 계신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거기에 과거에 알고 있던 정보들을 뒤섞어서 만들었다"라고 영화를 설명한다. 계기 또한 있었다고 밝힌다. 우연히 TV에서 출연자가 최근 그림을 샀는데 작가가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기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한 예술가의 이야기는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출발했다고 부연한다.

현대 미술의 속물적인 속성을 비판한 영화론 그래비티 작가 뱅크시의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가 유명하다. 뱅크시가 다큐멘터리 화법으로 진짜와 가짜를 넘나들었다면, 김경원은 드라마의 구조 위에서 예술을 묻는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현대 미술을 풍자하는 영화답게 조롱 섞인 대사와 장면이 가득하다. 재범(박정민 분)은 지젤(류현경 분)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작품을 팔기 위한 의미 부여와 해석에 몰두한다. 그런 행동은 거짓말이라는 지젤의 지적에 작품 해석도 우리 일이라고 대답한다.

 이 영화 속 거대한 '사기극'은, 정작 사기극의 당사자들을 배제한다.

이 영화 속 거대한 '사기극'은, 정작 사기극의 당사자들을 배제한다.ⓒ ㈜콘텐츠판다


지젤의 사망 후에 '지젤 인생 재설계'에 골몰하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작품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작가의 삶에 스토리텔링 과정을 가하는 등 지젤과 그림은 히트 상품처럼 개발된다. 지젤이 대한민국 최고 화가 중식(이순재 분)에게 내뱉던 "선생님의 작품은 되게 과대평가된 거 아세요"라는 독설은 고스란히 그녀를 향한 비판으로 돌아온다.

영화에서 '지젤'의 본명은 오인숙이다. 오인숙은 지젤을 가명으로 쓰는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아무 뜻도 없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지젤은 반항과 치기의 다른 이름이었다. 지젤은 우연한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며 무명 화가에서 유명 아티스트로 다시 태어난다. 해프닝을 겪고 삶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돈은 있으나 자신, 바꾸어 말하면 작가의 영혼은 송두리째 사라진 상태다. 남은 것은 자본이 만든 지젤이란 환상뿐이다.

자본이 만든 환상

재범에게 '지젤'은 안목의 확인과 도약을 위한 기회였다. 그러나 작가가 죽으면서 그는 욕망과 거짓의 무대로 지젤을 활용한다. 거대한 사기극으로 다시 태어난 지젤을 맞이하며 그의 내면에 있던 양심은 숨을 거둔다.

부정적으로 사용되던 '다시 태어나다'란 문구는 후반부에 긍정으로 새로이 정의된다. 지젤은 자아를 되찾으며 오인숙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녀의 "저만의 삶을 꿋꿋이 지키겠다"라는 선언엔 <빅 아이즈>의 가짜 화가 월터 킨(크리스토프 왈츠 분)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짜 화가로 거듭나는 마가렛 킨(에이미 아담스 분)이 겹쳐진다. 또한, 김경원 감독의 "예술만이 가진 상황과 그 가치에 대한 평가 기준이 상업적인 시장의 논리에 좌지우지되는 것을 보았다. 이러한 상황에 빠진 두 주인공인 아티스트들이 예술가로서의 그 자아를 발견해 나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란 바람이 이루어지는 대목이다.

영화의 목소리에 호소력이 깃든 것은 류현경과 박정민 배우의 공이 크다. <파수꾼><들개><오피스><동주>로 경력을 쌓은 박정민은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에서 욕망으로 들끓는 재범을 멋지게 소화한다. 후반부의 롱테이크 장면은 그가 갈고 닦은 내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류현경은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듯한, 딱 어울리는 캐릭터를 만났다. 그녀는 지젤과 오인숙을 오가며 양면성의 얼굴을 근사하게 소묘한다.

<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는 현대 미술을 화폭으로 삼아 돈과 거짓을 칠하며 '다시 태어난' 아티스트를 그린다. 그리고 예술의 본질을 파고들며 '다시 태어난' 아티스트를 보여준다. 그 끝엔 껍데기를 깨고 '다시 태어난' 배우 류현경이 존재한다.

 영화 포<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포스터. 배우 류현경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영화 포<아티스트: 다시 태어나다> 포스터. 배우 류현경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콘텐츠판다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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