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쇼 술집의 댄서인 엔젤(야스다 켄 분)은 무대 스태프로 일하는 마나미(스도 리사 분)와 오랜 친구 사이다. 엔젤은 성전환 수술을 받기 위해 태국으로 출발하기 전, 마나미와 함께 축하의 술잔을 기울이다가 취기에 그만 하룻밤 불장난을 저지른다. 임신한 마나미는 아이를 인정하지 않는 엔젤을 뒤로 한 채 홀로 딸을 낳고, 작은 술집을 운영하며 딸 사요코(후지모토 이즈미 분)를 키운다. 세월이 흐른 후 가게 사정이 어려워지자 사요코는 엔젤을 찾아가 '트랜스젠더 바'로 새 출발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요청한다. 자신이 아빠인 줄 모르는 사요코를 두고 망설이던 엔젤은 부모님이 보낸 귤상자를 보고 돕기로 마음먹는다.

 영화 <아빠는 나의 여신>는 아빠와 딸이 다시 만나 트랜스젠더 바를 만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영화 <아빠는 나의 여신>는 아빠와 딸이 다시 만나 트랜스젠더 바를 만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 (주)미로스페이스


낡은 공간, 새로운 인연

<아빠는 나의 여신>은 가상의 동네 '오가와'에 있는 작은 술집 '사요코'를 무대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연출을 맡은 하라 케이노스케 감독은 십여 년 전에 같이 드라마를 하던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가 건넨 "낡아빠진 술집이 트랜스젠더 바가 된다"는 한 마디에 재미를 느끼고, 그 뒤 아이디어에 계속 살을 붙여 각본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일본 영화(또는 드라마)에서 흔히 접할 수 있다. <심야식당> <카모메 식당> <해피 해피 브레드> 같이 느린 속도로 전개되는 일본 힐링 영화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에서 <아빠는 나의 여신>은 차별을 선언한다. <심야식당> 등이 하나의 공간을 중심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사연을 풀어가는 구조를 취한다면, <아빠는 나의 여신>은 공간에 형성된 인연, 그리고 새로이 구성된 관계를 앞뒤에 놓는다.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이 '요다카 카페'에서 두 가족이 희망으로 연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아빠는 나의 여신>은 술집 '사요코'에서 트랜스젠더 아빠, 술집 마담 엄마, 외동딸 사요코가 가족으로 결합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아빠는 나의 여신>에서 술집 '사요코'는 다양한 의미로 기능한다. 마나미는 딸을 위해 힘내자는 각오로 가게 이름을 '사요코'로 짓는다. '사요코'는 싱글맘 마나미가 세상을 향해 선언한 굳은 의지와 다름없다. 하지만, 사요코는 어릴 적부터 술집과 이름이 같아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신세였다. 그녀에게 '사요코'는 도망치고 싶은 공간이다.

마나미와 사요코의 심리를 나타내던 술집 '사요코'는 엔젤이 오고 트랜스젠더 바로 바뀌면서 감춰두었던 '진심'이란 의미를 얻는다. 가짜 트랜스젠더인 척하던 사요코는 사랑을 느낀 남자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엔젤 역시 마나미와 사요코에게 감정을 숨긴 채로 지낸다. 트랜스젠더 바처럼 가면을 쓰고 지내던 이들은 마음의 목소리에 반응하여 진심을 바깥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삶과 사랑을 긍정하는 태도로 나간다. 영화 속 대사 "나밖에 할 수 없으니까"와 "온 힘을 다해 사랑할 거야"는 그들의 변화를 멋들어지게 상징하고 있다.

 <아빠는 나의 여신>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코미디 영화이면서 일본만이 가능한 '태연스런' 퀴어 영화다.

<아빠는 나의 여신>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코미디 영화이면서 일본만이 가능한 '태연스런' 퀴어 영화다. ⓒ (주)미로스페이스


<아빠는 나의 여신>의 일본 원제는 <오가와 마을의 세레나데>(영제 <세레나데>)이다. 음악 용어 '세레나데'는 저녁이나 한밤중에 사랑하는 연인의 창가에서 노래하는 조용하고 서정적인 곡을 뜻한다. 웅장한 관현악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땐 작게 편성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세레나데를 들으면 좋다.

부담을 더는 세레나데의 선택은 <아빠는 나의 여신>에도 해당한다. 영화가 품고 있는 트랜스젠더, 싱글맘, 술집 등은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소재임이 분명하다. 영화는 소재들을 웃음으로 엮어 소동극(세레나데는 프랑스어로 소란이란 뜻도 가진다)이란 경쾌한 박자로 연주한다. <아빠는 나의 여신>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능청스러운 코미디 영화이면서 일본만이 가능한 태연스러운 퀴어 영화다. 또한, 야스다 켄의 명연기로 완성한 가족 영화다.

<아빠는 나의 여신>의 하라 케이노스케 감독은 일본영화제작자협회에 속한 현역 프로듀서가 매년 가장 뛰어난 신인 감독을 선정하는 '신도가네토상'을 수상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다음 작품 <짝사랑 스파이럴>에서 걸그룹 '카라' 출신의 강지영을 기용하여 성 정체성이 남성인 인물을 다루었다. 현재 일본 퀴어 영화는 <스무 살의 미열> <해변의 신밧드><허쉬!>의 하시구치 료스케가 가장 유명하다. 하라 케이노스케는 하시구치 료스케를 잇는 일본 퀴어 영화의 미래로 손색이 없다.

 <아빠는 나의 여신> 영화 포스터

<아빠는 나의 여신> 영화 포스터 ⓒ (주)미로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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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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