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통을 넘는 능력은 축복일까, 아니면 저주일까. 하다 못해 주먹만 잘 써도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살기 편한 부분이 있을 터다. 때문에 뛰어난 힘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 되고, 이를 소유한 자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조용히 살고 싶어도 주변에서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보통'이라는 범주 안에 속한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신의 계획? 혹은 실수?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초인적 능력을 타고난 돌연변이들에게 이 같은 문제는 보다 깊은 존재론적 고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절대 다수인 인간들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꿈꾸는 것은 언제나 소수자인 엑스맨들의 몫이었다. 끊임 없는 노력에도 인간들은 엑스맨들을 차별했고, 통제 시도를 넘어 절멸까지 계획했다. 엑스맨들의 삶이란 투쟁의 연속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엑스맨> 시리즈의 프로페서X는 돌연변이를 일컬어 '신의 계획'이라 하고, <더 울버린>의 야시다 신겐은 '신의 실수'라 한다.

그리고 <로건>의 울버린(휴 잭맨 분)은 후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그의 손에 숨겨진 클로는 현실과 악몽의 경계를 지웠고, 힐링 팩터는 그런 시간들을 200년 이상 지속하게 했다. 제임스 하울렛이 로건이 되고, 울버린으로 거듭나는 동안 그는 시대의 요구에 고문당해 온 희생양이자 '타자화된 영웅'일 뿐이었다. 17년간 영화 속에서 울버린이 자조해 왔듯 그의 힘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영화의 시작은 그런 울버린의 가련한 삶을 닮았다. 화려한 오프닝과 번쩍이는 타이틀 대신 쓰러진 울버린 위로 'LOGAN'이라는 제목이 조용히 떠오른다. 뮤턴트가 전염병이나 포르노 따위와 함께 언급되는 2029년의 그는 한쪽 다리를 절게 됐으며, 아다만티움 클로는 주먹에서 뽑히지 않고, 상처는 더디게 아문다. 노안이 와서 주머니에서 돋보기 안경을 꺼내 쓰는 히어로를, 여태껏 우리는 상상할 수 있었는가.

힐링 팩터 없이 90년의 세월을 지난 프로페서X, 찰스 자비에(패트릭 스튜어트 분)의 경우는 더 비참하다. 평생을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뇌를 지닌 자'로 살았던 그에게 퇴행성 질환이 찾아왔다. 찰스의 선한 마음과 관계 없이, 그의 뇌는 이제 정말로 세상을 위협하게 됐다. 영화는 능력이 제어되지 않아 머릿 속에 들리는 모든 소리들을 입 밖으로 내뱉는 찰스를 등장시키며 그의 참혹한 말로를 보여준다. 1년 전 웨스트체스터에서 일어났다는 어떤 사건은 찰스의 원죄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뉴스 토막들이 찰스가 그곳에서 살상 사고를 일으켰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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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건은 그 이후부터 찰스와 국경 지대에서 숨어 산다. 과거 동족인 돌연변이들의 정보를 팔아 먹었던 칼리반(스테판 머천트 분)도 함께다. 셋은 저마다 크고 작은 죄책감들을 안은 채 서로에게 의지하며 죽지 못해 사는 삶을 버티고 있다. 로건은 찰스가 웨스트체스터 사고를 발생시킨 장본인임을 알리려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악몽에 시달렸던 로건은 찰스에게 똑같은 고통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로건은 언제나 그랬다. 죽음보다 삶이 두려워진 기구한 운명 속에서도 자신을 희생했다. 죽음을 간절히 원하게 될 법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언제나 희망에 손을 뻗었다. 17년 동안 로건이 그의 팬들에게 알려 준 것은, 살아갈 이유 같은 건 그것을 희구하는 자에게 달렸다는 진리였다. '잠시 헤맨다고 해서 영원히 길을 잃은 것이 아니다'라는 프로페서X의 가르침을 가장 완벽히 실천하고 있던 제자는 다름 아닌 로건이었다. 그린랜드의 소멸 앞에서 시타델로 회군해 끝내 새로운 삶을 찾고 말았던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의 맥스와 퓨리오사처럼, 로건은 희망 앞에서 언제나 당당했다. 절망이 아닌 희망, 어둠이 아닌 빛은 로건의 또 다른 힐링 팩터였다.

그런 로건의 마지막을 담는 <로건>은 치유력을 잃어 가고 있는 주인공의 상처를 집요하게 후벼 파는 모양새다. 과거의 영광 따위는 적들의 군화발과 총칼로 밟아 버린다. 로건은 더 이상 비참해질 수 없을 때까지 몰아 붙여지지만, 이로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는 분명해진다. 로건이 자신의 생물학적 딸 로라(다프네 킨 분)에게 "만화는 실제와 달라. 현실에선 사람들이 죽어"라고 차갑게 쏘아 붙인 것처럼, 영화는 그 동안 또렷이 보여 주지 않았던 로건의 전투 장면을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묘사한다. 영웅 울버린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로건의 현실이다.

이처럼 지옥과 다를 바 없는 삶은 언제나 숭배 혹은 혐오의 대상이 됐다. 때문에 타고난 본성을 긍정할지, 부정할지의 문제는 <엑스맨>의 전 시리즈를 통털어 모든 돌연변이들의 고민이었다. 이에 대해 <로건>은 고전 서부 영화 <셰인>의 한 장면을 인용하는 것으로 답한다.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사람을 죽이면 옳든 그르든 낙인이 찍힌 채 살게 된다. 그러나 셰인은 여기에 '이제 이 계곡에 총성은 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는 로건이 그토록 처절했던 자신의 삶을 끝내면서까지 로라에게 주려고 했던 희망의 한 조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넌 싸우지 않아도 돼."

굿 바이 휴 잭맨, 굿 바이 울버린

로건의 중량감과 <킥 애스>의 힛걸을 연상케 하는 로라의 민첩함이 어우러진 액션 장면들은 메시지 만큼의 쾌감을 선사한다. 이를 즐기는 사이 어느덧 로건과 작별할 시간이 다가온다. 로건은 자신과 꼭 닮은 X-24과 마지막 사투를 벌이다 그에 의해 나무가지에 몸을 관통당한다. 그를 십자가에 매단 것은 그 자신이었다. 그러나 로건을 십자가에서 내린 것은 그의 희망 자체였던 로라였다. 스스로 죽기 위해 늘 지니고 다녔던 아다만티움 총알은 그의 원죄, 악한 본성을 상징하는 X-24의 머리에 꽂혔다. 그렇게 제임스 하울렛이자 울버린, 로건이었던 한 사내는 최고의 행복과 함께 길고 길었던 삶에 안녕을 고한다. 17년 동안 <엑스맨> 실사 영화 시리즈의 중심에 있었던 울버린에게 바칠 수 있는 최선의 경의가 이 결말에 담겼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평생을 가시 돋힌 말과 뾰족한 행동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들을 밀어냈던 로건의 숨겨진 선한 마음을 단번에 알아 본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덥수룩하게 자라 버린 로건의 수염을 젊은 시절의 울버린처럼 자르며 웃고, 그의 무덤 앞에서 울버린 인형을 든 채 슬퍼한다. 로건과 함께 한 시간을 기리는 팬들의 모습도 이러할 터다.

피곤해도 쉬지 못하고 GMO 옥수수 시럽으로 만든 음료를 마시며 살아야 하는 변해버린 세상은 자연 발생 돌연변이들을 죽이고 만들어진 돌연변이들을 남겼다. 이런 세상에서 로건은 그토록 바라던 '선 시커'를 얻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누린 후 X-24의 클로에 목숨을 잃게 된 찰스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 허름한 트럭을 만지작거리며 "우리 배, 선 시커"라고 말한다. '선 시커'로 대표되는 희망은 이미 그들의 가까이 있었다는 찰스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또 다른 모양의 '선 시커'를 찾아 나가는 것은 변한 세상을 살아갈 아이들의 몫일 것이다. 그들의 미래는 영화에 등장하는 만화 '언캐니 엑스맨' 속 'EDEN or END'가 아닌, 'EDEN and END'였다. 총성의 울림이 멎은, 바로 그 에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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