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전 1승 2패. 서울에서 개최된 제4회 WBC 1라운드 A조 경기에서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이 받은 성적표이다. 한 때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야구 강국이었던 대한민국은 이제 끝없는 추락을 걱정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야구대회이기 때문에 당연히 좋은 성적을 기대했던 한국의 야구팬들은 실망과 좌절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국내 팬들의 실망감은 관객수에서 그대로 반영되었다. 1라운드 총 6경기에서 입장한 관중은 총 5만2286명으로, 평균 8716명으로 집계되었다. 1만7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고척스카이돔임을 감안할 때, 51.9%밖에 되지 않는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출전하는 경기에 있어서도 흥행은 좋지 않았다. 상위라운드 진출에 대한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있던 이스라엘전과 네덜란드전에는 1만5천명대의 관객이 입장하였고, 탈락이 확정되었던 대만전은 1만2천명에 그치며 끝끝내 매진에 실패했다.

밴덴헐크를 상대하는 이대호 이대호는 이 날 4번타자로 출장하여 4타수 1안타만을 기록하였다

▲ 밴덴헐크를 상대하는 이대호이대호는 이 날 4번타자로 출장하여 4타수 1안타만을 기록하였다ⓒ 서원종


흥행과 성적 두 가지 토끼를 모두 놓친 이유에 대해 갑론을박이 많다. 워낙 패배에 대한 충격이 큰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본다. 우선 스타디움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고척야구장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내야석의 경우 하단보다 상단의 좌석이 더 많은 기형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워낙 좁은 부지에 대규모 체육시설을 지은 결과이다.

고척야구장은 내야와 외야를 막론하여 시야성이 좋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포스트시즌에 육박하는 티켓값 책정으로 팬들의 외면을 받았다. 옆나라 일본에서 열리는 B조 티켓값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는 하나, 시야성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싼 값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일정 역시 지적되었는데, 대회의 흥행을 위해서는 일부 주말경기를 편성했어야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점이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대표팀이 거둔 성적 그 자체가 대회의 흥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직접적이고 간접적으로 주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한국과 대만이 맞붙은 마지막 경기 역시, 개막 전에는 매진에 가까운 열기를 보여 주었으나 한국의 상위 라운드 진출 탈락 확정 이후 티켓 예매자들의 환불 요청이 쇄도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대표팀이 부진해진 원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WBC 대회는 기본적으로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과 같이 병역면제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 대회로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자연스럽게 선수들 사이에서는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 WBC를 기피하려는 움직임이 크다. 국가주의가 상당 부분 와해된 현대 사회로서는, 단순히 대표팀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투지를 강요하기엔 쉽지 않다.

프로야구 시즌 전 시행하는 대회이기에 부상의 여파가 상대적으로 커 선수들이 기피하는 것은 팬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국가대표임에도 불구하고, 병역면제의 기회가 있는 대회들을 대하는 태도와 WBC를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다른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는 굉장히 이율배반적이며 국가대표를 단순히 수단으로 이용할 뿐임을 의미한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선수 엔트리 구성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역대 최약체 국가대표라는 오명이 붙은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상당히 많은 선수들이 해외로 진출하거나 부상을 입어 참가하지 못했던 것도 있다. 기존 국가대표 멤버들의 노쇠 및 은퇴도 한몫했다.

하지만 그렇다면 엔트리 구성에 대한 전략을 바꿀 필요도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팀 연합으로 꾸려진 청소년대표팀 및 프로야구에서 유망있는 선수들로 구성된 엔트리를 작성하여 출전하는 방법도 있었다. 이는 국제대회를 경험할 더없이 좋은 기회로, 향후 프로야구를 책임질 선수들에게 신선한 경험을 심어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었다. 비록 좋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겠지만, 유망있는 선수들에게 세계 야구의 높은 벽을 실감시켜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신선한 기회였을 것이다.

대한민국 응원단 적어도 프로선수라면, 열성적인 응원을 보여주는 관객에게 보답하는 것이 도리이자 이치이다

▲ 대한민국 응원단적어도 프로선수라면, 열성적인 응원을 보여주는 관객에게 보답하는 것이 도리이자 이치이다ⓒ 서원종


그러나 기술위원회는 그러지 못했다. 오히려 최근 몇년간 혹은 그 이상 대표팀의 터줏대감과 같이 자리를 지켜왔던 선수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지난 대회에서도 그랬듯, 선수들은 여러 이유를 제시하며 국가대표 자리를 고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차선에 해당하는 선수들을 선발하였으나 경기의 결과는 관중들을 만족시키지 못하였다. 리그와 선수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라는 비판이 몰렸다.

또다시 선발된 국가대표에게도 비판의 물결은 밀려왔다. 이른바 '태업' 논란이다. 야구대표팀 전지훈련을 떠난 임창용 선수가 오키나와에서 무면허 운전을 하다 벌금을 물었다는 뉴스는 많은 팬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다른 팀도 아닌 국가대표 전지훈련을 떠나 그런 해이한 정신력을 가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미 수많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해외전지훈련 도중 도박을 했던 사실이 알려지며 물매를 맞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계속해서 불미스러운 소식들이 들리는 것은, 대표팀을 비롯한 10개구단 선수단이 자숙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모든 선수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단기간에 자유계약으로 많은 돈을 버는 것에 성공한 선수들이 불성실한 플레이를 하며 '먹튀(먹고 튐)' 소리를 듣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들 모두가 아주 일부러 태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태업은 비시즌 기간 동안의 불성실한 시즌준비와 운동부족으로 인해 일어난다. '나는 이제 운동선수로서의 모든 것을 이루었다'라는 자만심과 허영심이 프로선수의 본질을 망각하게 만들고, 결국 실력보다 돈이 야구의 본질이 되는 아주 안타까운 현상이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매우 만연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선수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WBC 대회기와 참가국 국기. 국제전이라면 국제전에 걸맞는 사명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번 WBC 경기에서는 그런 사명감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 WBC 대회기와 참가국 국기.국제전이라면 국제전에 걸맞는 사명감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번 WBC 경기에서는 그런 사명감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서원종


상위라운드 진출이 좌절된 대만전을 앞두고, 관중들은 대표팀에게 '오늘까지 지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며 성실한 플레이를 할 것을 압박했다. 하지만 선수들은 여느 경기와 마찬가지로,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는커녕 소극적인 플레이로 대만팀의 추가 진루를 허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투수진에서는 볼넷을 남발하여 실점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실점을 남발했다. 만약 대만이 이겨 한국이 대회 3패를 기록했다면, 대표팀은 경기장을 쉽게 빠져나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10개 프로구단에서의 매너리즘 자체도 용납하기 힘든데, 스포츠에 대한 국민 정서상 대표팀 매너리즘은 더더욱 용납하기 힘들다. 당장 내년에 자카르타에서 아시안게임이 있다. 2014년 대만을 상대로 한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이제 한국이 당연히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젊은피에게 프로경기에서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 '똑같은 선수가 선발'이 되는 리그는 순환이 되지 않으며, 순환이 되지 않는 경기는 원활하게 선수수급이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퇴보하고 굳게 된다.

2020년에는 도쿄올림픽 야구가, 2021년에는 극적으로 본선에 진출한 제5회 WBC가 있다. 국제적 망신은 한 번으로 족하다. 리그 최하위로 추락할 뻔한 수모를 겪은 한국야구는 더 이상 세계최강이 아니다. 유망주가 없는 리그라는 사실을 시원하게 인정하고 들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옛날 향수에 젖어 '이번에도 성공할 거야'라는 자세로 야구를 보는 것은 팬들에게도 선수들에게도 좋지 않다.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자존심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제부터 대표팀이 처절한 반성을 한다면 재기 못할 것도 없다.

감독이 없는 것도 하나의 큰 문제이다. 김인식 감독은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부터 꾸준히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을 맡아 좋은 성적을 여러 차례 내었으나, 앞으로의 차선 감독이 존재하지 않는다. 김재박, 류중일, 김경문 등의 감독들이 지휘봉을 잡았으나 국민감독이라는 칭호는 얻지 못하였다. 축구보다 현저히 국가대항전이 적은 야구의 특성상, 그 역량을 시험해 볼 시험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힌다. 김인식 감독은 현재 거동조차 불편한 상황인 만큼, 하루빨리 차기 감독을 발굴하고 선임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또한, 병역면제와 같은 인센티브가 없어 WBC의 참여율이 저조하다면 국가와 KBO가 앞장서 그에 준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법도 있었다. 포상금을 통상의 연봉보다 조금 더 지급한다던가, 구단을 통하여 추가의 보너스를 지급하는 방법도 있다. 특히나 이번 대회와 같은 경우는,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였기 때문에 흥행과 인지도를 위해서라도 이러한 방법을 시행했어야 한다. 대회가 개막하기도 훨씬 전에 '최약체'와 '엔트리 교체'라는 말이 자주 오르내리자 분위기가 좋지 않아진 것 역시 이 사단에 영향력이 있다.

명예회복을 할 수 있는 다음 아시안게임까지는 1년 하고도 몇 달의 시간이 더 남아있다. 세계에서 몇 없는 프로야구인 만큼, 아마추어가 아닌 진정 '프로'의 모습을 보여 주길 많은 프로야구 팬들이 기대하고 있다. 돈보다는 실력을 우선시하며, 자신보다는 리그와 팬을 우선시하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되었으면 한다. 아직 대다수의 야구 팬들은 프로야구의 몰락을 지켜 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자칫하면 프로야구가 2000년대 초반과 같은 암흑기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인 만큼, 이번 시즌 팬들의 기대를 충족할 수 있는 리그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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