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요? 오마이스타는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리더의 조건'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까 궁금할 때가 있다. 내 코가 석 자고 내 앞길 하나 알지 못하지만, 그럴수록 남 일이 더 궁금한 법이다. 모두가 행복하고 맛집을 돌아다니는 소셜 미디어엔 진실이 없다. 1주일에 한 번 가는 맛집 사진 뒤엔 5일 동안 편의점에 가는 모습이 있다. 소셜 미디어의 사진이 아닌 생생한 타인의 삶, 그 날 것의 모습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럴 땐 EBS <다큐프라임>이나 KBS <다큐 3일>을 찾는다. 조미료가 없을수록 재료의 맛이 느껴지고 음식의 맛이 살아나는 것처럼, 그대로의 삶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는 인터뷰이를 더욱 진실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진실은 아프다.

EBS <다큐프라임: 2017 시대탐구 - 청년 평범하고 싶다>는 청년들의 삶을 보여주었다. 주인공들은 나와 같은 시대를 살지만, 나와 다른 공간에 있었다. 그들의 공간은 때때로 그들을 외롭게, 그들을 아프게 했다.

 EBS 다큐 프라임 <2017 시대탐구 - 청년, 평범하고 싶다>

EBS 다큐 프라임 <2017 시대탐구 - 청년, 평범하고 싶다>. 이 시대의 청년은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안간힘을 써야 한다.ⓒ EBS


맛집 탐방 올린 SNS, 그 뒤에 숨은 날것의 삶

주인공은 진희씨였다. 그는 사회복지학과를 나왔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공장에 취직해 부품을 닦았다. 하지만 하루 12시간씩 일한 그에게 남은 것은 빛나는 졸업장도 아니고, 학자금 대출을 모두 갚았다는 통지서도 아니었다. 1급 시각장애와 뇌 손상이었다. 실습을 마치고 복지사가 될 꿈에 부풀었던 그는 이제 점자를 배우며 재활에 매진 중이다. 그는 작년 2월 '메탄올 실명 사건'의 피해자다.

사실 뒤에 숨겨져 있는 진실은 '팩트 폭행'보다 아프다. 2016년 2월에 발생한 메탄올 실명 사건은 청년 5명의 시력을 앗아갔다. 그들은 삼성전자의 하청회사에서 일했다. 위험물질인 메탄올로 장비를 냉각하다가 메탄올에 중독됐다. 보호복과 안전장갑 없이 목장갑 하나만 낀 채 장비를 닦았다. 환기를 위한 최소한의 장비도 없었다. 위험한 화학물질을 다뤘지만, 화학물질취급설명 따위는 없었다. 전형적인 산업재해다. 학자금과 생계를 위해 공장으로 향한 청년의 모습 뒤엔 이렇게 슬픈 진실이 숨어있다.

누구보다 위험한 환경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시키던 공장 측은 "산업재해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서 합의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시력을 잃은 청년의 파견근무를 알선한 업체는 피해자 몇 명에게 350만 원을 주면서 합의를 독촉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진희씨는 본인이 근무하던 하청업체와 민·형사소송에 나섰지만, 영세 하청업체로부터 배상을 받을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EBS 다큐 프라임 <2017 시대탐구 - 청년, 평범하고 싶다>

2016년 2월에 발생한 메탄올 실명 사건은 청년 5명의 시력을 앗아갔다. 그들은 삼성전자의 하청회사에서 일했다. 위험물질인 메탄올로 장비를 냉각하다가 메탄올에 중독됐다. 보호복과 안전장갑 없이 목장갑 하나만 낀 채 장비를 닦았다.ⓒ EBS


메탄올 중독으로 청년 5명 실명했지만

2015년 기준, 제조업 노동자의 45%가량이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위험한 환경에 놓여있다. "다치면 너만 손해"라는 이야기를 듣는 환경에서 그 누구도 쉬이 안전장비와 산재처리라는 단어를 꺼내지 못한다. 어느 때보다 푸르른 시절이라 칭송받는 청춘이지만, 공장에 있는 많은 청년은 오늘 하루도 산업재해를 피해 살아남았을 뿐이다.

생계를 위해 책임감을 짊어지고 공장으로 향하는 청년들은 대개 미숙련 노동자다. 이로 인해 대기업의 하청업체에서 일하거나 파견근무를 나가는 소위 주변부 노동자가 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8월 기준, 신규로 채용된 청년 중 64%가 비정규직이었다. 중심부 정규직과 비교하면 주변부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척박하다. 특히, 미숙련 노동자인 청년 주변부 노동자의 삶은 더더욱 척박하다. 하청업체 노동자는 원청업체 노동자보다 우울과 불안을 겪을 확률이 3배, 근골격계 질환을 겪을 확률이 1.4배나 높았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을 지켜주지 못한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산업재해 위험직종 실태조사에 따르면 조선업 하청 노동자의 7.2%만이 산업재해보험 처리를 받았다. 심지어 2015년에 주요 30개 기업에서 일어난 산재 사망 노동자의 95%가 하청노동자였다. 대부분 산업재해는 하청노동자에게 일어나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판국이다. 위와 같은 안전 실태를 감독해야 할 산업 안전 근로감독관 역시 전국에 고작 300명뿐이다.

2016 메탄올 실명 사태는 1988년 수은 중독 사망 사건과 같다. 똑같은 산업재해가 시간과 공간만 바꿔 일어난 셈이다. 시간과 공간을 차치하고 일어나는 현상을 우리는 흔히 '법칙'이라 부른다. 산업재해는 한국 노동 시장의 법칙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비정규직 청년들이 어떠한 힘도 없기 때문이다. 주변부 노동자는 서로 뿔뿔이 흩어져있다. 하루 12시간씩 일하는 그들에게 조직화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조직화를 하지 않으니 모이기 힘들고, 모이기 힘드니 그들의 권리를 지켜줄 조직을 만들지 못한다. 조직이 없으니 교섭력이 없고, 교섭력이 없으니 환경을 개선하지 못한다. 자본이 철저히 파괴하고 분리한 노동시장에 비정규직을 위한 공간은 없다.

 EBS 다큐 프라임 <2017 시대탐구 - 청년, 평범하고 싶다>

주변부로 밀려나 소외받은 청년에게, 무엇을 더 요구할 수 있을까.ⓒ EBS


촛불집회조차 나갈 수 없는 주변부 삶

"일 때문에 촛불에 못 갔어."

필자가 인터넷매체 <미스핏츠>와 함께 진행한 밀레니얼 유권자 인터뷰이 중 많은 수가 위와 같이 답했다. 청년이 정치에 참여해야 세상이 바뀐다는 명제는 청년들이 속해있는 현실을 조명하지 못한다. 명제는 당위이며, 당위는 현실과 동떨어져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대기업 정규직도 아니었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묵묵히 살아가는, 생존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콜센터에서 일하는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중심부 노동시장에 들어가길 열렬히 원하지만, 주변부에 놓여있는 그런 청년들이었다.

그런 청년들은 광장에 없다. 광장에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 촛불은 민주시민으로서의 표현이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건 당장 시급과 일급이다. 광장은 촛불을 줄지언정 시급과 일급을 주지 못하는 그런 공간이다.

탄핵이 끝난 광장은 정치적 진공에 놓여있다. 박근혜라고 불리는 1960~1970년대 체제의 아이콘은 물러났고 그 공간은 비어있다. 광장을 찾지 못한 사람들, 광장에 갈 시간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목소리로 채워야 한다. 상위 1%와 10%가 아니라 하위 90%와 99%의 목소리를 채워야 한다. 촛불을 들기 위해 광화문으로 향할 시간도 없는, 촛불을 들 힘도 없던 수많은 청년을 향해야 한다. 그들은 대학에 없다. 그들은 캠퍼스의 풀밭에 앉아있지 않다. 토익학원에도 없다. 투표소에도 없다. 그들은 안산과 시흥의 공단에, 강동구의 한 치킨집과 패스트푸드점에 있다.

'박근혜 파면' 축하 촛불문화제 10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인용되어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가운데,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박근혜 구속” 등을 요구하며 자축하고 있다.

촛불은 민주시민으로서의 표현이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건 당장의 시급과 일급이다. 광장은 촛불을 줄지언정 시급과 일급을 주지 못하는 그런 공간이다.ⓒ 권우성


한국은 격차 공화국이다. 서울과 지역의 격차, 스카이와 비스카이의 격차, 남성과 여성의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등등 수많은 격차가 산재했다. 격차 해소는 시대정신이다.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의 차기 리더는 중심이 아닌 주변을 향해야 한다. 서울보다는 지역을, 노조보다는 무노조를,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을 찾아야 한다. 무너지고 있는 중산층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무너져 내린 주변부 노동자들을 끌어안는 것도 중요하다.

격차를 해소하고, 빈곤을 해소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수많은 대선 후보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은 과연 얼마나 많은 주변부 노동자를 만났을까. 하루하루 산업재해에서 살아남고, 미래를 위해 오늘의 삶을, 건강을 깎아 먹고 있는 수많은 주변부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귀 기울였을까. 왜 항상 그들은 대학 캠퍼스를 향하고, 대학생과 토크 콘서트를 여는 것일까.

대선이 코앞이다. 시민들은 촛불을 내려놓고, 시대 교체를 바라고 있다. 지도자가 지켜주지 못해 길가에 버려진 수많은 시민은 다시 새로운 세상을 바라고 있다. 이제 노동시장에 들어가게 된 청년들의 기대는 더욱 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중심부와 주변부 노동이라는 신분제에 갇힌 수많은 청년의 아우성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진정한 지도자다.

 EBS 다큐 프라임 <2017 시대탐구 - 청년, 평범하고 싶다>

ⓒ E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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