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위의 트럼펫>의 한장면

<절벽 위의 트럼펫>의 한장면ⓒ 투썸업픽쳐스


심장 수술을 받은 아오이(사쿠라바 나나미 분)는 엄마의 권유로 도쿄를 떠나 오키나와 외삼촌 댁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한다. 아오이는 외삼촌과 어린 조카 사이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이 와중에 바닷가 높은 절벽 위에서 트럼펫을 부는 청년 지오(엘조 분)의 존재를 알게 된다. 자신을 데리고 마을 곳곳을 안내하는 지오에게 조금씩 호감을 느낀 아오이는 그와 점점 가까워지며 즐거운 데이트를 이어간다. 그러던 중 도쿄에 두고 온 남자친구 코이치(쿠보타 유키 분)가 아오이를 찾아오면서 지오의 행방은 묘연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오이의 몸 상태는 갑자기 악화되고, 그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엄마는 아오이와 지오의 관계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된다.

영화 <절벽 위의 트럼펫>은 청춘 남녀의 로맨스를 몽환적인 판타지 화법으로 버무린 작품이다. 그 중심에는 죽을 고비를 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여자가 있고, 이런 그에게 다가온 낯설지만 친근한 남자가 있다. 현실과 유리된 채 이어지는 두 사람의 만남은 이들이 겪는 고독과 상실감에 대비되어 한결 따스하게 다가온다. 일본에서도 특히 이국적인 오키나와 섬을 배경으로 한 꿈결같은 로케이션은 이들의 모습을 더욱 예쁘고 사랑스럽게 조명한다.

 <절벽 위의 트럼펫>의 한장면

<절벽 위의 트럼펫>의 한장면ⓒ 투썸업픽쳐스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단순한 남녀 구도에서 더 나아가 가족의 서사로까지 확장시키는 영화의 구성은 인상적이다. 특히 아버지의 존재가 배제된 아오이와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지오 사이의 로맨스에서는 풋풋한 연인인 동시에 서로를 위하는 남매의 구도마저 엿보인다. 여기에 각각 편모-편부로 그려지는 아오이의 엄마와 외삼촌,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조카, 홀로 바닷일을 하는 지오의 할아버지까지. 불완전한 각각의 가족들이 오키나와란 이름의 '고향'을 공통 분모로 연대하는 전개는 일종의 대안 가족으로서 남다른 의미를 남긴다.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오키나와의 풍광을 한껏 담아낸 장면 장면들이다. 고즈넉한 초원과 절벽, 드넓은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들은 극중 인물들의 감정과 맞닿으며 고요하고도 애잔한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형성한다. 특히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트럼펫을 연주하는 지오의 롱 숏은 그 자체로 화보 속 한 장면이라 할 만하다.

투썸업픽쳐스 <절벽 위의 트럼펫>의 한장면

▲ 투썸업픽쳐스<절벽 위의 트럼펫>의 한장면ⓒ 김동민


이에 반해 영화의 서사가 주는 무게감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아오이와 지오의 관계는 영화 후반부 반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듯하고, 무엇보다 극중 지오 캐릭터에 얽힌 비밀들이 쉽사리 예측 가능하다는 점은 치명적인 패착으로 보인다. 여기에 마을의 여름 축제에 대한 약속, 트럼펫에 대한 지오의 애착 등 주요한 장치들이 이렇다할 의미 없이 간단히 다뤄지고 마는 지점 또한 아쉽다. 영화가 지닌 드라마가 스크린 밖까지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그래서다.

선악 갈등이 아닌 개개인의 상처를 동력으로 삼으면서도 인물의 내면을 깊이 담아내지 못한 점 또한 영화의 한계다. 이를 극복하기에는 두 주연배우의 연기가 압도적이지 못해 아쉬움을 남기고, 특히 지오 역을 맡은 보이그룹 틴탑 멤버 엘조의 연기는 내내 눈에 걸린다. 일본어 대사를 '소화'하기에 급급한 그의 연기는 극중 캐릭터를 감안해도 과할 정도로 유령처럼 무감정하다. <절벽 위의 트럼펫>은 그렇게 신파적 서사와 판타지적 연출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끝내 불협화음으로 남는다.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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