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이 진짜로 있는 동물인 줄 알았습니다. 중학생 때까지. 그래서일 겁니다. <콩: 스컬 아일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의 <킹콩>(2005)보다 더 친근했습니다. <콩: 스컬 아일랜드>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기법을 차용하기 때문입니다. 킹콩이 진짜라니!

본편 전후 자료사진과 동굴벽화를 제시하면서 거대 몬스터들의 역사를 암시합니다. 본편이 모큐멘터리는 아니지만, 그 소품들은 기존 킹콩 영화들과 구분 짓습니다. '만약 킹콩이 진짜라면 이게 더 말이 되지 않아?'라고 하면서, 거짓말에 거짓말을 더 보태서 리얼리티를 부여합니다. 기존 영화들에서처럼 킹콩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그 영향이 그 당시 미국에만 국한되는 게 더 말이 안 된다는 듯이. 또한, 영화의 더 큰 기획을 관객에게 프레젠테이션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영화가 몬스터버스(MonsterVerse)의 한 축이라는 것이지요.

본 글은 <콩: 스컬 아일랜드>의 콘셉트를 따라 사무엘 L. 잭슨을 중심으로 작성한 페이크 뉴스입니다. 먼 훗날 <콩: 스컬 아일랜드>가 공개된 시점에서 사무엘 L. 잭슨 연구자가 작성한 기고문이라는 형식입니다. 영화들은 그의 활동을 담은 실제 영상기록물들이 되겠죠. 사무엘 L. 잭슨 출연작 추천 리스트에 가깝습니다. 개별 영화의 본래 스토리를 상황에 맞게 압축시켰기에 실제 결말과 다른 뉘앙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해 바랍니다. - 기자 말

들어가기 전

 <콩: 스컬 아일랜드>에 출연한 사무엘 L. 잭슨.

<콩: 스컬 아일랜드>에 출연한 사무엘 L. 잭슨.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메타픽션 사학(詐學)계가 난리다. 최근 공개된 사무엘 L. 잭슨(아래 사무엘 잭슨)의 영상자료 <콩: 스컬 아일랜드> 때문이다. 사학계의 오랜 논쟁거리, 사무엘 잭슨은 선인인가 악인인가, 그의 역할론에 다시 불이 붙었다. 악인설 학파 학자들은 사무엘 잭슨의 행위가 인류사를 위협하고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선인설 학파에서는 아직 공식적인 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간 선인설 학파 수장이라 불렸기에 이번 기고문으로 답하고자 한다. 미리 밝히면, 기존 내 주장을 수정한다. 학계 분열 대가는 학자들의 피눈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내가 학회장을 하려고 악인설 학파에 손을 내미는 것이라고 비난한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무식한 소리다. 수정론 기고는 학계 통합은 물론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서다.

사무엘 L. 잭슨, 콩과 조우를 바라보는 연구 관점들

 <콩: 스컬 아일랜드>에 출연한 사무엘 L. 잭슨.

그가 세계 곳곳에서 암약한다는 증거는 여기저기에서 나온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이번에 공개된 <콩: 스컬 아일랜드>는 수많은 연구논문들을 만들 것이다. 연구자마다 세부연구들은 다르겠지만, 연구 관점은 크게 4가지로 예상된다.

1) 베트남전과 2017년의 미국 상황을 교차한 연구. 사무엘 잭슨이 20세기 스컬 아일랜드에서 내린 결정들이 21세기 미국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가설일 것이다. 사무엘 잭슨은 베트남전에서 패커드 중령으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기록물은 국가가 전쟁 종식을 갑자기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믿고 헌신했던 국가가 그를 일방적으로 패배자로 만든 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스컬 아일랜드에서 내린 결정들은 어떻게든 승자가 되기 위한 당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 연구자들은 기록물에 표시된 2017년 미국을 연결 지으려 할 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 패커드 중령의 심리가 지배했고, 그 결과가 영향을 받는 2017년을 오버랩시킬 것이다. 그런데 그건 미끼다. 일반인도 가능한 해석을 학자가 할 일은 아니다.

2) 군산복합체 음모론에 기반 한 연구. 스컬 아일랜드 탐사를 주도한 모나크팀이 '웨이랜드사'의 모체라는 가설로 출발할 것이다. 모나크팀의 다음 계획이 '제노모프' A.K.A. 에일리언을 무기화하려고 했던 웨이랜드사의 계획과 동일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사무엘 잭슨이 군산복합체 욕망을 대리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에이리언4 1997). 모나크팀이 몬스터 동굴 벽화로 예산을 받아왔던 것처럼 웨이랜드사는 2089년 발견한 별자리 동굴 벽화를 근거로 위성 LV-223 탐사선을 출발시켰다(프로메테우스 2012). 웨이랜드사의 최초 설립연도가 1973년인데 모나크팀이 스컬 아일랜드 탐사에 들어간 시점이기도 하다(에이리언 vs. 프레데터 2004). 웨이랜드사가 탐사팀에 여성을 반드시 참여시키거나 군사조직의 협조를 받는 것은 스컬 아일랜드 경험들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이런 관점은 미국을 중심으로 세상을 봤던 시절에나 유행했던 고리타분한 것이라 연구자로서 불성실하다. 또 그런 해석을 그대로 받으면, 사무엘 잭슨은 불순한 욕망을 저지하려고 희생했다는 역설이 가능하다.

3) 사무엘 잭슨의 투쟁심에 집중한 연구. '몬스터버스(MonsterVerse)' 연대표가 기초 문서가 될 것이다. 이전에 공개된 <고질라>(2014)에서 인간들은 무토들을 상대로 방사능 상납이나 할 뿐 결국 고질라에 의존하며 무기력했다. 그런데 40년 전 스컬 아일랜드에서 사무엘 잭슨은 무기력하지 않았다. 그는 폭풍에 둘러싸인 폐쇄 공간에서 한정된 화력으로 소수 인력을 이끌고 끝까지 투쟁했다. 이런 관점에서는 훗날 그가 테마파크에 컴퓨터 엔지니어로 잠입해 왜 랩터들-스컬 크롤러처럼 파충류 괴수라는 점에 주목-과 용맹하게 싸웠는지까지 설명이 된다(쥬라기 공원 1993). 그러나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콩과 대결 결과를 의도적으로 간과한 것이며, 그가 왜 스컬 아일랜드에서 그토록 고집을 부렸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4) 기존 킹콩 자료들을 통합하는 연구. '달마 이니셔티브'가 발견한 '잃어버린 섬'이 스컬 아일랜드라는 소수 의견을 바탕으로 할 것이다(로스트 2004-2010). 그래서 스컬 아일랜드의 규모나 외경이 기존 공식 자료들마다 다른 이유를 설명하면서(킹콩 1933; 킹콩의 아들 1933; 킹콩 1976; 킹콩 2005) 한국, 일본, 홍콩, 터키, 방글라데시, 인도 등지에서도 발견된 비공인 자료들까지도 통합하려고 할 것이다. 허나, 두 섬이 접근이 힘들다는 공통점만으로는 빈약하다. 게다가 사무엘 잭슨이 등장하는 자료에서 그를 제외한 연구가 유의미한지는 의문이다.

사무엘 L. 잭슨, 세계를 이끄는 보이지 않는 실세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서로 평행한 연구 관점들이 여럿 나온다. 사무엘 잭슨 연구가 그래서 쉽지 않다. <콩: 스컬 아일랜드>에서 사무엘 잭슨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다소 긴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부터 짚고 넘어가는 것은 '위대한 사무엘 잭슨'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일이다.

'닉 퓨리'부터 풀어보자. 대개 사무엘 잭슨을 어벤져스 멤버들을 관리한 '쉴드' 국장으로 기억한다. 사무엘 잭슨은 죽어가는 아이언맨에 리튬 이산화물을 주입해서 살렸고(아이언맨 2008), 불법 입국한 토르를 용인했으며(토르 천둥의 신 2011), 냉동인간 캡틴 아메리카를 해동시켰고(퍼스트 어벤져 2011), 도망자 헐크의 정보를 육군에 협조하는 척하면서(인크레더블 헐크 2008), 블랙 위도우에게 헐크의 신병을 확보하도록 지시했다(어벤져스 2012). 그런데 이렇게만 기억하면 그는 일개 공무원 국장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간과하는 몇 가지만 짚어보자.

 <아이언맨 2>에도 등장한 닉 퓨리.

<아이언맨 2>에도 등장한 닉 퓨리.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첫째, 영상 사관 존 파브로는 닉 퓨리가 일개 공무원이 아니라는 증거를 은밀히 남겼다. 그가 기록한 <아이언맨>(2008)의 엔딩 크레디트에는 사무엘 잭슨이 없다. 그런데 엔딩 크레디트가 전부 올라간 후에 그가 등장한다. 편집 실수가 아니다. 그의 모습을 기록하면서도 이름을 숨기는 행위는 그가 쉴드 조직을 넘어 세계의 '비선 실세'라는 방증이다. 공식적으로 이 사람은 없는 사람, 그냥 조용히 뒤에서 아이언맨을 도운 사람,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런 노력을 인정받았기에 존 파브로는 <아이언맨2>(2010)까지 영상 사관으로 참여했다.

둘째, 시빌 워 당시 닉 퓨리는 없지만, 오히려 그의 조직 융합 능력을 반증한 사건이다(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2016). 그는 사망으로 위장하여 유럽으로 떠났다(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 2014). 그 결과, 어벤져스들은 패싸움을 일으켰다. 듣기 좋게 시빌 워라고 할 뿐 그건 패싸움이다(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2016). 그간 닉 퓨리를 구심점으로 여러 슈퍼 히어로들이 팀으로 유지됐다.

셋째, 시빌 워는 일련의 사태를 거쳐 닉 퓨리의 방법론이 주류로 자리 잡은 사건이기도 하다. 시빌 워의 본질은 선의 여부가 아니라 방법론 투쟁이었다. 뉴욕침공-윈터솔져-울트론-시빌 워는 닉 퓨리가 조직 방향을 자신의 방법론으로 이끌기 위한 큰 그림이었다.

시빌 워를 촉발한 울트론 사태만 간단히 보자.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는 세계 평화 목적으로 인공지능 '울트론'을 헐크인 브루스 배너와 공동 개발한다. 정작 울트론은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들어 어벤저스가 물리쳐야 했다. 이때 토니의 울트론 연구 목적이 윈터솔져 사태 당시 잠재적 범죄자를 사전에 제거하려던 닉 퓨리의 프로젝트 인사이드와 같다는 점에 주목하자. 울트론 사태의 근본 원인은 토니가 닉 퓨리에 동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잠적했던 닉 퓨리는 어벤져스들이 피신했던 호크아이 집에 일부러 나타나서 토니와 대화한다. 그 대화에서 토니가 얼마나 닉 퓨리에게 경도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에이지 오브 울트론 2015).

물론 닉 퓨리가 쉴드의 국장 자리를 지켰더라면 캡틴계와 직접 싸웠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닉 퓨리는 그 싸움에서 빠졌다. 그의 진면모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시빌 워의 결과, 아이언맨 계가 어벤저스에 남고, 캡틴 계는 떠난다. 닉 퓨리의 방법론이 아이언맨의 얼굴을 빌려 정론이 된 셈이다. 그 과정에서 그가 조직에 씨앗을 뿌려놓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자세한 내막은 졸문 <사무엘 잭슨, 조직은 분열의 씨앗으로 통합하라> 참고.

닉 퓨리로서 다음 행보는 예측할 수 있지만, 추가 영상자료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는 추론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그만큼 닉 퓨리의 조직 장악 능력이 일개 공무원 수준을 뛰어넘었다는 건 기억해야 한다.

사무엘 L. 잭슨, 오래전 멀고 먼 은하계의 수장

 <스타워즈 에피소드2 - 클론의 습격>에 출연했던 사무엘 L. 잭슨의 모습.

<스타워즈 에피소드2 - 클론의 습격>에서 제다이 기사단의 일원인 메이스 윈두로 출연했던 사무엘 L. 잭슨의 모습.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콩: 스컬 아일랜드> 자료 공개 이후 사무엘 잭슨의 확장성에 회의적인 주장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예컨대, 뉴욕 침공 사태보다 더 큰 규모의 타노스 항쟁에서도 그의 조직 장악력이 유효했을까, 게다가 로켓 라쿤이나 그루트처럼 다양한 행성인들로 구성된 팀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까지 이끄는 게 가능했을까, 그렇게 아직 알 수 없는 상황까지도 의심하기 시작했다(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2018 예정;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2014). 그러나 그의 가장 오래된 활약상을 기록한 자료는 사무엘 잭슨의 확장성을 의심하지 말라고 한다.

"오래전 멀고 먼 은하계에(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그가 있었다. 당시 그의 별칭은 메이스 윈두였다. 그는 제다이 기사단의 '마스터 오브 오더'를 역임했고, 다스베이더로 변절할 아나킨의 정체를 일찌감치 알아채 누구보다 격렬히 반대했다. 또 클론 전쟁이 발발하자 요다에게 지휘권을 양보했다(스타워즈 1999;2002;2005).

정확히, 메이스 윈두 시절과 닉 퓨리 시절에 보인 사무엘 잭슨의 행동은 일치한다. 애초의 질문들을 하나로 합치면, 그는 과연 여러 행성인으로 구성된 팀을 이끌고 타노스를 상대할 능력이 있는가? 답, 그는 더 방대한 전장에서 더 긴 전선에서 대치하며 더 다양한 행성인들과 함께 더 기나긴 전쟁을 치른 바 있다. 그 경험이, 그의 능력이다. 자신을 토사구팽한 자들이 각자의 정의를 위한답시고 어떻게 피 흘리며 시간을 쓸모없이 보냈는지 그는 이미 오래전에 경험한 바 있다. 그에 비하면 타노스를 상대하는 일은 '각개 전투'에 불과하다.

그가 팔라딘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점퍼' 데이비드 라이스를 잡으러 다녔던 이유도 설명된다(점퍼 2008). 그가 데이비드를 괴롭혔다는 사실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데이비드가 오래전 멀고 먼 은하계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려보라. 데이비드는 아나킨이 아니던가!

이런 경험 때문에 외계인 토르를 보고 당황하지 않았고, 수학자로 활동하면서 심연에서 외계인 스피어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토르 천둥의 신 2011; 스피어 1998).

사무엘 L. 잭슨, 그가 조직한 단체들

한편, <콩: 스콜 아일랜드>에서 사무엘 잭슨이 소수 병력을 이끈 지휘 능력은 이미 여러 자료에서 검증된 바 있다. 그는 세계의 실세답게 다양한 단체 수장 활동을 병행하며 종횡무진 했다.

예맨에서는 대령으로 해병대원들을 이끌고 미 대사관을 지켜냈고, LA에서는 경찰 특공대 팀장으로 S.W.A.T. 특수기동대를 조직해 마약상을 구속했으며, 파나마 정글에서는 하사관으로 특수부대를 지휘했고, 핀란드에서는 미국 대통령 신분으로 에어포스 원 격추 사고를 겪기도 했다(룰스 오브 인케이지먼트 2000; S.W.A.T. 특수기동대 2003; 베이직 2003; 빅게임 2014).

민간인 위장 신분일 때도 조직 운영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복싱 프로모터로 전체 판을 짜는가 하면, 리치먼드 고등학교 농구부 코치로 반항아들을 독려하며 조직화에 성공했다(화이트 히어로 1996; 코치 카터 2005).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을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고등학생 또래의 간첩들을 양성하는 등 파격적인 조직 실험도 마다치 않았다(아티카 1994; 킬러 인 하이스쿨 2015).

 <트리플 엑스 리턴즈>에도 등장한 그. 여러모로 조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트리플 엑스 리턴즈>에도 등장한 그. 여러모로 조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어찌 보면 그는 조직에 집착했다. 그는 닉 퓨리 신분을 버릴 때조차 별동 조직을 움직였다. 전 세계 인공위성을 조정하는 판도라 박스가 탈취당하자 '트리플 엑스'를 움직였다(트리플 엑스 리턴즈 2017). 트리플 엑스는 그가 오거스터스 기븐스라는 이름으로 NSA 활동을 병행하면서 만든 팀이다(트리플 엑스 2002). 그가 부르기 전까지 이 팀은 개점 휴업상태였다. 1기 팀원 케이지가 육아 휴직계를 내고 떠나버리자(패시파이어 2005), 네이비씰 출신의 다리우스 스톤을 영입해 2기를 만들었지만, 녀석이 알차게 말아먹었다(트리플 엑스2 넥스트 레벨 2005).

그러나 그는 조직을 쉽게 버리는 리더가 아니었다. 그는 이 팀에도 큰 그림을 그려주기로 했다. 어벤저스에 그랬듯이 그는 자신의 부고장을 케이지에게 아낌없이 날렸다. 그의 의도대로 케이지는 팀을 맡았고, 다리우스까지 호출시켜 팀을 통합했다(트리플 엑스 리턴즈 2017).

사무엘 잭슨이 케이지에게 조직을 맡긴 또 다른 이유는 그를 더 강하게 훈련하기 위해서였다. 왜? 케이지는 곧 나무가 될지니(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 2014). 이토록 큰 그림을 그는 그렸다.

사무엘 L. 잭슨, 무능력설에 대한 반론

사무엘 잭슨은 왜 이렇게 조직에 집착하는 것일까? '스컬 아일랜드'에서 그가 '콩'과 대결을 고집한 명분도 부하들의 복수였다. 일각에서는 그에게 슈퍼 히어로의 능력이 없고, 그래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조직에 집착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증거들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결과다.

개인 활동을 기록한 영상들은 넘쳐난다. 어벤저스보다 더 빨리 뉴욕시를 구한 인물이 사무엘 잭슨이다. 할렘가에서 전파상을 운영할 때 매클레인과 함께 뉴욕을 구했다(다이하드3 1995). 이후 그는 뉴저지로 옮겨 사립 탐정으로 활동하면서 가정주부 사만다와 함께 대규모 테러를 막아낸다(롱키스 굿나잇 1996). 그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샤프트라는 이름으로 형사활동을 시작한다(샤프트 2000). 존재감이 너무 드러나자 그는 센트럴 파크에 있는 동굴로 은둔해서 케이브맨이라는 별칭을 얻어 활동을 이어간다(케이브맨 2001). 이렇게 사무엘 잭슨은 대개 잡범을 잡을 때 혼자 움직였다. 동시에 그는 끊임없이 뉴욕을 주목하면서 훗날 어벤져스들과 함께 할 첫 번째 전투를 대비했다.

그에게 특별한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인크레더블>(2004)은 그의 목소리만 남아 있어서 종종 놓치는 자료다. 그가 바로 Mr. 인크레더블의 친구 '프로존'이며, 공기 속 수분을 이용해 얼음을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런 기록들이 아니더라도 무능력설은 날조다. 그는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자였다. 말로도 충분했다. 그는 인질범 협상전문가로 활약했으며(네고시에이터 1998),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언론을 속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더 챔프 분노의 주먹 2008).


그가 줄스로 엇나가던 시절에 말로 이미 상대를 처리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왼손은, 아니 총알은 도울 뿐이었다. 그 영상자료를 기록한 영상 사관 쿠엔틴 타란티노는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 프랑스에서 상을 받았다(펄프픽션 1994). 무엇보다 사무엘 잭슨의 말은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통한다. 그의 "마더-삐!삐!"를 보고 듣기만 하면 전후 맥락을 다 이해할 수 있고 심지어 그 말들이 수능 금지곡처럼 맴도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사무엘 L. 잭슨, 악행에 대한 인정

이제, 사무엘 잭슨의 악행들을 인정할 차례다. 그의 악행 기록들도 엄연히 존재한다. 밝혀진 기록들을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사학자가 제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악의 축으로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했던 사무엘 잭슨.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악의 축으로 인류를 멸망시키려고 했던 사무엘 잭슨.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그는 마약에 절어 살거나 신종 마약을 만들었던 시절도 있었다(정글 피버 1991; 51번째 주 2001). 미국 남북전쟁 전후, 그의 행적은 철새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전쟁 직전 남부 캔디랜드 농장의 집사로 앞잡이를 하더니, 전쟁 직후에는 북군 장교 출신으로 현상금 사냥꾼을 했다(장고 분노의 추적자 2013; 헤이트풀8 2016). '가이아 가설'에 심취했을 때는 인류 제거 계획을 시도했고(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2015), 2028년에는 극우 쇼 진행자로 경찰을 로봇으로 대체하자며 대중을 선동했다(로보캅 2014).

특히 '미스터 글라스'로서 벌인 일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는 한정판 코믹북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131명이 사망한 열차사고, 211명이 사망한 호텔 화재, 172명이 사망한 공항 참사에 2척의 크루즈 선박 침몰까지 일으켰다(언브레이커블 2000). 이 시절 사무엘 잭슨을 엘리야 프라이스보다 미스터 글라스로 칭하는 이유는 그게 더 빌런 뉘앙스에 가깝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서, 놓치지 않고 일단 기억만 해 둘 인물, 언브레이커블 데이비드 던. 그가 개명하기 전 이름, 존 매클레인!

사무엘 잭슨은 분명 잘못된 일을 했다. 그러니 이미 답이 정해진 질문, 그의 이런 행위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니 따위로 나를 떠볼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해줄 수도 있다. 그는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악인이라는 증거는, 아니다. 그는 악행은 저질렀지만, 악인은 아니다. 궤변이 아니다.

사무엘 L. 잭슨, 세계의 설계자

 <어벤져스>에서 쉴드의 국장인 닉 퓨리로 활약했던 사무엘 잭슨. 우리가 익히 기억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벤져스>에서 쉴드의 국장인 닉 퓨리로 활약했던 사무엘 잭슨. 우리가 익히 기억하고 있는 모습이다.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


사무엘 잭슨과 콩의 조우가 어떻게 연구될지 예상되는 연구관점들에서 출발했다. 어떤 관점이든 사무엘 잭슨을 입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그가 큰 그림을 그리는 세계의 비선 실세라는 점을 밝혔다. 특별한 개인 능력과 성과가 있지만, 그가 다양한 조직을 이끄는 일에 더 매진했던 기록들을 살펴봤다. 더불어 그의 악행도, 고통스럽지만, 밝혔다.

고통을 감내하면서 선행 연구 검토에서 밝히고자 했던 것은 사무엘 잭슨을 더는 이분법으로 보지 말자는 것이다. 우주 창조의 비밀이 담긴 바이블 영상 <World Wrestling Entertainment>(since 1963)를 머리맡에 두고 연구해야 한다. 바이블은 선역과 악역이 언제든지 바뀐다고 우리에게 일러준다. 따라서 사무엘 잭슨 연구에서는 불변하는 요인들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

이분법에서 벗어난 질문, 사무엘 잭슨이 닉 퓨리-미스터 글라스-패카드 중령일 때 보인 일관된 태도는 무엇인가? 내가 의도적으로 답하지 않은 질문, 그는 왜 조직 구성에 집착했는가? 최초의 질문, 그는 왜 스컬 아일랜드에서 그런 일을 했는가? 세 질문에 대한 답을 한 번에 던지겠다.

설계자다. 사무엘 잭슨은 언제나 인류를 위한 세상의 설계자였다. 그가 이끈 다양한 조직들은 설계를 위한 습작들 혹은 구성요인이었다. 설계자라서 자신을 감춘 것이다. 그가 악행은 했지만, 악인은 아니라고 한 이유다. 미스터 글라스의 악행은 언브레이커블을, 인류 제거 계획은 킹스맨을, 극우방송 쇼는 로보캅을 각성시키기 위한 설계였다. 스컬 아일랜드에서 패커드 중령의 고집들도 비로소 이해될 것이다. 그는 닉 퓨리로 활동하기 전에 이미 인류를 위해 '몬스터 어벤저스'를 설계해놓은 것이다.

<콩: 스컬 아일랜드>의 의문들에 답하겠다. 첫 번째 의문, 왜 영상사관 조던 복트-로버츠는 사무엘 잭슨이 나오지도 않는 쿠키 영상을 엔딩 크레디트 후에 붙여놓은 것일까? 비슷한 위화감을 우리는 느낀 바 있다. <콩: 스컬 아일랜드>의 엔딩 크레디트와 쿠키 영상을 <아이언맨>(2008)과 정반대로 뒤집어놓은 것이다. 사무엘 잭슨이 몬스터 어벤져스를 이끌지 않지만, 그의 설계라는 것을 그렇게라도 남겨둔 것이다.

두 번째 의문, 스컬 아일랜드에서 그의 시체를 보았는가? 윈터솔져나 판도라 박스 사태 때 그가 즐겨 사용한 전술을 떠올려보자. 위안, 당신 소름만 돋은 것이 아니다. 대중에게 다른 영웅을 내세우고 자신은 드러내지 않는 비선 실세로서 위엄마저 엿보인다.

세 번째 의문, 그의 고집은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 그의 고집이 '스컬 크롤러'를 지상으로 이끌었다. 그 덕에 '콩'이 '스컬 크롤러'를 상대로 한 활약을 우리가 볼 수 있었다. 콩과 고질라의 연대 혹은 괴물들의 인류애 각성을 그의 고집이 출발시킨 것이다. 그는 미스터 글라스처럼 기꺼이 자신이 악역을 담당해 인류에 필요한 설계를 한 것이다.

네 번째 의문, 콩은 왜 '콘라드'와 '위버'에게 관대한가? 여타 기록물에서 보인 '킹콩'의 엽색 행각에 비추어 보면 콩이 위버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킹콩 1933; 킹콩 1976; 킹콩 2005). 그러나 콩에게 콘라드는 침략자 사무엘 잭슨의 일행일 뿐이다. 설명되지 않는다. 그 질문을 사무엘 잭슨 중심으로 바꾸면 쉽게 풀린다. 왜 패카드 중령은 콘라드의 정보를 믿지 않았을까? 그렇다, 콘라드는 변신한 '로키'라는 것을 사무엘 잭슨은 이미 그 당시에 알고 있었다(토르: 천둥의 신 2011). 사무엘 잭슨을 제외한 누구도 로키를 인지하지 못했다.

종군기자인양 하던 '캡틴 마블'이나 섬에서 휴양 중이던 '로만 데이'는 그것도 모르고 콘라드 옆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캡틴 마블 2019 예정; 가디언즈 오브 갤릭시 2014). 원래의 질문, 콩은 왜 콘라드, 아니 로키에게 관대한가? 당연하다. 동일한 왕족이니까. 의전이다.

다섯 번째 의문, 사무엘 잭슨은 왜 로키인 콘라드를 자유롭게 놓아주었는가? 로키를 붙잡아 두는 편이 더 낫지 않나? 로키를 풀어주더라도 그는 설계자로서 캡틴 마블을 섬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사무엘 잭슨이 콩을 처음 볼 때 클로즈업된 표정을 보자. 애수, 그 자체다. 그는 고릴라가 키운 타잔과 그 탓에 고릴라를 시부모로 모셔야 했던 제인 포터를 떠올렸을 것이다(레전드 오브 타잔 2016). 제인 포터, 고릴라 시집살이 후유증으로 할리퀸이 되어 옆 동네에 가서 나쁜 녀석들과 어울릴 것을 그는 미리 알고 있었다(수어사이드 스쿼드 2016). 세계의 설계자로서 그는 캡틴 마블이 그렇게 될 상황을 아예 선제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나오며

그가 악인인가 선인인가, 잘못된 질문을 멈춰야 한다. 올바른 질문, 그가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가? 그러면 설계자였다는 정체성에 더 주목할 수 있다. 설계자라는 걸 인정하면, 모든 게 풀린다. 사무엘 잭슨의 악행들마저도 우리 인류사에 중요한 영웅들을 깨우기 위한 설계였다.

이제, 나는 수정하겠다. 사무엘 잭슨, 선하지 않다. 악하지도 않다. 그는 숭고했다. 그는 위대한 설계자로서 평판에 신경 쓰지 않고 기꺼이 희생도 마다치 않는 위대한 인물이다.

콩 : 스컬 아일랜드 킹콩 사무엘 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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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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