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요? 오마이스타는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리더의 조건'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본인 사정도 좋지 않건만, 다니엘은 케이티 가족을 돌보며 힘을 북돋아준다.

본인 사정도 좋지 않건만, 다니엘은 케이티 가족을 돌보며 힘을 북돋아준다.ⓒ 영화사 진진


다니엘 블레이크는 40년을 목수로 일했다. 갑자기 심장마비가 와 추락사할 뻔했던 그에게 담당 의사는 일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둔 다니엘은 정부에 질병 수당을 신청하려 하지만, 이 간단한 일이, 기가 막힐 정도로 어렵기만 하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드러난 영국 관료주의는 철저히 비인간적이다. 영화 속 공무원들은 마치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절대' 공감하지 않는다. 비인간적 시스템 속에서 비인간적 태도를 학습한 그들은 절차와 원칙만을 되새김질하며 기계처럼 군다. 이해와 공감이 배제된 공간에서 피해를 보는 건 사회적 약자들이다.

여기 아파서 일을 못 하는 한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의료 심사관은 '당신은 아프지 않다'며 그를 질병 수당 대상에서 탈락시킨다. 무언가 착오가 있는 것 같아 담당 부서에 전화를 걸지만 1시간 48분을 기다려 얻은 답은 절차 운운하는 말이다. 수입도 연금도 없고, 주택 보조금도 부족한 상황에서 다니엘은 한시가 급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질병 수당이 아닌 실업 수당을 받으려 하지만 이마저도 불가능해진다.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사용하지 못하는 다니엘이 끝내 구직 활동을 (정부가 원하는 방식으로) 증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 또 한 사람이 있다. 두 아이를 홀로 키우는 싱글맘 케이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케이티는 직장도 구하지 못한 채 두 아이의 양육까지 홀로 떠맡고 있다. 런던에서 뉴캐슬로 이사 온 그녀는 복지수당 신청지를 옮기려 복지센터에 들른다. 하지만 단 몇 분 지각에 한 달 제재 대상이 되고, 아이들 전학시킬 돈도 없다며 늦은 이유를 설명하는 케이티에게 공무원들은 원칙만을 들며 그녀의 해명을 묵살한다. '지저스 크라이스트!(이런, 제기랄!)'. 보다 못한 다니엘이 케이티를 위해 나서며 뱉은 욕설이다. 그리고 둘은 함께 복지센터에서 내쳐진다.

가난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케이티는 '푸드 뱅크'에서 낙담한 채 울고 있다. 그런 케이티에게 다가온 다니엘은 괜찮다며 위로 해준다.

케이티는 '푸드 뱅크'에서 낙담한 채 울고 있다. 그런 케이티에게 다가온 다니엘은 괜찮다며 위로 해준다.ⓒ 영화사 진진


아마도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푸드 뱅크'를 찾은 케이티가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캔을 따 흘러나오는 음식을 손으로 받아먹은 장면일 것이다. 본인의 행동에 비참함을 느낀 케이티가 눈물을 흘리며 부끄러워하자 첫 만남 이후 케이티 가족을 따뜻이 돌보고 있던 다니엘이 다가와 말한다. "케이티, 당신 잘못이 아니야."

켄 로치 감독이 다니엘의 입을 빌려 꼭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감독은 이 영화로 제69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한다. "가난함은 너의 잘못이야라고 말하는 우리의 잔인함이 문제다." 영화 속 구직 특강에서 강사가 하는 말은 그래서 잔인하다. 8명을 뽑는 회사에 1300명이 몰려들 만큼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 강사는 이런 상황에서도 시스템이 아닌 개인 탓을 하며 실업자들에게 '더 노력하여 경쟁에서 이기라'고 말한다.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못한 건 마치 '우리의 잘못'이라는 듯이.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는 이렇게 선언한 듯 보인다. 가난한 건 너의 탓이니 가난한 너를 모욕하겠다. 국가는 부유해지는데 국민은 점점 가난해지는 아이러니에는 눈을 감은 정부는 냉정한 태도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시험'할 뿐이다. 시험에 통과해야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은 구걸하듯 시험에 응하고, 그 과정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하지만 다니엘이 말하듯 "사람이 자존심을 잃으면 다 잃는 거"다. 다니엘이 복지센터 벽에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선언한 것은 우리에게 정부가 필요한 이유는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 손을 내밀기 위해서라는 이 단순한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러니 손을 내밀었단 이유로 정부가 국민을 존중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복지는 권리다.

"나는 의뢰인도 고객도 사용자도 아닙니다. 게으름뱅이도 사기꾼도 거지도 도둑도 아닙니다. 보험 번호 숫자도 화면 속 점도 아닙니다. 나는 묵묵히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굽실대지 않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사람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자기 어깨를 내어주는 리더 

 복지센터를 박차고 나온 다니엘은 건물 벽에 검정색 스트레이로 글을 쓴다. 짧은 순간이지만 다니엘은 '작은 영웅'이 되어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다.

복지센터를 박차고 나온 다니엘은 건물 벽에 검정색 스트레이로 글을 쓴다. 짧은 순간이지만 다니엘은 '작은 영웅'이 되어 사람들의 박수를 받는다.ⓒ 영화사 진진


어쩌면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흘러나온 위의 말을 들려주기 위해 100분을 달려왔는지도 모른다. 몸이 아파도 쉬지 못하고 살기 위한 투쟁을 벌여야 했던 다니엘은 결국 심장 마비로 죽음을 맞는다. 죽은 다니엘의 품 안에는 그의 생살여탈권을 쥔 정부에게 보내는 호소문이 들어 있었다. '책임을 다해 떳떳하게' 살아온 오십 대 후반의 인정 많은 목수. 이 목수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은 '인간으로서의, 시민의 권리를 인정해달라는 호소'였다.

언젠가 다니엘은 케이티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한테는 잠시 기댈 바람이 필요할 뿐이야." 아픈 다니엘이 몸을 추스를 시간, 케이티가 방송통신대학에 다니며 새 삶을 준비할 시간, 곤란이 닥쳐왔을 때 잠시 숨을 돌릴 시간, 우리에게는 이러한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잠시 기댈 어깨가 필요할 뿐이다. 늘 건강하고, 이기고, 성취하고, 성공할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은 가난한 이들뿐이었다. 이미 많은 걸 잃은 사람들끼리의 인간적인, 그러나 조금은 서글픈 연대. 영화에서 보듯 가난한 이들끼리의 연대는 분명 한계가 있다. 다니엘의 죽음과 케이티의 직업에서 알 수 있듯, 연대 후에도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를 본 우리는 혹독한 이 사회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것은 개인과 개인의 연대를 뛰어넘은, 사회적 연대라고 생각하게 된다.

특히, 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는 리더의 사회적 연대감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영화에서 보수당 출신 고용연금장관 이언 던컨은 "저택 살면서 주택 보조금 깎은 놈"으로 표현된다. 복지 축소에 앞장 섰던 그는 "난 일주일 53파운드(약 9만원)의 복지수당이면 버틸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이처럼 자신의 우월한 처지에 경도된 나머지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리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삶을 정치적 수사에 가둬 놓고 숫자 놀음에 빠져있는 리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리더는 이런 사람이 아닐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와 기꺼이 연대하려는 사람이다. 먼저 손을 내밀고 우리의 아픔과 상처에 공감하려는 사람이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보며 '이런, 제기랄!'을 외치는 사람이다. 자기 입에서 나온 욕설이 도달해야 할 곳은 자기 자신이라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인류 역사상 완벽한 사회란 없었다는 걸 알지만 자기가 할 일은 완벽한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라는 걸 이해하는 사람이다. 이 사회의 모든 다니엘과 케이티에게 기꺼이 자기 자신의 어깨를 내어주는 사람이다. 절차와 원칙, 권위와 체면 이 모든 허울에서 벗어나 자신이 인간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걸 매 순간 기억하는 사람이다. 우리의 리더는 인간다운 사람이어야 한다.

켄 로치 감독은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말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사람을 최우선으로 두는 리더. 희망을 쉽게 볼 수 없는 이 사회에서 다른 세상을 꿈꾸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리더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황보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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