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감독이 연출한 <싱글라이더> 포스터.

이주영 감독이 연출한 <싱글라이더> 포스터.ⓒ ㈜퍼펙트스톰 필름


정호승의 시에 가수 이지상이 곡을 붙인 노래가 있다. 문득 사는 것이 덧없고 쓸쓸할 때면 볼륨을 낮추고 조용히 따라 부르고 싶은 노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도입부 가사는 이렇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속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염세주의 철학자들이 세련되게 해석한 비극적 세계관을 알지 못해도 좋다. '존재한다'는 것에 관해 한 번이라도 깊이 생각해본 사람은 안다. 인간의 내부엔 크건 작건 '외로움의 사막' 또는, '쓸쓸함의 우물'이 들어서 있다는 사실을. 이는 누가 알려줘서 깨닫는 게 아니다.

갑자기 뒤바뀐 삶의 조건...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여기 예상치 못했던 사건 탓에 '잘나가던' 증권회사 지점장에서 하루아침에 오갈 데 없는 실직자가 된 한 사내(강재훈, 이병헌 분)가 있다. 영어도 배우고 자립기반도 만들기 위해 멀고 먼 외국에서 2년 가까운 시간을 하루 10시간 이상 일해 2000만 원쯤의 돈을 모은 젊은 여성(유진아, 안소희 분)도 있다.

'지점장'과 '성공한 호주 워킹홀리데이 경험자'가 되기 위해 둘은 얼마만 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을까? 하지만, 자신의 존재 바깥에 있는 '동정 없는 세상'은 두 사람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흘린 눈물과 땀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되물을 뿐이다.

"그래서 어쩌라고? 너만 슬퍼?"

 <싱글라이더>에서 이병헌과 함께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 소희.

<싱글라이더>에서 이병헌과 함께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 소희.ⓒ ㈜퍼펙트스톰 필름


젊은 감독 이주영은 자신이 각본까지 쓴 영화 <싱글라이더>를 통해 이 처참한 질문 앞에 선 두 사람의 길고도 짧은 궤적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먼저 흥분하지 않고, 지레 앞서나가려 하지 않는 담담하고 건조한 연출이 관객들을 슬픔으로 이끈다. 혼자서 흥분하고, 스승인 양 가르치려 드는 감독은 분명 아닌 듯해 믿음이 간다.

<싱글라이더>는 마지막 10여 분쯤의 '반전'을 제외하자면 지극히 평이하고 굴곡 없는 줄거리로 진행된다.

직장에서 밀려난 한 사내가 아내(공효진 분)와 아들이 생활하고 있는 호주를 찾아간다. 그러나, 아내는 이미 자신과는 다른 꿈을 꾸며 살아가고 있다. 갑자기 낯설어진 아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사내. 20대 초반에 낯선 땅에 와서 죽으라고 일만 했다. 겨우겨우 모은 작지 않은 돈. 그걸 좀 더 좋은 조건의 환율로 바꾸고 싶었던 여학생은 불행한 사건에 직면한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친구가 된 두 사람. 둘 앞엔 누구도 쉽게 상상하지 못했던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데….

외로움을 불러들인 건 관심과 소통의 부재

그렇다면, 강재훈이 처해 있는 벼랑 끝 상황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무엇이 전도양양했던 그를 '눈과 비를 맞고 선 갈대숲 가슴 검은 도요새'처럼 외롭고 난감한 처지에 가닿게 만들었을까? 그건 바로 아내를 포함한 타자에 대한 무관심과 소통의 부재가 아니었을까싶다.

눈치 빠른 관객들은 이주영 감독이 무관심과 소통 부재의 사내 강재훈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 곤경에 처한 소녀 '유진아'였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린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어려움에 처한 남을 돕는 일에 익숙하지 않았던 강재훈. 그는 유진아를 통해 자신의 메말랐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이병헌은 <싱글라이더>에서 소통의 부재로 인해 극단적 절망에 놓인 사내를 연기한다.

이병헌은 <싱글라이더>에서 소통의 부재로 인해 극단적 절망에 놓인 사내를 연기한다.ⓒ ㈜퍼펙트스톰 필름


<싱글라이더>의 마지막 장면은 그 따스함으로 인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머물 듯하다. 원시의 파도가 몰려오는 황량한 공간. 그 무인지경(無人之境)의 길을 강재훈과 유진아는 혼자가 아닌 둘이서 걷고 있다.

이지상이 노래한 정호승 시의 한 구절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하지만, 하나가 아닌 둘, 둘이 아닌 셋이라면 그 '견딤'이 조금은 덜 쓸쓸하지 않을까? 이는 <싱글라이더>와 이주영 감독이 던지는 마지막 질문이다.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등의 저자. <경북매일신문> 기자.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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