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빠르망>은 미스터리와 스릴러 그리고 서스펜스를 아우르는 로맨스 영화다.

<라 빠르망>은 미스터리와 스릴러 그리고 서스펜스를 아우르는 로맨스 영화다.ⓒ 디스테이션


2년간의 뉴욕 생활을 마치고 파리에 돌아온 사업가 막스(뱅상 카셀 분)는 직장 상사의 여동생 뮤리엘(상드린 키베를랭 분)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어느 날, 일본 출장을 앞둔 그는 한 카페에서 어떤 여자의 전화 통화를 엿듣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2년 전 사라진 옛 연인 리자(모니카 벨루치 분)라고 확신한다. 급히 뒤를 쫓지만 이내 그를 놓치고 만 막스는 결국 출장도 연기한 채 남몰래 리자의 행방을 추적한다. 그는 하나하나 발견되는 단서로 리자의 자취를 찾지만 어쩐지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꾸만 그와 엇갈리고 만다. 그리고 이 와중에 막스 앞에 한 낯선 여자가 나타나면서 숨겨졌던 과거가 조금씩 베일을 벗는다.

영화 <라 빠르망>은 남녀 간의 사랑을 미스터리와 스릴러, 서스펜스까지 아우르는 화법으로 담아낸다. 주인공 막스와 그를 중심으로 한 두 여자의 에피소드들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쉴 새 없이 충격적인 비밀들을 쏟아내고, 이들의 심리는 마치 사랑이 내재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담은 듯 폭넓고도 섬세하게 비친다. 여기에 소유욕과 집착, 미련, 배신, 원망 등으로 점철되며 복합적이고도 촘촘하게 이어지는 플롯은 더할 나위 없이 극적이게 로맨스의 민낯을 파헤친다. 지난 1997년에 이어 오는 9일 딱 20년 만에 국내 재개봉하는 이 작품의 가치가 여전한 건 그래서다. 다 떠나서, 한창 젊은 시절의 뱅상 카셀과 모니카 벨루치를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는 충분하다.

 <라 빠르망>의 러브라인은 '비대칭'이다.

<라 빠르망>의 러브라인은 '비대칭'이다.ⓒ 디스테이션


내내 비대칭적 구도하에서 한 방향으로 흐르는 영화 속 러브라인은 영원성을 담보하는 '착한' 로맨스 영화들보다 퍽 불편하다. 우연과 의도가 뒤섞인 인물들의 관계는 흔히 특수성과 영원성으로 대변되는 사랑의 이미지를 한껏 뒤틀고, 그 와중에 주목받는 인물들의 치부는 되레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져 폐부를 찌른다. 특히 리자의 자취를 좇는 막스에게서 보이는 열정이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관객의 기대를 배신하는 전개는 의미심장하다. 그에게 감정을 이입해 한창 풋사랑의 향수에 젖은 상태에서 맞닥뜨리는 결말은 행복한 꿈에서 갑자기 깬 듯 허무한 기분마저 자아낸다.

말하자면 <라 빠르망>은 객관성이란 거울을 통해 주관적 사랑을 일종의 비극으로 대하는 작품이다. '아파트'(L'Appartement)라는 제목에 걸맞게 인물 개개인의 지분을 끝내 균등하게 분배하고, 각자의 사정과 사연을 구석구석 조명한다. 막스가 리자를 좇는 동안 다른 어떤 이의 마음속에 타오르는 불길을 포착하고, 그 불길을 향한 또 다른 누군가의 불길도 외면하지 않는다. 막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영화의 첫 시퀀스는 그저 시발점일 뿐이다. 즉흥적으로 터져 나온 막스의 충동 어린 감정이 사랑(또는 추억)이란 미명 하에 번져나가 이곳저곳에서 지점에서 비집고 나온다. 마치 나비 효과처럼 이어지는 감정의 도미노는 모든 이들을 가해자이자 피해자로 만든다.

 나비효과처럼 이어진 감정의 도미노. 모두가 피해자이자 곧 가해자이다.

나비효과처럼 이어진 감정의 도미노. 모두가 피해자이자 곧 가해자이다.ⓒ 디스테이션


"이유만이라도 말해줘."

극중 한 '피해자'가 이별을 통보한 연인에게 하는 이 대사는 공허하게 울리며 영화를 관통한다. 그렇게 영화는 사랑에 빠지는 것에 특별한 이유가 없듯, 사랑의 끝에도 이유가 없다는 아릿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무엇보다 "모든 게 변하듯 사랑도 변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힘주어 되뇐다. "당신의 사랑이라고 해서 특별한 게 아니"라고, "결코 영원하지 않다"고 넌지시 비꼰다. <라 빠르망>을 보고 난 뒤 돌연 공포가 엄습한다면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내가 읽은 이야기' 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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