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남미 침략이나 19세기의 제국주의 확장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많았지만, 기독교 선교사들의 종교적 열정 자체는 귀감이 될 만한 것입니다. 완전히 다른 풍토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나라에 맨몸으로 가서 부딪친다는 것은 보통의 각오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사회적 약자의 편이었던 예수의 존재와 그를 믿음으로써 내세의 구원을 약속 받을 수 있다는 기독교 교리는 선교 지역의 하층민들과 권력에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언제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선교 행위가 만든 이런 사회적 '균열'은 집권 세력에게 심각한 박해의 빌미를 제공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 <사일런스>는 일본의 에도 막부 시대에 있었던 천주교 박해의 현장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의욕에 불타는 젊은 신부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와 가루페(아담 드라이버)는, 일본으로 선교를 떠난 자신들의 스승 페레이라 신부(리암 니슨)로부터 연락이 끊어지고 심지어 그가 배교했다는 소문까지 퍼지자 직접 그를 찾기 위해, 그리고 중단될 위험에 처한 선교를 이어가기 위해 일본으로 잠입합니다.

 영화 <사일런스>의 한 장면. 열정에 불타는 젊은 예수회 신부들인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와 가루페(아담 드라이버)는 그들의 스승이었던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 소문을 믿을 수 없어 하며 일본 선교에 나선다.

영화 <사일런스>의 한 장면. 열정에 불타는 젊은 예수회 신부들인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와 가루페(아담 드라이버)는 그들의 스승이었던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 소문을 믿을 수 없어 하며 일본 선교에 나선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안내자 역할을 한 일본인 기치지로(쿠보즈카 요스케)의 도움으로 어촌 마을에 숨어드는 데 성공한 그들은, 흩어진 일본인 신도들을 만나 은밀히 종교의식을 이어가며 선교 활동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존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관리들에게 발각되고, 마을 신도 대표들은 신앙을 지키느라 희생됩니다. 결국 무력한 도망자 신세로 붙잡힌 로드리게스는 이제 진짜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이 영화의 원작인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접근한 소설로써, 국내에도 벌써 수십 년 전에 출간되어 널리 읽힌 작품입니다. 기독교의 교세가 약한 일본에서 그저 어머니의 뜻에 따라 신자가 되었을 뿐인 작가는, 젊은 시절 서양의 종교와 일본 고유의 신앙 사이에서 끊임없이 번민했었고, 그런 고민의 결과로 이 책을 비롯한 여러 종교 소설과 에세이를 남겼습니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신앙을 버려야 하는 사제의 딜레마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경쾌하게 잘 읽히는, 원작의 직선적인 성장 플롯은 영화에서도 그대로 빛을 발합니다. 단계별로 설정된 관문과 점점 수위가 높아지는 시험의 내용이 관객들을 금세 영화 속 세계로 빨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와 그 선교 행위에 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종교적 주제에 아무 관심이 없는 관객이라도 충분히 흥미롭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원작에서도 의미 있는 인물이었던 기치지로의 존재는 영화에서 좀 더 부각됩니다. 스스로도 인정하듯 나약한 배교자이자 밀고자에 불과한 그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로드리게스 신부의 주위를 맴돌며 늘 기독교 신앙의 품으로 돌아오려 애쓰는 인물입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그의 모습은 언제나 유혹에 빠지고, 의심하며, 너무나 약해 빠진 보통의 신앙인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독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세계에서 종교적 구원의 문제는 언제나 가장 중요한 테마였습니다. 비록 종교에 관한 영화는 <예수의 마지막 유혹>(1988)나 <쿤둔>(1997) 정도밖에 없고 다수의 갱스터나 범죄물로 각광받은 감독입니다만, 그의 많은 작품에는 '이렇게 바닥으로 떨어진 인간에게도 구원이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늘 밑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이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신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구원'과 직결되는 것으로,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가톨릭의 지대한 영향력 아래 살아온 그에게는 최고의 화두였지요.

그의 명성을 높인 초기 걸작들인 <비열한 거리>(1973) <택시 드라이버>(1976) <분노의 주먹>(1980) 같은 작품들이 주는 기묘한 감동이나, 2000년대 이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한 <갱스 오브 뉴욕>(2002)부터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에 이르는 일련의 영화들이 취하고 있는 인간관 같은 것들은 모두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영화 <사일런스>의 한 장면.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는 먼저 배교한 페레이라(리암 니슨) 신부로부터 배교할 것을 진지하게 권유받는다.

영화 <사일런스>의 한 장면.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는 먼저 배교한 페레이라(리암 니슨) 신부로부터 배교할 것을 진지하게 권유받는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극 중 통역관이 로드리게스를 회유할 때 사용하는 논리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페레이라 신부가 배교하게 된 이유는 합리적인 이성의 판단에 기초합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자기들의 선교는 맹목적인 종교적 열정과 자기만족에 사로잡힌 행위였고, 한때의 성공 역시 사람들이 기독교를 토착 종교와 동일시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은 것일 뿐이었는데, 이제 와서 그것을 지킨답시고 다른 사람들을 고통받으며 죽어가게 놔둘 권리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드리게스가 배교 행위를 순순히 받아들인 이유는 좀 더 직관적이고 신앙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는 언제든 밟힐 준비를 하고 묵묵히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존재를 깨닫습니다. 고통스러운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않고 침묵하는 신을 원망하며 죽어가기보다는, 묵묵히 모욕을 감수함으로써 다른 생명을 구하는 길을 걷고자 합니다.

흔히 기독교 신앙을 '예수 믿고 회개하면 복 받는다'는 식으로 잘못 받아들이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보여 주듯,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늘 약자들의 편에 서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역설했던 그의 삶을 묵묵히 따라가는 것에 있지, 말로만 믿음을 외치고 현세의 성공과 이득을 취하기 위해 교회에 돈을 갖다 바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니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하며 국론 분열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보수적인 기독교 교회들은 그들의 구세주와는 정반대의 행위를 함으로써 스스로의 신앙을 욕보이고 있는 셈입니다. <사일런스>는 그런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권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이 예수가 아니라 박근혜로 상징되는 기득권 질서가 아닌지 스스로를 돌이켜 보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많은 사람을 떠올리며 조금이나마 참회하는 시간을 갖기를 바라니까요.

 영화 <사일런스>의 포스터. 엔도 슈사쿠의 유명한 원작 <침묵>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원작의 장점과 주제 의식을 제대로 이어받은 수작이다.

영화 <사일런스>의 포스터. 엔도 슈사쿠의 유명한 원작 <침묵>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원작의 장점과 주제 의식을 제대로 이어받은 수작이다.ⓒ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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