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요? 오마이스타는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리더의 조건'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조지 6세

조지 6세의 실제 사진. 영화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는 왕으로 등장한다.ⓒ 위키커먼스


훗날 영국 국왕 조지 6세가 되는 버티(콜린 퍼스 분)는 말을 더듬는 치명적인 언어 장애를 가지고 있다. 버티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사는 데 조금 불편함을 느낄 정도였겠지만, 불행히도 그는 대영 제국의 국왕 조지 5세의 차남인 요크 공작(영국군주의 두 번째 아들에게 주어지는 작위)이었다.
라디오가 발명된 이후, 영국 왕실은 국민과의 소통의 수단으로 라디오 연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국왕은 아니었지만, 요크 공작으로서 이런저런 중요한 공무를 수행해 야했던 버티도 꼼짝없이 마이크 앞에서 연설을 해야 했다. 그때마다 버티는 말을 더듬었다. 언어 장애를 고치기 위해 유능하다는 언어 치료사를 다 거쳐봤지만,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다.

나치의 침략에 맞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조지 6세가 말을 더듬었다는 사실은 아주 유명한 일화다. 앨버트(조지 6세의 본명)가 국민 앞에서 연설할 때마다 그의 부인 엘리자베스 왕비를 비롯한 수행원들은 언제나 마음을 졸여야 했다. 그 상황에서 가장 답답한 사람은 다름 아닌 버티 자신이었다. 결국, 버티는 엘리자베스(헬레나 본햄 카더 분)의 손에 이끌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쉬 분)에게 기상천외한 언어 치료를 받게 된다. 영화 <킹스 스피치>(2010)의 시작은 대략 이러하다.

조지 6세의 언어장애 콤플렉스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극복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주)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킹스 스피치>는 콤플렉스(언어 장애)를 가진 한 남자가 조력자의 헌신적인 도움을 받아, 트라우마를 극복하게 된다는 전형적인 인간 승리 드라마다. 버티가 라이오넬의 치료를 받고 언어 장애를 개선하는 과정과 두 남자의 우정에 중점을 둔 이 영화는 정치 극이 아니라 휴머니즘 드라마에 가깝다. 하지만 영국과 같은 계급 사회에서 가장 지체 높은 왕족이 식민지(호주) 출신으로 천대받는 평민과 허심탄회한 우정을 나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킹스 스피치>에서는 미처 다루지 못했지만 조지 6세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따르면, 조지 6세는 왕 즉위 이전부터 애민정치가로 국민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의 아버지 조지 5세도 왕위 계승자 1위인 버티의 형 에드워드 8세가 아닌 버티가 왕이 되길 내심 바랐다. 하지만 버티는 왕이 되길 원하지 않았고, 왕위는 예정대로 에드워드 8세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왕이 되기 이전부터 유부녀와 사귀고 있던 에드워드 8세는 그녀와 결혼하길 원했지만, 의회와 교회는 이에 강한 제동을 건다. 결국, 에드워드 8세는 영국 국왕이 아닌 사랑을 택했고, 동생 버티가 그 자리를 물려받아 조지 6세로 등극하게 된다.

조지 6세가 즉위하던 1930년대 후반 영국은 히틀러와의 전쟁을 앞두고 있었다. 이미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홍역을 제대로 치른지라, 평화적인 방식을 통해 독일과의 전쟁을 막고 싶었는데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영국 국민 앞에서 전쟁을 선포한 조지 6세는 독일군의 끊임없는 공습에도 불구하고 버킹엄 궁을 떠나지 않고 국민과 전쟁의 참혹한 고통을 함께 나눴다.

영국 왕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인 표본으로 불린다. 에드워드 8세, 조지 6세 모두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고, 조지 6세는 1916년 윌란 해전에서 포탑 장교로서 활약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조지 6세의 딸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영국 왕위 계승자들에게 적용되는 군 복무의 의무는 엘리자베스 2세의 아들, 손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영 제국의 위상이 급격히 무너짐과 동시에, 왕실의 존재에 대한 회의론적인 시선 속에서도 여전히 영국 왕실이 수많은 국민의 존경과 관심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변의 달인 히틀러에 맞선 그의 진정성

 언변만 놓고 보면, 그는 프로파간다에 능했던 히틀러에 비할 인물이 아니었다.

언변만 놓고 보면, 그는 프로파간다에 능했던 히틀러에 비할 인물이 아니었다.ⓒ (주)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언어장애 버티에게 초점을 맞춘 <킹스 스피치>는 조지6 세가 어떤 국왕이었고, 무슨 업적을 남겼는지 세세히 보여주지 않는다. <킹스 스피치>를 통해 바라본 조지 6세는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지만 언어 장애 때문에 항상 벽에 부딪히고, 욱하는 성질이 다분한 흠결 많은 인간이었다. 그러나 조지 6세는 전쟁에 대한 불안으로 떨고 있는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왕이 되고 싶었고, 말을 더듬는 장애를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국민을 위해 트라우마까지 극복했던 조지 6세의 진심은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라디오 연설에서 고스란히 전달되었고, 이 연설은 전쟁을 앞둔 영국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역사가 되었다.

언어 장애로 고초를 치러야 했던 조지 6세와 달리, 영국이 맞서 싸워야 하는 독일의 히틀러는 언변의 달인이었다. 히틀러를 도와 나치 정권을 부흥시키는 데 일조한 괴벨스의 대중 선동의 심리학은 프로파간다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승리의 여신은 화려한 선전술과 웅변기술로 그럴싸하게 포장했던 히틀러의 나치가 아니라 말솜씨는 부족해 보이더라도 최선을 다해 영국의 정신을 설파한 조지 6세의 손을 들어주었다.

조지 6세의 전쟁 선포 연설이 영국 국민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던 것은, 단순히 조지 6세가 연설을 잘해서가 아니다. 연설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은 히틀러가 훨씬 더 월등하다. 그 당시 웬만한 영국 국민은 조지 6세가 심각하게 말을 더듬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말을 더듬는 현상을 어느 정도 교정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조지 6세는 왕위 등극 전부터 친서민적인 행보를 보여온 왕족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언어 치료사 겸 친구인 라이오넬과 티격태격하는 장면이 많이 잡히긴 했지만, 호주 출신 평민인 라이오넬과 격의 없이 지내는 소탈한 면모도 가지고 있었다.

 영화 <킹스 스피치> 포스터. <킹스 스피치>는 리더에게 정말 필요한 덕목이 '언변'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지도자는 어떤 덕목을 갖춰야 할까.

영화 <킹스 스피치> 포스터. <킹스 스피치>는 리더에게 정말 필요한 덕목이 '언변'이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진짜 지도자는 어떤 덕목을 갖춰야 할까.ⓒ (주)나이너스 엔터테인먼트


남이 써준 연설문 읽는 대한민국의 리더

영국 국민들은 말을 더듬던 군주 조지 6세를 사랑했고, 위기 상황 속에서도 지도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훌륭한 왕으로 평가한다. 뛰어난 언변은 지도자가 갖추어야할 덕목 중 하나다. 그러나 국민들은 국정 운영에 대한 철학, 국민과의 소통 의지가 결여된 채 누군가가 써준 원고를 잘 읽는데만 그치는 리더는 원하지 않는다. 말 솜씨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국정 철학을 국민들에게 제시하고 자신의 말에 책임질 수 있는 지도자를 원한다. 지도자로서 권위만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 격의없이 소통하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국정 운영에 적극 반영하는 리더를 원한다. 국민이 어려울 때 그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이는 지도자면 더할 나위 없겠다.

불행히도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 국민들은 리더의 자격을 고루 갖춘 훌륭한 지도자들을 영화 혹은 드라마에서만 만나야 했다. 2012년 대선 직전에 개봉한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와 같은 경우는 <킹스 스피치>와 비슷하게 휴머니즘 관점에서 이상적인 지도자상을 그려 냈을 뿐이데, 극 중 광해군이 고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는 희한한 논리로 <광해, 왕이 된 남자>를 투자, 배급한 CJ 엔터테인먼트가 박근혜 정부에게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다는 소문도 전해 내려온다.

이제는 진짜 국가와 국민을 위해 국정을 운영하는 지도자를 영화나 드라마로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이끌 리더로 선출할 때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앞둔 영국 못지 않게 불안한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지금. 역사적으로 명연설로 회자될 정도로 국민들의 감정을 벅차오르게 한 조지 6세의 책임의 리더십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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