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눈발>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상처를 관찰한다.

영화 <눈발>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상처를 관찰한다. ⓒ (주)리틀빅픽쳐스


고등학생 민식(진영 분)은 부모를 따라 아버지의 고향인 경남 고성에 내려온다. 목사인 아버지는 새로 맡은 교회 신도를 모으는 데 여념이 없고, 민식은 민식대로 전학 온 학교에 조금씩 적응해 나간다. 그러던 민식의 눈에 같은 반 여학생 예주(지우 분)가 들어온다. 살인 용의자의 딸이란 이유로 아이들의 괴롭힘에 시달리며 그늘져 있는 아이다. 민식은 우연한 계기로 예주와 가까워지고, 두 사람은 편할 날 없는 학교생활 속에서 서로 유일한 대화 상대이자 안식처가 된다. 하지만 이들을 대하는 학교 아이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여기에 민식의 아버지를 비롯한 어른들까지 예주를 몰아세운다. 그렇게 소년과 소녀의 우정은 시험대에 오른다.

영화 <눈발>은 10대 청소년의 내면에 자리한 감정의 물결을 처연하게 조명한다. 그 중심에 있는 건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예주의 상처, 그리고 이를 대하는 민식의 작은 위로다. 영화는 얼어붙은 듯한 예주의 무표정이 민식을 통해 희미한 미소로 변해가는 과정을 세심하게 포착한다. 작디작은 행복의 불씨를 위태롭게 키워가는 두 사람은 세상 가장 작은 친구이자 연인으로서 연대한다. 외부 세계의 부당한 폭력에 맞서 서로를 보듬는 이들의 연대는 나약하지만 그만큼 절실해 쌉싸름한 뒷맛을 남긴다.

 부당한 현실, 이들의 아픔이 관객에게까지 와 닿는다.

부당한 현실, 이들의 아픔이 관객에게까지 와 닿는다. ⓒ (주)리틀빅픽쳐스


살인자로 낙인찍힌 아버지 때문에 자신까지 학교 동급생에게 시달리는 예주의 일상은 아릿하다. 아이들은 예주에게 우유 팩을 던지고, 급식으로 나온 카레를 그의 손에 붓고, 손찌검한다. 다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아이들의 폭력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화살이 되어 그를 공격한다. 헤어날 길 없는 이 상황에서 학교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산과 바다가 있는 지방 소도시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예주의 처지를 효과적으로 부각한다. 철저하게 침묵 되는 정의는 고요한 마을의 풍경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예주를 연민하는 '이방인' 민식의 역할은 의미심장하다. 수원에 살던 민식이 알 수 없는 '사고'를 친 탓에 온 가족이 고성으로 이사 왔다는 설정은 빈칸으로 남아 그의 모호한 정체성을 형성한다. 과거 가해자, 혹은 피해자였을 민식이 예주를 돕는 전개에서 일견 그의 죄책감이나 부채 의식이 비치는 것도 그래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연대는 나름 설득력을 얻고, 예주에 대한 민식의 개입은 희망과 무력감 사이를 위태롭게 넘나들며 서사를 견인한다. 함께 분식집에 가고 산을 오르며 이어지는 둘의 동행은 이들이 처한 부당한 현실과 대비되며 더욱 이상적으로 각인된다.

 침묵, 외면 그리고 폭력.

침묵, 외면 그리고 폭력. ⓒ (주)리틀빅픽쳐스


예주가 민식을 통해 조금씩 희망을 쌓아가는 와중에 이어지는 영화 후반부 굵직굵직한 에피소드들은 뼈아프다. 민식을 따라 교회에 나간 예주가 맞닥뜨리는 시련, 산속 구덩이에서 꺼낸 새끼 염소를 돌보는 두 사람 앞에 닥치는 사건까지. 학교 밖에서도 이들을 옥죄는 폭력의 민낯은 추악하고 잔인하기 이를 데 없고, 또래 내의 따돌림을 넘어 '남성'이자 '어른'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강자의 폭력은 폐부를 깊숙이 찌른다. 불가항력 앞에 선 예주와 민식의 무력감은 스크린 밖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할 말을 잃게 한다. 이들을 향한 폭력이 정점에 다다르는 클라이맥스 시퀀스에서 보이는 침묵과 외면은 그 정점이다. 여기에 엇갈려 한때나마 웃음을 되찾은 예주의 밝은 얼굴은 잔영처럼 남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눈발 지우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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