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가이>는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아라가이>는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RKB?日放送


"군인들이 오고 있다. 얼른 준비해.(軍人たちが來ている。 早く準備しろ)"

지난 2월 상연된 연극 <하나코>의 한 대목. 한 남자의 음산한 목소리가 도저히 빠져나올 길 없는 심연처럼 무대 위에 드리워진다. 남자의 음성은 70년 동안 한분이(예수정 분)와 또 다른 '한분이'들을 괴롭혔다. '조센삐'라 불리던 일본군 위안부 하나코가 한분이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위안부를 다뤘던 연극 <하나코>의 포스터.

위안부를 다뤘던 연극 <하나코>의 포스터.ⓒ LIM AMC


전쟁은 끝났지만, 그보다 더 악몽 같은 나날은 70년을 속절없이 흘렀다. 아비규환 속에서도 목숨을 건져 고향으로 돌아온 소녀들은 수치심에 낯을 들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는 사이 박정희 정부는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위안부 동원을 비롯한 일본의 전쟁 범죄 관련 문제들을 합의했다. 물론 그 자리에 소녀들은 없었다.

어느덧 할머니가 된 소녀들은 세상으로 나와 지난한 싸움을 시작했지만, 고국은 그들에게 또 한 번 원치 않는 굴욕을 끼얹었다. 지난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한일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일본과 합의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참패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큼 졸속으로 처리된 이 협상에도 피해자들의 자리는 없었다. 오히려 이 이후 아베 내각은 평화의 소녀상(위안부 평화비, 아래 소녀상) 이전까지 종용하고 있다.

소녀상은 피해자를 배제한 채 멋대로 역사를 '비가역적'으로 만든 일본과 한국의 만용을 기억하고 이에 대항하는 마지막 상징과도 같다. 그러나 이 가련한 소녀가 한일관계의 '역린'이 돼 버린 것도 사실이다. 이 같은 국면에서, 현재 건립 무산 위기에 처한 '강제징용 노동자상(아래 노동자상)'도 눈에 밟힌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희생자가 된 노동자들을 기리기 위해 설치될 예정이었던 노동자상은 국토교통부의 부지협조 거부에 부딪혔다. 그 이유는 소녀상 이전 문제에 대해 "외교공관이나 영사공관 앞에 조형물 등을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일반적"이라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외면하는 한국, 기억하는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 <아라가이>의 주인공은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아라가이>의 주인공은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이다.ⓒ RKB?日放送


이처럼 고국마저 존중해 주지 않는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역사를 묵묵히 기록해 온 일본인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후쿠오카현 소재 탄광에서 강제로 노역을 해야 했던 조선인 약 17만 1000명의 이야기를 평생에 걸쳐 적어 내려가고 있는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83)다. 니시지마 신지(59)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抗い(아라가이, 저항)>에는 하야시가 보고, 듣고, 몸소 겪은 국가 권력의 만행이 담담히 그려져 있다.

영화는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모여 살던 아리랑 부락의 자취를 좇는 하야시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한다. 졸지에 조국을 잃고 광부가 된 조선인들이 '아리랑'을 부르며 고개를 넘어 탄광으로 향하는 모습이 눈에 선할 만큼 생생한 증언과 자료들이 인상적이다. "배가 고프다"고 하면 목도로 얻어맞고, 동료가 노역 중 죽어도 마음껏 슬퍼하지 못한 채 철저히 이용당한 조선인들은 에너지 혁명 이후 토사구팽(兎死狗烹)당하고 만다. 이 비참한 과거는 하야시가 직접 취재한 당사자의 입으로 들을 수 있다. 피해자들의 기구한 사연을 소개하며, 하야시는 "일본인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한다.

하야시가 자국의 어두운 역사를 직시하게 된 데는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하야시의 아버지는 탄광에서 도망친 조선인 광부들을 숨겨 주고 보살펴 주었던 일본판 '오스카 쉰들러'였다. 이를 특별고등경찰에게 들킨 하야시의 부친은 모진 고문을 겪어야 했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아버지에게 향했던 '국적(国賊)', '비국민(非國民)'이라는 멸시는 하야시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그 역시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목숨을 잃고 말았던 이들처럼 전쟁의 피해자였다. 전쟁의 목적은 국가라는 거대 권력의 승리. 개개인의 존엄성은 필연적으로 짓밟힐 수밖에 없었다.

가족의 비극을 계기로 국가 권력의 횡포에 반감을 갖게 된 그를 움직였던 책은 대학 시절 읽었던 '야나카 마을 멸망사(아라하타 칸손)'였다. 이 책을 통해 그는 기록하고자 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눈을 돌렸고, 몸을 던졌다. 아시오 구리광산의 광독(鑛毒)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문명이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경계했던 다나카 쇼조 역시 하야시로 하여금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에 '抗い'하도록 만들었다.

유지하기 어려웠을 법한 신념을 반세기 가까이 지켜 나가고 있는 그의 최신 저서는 '실록증언 다치아라이 사쿠라탄기사건 조선인 특공대원 처형의 어둠'이다. 다치아라이는 후쿠오카현의 지역 이름으로, 여기에는 '카미카제', 혹은 '독고다이'로 알려진 자살특공대를 양성하는 비행학교가 있다. 여기서 소년들은 어릴 적부터 '특공인형'으로 세뇌당한 채 특공기에 폭탄과 함께 몸을 싣게 된다.

하야시는 당시 특공기였던 사쿠라탄기 방화 사건으로 황해도 출신의 특공대원 야마모토 타츠오가 억울하게 처형됐다고 주장한다. 출정 직전 사쿠라탄기에 불이 나는 바람에 일본군은 큰 손해를 입었고, 조선 출신의 병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겼다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하야시는 또 한 번 현장으로 나선다. 그리고 사건 전날 야마모토와 계속 함께 있었다는 전 특공대원의 증언은 하야시의 가설에 힘을 싣는다. 어쩌면 민족 차별의 희생양이었을지도 모를 야마모토의 죽음. 이를 조명한 것은 단 하나의 진실을 더듬어가며 국가의 비인륜적 행위를 폭로하려던 하야시의 고집이었다.

역사의 페이지를 복원하다

 다큐멘터리 영화 <아라가이>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다큐멘터리 영화 <아라가이>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RKB?日放送


영화는 하야시의 손과 입을 빌어 전범국 일본이 저지른 국가 권력 남용의 일면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역사의 증인'으로서 살아온 하야시의 험난한 삶 역시 비춘다. 그는 식도암이라는 병마와 싸우고 있다. 항암제 부작용 탓에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 자유롭지 않아 테이프로 펜을 손가락에 고정한 채 여전히 기록을 이어가는 중이다. 끝내 가해자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를 받지 못한 피해자들의 원념이 세월 속으로 침잠해 가듯, 하야시의 육신은 스러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집념이 남긴 기록만은 외면당했던 역사 위로 떨어지는 빛처럼 찬란히 남을 터다.

'아라가이'는 이처럼 하야시의 나라, 그리고 우리의 나라가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의 찢긴 페이지들을 훌륭히 복원해냈다. 그리고는 백발의 기록작가가 남긴,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는 민족은 자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말로 끝을 맺는다. 이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신채호의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모두가 '잊자'고만 하는 시대에 '잊지 않음'으로써 살아가고 있는 하야시의 굽어 버린 손가락이 깊은 교훈을 준다.

작가 배홍진은 '그림 속으로 들어간 소녀'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들이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일갈을 대신했다. "내가 너에게 70년의 삶을 설명하는 동안 70년의 삶이 지나갔다. 나는 여기에 있는데 너는 어디로 갔는가?" 소녀들이 늙고, 노동자들이 병드는 사이에도 받아 적지 못한 진실들이 한가득하다. 거짓에 뜯기고 구겨져 너덜너덜해진 역사책의 빈칸을 채워 넣는 것이 남은 우리의 몫이다. 역사는 진실의 흐름이다. '최종적'이고 '비가역적'이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다. 하야시 에이다이의 처절한 기록과 저항적 삶 앞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잊어가며 또 잃어가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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