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요? 오마이스타는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리더의 조건'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로렐 헤스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 뉴저지 주 오션 카운티에 살던 그녀는 경찰관이었죠. 그녀는 25년간 지역의 법 집행관으로 충실히 근무한 공무원이자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납세자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로렐은 큰 비극을 겪고 맙니다. 바로 폐암에 걸려 1년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선고를 받은 것이죠. 이것만으로도 큰 일이었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로렐은 자신의 연인과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대출을 받아 집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일을 하지 못하고 많은 병원비를 지출한 탓에 집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것이죠. 물론 방법은 있었습니다. 그녀의 연인이 유족 연금을 받는 것이었죠. 하지만 오션 카운티의 의원들은 이 연금의 지급을 거부하고 맙니다. 왜 그랬을까요?

대한민국의 리더이거나 대선을 준비하는 예비 후보들에게 전하는 글을 미국 땅의 그리 유명치도 않은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이 조금은 이상하게 여겨질 것입니다. 하지만 또한 궁금하기도 할 겁니다. 왜 유족 연금은 지급이 거부 되었을까요? 이유는 바로 로렐의 연인이 그녀와 같은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눈치를 채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야말로 성소수자들의 실망과 분노가 가득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더불어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님은 보수 교회 단체를 찾아 다른 성적 지향을 이유로 배제되거나 차별되지 않도록 현행법에 규정돼 있다며 차별금지법과 혼인 평등 입법이 추진되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으니까요. 같은 당의 안희정 충남지사님은 비슷한 질문에 '시기상조'라고 답하셨죠. 심지어 다른 후보님들 중에서는 이 사안에 대해 아예 입장조차 없는 분들도 계십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로렐과 스테이시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로렐과 스테이시 ⓒ Lieutenant Films


로렐과 다를 것 없는 한국 성소수자들의 삶

어쩌면 차별금지법이나 동성 혼인처럼 적극적인 차별 해소 제도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신 분들과 아무런 입장이 없는 분들은 잘 모르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법안이 없는 상태에서 성소수자들의 삶은 어떠한가를요. 제가 말씀드렸던 로렐은 이후 어떤 시간을 겪게 되었을까요. 연인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이별을 준비하기도 모자란 판국에 그녀는 오션 카운티 의회에 꼬박 출석하여 연인인 스테이시에 대한 유족 연금 지급을 요구해야만 했습니다. 슬픔과 병이 주는 고통만으로도 몸을 가누기 힘든 때, 파트너의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로렐과 스테이시가 이성애 커플이었다면 그들은 그런 난관에 처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로렐이 겪은 일은 성소수자들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의 한 단면에 불과합니다. 한국이라고 다를 것 같은가요? 제 주변에는 자신의 연인과 함께 사는 동성애자 친구들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둘 중 한 사람이 병에 걸려 급하게 중대한 수술을 해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두 사람은 사실상 서로의 보호자임에도 누구도 상대방의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커플 중 한 쪽이 갑자기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들은 법적으로 부부 관계를 맺을 수 없기에, 남겨진 사람은 파트너의 재산을 제대로 상속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두 사람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던 소중한 집이 다른 이의 손에 넘겨지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구요.

불평등과 혐오가 삶에 끼치는 영향

로렐의 상사들은 그녀가 레즈비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다지 개의치 않았고 이는 다른 경찰들도 마찬가지였죠. 그런데 만약 로렐이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거나 어떤 식으로든 업무상 불이익을 겪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녀는 오션 카운티 최초의 여성 부서장 후보로 거론될 만큼 출중한 경찰이었습니다. 과연 로렐이 그 정도 위치에 오르는 것이 가능했을까요. 그런데 심지어 한국은 성소수자들에 대한 혐오가 만연함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저지할 제도를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로렐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 이들이 일터와 학교에서 스스로를 드러낸 채로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을까요? 그러지 못한다면 그들과 그리고 우리가 잃게 될 것은 무엇일까요.

이것들이 후보님들이 지금 당장 해소하지 않겠다고 말한 불평등과 막지 않겠다고 이야기한 혐오가 초래할 결과들입니다. 여러분들은 사회적 합의가 마련된 이후에, 그 적절한 시기가 올 때에 제도들의 도입을 고려해보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로렐이 겪은 일, 그리고 차별과 혐오로 인한 다양한 삶의 비극들은 지금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어쩌면 그녀에게 그랬을 수도 있었던 것처럼, 후에야 제정될 법안들은 선량한 무덤들 위에 놓여진 한 송이의 꽃과 같은 것이 될지 모릅니다. 물론 로렐은 그런 결말을 맞지는 않았죠. 사람들은 그녀가 처한 상황에 문제 의식을 느꼈고 로렐을 지지해 의회에 압력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의원들은 그녀의 눈 앞에서 스스로의 입장을 바꿀 수밖에 없었죠.

당신은 어느 쪽에 서있습니까

어쩌면 영화 <프리헬드>(2007)에서 언급된 것처럼 로렐은 편법을 통해 스테이시에게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대신 싸움을 택했죠. 그리고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은 주민과 정의를 위해 평생을 바쳐왔다고.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도 정의의 실현을 원한다고. 그녀는 25년간 충실한 법 집행관으로 살아온 자신의 연금이 연인이 단지 동성이라는 이유로 지급이 거부되는 것은 부정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당한 절차를 거쳐 수급권을 가져가고자 했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로렐의 편에 서서 함께 싸웠습니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는 차별에 맞선 이들의 이야기임과 동시에 민주주의의 승리를 다룬 작품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대표자도 시민의 뜻을 거슬러선 안 될 테니까요.

물론 후보님들이 언젠가 압력에 못이기는 척 지금 성소수자들과 이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일을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역사에 단지 그런 리더로 기억되고 싶은가요? 우리가 기억하는 훌륭한 대표자들은 사람들의 저항에 못이겨 자신의 뜻을 바꾼 사람들이었나요? 아니면 이런저런 둘러댐 없이 사회적 정의를 위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신념을 밀고나간 사람들이었나요. 후보님들은 지금 어느 자리에 서있나요. 죽음이 임박한 그 순간까지도 부당한 차별에 맞서고 정의를 추구한 로렐의 자리에 있나요. 아니면 그 반대편에서 불안 속에 내던져진 소수자들을 보고도 머뭇거렸던 의원들의 위치에 있나요.

 평등한 유족 임금 지금을 요구하는 피켓

평등한 유족 임금 지금을 요구하는 피켓 ⓒ Lieutenant Films


대표자가 지닌 의무

정의당 대선 후보인 심상정 대표는 얼마 전 개최된 성소수자 인권포럼에 참석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것은 성소수자들의 인권과 자유라고요. 우리 사회가 이런 것들을 보장한다고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공동체의 많은 개인들의 존엄은 쉽게 붕괴되기를 반복할 것입니다. 저는 후보들에 대한 신뢰를 손쉽게 거두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길게 인내할 생각도 없습니다. 이것은 제 친구들이 살아갈 인생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미 스스로를 둘러싼 혐오를 견디다 못해 삶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선택을 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는 제가 소중하게 여겼던 친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아직 한 분만으로는 너무도 부족합니다. 그러니 부디 기억해주세요. 로렐의 삶을.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로렐들을. 그리고 나중의 변화를 약속하지 말고 지금 당장 그것을 이룩해 주세요. 여러분들은 그럴 힘도 의무도 가지고 있습니다.

성소수자 프리헬드 차별금지법 혼인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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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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