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연극·뮤지컬 팬들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기사가 등장했다. 제목은 "오늘도 '대학로 왕자님' 퇴근길 지키러 갑니다". 최보윤 기자가 작성해 <조선일보> A21면에 실린 이 기사는 27일 오전 3시께 온라인으로 선발행됐고, 27일 낮부터 트위터 등 SNS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해당 기사는 '퇴근길'이라는 팬 문화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23일 오후 뮤지컬 <더 데빌>의 공연이 끝난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앞 현장을 리드로 잡았다. 퇴근하는 배우를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팬들의 모습을 스케치한 후, 팬의 멘트도 첨부했다. 연극·뮤지컬을 소비하는 주계층이 20·30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이들이 해당 작품을 다른 사람에게 '영업'하기도 하고, 새로운 배우를 '발굴'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이에 대한 전문가의 평가와 관계자의 코멘트도 첨부했다. 전체적인 '야마'와 '와꾸'만 보면 나쁘지 않은 기사였다.

그런데 왜일까. 이 기사를 보고 나서 샘솟는 불편함과 불쾌감은. SNS에서 뜨거웠던 반응도 아마 기자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이었을 것이다. 해당 기사를 성토하는 팬들의 의견이 쏟아졌다.

[하나] 사진

<조선>의 보도 <조선일보>가 27일에 출고한 기사의 갈무리. 기사 내 사진은 현재 팬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후, 흑백으로 수정됐다.

▲ <조선>의 보도 <조선일보>가 27일에 출고한 기사의 갈무리. 기사 내 사진은 현재 팬들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후, 흑백으로 수정됐다. ⓒ 조선일보


우선 사진. 해당 기사의 사진에는 팬들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물론 모든 뉴스 사진에서 일반인의 초상권이 보호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집회나 시위 현장의 경우, 참여 자체가 적극적인 자신의 사회·정치적 의견을 표출하는 것이므로 법적으로 초상권이 인정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거리 스케치나 뉴스 사진의 경우에도, 해당 언론사의 카메라가 공개적으로 있고 취재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는지가 중요하다. 만약 이를 알고 피하지 않았다면 묵시적으로 동의한 것으로 보게 된다. 하지만 정작 해당 사진은 이 중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팬들이 불쾌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

'퇴근길'은 말 그대로 무대의 공연이 끝난 후 배우가 사생활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그 사이에 잠깐 팬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사진도 찍고, 선물도 받는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대체로 퇴근길은 공식적인 행사도 아니고, 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무리 배우가 '셀러브리티'라고 하더라도 사적 성격을 포함하는 현장의 사진을 매체가 촬영하여 배포하는 것 역시 민감할 수 있다. 법적인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과 별개로 말이다.

[둘] 개런티

기사 본문에는 팬들의 적극적인 소비 덕분에, 대학로 배우들이 티켓 파워를 가지게 되었고 페이가 상승했다는 서술이 나온다. 그 와중에 특정 배우의 소극장 뮤지컬 개런티가 회당 100만 원으로 '선두급'이라고 기사는 표현했다. 특정 배우의 개런티가 갑자기 '커밍아웃' 된 상황이다. 소속사와 배우의 동의가 있었던 건지, 어떤 작품에서 받은 개런티인지, 최근 수준인지 아니면 몇 년 전에 비공식적으로 오갔던 정보인지는 알 수 없다.

개런티 자체가 굉장히 민감할 수 있는 정보라는 점은 일단 차치하자. 연극·뮤지컬의 오랜 문제점 중 하나가 바로 양극화이다. 대극장 뮤지컬 무대에서 굉장히 높은 페이를 받는 배우들이 있다. 해당 배우를 캐스팅하는 과정에서의 막전막후가 무용담처럼 전해지고는 한다. 반면 어떤 무대에서는, 다른 일을 아르바이트로 뛰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배우들도 있다.

일이 항상 고정적·안정적으로 있기 어려운 무대인데, 과연 회당 100만 원이라는 숫자가 객관적으로 얼마나 높은 보수인지는 분간하기 어렵다. 팬들의 응원과 사랑 덕분에 대학로 무대만으로 생존의 걱정을 하지 않는 배우가 늘어났다면 그건 분명 박수를 보낼 일이다. 그런데 이 기사의 서술은 이 "팬들을 몰고 다니는" 배우들의 인기를 '아이돌'에 비하고 있다. 몸값이 "수직상승"했다는 표현은, 응당 받아야 했을 땀의 대가를 이제야 받는다는 게 아니라, 자칫 '도가 지나치다'는 오해를 심어줄 수도 있다.

[셋] 여성

뮤지컬 <레드북> 공연 실황 지난 10일,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레드북>의 공연 실황 사진. <레드북>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 여성이 재산을 갖는 것도 금지이던 시절 주체적인 여성 '안나'가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게 표출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오는 22일까지. 유리아·박은석·지현준·김국희·김태한·주민진·윤정열·장예원 등.

▲ 뮤지컬 <레드북>의 성공 뮤지컬 <레드북>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대학로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도 얼마든지 재미있는 작품이 올라올 수 있음을 보여줬다. 표 상당수가 매진되며 상업적 가능성도 보여줬다. 사진은 주인공 안나 역으로 열연한 유리아 배우의 모습.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최보윤 <조선일보> 기자가 연극·뮤지컬 팬들의 문화를 조롱하기 위해 이러한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공급자의 논리에 의해서만 시장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건전하고 평등한' 시장이 이 판에 성립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선의'를 쉽게 팬들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선입견에 의해 수차례 상처받았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멀리는 한 연극의 홍보 인터뷰에서 제작사가 밝혔던 제작 동기가 그러했고, 가까이는 이 기사가 그렇다.

예컨대 "최근 들어선 여배우들이나 작사·작곡가에게까지 관심 분야를 넓히고 있다"는 서술이 그렇다. 여배우들에게 관심을 두는 것은 최근에서야 생겨난 트렌드가 아니다. 연극·뮤지컬 무대에 오르는 여성 배우 중에는 이전부터 상당한 팬덤을 보유하며, 많은 사랑을 받던 이가 여럿 있다. 그런데 해당 서술은 팬들에게는, 연극·뮤지컬의 주 소비자가 이전까지 남배우들에만 주로 관심을 쏟고 있었던 것처럼 다가온다. 팬들이 이런 식의 서술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아래의 명문이 잘 설명하고 있다.

"공연의 주 소비층이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남성에게 중요한 역할을 맡기는 것은, 그 자체로 이성애 중심적이고(여성은 남성에게만 관심이 있다), 여성 혐오적인(여성 관객은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멋진 남자 배우에게만 관심이 있다) 발상에 기반한다. 여성 관객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한편, 남성 중심 작품을 확대 재생산하여, 여배우가 기량을 발휘할 기회를 빼앗고 관객의 선택지를 축소한다면 남는 건 악순환뿐이다." - 안세영 기자, <더뮤지컬> 2016년 6월호, "[CULTURE IN MUSICAL] 뮤지컬 속의 여성" 중에서

물론 이 판이 상업적으로 남배우 위주로 편성됐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게 과연 소비자의 탓으로만 '후려칠' 문제인가. 영화 등 다른 장르도 비슷하기는 하지만, 연극·뮤지컬이라는 장르는 유독 더 여성의 입지가 불리하다. 극이든, 캐릭터든, 페이든 마찬가지이다. 다양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고, 보다 여성 배우가 주목받을 수 있는 무대 서사가 이 장르에 정착된다면 상황은 바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점차 이러한 관행들은 바뀌고 있다. 최근 여성이 서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극을 이끌거나, 젠더적 평등을 추구하는 작품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상업적으로도 꽤 성과를 거두었다. 최근에 여배우에게 더 많은 관심이 조명되는 건, 이러한 환경적 요인이 작용한 탓이 크다. 낙수효과처럼, 남배우에게 쏠렸던 관심이 폭발하면서 그 여파가 여배우에게까지 전달된 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기사의 지나치게 축약적인 문장들이 일부 팬들에게는 '여성 관객은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멋진 남자 배우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발상에 근거한 것처럼 다가와버린 것이다.

최보윤 기자는 "혹시 기사 확인하셨는지 해서 다시 여쭙니다"고 팬에게 되묻기 전에, 이 장르의 오랜 팬들을 먼저 배려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넷] 왕자님

뮤지컬 '난쟁이들', 15금 동화이야기 4일 오후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창작뮤지컬 <난쟁이들> 프레스콜에서 배우들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난쟁이들>은 제3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앙코르'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백설공주', '신데렐라', '인어공주'의 동화내용을 비틀어 담은 어른이 뮤지컬이다. 2월 27일부터 4월 26일까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공연.

▲ 대학로 왕자님들 지난 2015년 3월 4일, 서울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열린 <난쟁이들> 초연 당시 프레스콜 단체 사진. 필자가 아는 '9등신'의 '대학로 왕자님'은 이들밖에 없다. "끼리, 끼리, 끼리끼리 만나." ⓒ 이정민


그리고 여기에 '왕자님'이라는 타이틀이 붙는 순간, 마치 화룡점정처럼 이러한 문제점이 배가하게 된다. 팬들 중에서 배우들을 '대학로의 왕자'로 호명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오직 언론만이(그것도 대체로 이 장르를 잘 모르는) '대학로 아이돌', '대학로 황태자', '대학로 왕자님' 등의 워딩을 자의적으로 부여할 뿐이다. 설사 악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어휘로 제목이 나오게 되면 대학로의 '왕자님'을 보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 든 무개념 '빠순이' 구도의 프레임이 은연중에 재생산된다.

이러한 제목으로 프레임이 짜이게 되면 받아들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심히 불쾌할 수 있다. 독자들이 이를 '꼰대'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바로 아래와 같은 '꼰대'스러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특정인에만 빠져있을 뿐 예술과 문화를 고루 즐기지는 못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쏠림이 생기고 실력 있는 예술가들이 배가 고픈 겁니다."
"참 할일들 없나보네. 저러고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무슨 생각으로 저럴까, 몹시 궁금하네."
"아 이런 여자애들 진짜 싫음. 나 아는 애도 똑같은 거 수십 번 보고 배우 덕질 장난 아니고."
"남자들아. 정신 좀 차려라. 네 여친, 네 아내한테 실컷 갖다 바치면, 걔네들은 지가 번 돈으로 다 저렇게 자기 욕망 채우는 데 쓴다."

포털 댓글 몇 개가 중립적인 독자의 여론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보윤 기자와 <조선일보>의 '선의'와는 관계없이, 해당 기사가 일부 독자들에게 팬 문화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를 부추긴 건 분명해 보인다.

전문지와 대중지는 특정한 장르에 대해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다. 전문지는 해당 기사의 가상 타깃을 해당 장르의 마니아로 잡는다. 반면에 대중지는 예상 독자를 해당 문화나 장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으로 상정하고 글을 쓴다. 하여 대중지는 대체로 이러한 현상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소개하기 위해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때가 많다.

팬덤 문화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기성세대의 전통은 오래되다 못해 유구하다. 경제력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문화 콘텐츠를 소비하는 여성을 멸시하는 남성의 시선도 존재한다. <조선일보>의 의도와는 다르게, 결과적으로 이 기사는 그러한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일부 남성의 멸시적 편견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고 말았다.

수정과 사과, 하지만...

해당 기사는 현재 소속사 등 자잘한 팩트 오류가 있었던 부분이 삭제됐고, 민감할 수 있는 특정 배우의 개런티 관련 서술이 수정되었다. 문제가 된 사진의 경우에도 팬들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되고 전체 사진도 흑백으로 바뀌었다. 메일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 독자들에게 최보윤 기자는 사과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자수가 엄격하게 제한된 지면 기사의 특성상, 경제적으로 기사를 작성하다 보니 그의 선의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결과에 대한 책임에 대해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도 없다. 기자는 결국 기사로 말하는 사람이니까.

해당 기사는 여전히 그 제목 그대로 주요 포털 사이트와 <조선일보> 온라인판에 실려 있다. 연극·뮤지컬에 대해 잘 모르는 누군가가 언젠가 그 기사를 클릭하고, 이 장르에 대한 잘못된 인식만 강화할 일은 앞으로도 지속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대학로 배우들은 누군가의 '왕자님'이 결코 아닌 데 말이다. 26일 오후, 어떤 작품의 마지막 공연이 있던 날. 필자도 대학로에서 누군가의 퇴근길을 챙기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공주님'을 보기 위해 퇴근길을 '지키러' 갔던 건 아니었다.

대학로 왕자님 조선일보 난쟁이들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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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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