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옥탑방 왕세자>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처럼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다른 시공간으로 던져진 주인공의 우왕좌왕 적응기를 그리는 종류, 그리고 <나인> <인현왕후의 남자> 처럼 주인공이 자유롭게 시간을 이동하며 정해진 운명 혹은 역사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종류.

후자의 경우, 주인공이 시간을 오가는 '매개체'와 시간 여행이 현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과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때문에 드라마 속 시간여행자들은, 극 초반의 대부분을 타임슬립의 규칙과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데 집중한다. 타임슬립 규칙의 빈 곳이 채워질 때마다 반전과 놀라움은 이어지고, 이는 타임슬립물의 재미를 극대화 시키는 요소가 된다.

타임슬립의 규칙  

 tvN <내일 그대와> 스틸 사진

tvN <내일 그대와> 속 시간여행자 소준(이제훈 분)은 지하철을 타고 타임슬립한다. ⓒ CJ E&M


tvN 금토드라마 <내일 그대와>의 시간여행자 유소준(이제훈 분)의 매개체는 '지하철'이다. 미래로 가려면 남영역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현재로 돌아오려면 서울역에서 남영역으로 오는 지하철을 타면 된다. 원하는 미래로 이동할 수 있으며, 미래에 머무르는 시간이나 시간 여행 횟수에 제한도 없다. 미래의 자신과 마주치면 소멸될 수 있으니 최대한 빨리 현재로 돌아가야 한다. 그는 이 모든 룰을 알아내는데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 첫 시간 여행에서 만난 선배 시간여행자 두식(조한철 분)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타임슬립의 규칙을 밝혀내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던 다른 시간여행자들과 비교해본다면, <내일 그대와>의 소준은 많은 시간을 번 셈이다.

하지만 반환점을 돈 지난 8회까지도, <내일 그대와>의 시간 여행은 여전히 허점이 많다. 첫 회에서 죽어가는 자신을 목격해 놀란 유소준에게 두식은 "2019년 3월 25일 오후 9시 15분, 네가 죽는 시간이다. 미래의 네가 죽으면 여기 있는 너도 사라질지 모른다"면서 빨리 현재로 돌아갈 것을 채근한다. 하지만 3회, 같은 시간으로 이동한 유소준은 눈앞에서 지하철을 놓치는 바람에 현재로 돌아오지 못했고, 결국 미래에서 소멸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내, 그는 현재로 돌아왔다. 남영역과 서울역 사이 터널에 기절한 채로. 미래에서의 소멸이 곧 죽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시간 여행을 통해 얻은 주식, 부동산 관련 정보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소준과 달리, 두식은 시간 여행의 규칙을 밝혀내는 데 모든 것을 건 인물. 하지만 소준은 물론 두식까지도, 이 예상치 못한 규칙에 어떤 놀라움도 갖지 않는다.

시간여행자의 본분 

 tvN <내일 그대와> 스틸 사진

남영역 지하철 폭발사고 생존자인 소준(이제훈 분)과 마린(신민아 분). 이들은 서로가 서로의 '생명의 은인'이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공유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다. ⓒ CJ E&M


걸어서 터널을 이동하다 첫 시간여행을 했던 점이나, 미래에서 소멸된 소준이 터널 안에서 발견된 점을 생각해 본다면, '지하철'은 그저 이동수단일 뿐, 서울역과 남영역 사이, 터널 어딘가에 차원의 문이 있고, 그곳을 통과할 때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걸어서 지나가더라도 충분히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지하철 막차를 놓쳐 미래에 갇힌 소준은 한겨울 길에서 오들오들 떨면서도, 연락도 없이 귀가하지 않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 마린(신민아 분)의 걱정을 알면서도, 걸어서 이동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타임슬립 장르의 가장 큰 재미인 '규칙 찾기'는 두식의 설명으로 짧게 퉁치고, 이미 언급된 규칙의 오류나 예외를 발견하고도 아무런 의심을 갖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능력을 이용해 미래를 오가기만 할 뿐, 소준은 시간여행 규칙과 인과관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대신 소준의 관심은 미래에서 본 자신과 마린의 비극적 결말을 바꾸고 싶어 하는데 쏠려 있다. 소준은 '정해진' 미래를 바꾸기 위해 현재와 미래를 끊임없이 오가지만, 미래에서 만난 누구도, 무엇도, 명확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저 "하루라도 빨리 마린을 놓아주라"고만 할 뿐이다. 

소득 없이 소준이 미래를 오가는 동안, 현재의 마린은 외롭고 상처받고 있다. 마린은 집에 있는 알 수 없는 미래 제품들과 미래 기사가 실린 잡지 등을 보고 남편이 간첩인지 불안해하기도 하고, 남편과 그의 절친 강기둥(강기둥 분)의 사이를 의심하기도 한다. 이 모든 의심은, 소준이 시간여행자라는 사실을 마린에게 털어놓지 않았기 때문. 문제는 이 같은 지지부진 '고구마 전개'가 벌써 3주째 이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소준과 마린의 이혼 뿐 아니라, 소준의 행방불명, 둘의 죽음 등 해결돼야 할 문제가 쌓여있지만, 미래에 전전긍긍하느라 현재를 돌보지 않고 있다. 소준이 시간여행자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의문과 의무를 다하지 않자, 타임슬립 드라마 <내일 그대와>의 재미도 반감하고 말았다.

신민아X이제훈 케미는 100점

 tvN <내일 그대와> 스틸 사진

<내일 그대와>는 '타임슬립' 드라마의 미덕은 잃었을지언정, '로맨틱 코미디'의 본분은 다하고 있다. ⓒ CJ E&M


이 같은 단점 때문인지, <내일 그대와>는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고전 중이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타임슬립' 드라마의 미덕은 잃었을지언정, '로맨틱 코미디'의 본분은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3월 25일,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나 시비가 붙은 소준과 마린은 사람들의 시선에 남영역에서 하차한다. 마린은 소준이 자신을 도촬했다고 생각했고, 부모님에게 끌려 억지로 봉사 활동하러 가던 중이던 소준은 그를 핑계로 도망치듯 내렸다. 두 사람이 내리자마자 지하철은 폭발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남영역 지하철 폭발 사고의 생존자가 됐다.

폭발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소준은 홀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부모님에게 보여드린 마지막 모습이 철없이 도망치는 모습이었다는 후회를 안고 살았다. 마린은 "너라도 살아서 다행이라는 말이 얼마나 죄책감을 자극하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부모님은 네가 먼저 내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셨을 거다"라는 말로 소준을 위로한다. 사고 후 시간여행 능력을 갖게 돼 막대한 부를 갖게 됐지만, 세상일에 시니컬하고 무관심해져 버린 그에게, 마린은 처음으로 진정한 위로를 건네준, 함께 죽음의 고비를 넘긴 동반자였다.

마린에게 위로가 되기는 소준도 마찬가지다. 어린 시절 국민적 사랑을 받던 아역배우였던 마린은,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까지도 '밥순이'라는 어릴 적 극 중 이름으로 가십에 오르내려야 했다. 그런 마린 앞에 나타난, 외모도 재력도 성격도 완벽한 남자 소준은 '밥순이'라는 지긋지긋한 별명 대신 '꽃순이'라는 애칭으로 불러준다. 서툴지만 진심어린 그의 사랑은 마린의 오랜 상처와 무너진 자존심을 치유해준다.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주며, 둘의 사랑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다. 예정된 암울한 미래는 여전히 다가오고 있지만 말이다.

이를 연기하는 두 배우, 신민아와 이제훈의 케미도 훌륭하다. 무엇보다 때론 한없이 발랄하고, 때론 한없이 작아지는, 송마린 캐릭터를 연기하는 신민아의 연기는 발군.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소준의 소꿉친구 신세영(박주희 분)에게 "나는 악플을 먹고 자라서, 누가 날 미워해도 별 상처 받지 않는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 역시, 기존 삼각관계에서 보여준 여자 캐릭터들과는 달라 매력적이었다.

힘 뺀 '타임슬립'도 괜찮지 않을까? 

 tvN <내일 그대와> 스틸 사진

'타임슬립' 설정은 조금 부실하지만, 주연배우 이제훈-신민아의 케미만큼은 100점이다. ⓒ CJ E&M


보통 타임슬립물에서 주인공은 시간 여행을 하며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 휘말리거나(보보경심, 신의), 소중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나인)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내일 그대와>의 시간 여행은 다르다. 최근에는 미래에서 보게 된 자신의 죽음과 사랑하는 마린과의 이별을 피하기 위해 시간여행 능력을 쓰고 있지만, 그의 시간 여행 대부분은 개인의 부를 쌓고, 남보다 먼저 신상 제품을 구입하고, 제철 음식을 맛있게 먹기 위해 쓰였다. 기존 타임슬립물이 이야기하던 거대 담론과는 거리가 있다.

'주인공이 시간을 이동한다'는 설정만으로도 판타지가 완성됐던 초기 타임슬립물과 달리, <나인> <시그널> 등을 통해 한껏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은 <내일 그대와>에도 그만큼 촘촘하고 치밀한 구성의 타임슬립 규칙과 세계관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타임슬립'을 포함한 판타지 장르는 계속해서 변주 중이다. 주인공이 시간여행을 할 뿐,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성격이 더 짙은 <내일 그대와> 역시 이 같은 변주 중에 하나다.

혹자들은 <내일 그대와>의 저조한 시청률을 두고 "로맨틱 코미디와 판타지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고도 하고, "시청자들이 타임슬립물에 지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타임슬립이라는 소재가 이토록 가볍게 다뤄질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타임슬립이 우리에게 가깝고 일상적인 소재가 됐다는 뜻이지 않을까?

오는 3일 방송되는 <내일 그대와> 9화에서는 드디어 소준이 마린에게 시간여행자임을 고백하는 내용이 그려질 예정이다. 소준이 시간여행자임을 감추면서 지난 3주간 이어졌던 '고구마 전개'에 드디어 사이다가 주어질 전망. 여기에 지난주 방송된 8회 말미, 소준의 타임슬립 선배인 두식이, 어린 시절 사라진 마린의 아버지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상태다. 두식이 미래에 갇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없었던 이유와, 머지않아 마린의 곁을 떠난다는 소준의 미래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분명 부족하다. 하지만 1%대 시청률로만 평가하기에는 안타까운 드라마 <내일 그대와>. 이제 막 반환점을 돈 <내일 그대와>는 타임슬립과 로맨스 전개 모두에 급격한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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