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과정에서 문화를 대하는 현 정부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정권 비판적 콘텐츠, 그 관련자들을 지원에서 배제하는 '문화예술계블랙리스트'가 사실상 존재했습니다. 블랙리스트에 명단이 올라간 영화인들의 글을 <오마이스타>에서 전합니다. [편집자말]
"인간을 파멸시키려거든 첫째로 예술을 파멸시켜라. 가장 졸작에 제일 높은 값을 주고 , 뛰어난 것을 천하게 만들어라." - (윌리엄 블레이크, 영국의 시인이자 화가)

 '(가칭) 블랙리스트 대응 영화인 행동(준)' 관계자들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 사퇴 및 구속수사를 영화인 1052명 선언'을 통해 "김세훈 위원장과 서병수시장의 즉각적인 사퇴와 구속수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가칭) 블랙리스트 대응 영화인 행동(준)' 관계자들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관수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문화계 블랙리스트 부역자 김세훈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서병수 부산시장 사퇴 및 구속수사를 영화인 1052명 선언'을 통해 "김세훈 위원장과 서병수시장의 즉각적인 사퇴와 구속수사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최윤석


미움의 이유

대체 왜 이렇게까지 부산영화제를 미워하는 걸까? 그깟 작은 영화 한편 틀었다는 이유 하나로 말이다. 수수께끼는 풀렸다. 결국은 블랙리스트였다. 소문으로만 존재하던 살생부가 실제로 존재했고, 그것도 청와대 지시로 문체부에서 적극적으로 명단을 수집해 관리하며, 소위 '좌파 문화인'들을 공식적으로 왕따시키려 했다는 사실은 충격을 넘어 서글픔마저 들게 한다. 

부산 영화제에 대한 융단폭격은 단순히 세월호를 다룬 <다이빙벨> 상영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미 정권은 영화 및 문화계 전반을 솎아내고 좌파의 씨를 말리려는 국가 차원의 전략을 체계적으로 세워왔다. 마치 유대인을 완전히 제거하려는 나치의 음모처럼 사상이 불손한 문화인들을 블랙리스트라는 아우슈비츠에 가둬놓고 서서히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이에 반대하는 문체부 직원들을 자르면서까지 말이다. 참으로 파렴치하고 시대착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계에 대한 정권들의 탄압은 집요했다. MB정권에서는 영진위과 각종 단체 등을 장악해 영화계를 통제하려고 하다가 조희문-강한섭 영진위원장 등이 함량미달로 큰 반발만 일으켰다. 박근혜 정권은 은밀히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문제적 대상들을 광범위하고 원천적으로 솎아내려 했다. 이는 더 심각한 문화적 왕따 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사회 분열 차원을 넘어 예술과 문화를 크게 퇴행시킨다는 점에서다.

만약 그대로 놔뒀으면 앞으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특정 제작자와 감독 심지어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는 투자가 안 되어 제작이 무산되는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이걸 지켜보면서 '나도 찍히면 안 되겠다. 이런 소재는 건들지 말자' 라는 식의 자기 검열이 판치게 되어 창작의 자유가 위축된다. 이는 군사독재시대에나 가능한 심각한 죄악이며,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을 유린한 심각한 범죄행위다. 대통령 지시로 문화체육부에서 이런 시도가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이 정권이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증거다. 사이비이며 유치하다. 탄핵되고도 남을 이유이다.

가명 뒤에 숨어야 했던 이들

민주주의의 근간은 모두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 박정희, 이승만 찬양 영화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것이 흥행할 가능성이 있다면 투자도 이뤄질 것이다. 심지어 정권이 압력을 넣어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처럼 공급이 넘치는 것은 좋다. 결과는 시장과 관객이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특정 영화인들을 원천 배제하고, 상상력을 제한한다면 이는 시민들의 볼 권리를 빼앗고 상상력을 탄압하는 반민주적, 반시장주의적 행위다.

이런 불행한 사태가 준 교훈은 미국 할리우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 때 '할리우드 10'이란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작가들은 사상이 불손하단 이유로 활동을 금지당했다. 아무도 그들을 찾지 않았다. 이에 작가들은 먹고 살기 위해 가명으로 시나리오를 쓰는데 이중에 성공한 작품들이 부지기수였다. 심지어 아카데미상을 탄 경우도 있었지만 작가들은 시상식에 오르는 것은커녕 영화 크레디트에조차 이름을 못 올렸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 대본은 당시 '할리우드 10'이라는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작가 트럼보가 썼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 대본은 당시 '할리우드 10'이라는 블랙리스트에 올라간 작가 트럼보가 썼다.ⓒ 파라마운트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주연한 <로마의 휴일>도 여기에 해당한다. 작가 트럼보는 동료 작가 이름을 빌려 대신 글을 썼고, 이 작품은 대히트를 하며 아카데미 작가상을 탔지만 트럼보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40년이 지난 1993년 아카데미 위원회는 트럼보에게 트로피를 주면서 주인을 찾아 주었지만 트럼보는 이미 한참 전에 죽은 뒤였다. 얼마 전 이를 소재로 한 영화 <트럼보>가 개봉되었으니 언젠가 한국의 블랙리스트도 영화로 만들어질까?

문화의 아우슈비츠에 강제로 끌려갔던 9천여 명의 명단이 엔딩 크레디트에 천천히 올라간다면 아마도 슬프고 먹먹한 장관이 펼쳐질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암울한 시대에 적어도 그 많은 문화예술인이 저항하고 생각하면서 살았었다는 증표라는 점에서 '영광스러운' 화이트 리스트일지도 모른다.         

정윤철 감독은? 
 정윤철 감독

정윤철 감독ⓒ 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말아톤>, <좋지 아니한가>,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등 연출. 현재는 이정재, 여진구 주연의 <대립군>을 준비 중이다.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부대표 역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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